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포커스] 남아공 월드컵의 그늘…‘철거민’
입력 2010.05.09 (09:59)
수정 2025.03.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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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남아공 월드컵 축구 대회가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남아공에서는 손님을 맞기 위한 막바지 준비 작업이 한창이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모든 축제에는 그늘이 있는 걸까요. 남아공에서도 월드컵 대회를 빛내기 위해 보금자리를 내놓고 철거민이 되는 빈민층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축제 뒤에 가려진 월드컵 철거민의 실상을 남아공 현지에서 구경하 순회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남아공 월드컵. 개막식과 한국 대 아르헨티나 경기가 열릴 사커 시티 주경기장이 새 모습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바다와 맞닿은 케이프타운 그린 포인트 경기장도 우아한 자태를 뽐냅니다. 지구촌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월드컵 경기장은 10곳. 이미 완성됐거나 막바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케이프타운에 있는 이 보조 경기장에서도 마무리 작업이 한창입니다. 월드컵 기간 선수들이 틈틈이 몸을 풀거나 시민들이 야외 응원전을 펼칠 장소입니다. 경기장 주변에 서 있는 4층짜리 건물입니다. 오랜 세월 3백 여 주민들의 보금자리였지만 지금은 건물 내부가 비워진 채 썰렁하게 남아 있습니다. 모두 강제 퇴거당한 것입니다.
<인터뷰> 숀 피터슨(건물 경비) : "사람들이 여기 들어오지 못하도록 건물을 지키고 있습니다. 건물에 낙서를 하거나 창문을 부술 수 있거든요."
지난겨울 케이프타운 시는 월드컵 기간 중 숙박 시설로 써야 한다며 한 달 안에 모두 나가라고 주민들에게 통보했습니다. 임대주택이 나올 날을 기다리며 살던 주민들로서는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던 상황... 그러나 숙박시설로 전환하는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고 건물 이용권만 개인 기업에 넘어갔습니다.
쫓겨난 주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경기장에서 30킬로미터쯤 떨어진 허허벌판. 함석판으로 엉성하게 만든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철판 위에 스프레이로 쓴 번호가 주소입니다.
샌디 루소씨 가족도 지난겨울 이 곳으로 이주했습니다. 부엌도 방이랄 것도 없는 한 칸짜리 집에서 여섯 식구가 모여 삽니다. 갑자기 강제 이주되면서 살림살이라곤 2층 침대 하나 만 겨우 챙겼습니다.
<인터뷰> 샌디 루소(강제 이주민) : "월드컵을 보기 위해 온 돈 많은 관광객들은 먼저 이곳에 와봐야 해요. 여기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어린이들도 굶주리고 있는지 직접 봐야 해요."
공용 화장실은 고장 난 지 석 달이 넘도록 방치돼 있습니다. 8가구에 한 개씩인 수도꼭지에선 물이 흘러 집안으로 스며듭니다. 이 곳 이주민의 대다수는 직업이 없거나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사는 곳이 도심과 멀어지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건 더 힘들어졌고 설령 구한다 하더라도 교통비 부담이 크게 늘었습니다.
<인터뷰> "전에 살던 곳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음식을 사기 위해 냉장고, 조리기구, 전자레인지 등 가전제품을 팔고 있어요."
이곳으로 이주된 사람들은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도로옆 판자촌에 살던 주민들도, 월드컵 때문에 6개월 전 집이 강제 철거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와야 했습니다.
원래 이곳은 재해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임시 시설이었습니다. 당초 600가구 규모였지만 월드컵으로 강제 이주가 늘면서 지금은 3천여 가구가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당국은 철거 당시 주민들에게 오래 머물지 않을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머지않아 살 집을 마련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 주거지 마련이 차일피일 늦어지면서 3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민들은 자조적으로 이곳을 포로수용소, 인간 쓰레기장이라고 부릅니다.
<인터뷰> 제인 로버츠(철거민) : "여기선 밤 10시면 모두 집에 들어가야 해요. 안 그러면 순찰 도는 보안요원이나 경찰이 집안으로 들어가라고 경고합니다. 안 들어가면 잡아가죠."
