<앵커 멘트>
4년 4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찾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에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번 방중은 김일성 주석이 죽고 김정일 위원장이 최고 통수권자가 된 이후 다섯 번째인데요.
김 위원장이 수시로 중국을 방문하는 목적이 뭔지 북한과 중국 측 매체보도를 중심으로 자세히 살펴봅니다.
<리포트>
지난 1997년, 본격적으로 북한 최고 권력을 장악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권자로서 처음 중국을 방문한 때는 2000년 5월 29일입니다.
<녹취> 2000년 5월29일-31일 중국 비공식 방문기 기록영화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중국 공산당 중앙 위원회 총 서기이며 중화 인민공화국 주석인 강택민 동지의 초청에 의하여 5월 29일부터 31일까지의 기간에 중화 인민 공화국을 비공식 방문하시었습니다."
지도자 수업을 받던 1983년 6월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간 지 17년 만의 방중이었는데요,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아버지 김일성 주석 사망 후 6년 동안이나 은둔하던 끝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어서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1차 남북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있던 당시 김대중 정부는 방중 낌새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북-중 수뇌부는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사전협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어 김 위원장은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다음해인 2001년 1월 15일부터 20일까지 중국을 또 방문했는데요.
상하이를 방문한 김 위원장은 그곳의 발전상을 보고 ‘천지가 개벽했다’는 발언을 해 개혁. 개방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 것으로 해석됐었습니다.
<녹취> 2001년 1월 15일-20일 중국 비공식 방문 기록영화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중화 인민 공화국에 대한 역사적인 방문은 조⋅중 친선 관계를 공고 발전시키는 데서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아시아와 세계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데 크게 이바지 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방중 이후 2002년 7월, 경제개선 조치와 신의주 특구 구상 등 일련의 경제 개혁 조치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2차 북핵 위기의 와중인 2004년 4월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3번째로 중국 베이징과 제2의 항구도시인 텐진을 방문했는데요.
후진타오 신임 주석 등 중국의 새 지도부와의 유대 강화가 주요 목적이었습니다.
<녹취> 2004녀 4월 19일 - 21일 중국방문 기록영화 : "호금도(후진타오) 동지는 반세기간의 중조 관계 발전을 돌이켜 볼 때 우리는 두 당 두 나라 친선 협조 관계가 뿌리 깊고 나날이 굳건해 지고 있다는 데에 절실히 느꼈다고 하면서 중국의 새 중앙 영도 집단은 두 나라 노 세대 영도자들께서 정성껏 키워주신 중조 친선을 매우 귀중히 여기고 있으며 이 친선을 공고 발전시키기 위해 계속 힘을 놓을 것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6.25한국전쟁을 통해 북한과 혈맹의 관계를 형성한 중국 측 언론 매체들도 김정일 위원장의 방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양국의 우호, 친선을 강조했습니다.
<녹취>중국 외신 보도(2004. 1.20) : "새로운 시대에 중북 우호관계를 새로운 수준으로 향상 시키고 양국 전통 우호 관계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중국은 양당 양국 간 고위급 교류를 강화하고 상호 이해와 신회를 증진하자고 제의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회담에서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강조하면서 6자회담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었는데요.
실제로 두 달 뒤에 3차 6자 회담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녹취> 2004년 4월19일-21일 중국방문 기록 영화 : "호금도(후진타오) 동지는 중국이 조선 반도에 가까운 이웃으로서 시종일관 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소화하는데 힘을 놓고 있으며 조선 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하고 대화를 통한 핵문제 평화적 해결을 지지하며 조선의 합리적인 우려가 응당 중시되고 해결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권 후 4번째로 중국을 찾은 것은 지난 2006년 1월입니다.
당시 8박 9일 이라는 비교적 긴 일정을 소화했는데요.
핵개발과 위조달러 문제로 당시 국제 사회의 비난을 한 몸에 받던 북한이 중국으로 달려간 이유는 중국의 전폭적인 이해와 협조를 구해 국제사회의 고립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녹취> 2006년 1월 중국 방문 기록영화 : "회담에서는 최근 연간 여러 차례 걸쳐 진행된 조-중 최고 영도자들의 역사적인 상봉 이후 두 나라 사이에 선린, 친선과 협조가 더욱 증진 발전되었다고 평가하고, 사회주의 건설과 조국 통일을 위한 두 당 두 나라 인민들의 투쟁에 대한 호상(상호)지지와 연대성이 표시됐습니다."
