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냉장고·강아지 있어 좋다…아빠는 왜 있어?”

입력 2010.10.21 (09:10) 수정 2010.10.2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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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어느 초등학생이 지은 시 한편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빠가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써 내려갔는데요.

혹시 우리 아이도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뜨끔해 하셨던 분들 많으시죠.

이민우 기자, 순수한 동심의 시라고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네요?

<리포트>

그렇죠. 이 앵커는 집에서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시죠?

사실 저도 그렇게 떳떳하지 는 못한데요.

어찌 보면 많은 아버지들이 다 같은 처지겠죠.

아침에 나와서 온종일 밖에서 지내다가 늦은 밤이 돼서야 가족에게 돌아가니까요.

그러니 이런 시가 나올 법도 합니다.

그렇다고 아버지 입장에서 또 할 말은 없겠습니까?

누구는 하고 싶어 서 하냐.

그렇다고 마땅히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도 없고 말이죠.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버지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한 예능프로그램. 출연자가 이 시를 읽고 박장대소를 합니다.

하지만 이내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데요.

엄마와 냉장고는 물론 강아지보다 못한 아버지. 비단 이 아이만의 생각일까요?

<녹취> 초등학교 4학년 : "아빠는요. 월요일 아침에 나가셔서 토요일 저녁에 들어오세요."

<녹취> 초등학교 1학년 : "(아빠 몇 시에 들어오세요?) 9시 (아빠가 주말에도 바빠요?) 주말에는 안 바빠요. (주말에는 놀아줘요?) 텔레비전만 봐요."

<녹취> 초등학교 5학년 : "(아빠가 평소에 잘 놀아주나요?) 아니요 (집에 들어와서 뭐하세요?) 그냥 씻고 바로 누워요. (주말에는?) 누워요. (아빠하면 생각나는 모습은?) 눕는 거..."

평일엔 밤늦게 퇴근하고 주말엔 잠만 자는 아버지.

아이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들 모습입니다.

<녹취> 초등학교 5학년 : "저는 아빠랑 놀고 싶은데 안 놀아줘서 한편으로는 속상한 마음도 들고, (놀아달라) 말하고 싶은데도 아빠는 매일 들어와서 피곤해 해가지고..."

심지어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하기까지 합니다.

<녹취> 초등학교 5학년 : "(마지막으로 아빠와 논 건?) 일곱 살이요. (아빠랑 놀면 재미없어요?) 그냥 얼떨떨해요. 아빠랑 놀면 뭔가 어색해요. 친구들이랑 놀아요."

해맑은 동심에서 존재를 잃어버린 아버지들. 혹시 내 모습은 아닐까, 어른들은 뜨끔합니다.

초등학생의 시를 처음엔 웃어 넘겼는데, 자꾸 생각이 납니다.

<인터뷰> 아버지 : "역할에 맞는 제 구실을 하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도 들고요. 정말 노력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우리 신랑을 보면 우리 딸도 저런 말 할까 걱정되네요.

아이 커갈 수록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일단 무관심한 거 그게 문제인거 같아요.

그래도 가족을 위해 그렇게 뼈 빠지게 일했는데, 아버지가 측은해지기도 합니다.

월급제조기로 전락하며 가정에서 소외된 아버지들의 현 자화상입니다.

가정 하나만 등에 업고 죽어라 뛰어온 아버지들.

'아빠는 왜?'라는 말에 억장이 무너지기는 아이들도 아빠도 다름없습니다.

사회에서 치이고, 가정에서 소외받는 아버지들. 그럼 이들은 누가 위로해 줄까요?

서울 강남의 한 유흥가 골목. 한 술집에 들어서자 커튼으로 가려진 작은 방들이 눈에 띕니다.

<녹취> 대화방 종업원 : "(평범하게 살자) 평범하게 살면 재미없잖아. (열심히 살다가 내년엔 즐기면서 살고?) 어. 그게 평범이야. 오빠 다른 걸로 평범 얘기하는 거 아니야? 난 너무 멍청하게 살았어."