월드컵 개발에 밀려나는 건 주거지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뜻의 음봄벨라 경기장. 44년 만에 본선에 진출한 북한과 코트디부아르의 경기가 열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공사장 울타리 안에 학교 건물이 있습니다.
이곳이 월드컵 경기장 부지로 확정되면서 제 뒤로 보이는 저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3년여 전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공사장 인부들의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섭니다.
마을의 유일한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학생들은 그동안 임시 컨테이너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습니다.
<인터뷰> 아만다 세손(학생) : "학교를 옮기면서 컨테이너로 간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컨테이너 학교로 간 뒤에야 새 학교를 지어준다고 했죠. 하지만 언제까지 지어준다는 말은 없었어요."
여름이면 후끈 달아오르는 컨테이너 학교를 기약 없이 다닌 끝에 새 학교는 이 달 중 문을 열 예정입니다. 월드컵 개막 시기에 맞춰 다섯 달 만에 새 학교를 지은 겁니다. 음봄벨라 경기장은 월드컵 기간 중 단 네 경기만이 열립니다.
월드컵 손님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는 남아공 정부의 노력이 항상 성공한 건 아닙니다. 케이프타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N2 고속도로. 도로 옆으로 판잣집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이 마을을 철거하려던 계획은 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렸습니다. 주민들은 철거 이유가 공항을 오가는 외국인들에게 판잣집을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칼리 지투레레(판자촌 주민) : "저 쪽에도 판자촌이 있지만 당국이 거긴 개발하지 않아요. 오로지 도로 옆에 있는 판자촌만 철거하려고 하죠.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월드컵 때문에 철거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나 남아공 당국은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일어나는 철거와 이주에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마리오네트 토 험볼트(케이프타운 관광청장) : "주거지에 이렇게 큰 건물을 만들 때는 강한 저항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협상 등 공개절차를 통해 잘 정리됐습니다."
이런 남아공 정부의 태도는 월드컵에 대한 빈민들의 반감을 낳고 있습니다.
<인터뷰> "제겐 아무 의미가 없어요. 월드컵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집이 없는데 무슨 월드컵입니까."
무허가 판자촌에 사는 남아공의 빈민은 1200만 명. 열악한 주거 상황에도 막대한 예산이 월드컵에 초과 집행되자 판자촌에선 시위가 잇따르는 등불만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흑인들의 주거지를 제한했지만 살 만한 벽돌집을 줬던 백인 정권 때보다 주거상황이 나빠졌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인터뷰> 파 멜라 부커스(철거 반대 시민단체 관계자) : "(백인 정권 때는) 실업자가 돼 임대료를 못 내면 공무원이 나와서 왜 못 냈는지 알아보곤 했습니다.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변호사를 보내서 퇴거시킵니다."
남아공에서 축구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입니다. 공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공을 차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축구 사랑 때문에 월드컵 유치가 확정되던 날 남아공 사람 모두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빈민들의 환호는 곧 원성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유엔 특별보고관도 남아공 월드컵 준비 과정의 주거권 침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피파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그러나 그 축제를 위해 삶의 터전을 내놓아야 하는 남아공 빈민들은 월드컵이 누구를 위한 축제인지 묻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남아공 월드컵 축구 대회가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남아공에서는 손님을 맞기 위한 막바지 준비 작업이 한창이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모든 축제에는 그늘이 있는 걸까요. 남아공에서도 월드컵 대회를 빛내기 위해 보금자리를 내놓고 철거민이 되는 빈민층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축제 뒤에 가려진 월드컵 철거민의 실상을 남아공 현지에서 구경하 순회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남아공 월드컵. 개막식과 한국 대 아르헨티나 경기가 열릴 사커 시티 주경기장이 새 모습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바다와 맞닿은 케이프타운 그린 포인트 경기장도 우아한 자태를 뽐냅니다. 지구촌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월드컵 경기장은 10곳. 이미 완성됐거나 막바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케이프타운에 있는 이 보조 경기장에서도 마무리 작업이 한창입니다. 월드컵 기간 선수들이 틈틈이 몸을 풀거나 시민들이 야외 응원전을 펼칠 장소입니다. 경기장 주변에 서 있는 4층짜리 건물입니다. 오랜 세월 3백 여 주민들의 보금자리였지만 지금은 건물 내부가 비워진 채 썰렁하게 남아 있습니다. 모두 강제 퇴거당한 것입니다.