당시 중국의 광저우와 선전 등 남부 경제 중심지를 돌아본 김 위원장은 북으로 돌아와 이 후 개성공단의 활성화로 이어갔다는 분석이 많았는데요.
이 처럼 김 위원장의 방중은 때로는 경제적인 이유로, 때로는 정치, 군사적인 이유로 ‘뭔가 돌파구가 필요할 때’마다 이뤄져 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녹취> 2003년 9월 조선 중앙TV 보도 : "온 민족의 크나큰 관심과 기대 속에 14일 부터 16일까지 진행되는 금강산 시범 육로 관광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방중 역시 그 맥락이 비슷합니다.
천안함 사태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와중에 만성적인 식량난, 그리고 화폐개혁 후유증으로 인한 경제 혼란 등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의 지원이 절실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과연 김정일 위원장이 이번 중국방문을 통해 무엇을 주고 무엇을 얻었을지, 또 천안함 국면에 대해 중국 측과 무엇을 논의하고 어떻게 대응하기로 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4년 4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찾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에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번 방중은 김일성 주석이 죽고 김정일 위원장이 최고 통수권자가 된 이후 다섯 번째인데요.
김 위원장이 수시로 중국을 방문하는 목적이 뭔지 북한과 중국 측 매체보도를 중심으로 자세히 살펴봅니다.
<리포트>
지난 1997년, 본격적으로 북한 최고 권력을 장악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권자로서 처음 중국을 방문한 때는 2000년 5월 29일입니다.
<녹취> 2000년 5월29일-31일 중국 비공식 방문기 기록영화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중국 공산당 중앙 위원회 총 서기이며 중화 인민공화국 주석인 강택민 동지의 초청에 의하여 5월 29일부터 31일까지의 기간에 중화 인민 공화국을 비공식 방문하시었습니다."
지도자 수업을 받던 1983년 6월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간 지 17년 만의 방중이었는데요,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아버지 김일성 주석 사망 후 6년 동안이나 은둔하던 끝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어서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1차 남북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있던 당시 김대중 정부는 방중 낌새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북-중 수뇌부는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사전협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어 김 위원장은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다음해인 2001년 1월 15일부터 20일까지 중국을 또 방문했는데요.
상하이를 방문한 김 위원장은 그곳의 발전상을 보고 ‘천지가 개벽했다’는 발언을 해 개혁. 개방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 것으로 해석됐었습니다.
<녹취> 2001년 1월 15일-20일 중국 비공식 방문 기록영화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중화 인민 공화국에 대한 역사적인 방문은 조⋅중 친선 관계를 공고 발전시키는 데서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아시아와 세계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데 크게 이바지 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방중 이후 2002년 7월, 경제개선 조치와 신의주 특구 구상 등 일련의 경제 개혁 조치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2차 북핵 위기의 와중인 2004년 4월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3번째로 중국 베이징과 제2의 항구도시인 텐진을 방문했는데요.
후진타오 신임 주석 등 중국의 새 지도부와의 유대 강화가 주요 목적이었습니다.
<녹취> 2004녀 4월 19일 - 21일 중국방문 기록영화 : "호금도(후진타오) 동지는 반세기간의 중조 관계 발전을 돌이켜 볼 때 우리는 두 당 두 나라 친선 협조 관계가 뿌리 깊고 나날이 굳건해 지고 있다는 데에 절실히 느꼈다고 하면서 중국의 새 중앙 영도 집단은 두 나라 노 세대 영도자들께서 정성껏 키워주신 중조 친선을 매우 귀중히 여기고 있으며 이 친선을 공고 발전시키기 위해 계속 힘을 놓을 것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6.25한국전쟁을 통해 북한과 혈맹의 관계를 형성한 중국 측 언론 매체들도 김정일 위원장의 방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양국의 우호, 친선을 강조했습니다.