방 안에선 중년 남성들과 여종업원들의 대화가 한창입니다. 갈 곳 없는 중년 남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이른바 '대화방'입니다.

<녹취> 대화방 종업원 : "조용한 데서 대화를 하려고 오시는 분들 편안하게 많이 오세요. 혼자서. 전화도 와요. 지금 방 있냐고, 혼자 갈 건데...(고객은) 이제 뭐 중년층들..."

술을 마시며 오직 대화만 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 시간에 10만원.

남성들은 이렇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대화상대를 찾고 있었는데요.

<녹취> 대화방 종업원 : "마음이 외로운 사람들...꼭 그런 게 아니라 그런 분들이 오시죠. 여기 오면 얘기 다 받아주고 하니까..."

가족이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외로움을 이렇게나마 털어놓고 싶다는 겁니다.

<녹취> 대화방 이용 고객 : "대화 상대가 없으니까 거기 가면 내 얘기 다 들어주거든. (집에서) 존재감이 없으니까 (대화방에서) 대화를 해 주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가족은 그럼 왜 아버지들의 대화 상대가 되지 못하는 걸까요?

<녹취> 박00 : "외롭다고 표현하면 가장으로서 무능력하다는 표현밖에 안되기 때문에 가장으로서 할 수가 없어요."

혹시 아버지가 가정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가정이 아버지를 외면하지는 않을까요?

<녹취> 박00 : "얘기하려 하면 식구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얘기도 안 되고, 집에 가면 밥만 먹는 거죠. 아버지라는 게 돈만 버는 기계 같은 생각이 들고..."

<인터뷰> 이나영 교수(중앙대학교 사회학과) : "가정 안에서 (아버지가) 나는 단지 돈 버는 기계가 아니라 가족과 정서적 친밀감을 나누는 존재라는 것을 가족들과 인지하고...서로의 불만이나 그런 것들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으면..."

아버지가 있지만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는 자녀들.