<인터뷰> 숀 피터슨(건물 경비) : "사람들이 여기 들어오지 못하도록 건물을 지키고 있습니다. 건물에 낙서를 하거나 창문을 부술 수 있거든요."
지난겨울 케이프타운 시는 월드컵 기간 중 숙박 시설로 써야 한다며 한 달 안에 모두 나가라고 주민들에게 통보했습니다. 임대주택이 나올 날을 기다리며 살던 주민들로서는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던 상황... 그러나 숙박시설로 전환하는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고 건물 이용권만 개인 기업에 넘어갔습니다.
쫓겨난 주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경기장에서 30킬로미터쯤 떨어진 허허벌판. 함석판으로 엉성하게 만든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철판 위에 스프레이로 쓴 번호가 주소입니다.
샌디 루소씨 가족도 지난겨울 이 곳으로 이주했습니다. 부엌도 방이랄 것도 없는 한 칸짜리 집에서 여섯 식구가 모여 삽니다. 갑자기 강제 이주되면서 살림살이라곤 2층 침대 하나 만 겨우 챙겼습니다.
<인터뷰> 샌디 루소(강제 이주민) : "월드컵을 보기 위해 온 돈 많은 관광객들은 먼저 이곳에 와봐야 해요. 여기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어린이들도 굶주리고 있는지 직접 봐야 해요."
공용 화장실은 고장 난 지 석 달이 넘도록 방치돼 있습니다. 8가구에 한 개씩인 수도꼭지에선 물이 흘러 집안으로 스며듭니다. 이 곳 이주민의 대다수는 직업이 없거나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사는 곳이 도심과 멀어지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건 더 힘들어졌고 설령 구한다 하더라도 교통비 부담이 크게 늘었습니다.
<인터뷰> "전에 살던 곳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음식을 사기 위해 냉장고, 조리기구, 전자레인지 등 가전제품을 팔고 있어요."
이곳으로 이주된 사람들은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도로옆 판자촌에 살던 주민들도, 월드컵 때문에 6개월 전 집이 강제 철거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와야 했습니다.
원래 이곳은 재해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임시 시설이었습니다. 당초 600가구 규모였지만 월드컵으로 강제 이주가 늘면서 지금은 3천여 가구가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당국은 철거 당시 주민들에게 오래 머물지 않을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머지않아 살 집을 마련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 주거지 마련이 차일피일 늦어지면서 3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민들은 자조적으로 이곳을 포로수용소, 인간 쓰레기장이라고 부릅니다.
<인터뷰> 제인 로버츠(철거민) : "여기선 밤 10시면 모두 집에 들어가야 해요. 안 그러면 순찰 도는 보안요원이나 경찰이 집안으로 들어가라고 경고합니다. 안 들어가면 잡아가죠."
월드컵 개발에 밀려나는 건 주거지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뜻의 음봄벨라 경기장. 44년 만에 본선에 진출한 북한과 코트디부아르의 경기가 열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공사장 울타리 안에 학교 건물이 있습니다.
이곳이 월드컵 경기장 부지로 확정되면서 제 뒤로 보이는 저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3년여 전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공사장 인부들의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섭니다.
마을의 유일한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학생들은 그동안 임시 컨테이너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습니다.
<인터뷰> 아만다 세손(학생) : "학교를 옮기면서 컨테이너로 간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컨테이너 학교로 간 뒤에야 새 학교를 지어준다고 했죠. 하지만 언제까지 지어준다는 말은 없었어요."
여름이면 후끈 달아오르는 컨테이너 학교를 기약 없이 다닌 끝에 새 학교는 이 달 중 문을 열 예정입니다. 월드컵 개막 시기에 맞춰 다섯 달 만에 새 학교를 지은 겁니다. 음봄벨라 경기장은 월드컵 기간 중 단 네 경기만이 열립니다.
