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서 이룬 기적

입력 2010.10.04 (07:21) 수정 2010.10.04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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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여자 축구의 전성시댑니다. 20세 이하 언니들에 이어 이번엔 17세 이하 태극 소녀들이 세계를 감짝 놀라게 했습니다.



무관심과 냉대, 맨땅이나 다름 없는 열악한 환경... 이 모든 것을 이겨낸 기적 같은 드라마에 온 국민이 감동했습니다.



태극 소녀들을 따라가 봤습니다.



<리포트>



우승컵을 안고 들어선 인천공항 입국장. 명장 최덕주 감독과 21명의 태극 소녀들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습니다. 수백 명의 남녀노소 환영 인파와 취재진들이 대거 몰렸습니다.



<인터뷰> 최계화(서울 돈암동/81세) : “이렇게 우승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그런데 내가 안나올 수가 없고, 이것도 월드컵 챔피언이니까 응원하러 나와야지.”



곳곳에서 박수 갈채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입니다.



<인터뷰> 최덕주(17세 이하 여자월드컵대표팀 감독) :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반겨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우승했다는 걸 실감을 느끼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8골 득점왕에 대회 최우수선수상까지 거머쥔 여민지는 동료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습니다.



<녹취>여민지(17세 이하 여자월드컵대표팀 공격수) : “사실 저도 8골을 넣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는데요. 동료들이 패스도 잘해주고, 또 기회가 저한테 많이 주어졌기 때문에 골을 넣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열여섯, 열일곱, 꽃다운 나이의 태극 소녀들은 신세대다운 솔직함도 보였습니다.



<녹취> 김아름(17세 이하 여자 월드컵대표팀 주장) : “저희는 발랄한 게 아니라 발랄한 척을 하는 거예요. 너무 떨려가지고… 그래도 저희는 17살이니까 발랄한 척 하는 겁니다.”



<녹취>장슬기(17세 이하 여자월드컵대표팀 수비수) : “저는 막내니까 발랄해요. 솔직히 이 정도일지는 몰랐는데 많이 관심가져 주셔서 많이 놀라워요. 감사합니다.”



<녹취>이유나(17세 이하 여자월드컵대표팀 미드필더) : “저기 죄송한데요. 사진이 너무 이상하게 나온 걸 올려주셔서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좀 예쁜 것 좀 올려주세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우승,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던 일본과의 결승전은 각본없는 드라마였습니다.



<녹취>이정은(17세 이하 여자 월드컵대표팀 미드필더) : “일본 만큼은 꼭 이겨야겠다고 생각해서 정말 죽기 살기로 뛰었고요. 뛸 때 만큼은 진짜 힘든 줄 모르고 뛰었는데 경기 끝나고 나니까 긴장이 풀려서...”



<녹취>신담영(17세 이하 여자 월드컵대표팀 수비수) : “(결승전 때) 제가 좀 많이 아팠는데 감독님이 나가라고... 11명의 선수 중에 제가 나가면 10명만 뛰니까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고, 그냥 뛴다고 얘기는 했는데.”



지난 한 주 태극 소녀들은 피곤할 틈조차 없는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꽃미남 아이돌 그룹 앞에선 영락없는 소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여민지와 이정은 선수의 학교가 있는 이 곳에선 요즘 좀처럼 보기 드문 카퍼레이드까지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거리 곳곳의 시민과 학생들은 오픈카가 지날 때마다 월드컵 우승의 두 주역을 뜨겁게 환영했습니다.



<녹취> 장민경(고등학생) : “TV로 보다가 직접 보니까 신기하고요. 함안이 알려졌다는 게 좋아요. (민지 경기하는 거 보면서 어떤 생각 들었어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동갑인데, 동갑인 게 안 믿겨져요.”



<녹취>임수영(여민지 선수 어머니) : “후배들이 정말로 여자 축구를 하면 저렇게 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갖고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태극 소녀들 덕에 경남 도내 학교 여자축구부엔 1억 원의 지원금까지 건네졌습니다.