가족이 있지만 대화할 상대가 없는 아버지들. 우리 아버지들의, 가정의 씁쓸한 자화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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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냉장고·강아지 있어 좋다…아빠는 왜 있어?”
    • 입력 2010-10-21 09:10:23
    • 수정2010-10-21 13: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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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어느 초등학생이 지은 시 한편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빠가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써 내려갔는데요. 혹시 우리 아이도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뜨끔해 하셨던 분들 많으시죠. 이민우 기자, 순수한 동심의 시라고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네요? <리포트> 그렇죠. 이 앵커는 집에서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시죠? 사실 저도 그렇게 떳떳하지 는 못한데요. 어찌 보면 많은 아버지들이 다 같은 처지겠죠. 아침에 나와서 온종일 밖에서 지내다가 늦은 밤이 돼서야 가족에게 돌아가니까요. 그러니 이런 시가 나올 법도 합니다. 그렇다고 아버지 입장에서 또 할 말은 없겠습니까? 누구는 하고 싶어 서 하냐. 그렇다고 마땅히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도 없고 말이죠.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버지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한 예능프로그램. 출연자가 이 시를 읽고 박장대소를 합니다. 하지만 이내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데요. 엄마와 냉장고는 물론 강아지보다 못한 아버지. 비단 이 아이만의 생각일까요? <녹취> 초등학교 4학년 : "아빠는요. 월요일 아침에 나가셔서 토요일 저녁에 들어오세요." <녹취> 초등학교 1학년 : "(아빠 몇 시에 들어오세요?) 9시 (아빠가 주말에도 바빠요?) 주말에는 안 바빠요. (주말에는 놀아줘요?) 텔레비전만 봐요." <녹취> 초등학교 5학년 : "(아빠가 평소에 잘 놀아주나요?) 아니요 (집에 들어와서 뭐하세요?) 그냥 씻고 바로 누워요. (주말에는?) 누워요. (아빠하면 생각나는 모습은?) 눕는 거..." 평일엔 밤늦게 퇴근하고 주말엔 잠만 자는 아버지. 아이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들 모습입니다. <녹취> 초등학교 5학년 : "저는 아빠랑 놀고 싶은데 안 놀아줘서 한편으로는 속상한 마음도 들고, (놀아달라) 말하고 싶은데도 아빠는 매일 들어와서 피곤해 해가지고..." 심지어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하기까지 합니다. <녹취> 초등학교 5학년 : "(마지막으로 아빠와 논 건?) 일곱 살이요. (아빠랑 놀면 재미없어요?) 그냥 얼떨떨해요. 아빠랑 놀면 뭔가 어색해요. 친구들이랑 놀아요." 해맑은 동심에서 존재를 잃어버린 아버지들. 혹시 내 모습은 아닐까, 어른들은 뜨끔합니다. 초등학생의 시를 처음엔 웃어 넘겼는데, 자꾸 생각이 납니다. <인터뷰> 아버지 : "역할에 맞는 제 구실을 하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도 들고요. 정말 노력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우리 신랑을 보면 우리 딸도 저런 말 할까 걱정되네요. 아이 커갈 수록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일단 무관심한 거 그게 문제인거 같아요. 그래도 가족을 위해 그렇게 뼈 빠지게 일했는데, 아버지가 측은해지기도 합니다. 월급제조기로 전락하며 가정에서 소외된 아버지들의 현 자화상입니다. 가정 하나만 등에 업고 죽어라 뛰어온 아버지들. '아빠는 왜?'라는 말에 억장이 무너지기는 아이들도 아빠도 다름없습니다. 사회에서 치이고, 가정에서 소외받는 아버지들. 그럼 이들은 누가 위로해 줄까요? 서울 강남의 한 유흥가 골목. 한 술집에 들어서자 커튼으로 가려진 작은 방들이 눈에 띕니다. <녹취> 대화방 종업원 : "(평범하게 살자) 평범하게 살면 재미없잖아. (열심히 살다가 내년엔 즐기면서 살고?) 어. 그게 평범이야. 오빠 다른 걸로 평범 얘기하는 거 아니야? 난 너무 멍청하게 살았어." 방 안에선 중년 남성들과 여종업원들의 대화가 한창입니다. 갈 곳 없는 중년 남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이른바 '대화방'입니다. <녹취> 대화방 종업원 : "조용한 데서 대화를 하려고 오시는 분들 편안하게 많이 오세요. 혼자서. 전화도 와요. 지금 방 있냐고, 혼자 갈 건데...(고객은) 이제 뭐 중년층들..." 술을 마시며 오직 대화만 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 시간에 10만원. 남성들은 이렇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대화상대를 찾고 있었는데요. <녹취> 대화방 종업원 : "마음이 외로운 사람들...꼭 그런 게 아니라 그런 분들이 오시죠. 여기 오면 얘기 다 받아주고 하니까..." 가족이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외로움을 이렇게나마 털어놓고 싶다는 겁니다. <녹취> 대화방 이용 고객 : "대화 상대가 없으니까 거기 가면 내 얘기 다 들어주거든. (집에서) 존재감이 없으니까 (대화방에서) 대화를 해 주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가족은 그럼 왜 아버지들의 대화 상대가 되지 못하는 걸까요? <녹취> 박00 : "외롭다고 표현하면 가장으로서 무능력하다는 표현밖에 안되기 때문에 가장으로서 할 수가 없어요." 혹시 아버지가 가정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가정이 아버지를 외면하지는 않을까요? <녹취> 박00 : "얘기하려 하면 식구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얘기도 안 되고, 집에 가면 밥만 먹는 거죠. 아버지라는 게 돈만 버는 기계 같은 생각이 들고..." <인터뷰> 이나영 교수(중앙대학교 사회학과) : "가정 안에서 (아버지가) 나는 단지 돈 버는 기계가 아니라 가족과 정서적 친밀감을 나누는 존재라는 것을 가족들과 인지하고...서로의 불만이나 그런 것들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으면..." 아버지가 있지만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는 자녀들. 가족이 있지만 대화할 상대가 없는 아버지들. 우리 아버지들의, 가정의 씁쓸한 자화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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