월드컵 손님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는 남아공 정부의 노력이 항상 성공한 건 아닙니다. 케이프타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N2 고속도로. 도로 옆으로 판잣집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이 마을을 철거하려던 계획은 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렸습니다. 주민들은 철거 이유가 공항을 오가는 외국인들에게 판잣집을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칼리 지투레레(판자촌 주민) : "저 쪽에도 판자촌이 있지만 당국이 거긴 개발하지 않아요. 오로지 도로 옆에 있는 판자촌만 철거하려고 하죠.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월드컵 때문에 철거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나 남아공 당국은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일어나는 철거와 이주에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마리오네트 토 험볼트(케이프타운 관광청장) : "주거지에 이렇게 큰 건물을 만들 때는 강한 저항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협상 등 공개절차를 통해 잘 정리됐습니다."
이런 남아공 정부의 태도는 월드컵에 대한 빈민들의 반감을 낳고 있습니다.
<인터뷰> "제겐 아무 의미가 없어요. 월드컵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집이 없는데 무슨 월드컵입니까."
무허가 판자촌에 사는 남아공의 빈민은 1200만 명. 열악한 주거 상황에도 막대한 예산이 월드컵에 초과 집행되자 판자촌에선 시위가 잇따르는 등불만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흑인들의 주거지를 제한했지만 살 만한 벽돌집을 줬던 백인 정권 때보다 주거상황이 나빠졌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인터뷰> 파 멜라 부커스(철거 반대 시민단체 관계자) : "(백인 정권 때는) 실업자가 돼 임대료를 못 내면 공무원이 나와서 왜 못 냈는지 알아보곤 했습니다.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변호사를 보내서 퇴거시킵니다."
남아공에서 축구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입니다. 공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공을 차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축구 사랑 때문에 월드컵 유치가 확정되던 날 남아공 사람 모두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빈민들의 환호는 곧 원성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유엔 특별보고관도 남아공 월드컵 준비 과정의 주거권 침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피파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그러나 그 축제를 위해 삶의 터전을 내놓아야 하는 남아공 빈민들은 월드컵이 누구를 위한 축제인지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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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0-05-09 09:59:10
- 수정2025-03-17 16:27:13

<앵커 멘트>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남아공 월드컵 축구 대회가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남아공에서는 손님을 맞기 위한 막바지 준비 작업이 한창이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모든 축제에는 그늘이 있는 걸까요. 남아공에서도 월드컵 대회를 빛내기 위해 보금자리를 내놓고 철거민이 되는 빈민층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축제 뒤에 가려진 월드컵 철거민의 실상을 남아공 현지에서 구경하 순회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남아공 월드컵. 개막식과 한국 대 아르헨티나 경기가 열릴 사커 시티 주경기장이 새 모습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바다와 맞닿은 케이프타운 그린 포인트 경기장도 우아한 자태를 뽐냅니다. 지구촌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월드컵 경기장은 10곳. 이미 완성됐거나 막바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케이프타운에 있는 이 보조 경기장에서도 마무리 작업이 한창입니다. 월드컵 기간 선수들이 틈틈이 몸을 풀거나 시민들이 야외 응원전을 펼칠 장소입니다. 경기장 주변에 서 있는 4층짜리 건물입니다. 오랜 세월 3백 여 주민들의 보금자리였지만 지금은 건물 내부가 비워진 채 썰렁하게 남아 있습니다. 모두 강제 퇴거당한 것입니다.
<인터뷰> 숀 피터슨(건물 경비) : "사람들이 여기 들어오지 못하도록 건물을 지키고 있습니다. 건물에 낙서를 하거나 창문을 부술 수 있거든요."
지난겨울 케이프타운 시는 월드컵 기간 중 숙박 시설로 써야 한다며 한 달 안에 모두 나가라고 주민들에게 통보했습니다. 임대주택이 나올 날을 기다리며 살던 주민들로서는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던 상황... 그러나 숙박시설로 전환하는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고 건물 이용권만 개인 기업에 넘어갔습니다.
쫓겨난 주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경기장에서 30킬로미터쯤 떨어진 허허벌판. 함석판으로 엉성하게 만든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철판 위에 스프레이로 쓴 번호가 주소입니다.
