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화성연쇄살인…누명 쓴 유족의 눈물
입력 2010.09.14 (09:02)
수정 2010.09.1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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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80년대,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기억하십니까.
이제 서서히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그늘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민우 기자, 당시 용의자의 유족들이 또 다른 아픔에 시달리고 있다면서요?
네, 당시 용의자로 몰렸던 김 모씨 유족 얘기입니다.
김 씨는 석 달동안 경찰의 강압 수사에 시달려야 했는데요.
갑자기 용의선상에 오른 이유는 한 재미교포의 제보 때문이었습니다.
꿈 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는데, 김 씨가 범인이었다는 거죠.
물론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그 후유증으로 가정은 이미 풍비박산 난 뒤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모두 잊혀진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악몽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신의 계시를 믿고 있었습니다.
<리포트>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부녀자 열 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투입된 경찰 병력만 연 인원 백 80만 명, 하지만 단서조차 잡지 못한 미제사건으로 남았는데요.
<인터뷰> 김 모 형사 (사건담당형사) : "제발 꿈속에 나타나라고 (피해자) 가방도 베고 잤어요. 내가 현장에서 잤다니까, 아무리 고생하고도 잡지 못하면 헛수고야. 못 잡았으니까 나는 죄인이지."
세월이 흘러 세상 사람들에게는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지만, 오 씨 가족에게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며 괴롭히는 끔찍한 악몽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진짜 범인은 잡지도 못하고 정말 너무 억울한, 정말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한테만 얽매서 정말로 화성연쇄살인자는 잡지도 못한 거 아니에요. 솔직히..."
오 씨의 남편은 17년 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렸던 김 모씨.
경찰이 남편 김 씨를 용의자로 몬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당시 미국에 살고 있던 재미교포 김 모씨가 꿈속에서 사건의 범인으로 남편 김씨의 이름을 봤다는 것입니다.
신의 계시였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꿈에 저희 남편 이름이 적혀 있는 종이를 어떤 계시를 받아서 그걸 가지고 경찰한테 찾아가서 이런 사람이 화성 연쇄 살인을 했다. 정신 나간 사람 제보만 듣고 너무 황당한 일이었죠."
당시 남편 김 씨는 석 달 남짓 강압적인 경찰 수사에 시달려야했고,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차례 자살까지 시도했는데요.
<인터뷰> 오모씨(음성변조) : "(남편 직업이) 가축사였고 그 지역에서 수의사(같은) 역할을 했었고 또 오토바이가 있어서 기동력이 있어서 사람도 그렇게 가축처럼 죽였을 것이 라고..."
결국 남편 김 씨는 경찰의 가혹행위를 이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자백했는데요.
하지만 김 씨의 무죄는 곧 입증됐습니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증거 부족으로 석방된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무혐의 판결을 받아서 저희는 기뻤죠. 그렇지만 저희가 그 때 당시 당했던 상처는 이루 말할 수도 없었던 거죠. 누구한테 하소연하고 얘기할 수도 없는 것이고..."
당시 남편 김씨는 수사 과정의 불법행위를 두고 경찰을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법원도 이에 대해 국가가 3천8백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불법 수사 후유증에 시달리며 술로 지새던 남편 김씨가 그 이듬해 심장 마비로 숨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고문 받고 와서 계속 시름시름 앓았어요. 술 먹고.. 애들이 다 어린데 살려고도 않고 삶의 애착을 다 잃어버리더라고요. 완전히..."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십 오년 동안 홀로 삼남매를 키우며 힘겹게 살아온 오씨.
하지만 오 씨의 악몽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아버지가 생각나 인터넷 검색을 하던 큰 아들이 우연히 한 카페에서 충격적인 글을 발견한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 아들(음성변조) : "그 카페를 보고 나서 많이 충격이었죠. 그 카페 내용을 다 읽다보면 그 사람이 저희 이름을 적지 않았지만 우리라는 것, 저희 가족 얘기라는 걸 알았으니까... 여태까지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게 얼마나 끔찍해요."
카페의 주인은 남편의 이름을 꿈에서 봤다며 경찰에 신고했던 재미교포 김씨.
카페에 올린 글을 통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은 무혐의로 풀려났던 남편 김 씨라며, 20년 전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던 것입니다.
남편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정황상 누가 봐도 지목된 범인은, 남편 김 씨였습니다.
충격적인 주장은 계속됐습니다.
아내 오 씨가 남편 김 씨를 독살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남편이 범인이기 때문에 저와 애들이 그렇게 독살했다고, 남편을 독살했다고 그런 식으로 책을 낸 것을 보고 진짜 이것을 어디다 어떻게 하소연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너무 억울하고 분해 가지고..."