민지와 정은이는 학교에 들러 환영행사를 마친 뒤 곧바로 가벼운 팀훈련에 복귀했습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전국체전 때문. 올 초까지만 해도 두 태극 소녀들은 맨땅에서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월드컵 우승의 감격을 잠시 잊고 동료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봅니다.



<녹취> 김은정(함안 대산고 여자축구부 감독) : “(민지는) 물론 저희팀 소속이지만, 나라를 빛낸 아이이고 앞으로 성장해야 할 아이이기 때문에 일단 몸 상태 체크를 먼저 하고 본격적인 훈련에 투입시키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훈련을 마친 민지와 정은이를 만나 봤습니다. 결승전 상대였던 일본 선수들과는 대회 기간 내내 신경전을 벌였다고 합니다.



<녹취>이정은(17세 이하 여자월드컵대표팀 미드필더) : “공용 컴퓨터 바탕화면에 저희가 우승한 사진이나 이런 걸 올려놓으면 일본 애들이 컴퓨터를 이용하는 시간에 바탕화면을 자기들 것으로 바꿔 놓고, 저희가 할 때 다시 저희 것으로 바꿔놓고, 이렇게 바탕화면이 많이 바뀌었어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지난 시절,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힘들었던 속내도 털어놓습니다.



<녹취> 여민지(17세 이하 여자월드컵대표팀 공격수) : (맨땅에서 기적을 만들었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뭉클해져요. 저희가 뭘 바라고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뿌듯해지고 앞으로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생각도 많이 들어요.”



이 초등학교 여자축구부 선수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루에 세 시간씩 진짜 맨땅에서 공을 찹니다. 선수단을 실어 나를 버스도 감독을 보좌할 코치조차 없습니다. 그래도 올 들어 두 차례나 전국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차세대 여민지’로 평가받는 채림이는 지하철로 통학하는데 왕복 세 시간이 걸립니다.



<녹취> 강채림(서울 송파초교 여자축구부 주장) : “집 먼 애들도 많은데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이 먼데까지 오려면 힘들고 또 여기서 맨땅에서 운동할 때에도 잔디라면 안 그럴텐데 조금만 넘어져도 까지고 다치니까 더 힘든 것 같아요.”



이 학교 감독이 교육청에서 받는 월 급여는 120만 원,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5년째 생활고를 이겨내고 있지만, 정상적인 선수 수급이 안된다는 게 더 큰 어려움입니다.



<녹취> 주진희(울 송파초교 여자축구부 감독) : 어찌됐든 학부모들한테 대학을 갈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여자축구의 현실을 봤을 때 대학팀이 6개 밖에 되지 않고, 그 중에 두 학교는 올해 선수를 뽑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 것 때문에 선수 스카우트를 할 때 어려움이 가장 크죠.”



실제로 우리 나라 여자 축구의 현실은 참혹하기 그지 없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실업팀까지 모두 합쳐봐야 65개팀, 등록 선수는 1,450명에 불과합니다. 일본은 3만6천여 명, 독일은 백만 명이 넘습니다. 우리와는 비교 조차 되지 않습니다.



<녹취> 김대길(BS N 축구해설위원) : 가까운 일본을 보면, 프로구단에서 남자팀만 거느리는 것이 아니라 여자팀도 거느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걸 우리가 한 번 15개 구단이 짚어볼 필요가 있고, 또 WK리그에서도 6개 구단이 산하에 유소녀 클럽을 거느리는 저변 확대를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안양 WFC, 국내에서 하나 뿐인 여자 초등학생 축구 클럽을 찾아가 봤습니다. 중학생 언니들 틈에서 채 10명도 되지 않는 어린 선수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관내 초등학교들이 잇따라 여자축구부를 해체하자 중학교 감독이 전국에서 선수들을 모아 아예 유소녀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4학년 막내들은 이 클럽의 희망입니다.