샌디 루소씨 가족도 지난겨울 이 곳으로 이주했습니다. 부엌도 방이랄 것도 없는 한 칸짜리 집에서 여섯 식구가 모여 삽니다. 갑자기 강제 이주되면서 살림살이라곤 2층 침대 하나 만 겨우 챙겼습니다.
<인터뷰> 샌디 루소(강제 이주민) : "월드컵을 보기 위해 온 돈 많은 관광객들은 먼저 이곳에 와봐야 해요. 여기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어린이들도 굶주리고 있는지 직접 봐야 해요."
공용 화장실은 고장 난 지 석 달이 넘도록 방치돼 있습니다. 8가구에 한 개씩인 수도꼭지에선 물이 흘러 집안으로 스며듭니다. 이 곳 이주민의 대다수는 직업이 없거나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사는 곳이 도심과 멀어지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건 더 힘들어졌고 설령 구한다 하더라도 교통비 부담이 크게 늘었습니다.
<인터뷰> "전에 살던 곳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음식을 사기 위해 냉장고, 조리기구, 전자레인지 등 가전제품을 팔고 있어요."
이곳으로 이주된 사람들은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도로옆 판자촌에 살던 주민들도, 월드컵 때문에 6개월 전 집이 강제 철거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와야 했습니다.
원래 이곳은 재해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임시 시설이었습니다. 당초 600가구 규모였지만 월드컵으로 강제 이주가 늘면서 지금은 3천여 가구가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당국은 철거 당시 주민들에게 오래 머물지 않을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머지않아 살 집을 마련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 주거지 마련이 차일피일 늦어지면서 3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민들은 자조적으로 이곳을 포로수용소, 인간 쓰레기장이라고 부릅니다.
<인터뷰> 제인 로버츠(철거민) : "여기선 밤 10시면 모두 집에 들어가야 해요. 안 그러면 순찰 도는 보안요원이나 경찰이 집안으로 들어가라고 경고합니다. 안 들어가면 잡아가죠."
월드컵 개발에 밀려나는 건 주거지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뜻의 음봄벨라 경기장. 44년 만에 본선에 진출한 북한과 코트디부아르의 경기가 열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공사장 울타리 안에 학교 건물이 있습니다.
이곳이 월드컵 경기장 부지로 확정되면서 제 뒤로 보이는 저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3년여 전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공사장 인부들의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섭니다.
마을의 유일한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학생들은 그동안 임시 컨테이너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습니다.
<인터뷰> 아만다 세손(학생) : "학교를 옮기면서 컨테이너로 간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컨테이너 학교로 간 뒤에야 새 학교를 지어준다고 했죠. 하지만 언제까지 지어준다는 말은 없었어요."
여름이면 후끈 달아오르는 컨테이너 학교를 기약 없이 다닌 끝에 새 학교는 이 달 중 문을 열 예정입니다. 월드컵 개막 시기에 맞춰 다섯 달 만에 새 학교를 지은 겁니다. 음봄벨라 경기장은 월드컵 기간 중 단 네 경기만이 열립니다.
월드컵 손님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는 남아공 정부의 노력이 항상 성공한 건 아닙니다. 케이프타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N2 고속도로. 도로 옆으로 판잣집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이 마을을 철거하려던 계획은 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렸습니다. 주민들은 철거 이유가 공항을 오가는 외국인들에게 판잣집을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칼리 지투레레(판자촌 주민) : "저 쪽에도 판자촌이 있지만 당국이 거긴 개발하지 않아요. 오로지 도로 옆에 있는 판자촌만 철거하려고 하죠.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월드컵 때문에 철거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나 남아공 당국은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일어나는 철거와 이주에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마리오네트 토 험볼트(케이프타운 관광청장) : "주거지에 이렇게 큰 건물을 만들 때는 강한 저항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협상 등 공개절차를 통해 잘 정리됐습니다."
이런 남아공 정부의 태도는 월드컵에 대한 빈민들의 반감을 낳고 있습니다.
<인터뷰> "제겐 아무 의미가 없어요. 월드컵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집이 없는데 무슨 월드컵입니까."