현재 이 카페 회원은 2만 3천 여 명, 카페의 글은 온통 숨진 남편 김씨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남편 김 씨가 진범이라고 주장하는 책까지 출판해 팔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누명 완전히 벗고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잊으려고 하고 살았어요. 마음의 막 너무 상처는 크고 아파도 근데 이렇게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런 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죠. 정말 무서워요. 세상이..."
지난 해 12월, 남편 김 씨의 유가족은 카페의 운영자인 재미교포 김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김씨가 96년 이후 입국 사실이 없어 기소 중지 처분이 된 상태인데요.
또 지난 7일 카페가 있는 포털 사이트와 김 씨가 낸 책의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입니다.
<인터뷰> 김칠준(변호사) : "고인이 된 분에 대한 형사사건은 다 끝났고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사건을 통해서 이미 다 밝혀졌습니다. 이런 인권을 침해하는 잘못된 카페를 폐쇄하고 출판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하고 그런 것들이 법원의 판결문을 통해서 기록에 남겨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8,90년대 우리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하지만 살인자의 누명을 뒤집어썼던 한 가족은 여전히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80년대,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기억하십니까.
이제 서서히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그늘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민우 기자, 당시 용의자의 유족들이 또 다른 아픔에 시달리고 있다면서요?
네, 당시 용의자로 몰렸던 김 모씨 유족 얘기입니다.
김 씨는 석 달동안 경찰의 강압 수사에 시달려야 했는데요.
갑자기 용의선상에 오른 이유는 한 재미교포의 제보 때문이었습니다.
꿈 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는데, 김 씨가 범인이었다는 거죠.
물론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그 후유증으로 가정은 이미 풍비박산 난 뒤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모두 잊혀진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악몽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신의 계시를 믿고 있었습니다.
<리포트>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부녀자 열 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투입된 경찰 병력만 연 인원 백 80만 명, 하지만 단서조차 잡지 못한 미제사건으로 남았는데요.
<인터뷰> 김 모 형사 (사건담당형사) : "제발 꿈속에 나타나라고 (피해자) 가방도 베고 잤어요. 내가 현장에서 잤다니까, 아무리 고생하고도 잡지 못하면 헛수고야. 못 잡았으니까 나는 죄인이지."
세월이 흘러 세상 사람들에게는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지만, 오 씨 가족에게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며 괴롭히는 끔찍한 악몽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진짜 범인은 잡지도 못하고 정말 너무 억울한, 정말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한테만 얽매서 정말로 화성연쇄살인자는 잡지도 못한 거 아니에요. 솔직히..."
오 씨의 남편은 17년 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렸던 김 모씨.
경찰이 남편 김 씨를 용의자로 몬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당시 미국에 살고 있던 재미교포 김 모씨가 꿈속에서 사건의 범인으로 남편 김씨의 이름을 봤다는 것입니다.
신의 계시였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꿈에 저희 남편 이름이 적혀 있는 종이를 어떤 계시를 받아서 그걸 가지고 경찰한테 찾아가서 이런 사람이 화성 연쇄 살인을 했다. 정신 나간 사람 제보만 듣고 너무 황당한 일이었죠."
당시 남편 김 씨는 석 달 남짓 강압적인 경찰 수사에 시달려야했고,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차례 자살까지 시도했는데요.
<인터뷰> 오모씨(음성변조) : "(남편 직업이) 가축사였고 그 지역에서 수의사(같은) 역할을 했었고 또 오토바이가 있어서 기동력이 있어서 사람도 그렇게 가축처럼 죽였을 것이 라고..."
결국 남편 김 씨는 경찰의 가혹행위를 이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자백했는데요.
하지만 김 씨의 무죄는 곧 입증됐습니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증거 부족으로 석방된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무혐의 판결을 받아서 저희는 기뻤죠. 그렇지만 저희가 그 때 당시 당했던 상처는 이루 말할 수도 없었던 거죠. 누구한테 하소연하고 얘기할 수도 없는 것이고..."
당시 남편 김씨는 수사 과정의 불법행위를 두고 경찰을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법원도 이에 대해 국가가 3천8백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불법 수사 후유증에 시달리며 술로 지새던 남편 김씨가 그 이듬해 심장 마비로 숨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고문 받고 와서 계속 시름시름 앓았어요. 술 먹고.. 애들이 다 어린데 살려고도 않고 삶의 애착을 다 잃어버리더라고요. 완전히..."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십 오년 동안 홀로 삼남매를 키우며 힘겹게 살아온 오씨.