<녹취> 조민아(양 WFC 선수/등학교 4학년) : “처음에는 아빠가 축구를 하셔서 따라했는데 축구가 좋아져서 하게 된거고 저는 지소연 선수나 여민지 언니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안양 WFC는 학교팀이 아니라는 이유로 재정적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숙소 문제는 가장 큰 걸림돌, 초등학생은 합숙을 금지하는 규정 때문에 저녁 때가 되면 뿔뿔이 흩어져야 합니다.



<녹취> 전세환(안양 WFC 감독) : “클럽팀이다 보니까 전국 시합을 나갈 때 애들이 수업을 빠져야 되지 않습니까? 학교팀들은 수업을 빠져도 상관없는데 저희 애들은 수업을 빠질 때 결석 처리가 되기 때문에 시합에 다 데려가지 못하는 거죠. 11명이 뛰어야 하는데 7명, 10명 뛰는 이유가 그런것이 거든요.”



WK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이 열린 지난 목요일. 국내 여자실업축구의 왕중왕을 가리는 날이었습니다. 경기에 앞서 20세 이하와 17세 이하 대표팀 언니 동생들이 만나는 뜻깊은 행사까지 열렸습니다. 그러나 텅 빈 관중석은 여자축구의 씁쓸한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녹취> 정정용(울산시 야음동) : “여자 축구는 솔직하게 자주는 안봤구요. 원래 축구를 보는 거랑 하는 걸 좋아해 가지고, 이번에 월드컵도 우승까지 해서 기회가 돼서 보러 왔습니다.”



<녹취> 김지민(울산시 반구동) : “여자 축구는 솔직하게 자주는 안봤구요. 원래 축구를 보는 거랑 하는 걸 좋아해 가지고, 이번에 월드컵도 우승까지 해서 기회가 돼서 보러 왔습니다.”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여민지 선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꼼꼼하게 축구 일지를 기록해 왔습니다.



타고난 재능과 성실성... 무릎 부상까지 딛고 일어선 축구 천재의 아름다운 반란에 우리는 희망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맨땅에서 이뤄낸 기적이었기에 더 열광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더 이상 ‘맨땅’이 아닌 보다 나은 여건에서 제2, 제3의 여민지가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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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땅서 이룬 기적
    • 입력 2010-10-04 07:21:04
    • 수정2010-10-04 07:23:47
    취재파일K
<앵커 멘트>

여자 축구의 전성시댑니다. 20세 이하 언니들에 이어 이번엔 17세 이하 태극 소녀들이 세계를 감짝 놀라게 했습니다.

무관심과 냉대, 맨땅이나 다름 없는 열악한 환경... 이 모든 것을 이겨낸 기적 같은 드라마에 온 국민이 감동했습니다.

태극 소녀들을 따라가 봤습니다.

<리포트>

우승컵을 안고 들어선 인천공항 입국장. 명장 최덕주 감독과 21명의 태극 소녀들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습니다. 수백 명의 남녀노소 환영 인파와 취재진들이 대거 몰렸습니다.

<인터뷰> 최계화(서울 돈암동/81세) : “이렇게 우승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그런데 내가 안나올 수가 없고, 이것도 월드컵 챔피언이니까 응원하러 나와야지.”

곳곳에서 박수 갈채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입니다.

<인터뷰> 최덕주(17세 이하 여자월드컵대표팀 감독) :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반겨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우승했다는 걸 실감을 느끼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8골 득점왕에 대회 최우수선수상까지 거머쥔 여민지는 동료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습니다.

<녹취>여민지(17세 이하 여자월드컵대표팀 공격수) : “사실 저도 8골을 넣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는데요. 동료들이 패스도 잘해주고, 또 기회가 저한테 많이 주어졌기 때문에 골을 넣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열여섯, 열일곱, 꽃다운 나이의 태극 소녀들은 신세대다운 솔직함도 보였습니다.

<녹취> 김아름(17세 이하 여자 월드컵대표팀 주장) : “저희는 발랄한 게 아니라 발랄한 척을 하는 거예요. 너무 떨려가지고… 그래도 저희는 17살이니까 발랄한 척 하는 겁니다.”

<녹취>장슬기(17세 이하 여자월드컵대표팀 수비수) : “저는 막내니까 발랄해요. 솔직히 이 정도일지는 몰랐는데 많이 관심가져 주셔서 많이 놀라워요. 감사합니다.”