무허가 판자촌에 사는 남아공의 빈민은 1200만 명. 열악한 주거 상황에도 막대한 예산이 월드컵에 초과 집행되자 판자촌에선 시위가 잇따르는 등불만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흑인들의 주거지를 제한했지만 살 만한 벽돌집을 줬던 백인 정권 때보다 주거상황이 나빠졌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인터뷰> 파 멜라 부커스(철거 반대 시민단체 관계자) : "(백인 정권 때는) 실업자가 돼 임대료를 못 내면 공무원이 나와서 왜 못 냈는지 알아보곤 했습니다.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변호사를 보내서 퇴거시킵니다."
남아공에서 축구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입니다. 공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공을 차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축구 사랑 때문에 월드컵 유치가 확정되던 날 남아공 사람 모두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빈민들의 환호는 곧 원성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유엔 특별보고관도 남아공 월드컵 준비 과정의 주거권 침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피파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그러나 그 축제를 위해 삶의 터전을 내놓아야 하는 남아공 빈민들은 월드컵이 누구를 위한 축제인지 묻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남아공 월드컵 축구 대회가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남아공에서는 손님을 맞기 위한 막바지 준비 작업이 한창이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모든 축제에는 그늘이 있는 걸까요. 남아공에서도 월드컵 대회를 빛내기 위해 보금자리를 내놓고 철거민이 되는 빈민층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축제 뒤에 가려진 월드컵 철거민의 실상을 남아공 현지에서 구경하 순회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남아공 월드컵. 개막식과 한국 대 아르헨티나 경기가 열릴 사커 시티 주경기장이 새 모습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바다와 맞닿은 케이프타운 그린 포인트 경기장도 우아한 자태를 뽐냅니다. 지구촌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월드컵 경기장은 10곳. 이미 완성됐거나 막바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케이프타운에 있는 이 보조 경기장에서도 마무리 작업이 한창입니다. 월드컵 기간 선수들이 틈틈이 몸을 풀거나 시민들이 야외 응원전을 펼칠 장소입니다. 경기장 주변에 서 있는 4층짜리 건물입니다. 오랜 세월 3백 여 주민들의 보금자리였지만 지금은 건물 내부가 비워진 채 썰렁하게 남아 있습니다. 모두 강제 퇴거당한 것입니다.
<인터뷰> 숀 피터슨(건물 경비) : "사람들이 여기 들어오지 못하도록 건물을 지키고 있습니다. 건물에 낙서를 하거나 창문을 부술 수 있거든요."
지난겨울 케이프타운 시는 월드컵 기간 중 숙박 시설로 써야 한다며 한 달 안에 모두 나가라고 주민들에게 통보했습니다. 임대주택이 나올 날을 기다리며 살던 주민들로서는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던 상황... 그러나 숙박시설로 전환하는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고 건물 이용권만 개인 기업에 넘어갔습니다.
쫓겨난 주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경기장에서 30킬로미터쯤 떨어진 허허벌판. 함석판으로 엉성하게 만든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철판 위에 스프레이로 쓴 번호가 주소입니다.
샌디 루소씨 가족도 지난겨울 이 곳으로 이주했습니다. 부엌도 방이랄 것도 없는 한 칸짜리 집에서 여섯 식구가 모여 삽니다. 갑자기 강제 이주되면서 살림살이라곤 2층 침대 하나 만 겨우 챙겼습니다.
<인터뷰> 샌디 루소(강제 이주민) : "월드컵을 보기 위해 온 돈 많은 관광객들은 먼저 이곳에 와봐야 해요. 여기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어린이들도 굶주리고 있는지 직접 봐야 해요."
공용 화장실은 고장 난 지 석 달이 넘도록 방치돼 있습니다. 8가구에 한 개씩인 수도꼭지에선 물이 흘러 집안으로 스며듭니다. 이 곳 이주민의 대다수는 직업이 없거나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사는 곳이 도심과 멀어지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건 더 힘들어졌고 설령 구한다 하더라도 교통비 부담이 크게 늘었습니다.
<인터뷰> "전에 살던 곳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음식을 사기 위해 냉장고, 조리기구, 전자레인지 등 가전제품을 팔고 있어요."