하지만 오 씨의 악몽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아버지가 생각나 인터넷 검색을 하던 큰 아들이 우연히 한 카페에서 충격적인 글을 발견한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 아들(음성변조) : "그 카페를 보고 나서 많이 충격이었죠. 그 카페 내용을 다 읽다보면 그 사람이 저희 이름을 적지 않았지만 우리라는 것, 저희 가족 얘기라는 걸 알았으니까... 여태까지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게 얼마나 끔찍해요."
카페의 주인은 남편의 이름을 꿈에서 봤다며 경찰에 신고했던 재미교포 김씨.
카페에 올린 글을 통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은 무혐의로 풀려났던 남편 김 씨라며, 20년 전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던 것입니다.
남편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정황상 누가 봐도 지목된 범인은, 남편 김 씨였습니다.
충격적인 주장은 계속됐습니다.
아내 오 씨가 남편 김 씨를 독살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남편이 범인이기 때문에 저와 애들이 그렇게 독살했다고, 남편을 독살했다고 그런 식으로 책을 낸 것을 보고 진짜 이것을 어디다 어떻게 하소연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너무 억울하고 분해 가지고..."
현재 이 카페 회원은 2만 3천 여 명, 카페의 글은 온통 숨진 남편 김씨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남편 김 씨가 진범이라고 주장하는 책까지 출판해 팔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누명 완전히 벗고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잊으려고 하고 살았어요. 마음의 막 너무 상처는 크고 아파도 근데 이렇게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런 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죠. 정말 무서워요. 세상이..."
지난 해 12월, 남편 김 씨의 유가족은 카페의 운영자인 재미교포 김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김씨가 96년 이후 입국 사실이 없어 기소 중지 처분이 된 상태인데요.
또 지난 7일 카페가 있는 포털 사이트와 김 씨가 낸 책의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입니다.
<인터뷰> 김칠준(변호사) : "고인이 된 분에 대한 형사사건은 다 끝났고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사건을 통해서 이미 다 밝혀졌습니다. 이런 인권을 침해하는 잘못된 카페를 폐쇄하고 출판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하고 그런 것들이 법원의 판결문을 통해서 기록에 남겨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8,90년대 우리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하지만 살인자의 누명을 뒤집어썼던 한 가족은 여전히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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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0-09-14 09:02:59
- 수정2010-09-14 09:22:10

<앵커 멘트>
80년대,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기억하십니까.
이제 서서히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그늘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민우 기자, 당시 용의자의 유족들이 또 다른 아픔에 시달리고 있다면서요?
네, 당시 용의자로 몰렸던 김 모씨 유족 얘기입니다.
김 씨는 석 달동안 경찰의 강압 수사에 시달려야 했는데요.
갑자기 용의선상에 오른 이유는 한 재미교포의 제보 때문이었습니다.
꿈 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는데, 김 씨가 범인이었다는 거죠.
물론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그 후유증으로 가정은 이미 풍비박산 난 뒤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모두 잊혀진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악몽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신의 계시를 믿고 있었습니다.
<리포트>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부녀자 열 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투입된 경찰 병력만 연 인원 백 80만 명, 하지만 단서조차 잡지 못한 미제사건으로 남았는데요.
<인터뷰> 김 모 형사 (사건담당형사) : "제발 꿈속에 나타나라고 (피해자) 가방도 베고 잤어요. 내가 현장에서 잤다니까, 아무리 고생하고도 잡지 못하면 헛수고야. 못 잡았으니까 나는 죄인이지."
세월이 흘러 세상 사람들에게는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지만, 오 씨 가족에게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며 괴롭히는 끔찍한 악몽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진짜 범인은 잡지도 못하고 정말 너무 억울한, 정말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한테만 얽매서 정말로 화성연쇄살인자는 잡지도 못한 거 아니에요. 솔직히..."
오 씨의 남편은 17년 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렸던 김 모씨.
경찰이 남편 김 씨를 용의자로 몬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당시 미국에 살고 있던 재미교포 김 모씨가 꿈속에서 사건의 범인으로 남편 김씨의 이름을 봤다는 것입니다.
신의 계시였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꿈에 저희 남편 이름이 적혀 있는 종이를 어떤 계시를 받아서 그걸 가지고 경찰한테 찾아가서 이런 사람이 화성 연쇄 살인을 했다. 정신 나간 사람 제보만 듣고 너무 황당한 일이었죠."
당시 남편 김 씨는 석 달 남짓 강압적인 경찰 수사에 시달려야했고,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차례 자살까지 시도했는데요.