<녹취>이유나(17세 이하 여자월드컵대표팀 미드필더) : “저기 죄송한데요. 사진이 너무 이상하게 나온 걸 올려주셔서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좀 예쁜 것 좀 올려주세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우승,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던 일본과의 결승전은 각본없는 드라마였습니다.

<녹취>이정은(17세 이하 여자 월드컵대표팀 미드필더) : “일본 만큼은 꼭 이겨야겠다고 생각해서 정말 죽기 살기로 뛰었고요. 뛸 때 만큼은 진짜 힘든 줄 모르고 뛰었는데 경기 끝나고 나니까 긴장이 풀려서...”

<녹취>신담영(17세 이하 여자 월드컵대표팀 수비수) : “(결승전 때) 제가 좀 많이 아팠는데 감독님이 나가라고... 11명의 선수 중에 제가 나가면 10명만 뛰니까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고, 그냥 뛴다고 얘기는 했는데.”

지난 한 주 태극 소녀들은 피곤할 틈조차 없는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꽃미남 아이돌 그룹 앞에선 영락없는 소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여민지와 이정은 선수의 학교가 있는 이 곳에선 요즘 좀처럼 보기 드문 카퍼레이드까지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거리 곳곳의 시민과 학생들은 오픈카가 지날 때마다 월드컵 우승의 두 주역을 뜨겁게 환영했습니다.

<녹취> 장민경(고등학생) : “TV로 보다가 직접 보니까 신기하고요. 함안이 알려졌다는 게 좋아요. (민지 경기하는 거 보면서 어떤 생각 들었어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동갑인데, 동갑인 게 안 믿겨져요.”

<녹취>임수영(여민지 선수 어머니) : “후배들이 정말로 여자 축구를 하면 저렇게 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갖고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태극 소녀들 덕에 경남 도내 학교 여자축구부엔 1억 원의 지원금까지 건네졌습니다.

민지와 정은이는 학교에 들러 환영행사를 마친 뒤 곧바로 가벼운 팀훈련에 복귀했습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전국체전 때문. 올 초까지만 해도 두 태극 소녀들은 맨땅에서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월드컵 우승의 감격을 잠시 잊고 동료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봅니다.

<녹취> 김은정(함안 대산고 여자축구부 감독) : “(민지는) 물론 저희팀 소속이지만, 나라를 빛낸 아이이고 앞으로 성장해야 할 아이이기 때문에 일단 몸 상태 체크를 먼저 하고 본격적인 훈련에 투입시키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훈련을 마친 민지와 정은이를 만나 봤습니다. 결승전 상대였던 일본 선수들과는 대회 기간 내내 신경전을 벌였다고 합니다.

<녹취>이정은(17세 이하 여자월드컵대표팀 미드필더) : “공용 컴퓨터 바탕화면에 저희가 우승한 사진이나 이런 걸 올려놓으면 일본 애들이 컴퓨터를 이용하는 시간에 바탕화면을 자기들 것으로 바꿔 놓고, 저희가 할 때 다시 저희 것으로 바꿔놓고, 이렇게 바탕화면이 많이 바뀌었어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지난 시절,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힘들었던 속내도 털어놓습니다.

<녹취> 여민지(17세 이하 여자월드컵대표팀 공격수) : (맨땅에서 기적을 만들었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뭉클해져요. 저희가 뭘 바라고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뿌듯해지고 앞으로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생각도 많이 들어요.”

이 초등학교 여자축구부 선수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루에 세 시간씩 진짜 맨땅에서 공을 찹니다. 선수단을 실어 나를 버스도 감독을 보좌할 코치조차 없습니다. 그래도 올 들어 두 차례나 전국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차세대 여민지’로 평가받는 채림이는 지하철로 통학하는데 왕복 세 시간이 걸립니다.