이곳으로 이주된 사람들은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도로옆 판자촌에 살던 주민들도, 월드컵 때문에 6개월 전 집이 강제 철거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와야 했습니다.
원래 이곳은 재해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임시 시설이었습니다. 당초 600가구 규모였지만 월드컵으로 강제 이주가 늘면서 지금은 3천여 가구가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당국은 철거 당시 주민들에게 오래 머물지 않을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머지않아 살 집을 마련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 주거지 마련이 차일피일 늦어지면서 3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민들은 자조적으로 이곳을 포로수용소, 인간 쓰레기장이라고 부릅니다.
<인터뷰> 제인 로버츠(철거민) : "여기선 밤 10시면 모두 집에 들어가야 해요. 안 그러면 순찰 도는 보안요원이나 경찰이 집안으로 들어가라고 경고합니다. 안 들어가면 잡아가죠."
월드컵 개발에 밀려나는 건 주거지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뜻의 음봄벨라 경기장. 44년 만에 본선에 진출한 북한과 코트디부아르의 경기가 열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공사장 울타리 안에 학교 건물이 있습니다.
이곳이 월드컵 경기장 부지로 확정되면서 제 뒤로 보이는 저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3년여 전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공사장 인부들의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섭니다.
마을의 유일한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학생들은 그동안 임시 컨테이너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습니다.
<인터뷰> 아만다 세손(학생) : "학교를 옮기면서 컨테이너로 간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컨테이너 학교로 간 뒤에야 새 학교를 지어준다고 했죠. 하지만 언제까지 지어준다는 말은 없었어요."
여름이면 후끈 달아오르는 컨테이너 학교를 기약 없이 다닌 끝에 새 학교는 이 달 중 문을 열 예정입니다. 월드컵 개막 시기에 맞춰 다섯 달 만에 새 학교를 지은 겁니다. 음봄벨라 경기장은 월드컵 기간 중 단 네 경기만이 열립니다.
월드컵 손님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는 남아공 정부의 노력이 항상 성공한 건 아닙니다. 케이프타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N2 고속도로. 도로 옆으로 판잣집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이 마을을 철거하려던 계획은 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렸습니다. 주민들은 철거 이유가 공항을 오가는 외국인들에게 판잣집을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칼리 지투레레(판자촌 주민) : "저 쪽에도 판자촌이 있지만 당국이 거긴 개발하지 않아요. 오로지 도로 옆에 있는 판자촌만 철거하려고 하죠.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월드컵 때문에 철거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나 남아공 당국은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일어나는 철거와 이주에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마리오네트 토 험볼트(케이프타운 관광청장) : "주거지에 이렇게 큰 건물을 만들 때는 강한 저항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협상 등 공개절차를 통해 잘 정리됐습니다."
이런 남아공 정부의 태도는 월드컵에 대한 빈민들의 반감을 낳고 있습니다.
<인터뷰> "제겐 아무 의미가 없어요. 월드컵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집이 없는데 무슨 월드컵입니까."
무허가 판자촌에 사는 남아공의 빈민은 1200만 명. 열악한 주거 상황에도 막대한 예산이 월드컵에 초과 집행되자 판자촌에선 시위가 잇따르는 등불만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흑인들의 주거지를 제한했지만 살 만한 벽돌집을 줬던 백인 정권 때보다 주거상황이 나빠졌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인터뷰> 파 멜라 부커스(철거 반대 시민단체 관계자) : "(백인 정권 때는) 실업자가 돼 임대료를 못 내면 공무원이 나와서 왜 못 냈는지 알아보곤 했습니다.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변호사를 보내서 퇴거시킵니다."
남아공에서 축구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입니다. 공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공을 차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축구 사랑 때문에 월드컵 유치가 확정되던 날 남아공 사람 모두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빈민들의 환호는 곧 원성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유엔 특별보고관도 남아공 월드컵 준비 과정의 주거권 침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피파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그러나 그 축제를 위해 삶의 터전을 내놓아야 하는 남아공 빈민들은 월드컵이 누구를 위한 축제인지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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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하 기자 isegori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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