<인터뷰> 오모씨(음성변조) : "(남편 직업이) 가축사였고 그 지역에서 수의사(같은) 역할을 했었고 또 오토바이가 있어서 기동력이 있어서 사람도 그렇게 가축처럼 죽였을 것이 라고..."
결국 남편 김 씨는 경찰의 가혹행위를 이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자백했는데요.
하지만 김 씨의 무죄는 곧 입증됐습니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증거 부족으로 석방된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무혐의 판결을 받아서 저희는 기뻤죠. 그렇지만 저희가 그 때 당시 당했던 상처는 이루 말할 수도 없었던 거죠. 누구한테 하소연하고 얘기할 수도 없는 것이고..."
당시 남편 김씨는 수사 과정의 불법행위를 두고 경찰을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법원도 이에 대해 국가가 3천8백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불법 수사 후유증에 시달리며 술로 지새던 남편 김씨가 그 이듬해 심장 마비로 숨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고문 받고 와서 계속 시름시름 앓았어요. 술 먹고.. 애들이 다 어린데 살려고도 않고 삶의 애착을 다 잃어버리더라고요. 완전히..."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십 오년 동안 홀로 삼남매를 키우며 힘겹게 살아온 오씨.
하지만 오 씨의 악몽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아버지가 생각나 인터넷 검색을 하던 큰 아들이 우연히 한 카페에서 충격적인 글을 발견한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 아들(음성변조) : "그 카페를 보고 나서 많이 충격이었죠. 그 카페 내용을 다 읽다보면 그 사람이 저희 이름을 적지 않았지만 우리라는 것, 저희 가족 얘기라는 걸 알았으니까... 여태까지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게 얼마나 끔찍해요."
카페의 주인은 남편의 이름을 꿈에서 봤다며 경찰에 신고했던 재미교포 김씨.
카페에 올린 글을 통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은 무혐의로 풀려났던 남편 김 씨라며, 20년 전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던 것입니다.
남편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정황상 누가 봐도 지목된 범인은, 남편 김 씨였습니다.
충격적인 주장은 계속됐습니다.
아내 오 씨가 남편 김 씨를 독살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남편이 범인이기 때문에 저와 애들이 그렇게 독살했다고, 남편을 독살했다고 그런 식으로 책을 낸 것을 보고 진짜 이것을 어디다 어떻게 하소연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너무 억울하고 분해 가지고..."
현재 이 카페 회원은 2만 3천 여 명, 카페의 글은 온통 숨진 남편 김씨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남편 김 씨가 진범이라고 주장하는 책까지 출판해 팔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누명 완전히 벗고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잊으려고 하고 살았어요. 마음의 막 너무 상처는 크고 아파도 근데 이렇게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런 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죠. 정말 무서워요. 세상이..."
지난 해 12월, 남편 김 씨의 유가족은 카페의 운영자인 재미교포 김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김씨가 96년 이후 입국 사실이 없어 기소 중지 처분이 된 상태인데요.
또 지난 7일 카페가 있는 포털 사이트와 김 씨가 낸 책의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입니다.
<인터뷰> 김칠준(변호사) : "고인이 된 분에 대한 형사사건은 다 끝났고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사건을 통해서 이미 다 밝혀졌습니다. 이런 인권을 침해하는 잘못된 카페를 폐쇄하고 출판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하고 그런 것들이 법원의 판결문을 통해서 기록에 남겨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8,90년대 우리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하지만 살인자의 누명을 뒤집어썼던 한 가족은 여전히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80년대,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기억하십니까.
이제 서서히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그늘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민우 기자, 당시 용의자의 유족들이 또 다른 아픔에 시달리고 있다면서요?
네, 당시 용의자로 몰렸던 김 모씨 유족 얘기입니다.
김 씨는 석 달동안 경찰의 강압 수사에 시달려야 했는데요.
갑자기 용의선상에 오른 이유는 한 재미교포의 제보 때문이었습니다.
꿈 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는데, 김 씨가 범인이었다는 거죠.
물론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그 후유증으로 가정은 이미 풍비박산 난 뒤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모두 잊혀진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악몽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신의 계시를 믿고 있었습니다.
<리포트>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부녀자 열 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투입된 경찰 병력만 연 인원 백 80만 명, 하지만 단서조차 잡지 못한 미제사건으로 남았는데요.
<인터뷰> 김 모 형사 (사건담당형사) : "제발 꿈속에 나타나라고 (피해자) 가방도 베고 잤어요. 내가 현장에서 잤다니까, 아무리 고생하고도 잡지 못하면 헛수고야. 못 잡았으니까 나는 죄인이지."