<녹취>중국 외신 보도(2004. 1.20) : "새로운 시대에 중북 우호관계를 새로운 수준으로 향상 시키고 양국 전통 우호 관계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중국은 양당 양국 간 고위급 교류를 강화하고 상호 이해와 신회를 증진하자고 제의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회담에서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강조하면서 6자회담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었는데요.
실제로 두 달 뒤에 3차 6자 회담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녹취> 2004년 4월19일-21일 중국방문 기록 영화 : "호금도(후진타오) 동지는 중국이 조선 반도에 가까운 이웃으로서 시종일관 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소화하는데 힘을 놓고 있으며 조선 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하고 대화를 통한 핵문제 평화적 해결을 지지하며 조선의 합리적인 우려가 응당 중시되고 해결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권 후 4번째로 중국을 찾은 것은 지난 2006년 1월입니다.
당시 8박 9일 이라는 비교적 긴 일정을 소화했는데요.
핵개발과 위조달러 문제로 당시 국제 사회의 비난을 한 몸에 받던 북한이 중국으로 달려간 이유는 중국의 전폭적인 이해와 협조를 구해 국제사회의 고립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녹취> 2006년 1월 중국 방문 기록영화 : "회담에서는 최근 연간 여러 차례 걸쳐 진행된 조-중 최고 영도자들의 역사적인 상봉 이후 두 나라 사이에 선린, 친선과 협조가 더욱 증진 발전되었다고 평가하고, 사회주의 건설과 조국 통일을 위한 두 당 두 나라 인민들의 투쟁에 대한 호상(상호)지지와 연대성이 표시됐습니다."
당시 중국의 광저우와 선전 등 남부 경제 중심지를 돌아본 김 위원장은 북으로 돌아와 이 후 개성공단의 활성화로 이어갔다는 분석이 많았는데요.
이 처럼 김 위원장의 방중은 때로는 경제적인 이유로, 때로는 정치, 군사적인 이유로 ‘뭔가 돌파구가 필요할 때’마다 이뤄져 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녹취> 2003년 9월 조선 중앙TV 보도 : "온 민족의 크나큰 관심과 기대 속에 14일 부터 16일까지 진행되는 금강산 시범 육로 관광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방중 역시 그 맥락이 비슷합니다.
천안함 사태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와중에 만성적인 식량난, 그리고 화폐개혁 후유증으로 인한 경제 혼란 등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의 지원이 절실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과연 김정일 위원장이 이번 중국방문을 통해 무엇을 주고 무엇을 얻었을지, 또 천안함 국면에 대해 중국 측과 무엇을 논의하고 어떻게 대응하기로 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클로즈업 북한] 김정일 중국 방문 목적은?
-
- 입력 2010-05-08 10:44:22
<앵커 멘트>
4년 4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찾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에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번 방중은 김일성 주석이 죽고 김정일 위원장이 최고 통수권자가 된 이후 다섯 번째인데요.
김 위원장이 수시로 중국을 방문하는 목적이 뭔지 북한과 중국 측 매체보도를 중심으로 자세히 살펴봅니다.
<리포트>
지난 1997년, 본격적으로 북한 최고 권력을 장악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권자로서 처음 중국을 방문한 때는 2000년 5월 29일입니다.
<녹취> 2000년 5월29일-31일 중국 비공식 방문기 기록영화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중국 공산당 중앙 위원회 총 서기이며 중화 인민공화국 주석인 강택민 동지의 초청에 의하여 5월 29일부터 31일까지의 기간에 중화 인민 공화국을 비공식 방문하시었습니다."
지도자 수업을 받던 1983년 6월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간 지 17년 만의 방중이었는데요,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아버지 김일성 주석 사망 후 6년 동안이나 은둔하던 끝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어서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1차 남북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있던 당시 김대중 정부는 방중 낌새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북-중 수뇌부는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사전협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어 김 위원장은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다음해인 2001년 1월 15일부터 20일까지 중국을 또 방문했는데요.
상하이를 방문한 김 위원장은 그곳의 발전상을 보고 ‘천지가 개벽했다’는 발언을 해 개혁. 개방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 것으로 해석됐었습니다.