<녹취> 강채림(서울 송파초교 여자축구부 주장) : “집 먼 애들도 많은데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이 먼데까지 오려면 힘들고 또 여기서 맨땅에서 운동할 때에도 잔디라면 안 그럴텐데 조금만 넘어져도 까지고 다치니까 더 힘든 것 같아요.”

이 학교 감독이 교육청에서 받는 월 급여는 120만 원,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5년째 생활고를 이겨내고 있지만, 정상적인 선수 수급이 안된다는 게 더 큰 어려움입니다.

<녹취> 주진희(울 송파초교 여자축구부 감독) : 어찌됐든 학부모들한테 대학을 갈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여자축구의 현실을 봤을 때 대학팀이 6개 밖에 되지 않고, 그 중에 두 학교는 올해 선수를 뽑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 것 때문에 선수 스카우트를 할 때 어려움이 가장 크죠.”

실제로 우리 나라 여자 축구의 현실은 참혹하기 그지 없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실업팀까지 모두 합쳐봐야 65개팀, 등록 선수는 1,450명에 불과합니다. 일본은 3만6천여 명, 독일은 백만 명이 넘습니다. 우리와는 비교 조차 되지 않습니다.

<녹취> 김대길(BS N 축구해설위원) : 가까운 일본을 보면, 프로구단에서 남자팀만 거느리는 것이 아니라 여자팀도 거느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걸 우리가 한 번 15개 구단이 짚어볼 필요가 있고, 또 WK리그에서도 6개 구단이 산하에 유소녀 클럽을 거느리는 저변 확대를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안양 WFC, 국내에서 하나 뿐인 여자 초등학생 축구 클럽을 찾아가 봤습니다. 중학생 언니들 틈에서 채 10명도 되지 않는 어린 선수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관내 초등학교들이 잇따라 여자축구부를 해체하자 중학교 감독이 전국에서 선수들을 모아 아예 유소녀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4학년 막내들은 이 클럽의 희망입니다.

<녹취> 조민아(양 WFC 선수/등학교 4학년) : “처음에는 아빠가 축구를 하셔서 따라했는데 축구가 좋아져서 하게 된거고 저는 지소연 선수나 여민지 언니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안양 WFC는 학교팀이 아니라는 이유로 재정적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숙소 문제는 가장 큰 걸림돌, 초등학생은 합숙을 금지하는 규정 때문에 저녁 때가 되면 뿔뿔이 흩어져야 합니다.

<녹취> 전세환(안양 WFC 감독) : “클럽팀이다 보니까 전국 시합을 나갈 때 애들이 수업을 빠져야 되지 않습니까? 학교팀들은 수업을 빠져도 상관없는데 저희 애들은 수업을 빠질 때 결석 처리가 되기 때문에 시합에 다 데려가지 못하는 거죠. 11명이 뛰어야 하는데 7명, 10명 뛰는 이유가 그런것이 거든요.”

WK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이 열린 지난 목요일. 국내 여자실업축구의 왕중왕을 가리는 날이었습니다. 경기에 앞서 20세 이하와 17세 이하 대표팀 언니 동생들이 만나는 뜻깊은 행사까지 열렸습니다. 그러나 텅 빈 관중석은 여자축구의 씁쓸한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녹취> 정정용(울산시 야음동) : “여자 축구는 솔직하게 자주는 안봤구요. 원래 축구를 보는 거랑 하는 걸 좋아해 가지고, 이번에 월드컵도 우승까지 해서 기회가 돼서 보러 왔습니다.”

<녹취> 김지민(울산시 반구동) : “여자 축구는 솔직하게 자주는 안봤구요. 원래 축구를 보는 거랑 하는 걸 좋아해 가지고, 이번에 월드컵도 우승까지 해서 기회가 돼서 보러 왔습니다.”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여민지 선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꼼꼼하게 축구 일지를 기록해 왔습니다.

타고난 재능과 성실성... 무릎 부상까지 딛고 일어선 축구 천재의 아름다운 반란에 우리는 희망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맨땅에서 이뤄낸 기적이었기에 더 열광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더 이상 ‘맨땅’이 아닌 보다 나은 여건에서 제2, 제3의 여민지가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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