세월이 흘러 세상 사람들에게는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지만, 오 씨 가족에게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며 괴롭히는 끔찍한 악몽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진짜 범인은 잡지도 못하고 정말 너무 억울한, 정말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한테만 얽매서 정말로 화성연쇄살인자는 잡지도 못한 거 아니에요. 솔직히..."
오 씨의 남편은 17년 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렸던 김 모씨.
경찰이 남편 김 씨를 용의자로 몬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당시 미국에 살고 있던 재미교포 김 모씨가 꿈속에서 사건의 범인으로 남편 김씨의 이름을 봤다는 것입니다.
신의 계시였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꿈에 저희 남편 이름이 적혀 있는 종이를 어떤 계시를 받아서 그걸 가지고 경찰한테 찾아가서 이런 사람이 화성 연쇄 살인을 했다. 정신 나간 사람 제보만 듣고 너무 황당한 일이었죠."
당시 남편 김 씨는 석 달 남짓 강압적인 경찰 수사에 시달려야했고,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차례 자살까지 시도했는데요.
<인터뷰> 오모씨(음성변조) : "(남편 직업이) 가축사였고 그 지역에서 수의사(같은) 역할을 했었고 또 오토바이가 있어서 기동력이 있어서 사람도 그렇게 가축처럼 죽였을 것이 라고..."
결국 남편 김 씨는 경찰의 가혹행위를 이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자백했는데요.
하지만 김 씨의 무죄는 곧 입증됐습니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증거 부족으로 석방된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무혐의 판결을 받아서 저희는 기뻤죠. 그렇지만 저희가 그 때 당시 당했던 상처는 이루 말할 수도 없었던 거죠. 누구한테 하소연하고 얘기할 수도 없는 것이고..."
당시 남편 김씨는 수사 과정의 불법행위를 두고 경찰을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법원도 이에 대해 국가가 3천8백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불법 수사 후유증에 시달리며 술로 지새던 남편 김씨가 그 이듬해 심장 마비로 숨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고문 받고 와서 계속 시름시름 앓았어요. 술 먹고.. 애들이 다 어린데 살려고도 않고 삶의 애착을 다 잃어버리더라고요. 완전히..."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십 오년 동안 홀로 삼남매를 키우며 힘겹게 살아온 오씨.
하지만 오 씨의 악몽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아버지가 생각나 인터넷 검색을 하던 큰 아들이 우연히 한 카페에서 충격적인 글을 발견한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 아들(음성변조) : "그 카페를 보고 나서 많이 충격이었죠. 그 카페 내용을 다 읽다보면 그 사람이 저희 이름을 적지 않았지만 우리라는 것, 저희 가족 얘기라는 걸 알았으니까... 여태까지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게 얼마나 끔찍해요."
카페의 주인은 남편의 이름을 꿈에서 봤다며 경찰에 신고했던 재미교포 김씨.
카페에 올린 글을 통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은 무혐의로 풀려났던 남편 김 씨라며, 20년 전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던 것입니다.
남편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정황상 누가 봐도 지목된 범인은, 남편 김 씨였습니다.
충격적인 주장은 계속됐습니다.
아내 오 씨가 남편 김 씨를 독살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남편이 범인이기 때문에 저와 애들이 그렇게 독살했다고, 남편을 독살했다고 그런 식으로 책을 낸 것을 보고 진짜 이것을 어디다 어떻게 하소연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너무 억울하고 분해 가지고..."
현재 이 카페 회원은 2만 3천 여 명, 카페의 글은 온통 숨진 남편 김씨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남편 김 씨가 진범이라고 주장하는 책까지 출판해 팔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터뷰> 오모 씨(음성변조) : "누명 완전히 벗고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잊으려고 하고 살았어요. 마음의 막 너무 상처는 크고 아파도 근데 이렇게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런 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죠. 정말 무서워요. 세상이..."
지난 해 12월, 남편 김 씨의 유가족은 카페의 운영자인 재미교포 김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김씨가 96년 이후 입국 사실이 없어 기소 중지 처분이 된 상태인데요.
또 지난 7일 카페가 있는 포털 사이트와 김 씨가 낸 책의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입니다.
<인터뷰> 김칠준(변호사) : "고인이 된 분에 대한 형사사건은 다 끝났고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사건을 통해서 이미 다 밝혀졌습니다. 이런 인권을 침해하는 잘못된 카페를 폐쇄하고 출판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하고 그런 것들이 법원의 판결문을 통해서 기록에 남겨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8,90년대 우리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하지만 살인자의 누명을 뒤집어썼던 한 가족은 여전히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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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기자 kbsmin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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