<녹취> 2001년 1월 15일-20일 중국 비공식 방문 기록영화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중화 인민 공화국에 대한 역사적인 방문은 조⋅중 친선 관계를 공고 발전시키는 데서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아시아와 세계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데 크게 이바지 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방중 이후 2002년 7월, 경제개선 조치와 신의주 특구 구상 등 일련의 경제 개혁 조치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2차 북핵 위기의 와중인 2004년 4월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3번째로 중국 베이징과 제2의 항구도시인 텐진을 방문했는데요.
후진타오 신임 주석 등 중국의 새 지도부와의 유대 강화가 주요 목적이었습니다.
<녹취> 2004녀 4월 19일 - 21일 중국방문 기록영화 : "호금도(후진타오) 동지는 반세기간의 중조 관계 발전을 돌이켜 볼 때 우리는 두 당 두 나라 친선 협조 관계가 뿌리 깊고 나날이 굳건해 지고 있다는 데에 절실히 느꼈다고 하면서 중국의 새 중앙 영도 집단은 두 나라 노 세대 영도자들께서 정성껏 키워주신 중조 친선을 매우 귀중히 여기고 있으며 이 친선을 공고 발전시키기 위해 계속 힘을 놓을 것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6.25한국전쟁을 통해 북한과 혈맹의 관계를 형성한 중국 측 언론 매체들도 김정일 위원장의 방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양국의 우호, 친선을 강조했습니다.
<녹취>중국 외신 보도(2004. 1.20) : "새로운 시대에 중북 우호관계를 새로운 수준으로 향상 시키고 양국 전통 우호 관계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중국은 양당 양국 간 고위급 교류를 강화하고 상호 이해와 신회를 증진하자고 제의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회담에서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강조하면서 6자회담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었는데요.
실제로 두 달 뒤에 3차 6자 회담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녹취> 2004년 4월19일-21일 중국방문 기록 영화 : "호금도(후진타오) 동지는 중국이 조선 반도에 가까운 이웃으로서 시종일관 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소화하는데 힘을 놓고 있으며 조선 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하고 대화를 통한 핵문제 평화적 해결을 지지하며 조선의 합리적인 우려가 응당 중시되고 해결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권 후 4번째로 중국을 찾은 것은 지난 2006년 1월입니다.
당시 8박 9일 이라는 비교적 긴 일정을 소화했는데요.
핵개발과 위조달러 문제로 당시 국제 사회의 비난을 한 몸에 받던 북한이 중국으로 달려간 이유는 중국의 전폭적인 이해와 협조를 구해 국제사회의 고립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녹취> 2006년 1월 중국 방문 기록영화 : "회담에서는 최근 연간 여러 차례 걸쳐 진행된 조-중 최고 영도자들의 역사적인 상봉 이후 두 나라 사이에 선린, 친선과 협조가 더욱 증진 발전되었다고 평가하고, 사회주의 건설과 조국 통일을 위한 두 당 두 나라 인민들의 투쟁에 대한 호상(상호)지지와 연대성이 표시됐습니다."
당시 중국의 광저우와 선전 등 남부 경제 중심지를 돌아본 김 위원장은 북으로 돌아와 이 후 개성공단의 활성화로 이어갔다는 분석이 많았는데요.
이 처럼 김 위원장의 방중은 때로는 경제적인 이유로, 때로는 정치, 군사적인 이유로 ‘뭔가 돌파구가 필요할 때’마다 이뤄져 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녹취> 2003년 9월 조선 중앙TV 보도 : "온 민족의 크나큰 관심과 기대 속에 14일 부터 16일까지 진행되는 금강산 시범 육로 관광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방중 역시 그 맥락이 비슷합니다.
천안함 사태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와중에 만성적인 식량난, 그리고 화폐개혁 후유증으로 인한 경제 혼란 등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의 지원이 절실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과연 김정일 위원장이 이번 중국방문을 통해 무엇을 주고 무엇을 얻었을지, 또 천안함 국면에 대해 중국 측과 무엇을 논의하고 어떻게 대응하기로 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