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뉴스] 60년 만의 귀환…국군 포로 해법은?

입력 2010.11.0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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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내일부터 2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다시 시작될 예정인 데요...



이번 상봉 과정에서는 특히 6.25 이후 전사자로 처리됐던 국군 출신 생존자들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북한에 생존해 있을 지에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슈 앤 뉴스 오늘은 풀리지 않고 있는 국군 포로 문젭니다.



먼저 김기현 기자가 국군포로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6.25 전쟁 때 포로로 된 국군은 어림잡아 8만 명이 넘습니다.



이 가운데 만 천여 명이 정전 무렵까지 귀환했습니다.



그러다 40여 년만에 故 조창호 씨가 북한을 탈출해 귀환하면서 국군포로 문제가 남북간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녹취> 故 조창호 중위(94년 10월) : "소위 임무를 결. 보고합니다. (조국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북한은 정전협정 전 공식 포로교환에 앞서 남한이 일방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했다는 이유로 일부 국군 포로를 억류하고 강제 노역에 동원했습니다.



<인터뷰> 유철수(탈북 국군포로) : "주로 많은 사람들이 함경북도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갔습니다."



북한에 남겨진 이들은 이후 출신 성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수십년 동안 온갖 박해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인터뷰> 허재식(탈북 국군포로) : "얼굴이 사람이지 북한 내에 있을 때는 사람 구실 못해..."



지난해 8월 두만강을 헤엄쳐 건넜던 국군 포로 82살 정상운 씨.



8일 만에 중국 당국에 체포돼 북송된 것만 알려졌을 뿐, 아직까지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국군 포로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은 이산가족 상봉뿐입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32명 가운데 생존자는 19명, 사망자는 13명이었습니다.



국방부는 북한에 5백여 명이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전사자로 분류된 실종자 수가 4만 천 명에 이르는 만큼 정확한 생사 확인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스튜디오에는 이번에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취재하고 돌아온 김기현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질문> 국군 출신 상봉자가 4명이 나왔는데 남측 기자들이 이들에게 다가가 취재하면 북 측 안내원들이 제지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였습니까?



<답변>



네, 이들 자리 주변에는 항상 북측 관계자들이 오가면서 취재가 길어진다 싶으면 가족 상봉임을 강조하며 이동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질문> 북측 관계자들이 없이 가족별로 방에서 만나는 개별상봉의 자리도 있었데, 국군 출신 상봉자들은 가족에게 어떤 얘기를 전했습니까?



<답변>



네, 국군출신 상봉자 4명은 개별상봉 때마저도 약속이나 한 듯 지난 60년 동안 북한에서의 삶을 자세히 말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심지어 호텔 방에서도 도청을 우려해 개인적인 얘기는 난간으로 나가서 나눴다고 가족들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왜 이렇게 국군 출신 상봉자를 4명이나 내보내는지 그 의도를 송영석 기자가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60년 만에 살아 돌아온 전사자들, 이번 상봉의 최고 화제였습니다.



북한은 지난 10년 동안 17차례 상봉에서 국군 출신을 내보내길 꺼려오다가 이번에 갑자기 4명이나 상봉장에 등장시켰

습니다.



억류당한 포로가 아니라, 전향자라고 주장하려는 선전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달 31일) :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에서 행복하고 보람찬 삶을 누려온데 대해서 얘기했다."



북한은 국군포로가 많이 생존해 있음을 보여주고 남북협상에서 지원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터뷰> 양무진(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현 정부가 최우선 해결 과제로 정한 국군포로 문제를 부각시킴으로써 차후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받기 위한 협상 카드로 쓰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실제로 최성익 북 측 단장은 사흘 전 금강산에서 이뤄진 남북 적십자간 비공식 면담에서 대규모 쌀과 비료 지원을 거듭 요청했습니다.



<질문> 김 기자... 북한은 국군 포로를 전향자로 우기고 있는데, 현재로선 이를 반박하기도 쉽지 않죠?



<답변>



그렇습니다.



현재 정부는 북한의 비협조로 국군출신 생존자가 몇 명인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처럼 이산상봉에 국군출신이 나올 경우,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칠 수 밖에 없는데요.



김희용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국방부는 지금까지 탈북자나 귀환포로의 진술을 근거로 국군포로 수를 추정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상봉에서 보았듯이 실제와 차이가 있었습니다.



정부는 정확한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우선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가 몇 명이나 되는지부터 다시 조사할 예정입니다.



문제는 국군포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북한이 얼마나 협조하느냐입니다.



국군 출신 북한 생존자가 북으로 전향했는지 여부는 직접 면담을 하지 않고서는 정확히 가리기 어렵습니다.



살아 있는 전사자, 즉 법으로는 전사한 것으로 돼 있지만 살아있는 게 확인된 국군 출신을 법적으로 어떻게 다시 규정하느냐도 고민입니다.



군 당국은 그 동안 가족들이 전사자 연금을 이미 받았거나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군포로가 탈북해 남한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전사자 지위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버젓이 살아있는 사람을 전사자로 분류하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습니다.



결국, 남북이 군사회담에서 실태조사와 본인 의사 확인에 합의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 상봉에서 전사자로 통보된 국군 출신 4명이 북한에 살아 있다는 사실이 또 다시 확인됐습니다.



모두들 나이가 많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생을 어디에서 보내고 싶은지 본인 의사를 물어 봐야합니다.



남측은 비전향 장기수를 돌려보낸 전례가 있기 때문에 남한 행을 원하는 국군포로를 데려올 권한이 있습니다.



독일은 통일 이전 대가를 주고서라도 동독의 정치범을 서독으로 데려온 사례를 참고할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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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뉴스] 60년 만의 귀환…국군 포로 해법은?
    • 입력 2010-11-02 22: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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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내일부터 2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다시 시작될 예정인 데요...

이번 상봉 과정에서는 특히 6.25 이후 전사자로 처리됐던 국군 출신 생존자들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북한에 생존해 있을 지에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슈 앤 뉴스 오늘은 풀리지 않고 있는 국군 포로 문젭니다.

먼저 김기현 기자가 국군포로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6.25 전쟁 때 포로로 된 국군은 어림잡아 8만 명이 넘습니다.

이 가운데 만 천여 명이 정전 무렵까지 귀환했습니다.

그러다 40여 년만에 故 조창호 씨가 북한을 탈출해 귀환하면서 국군포로 문제가 남북간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녹취> 故 조창호 중위(94년 10월) : "소위 임무를 결. 보고합니다. (조국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북한은 정전협정 전 공식 포로교환에 앞서 남한이 일방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했다는 이유로 일부 국군 포로를 억류하고 강제 노역에 동원했습니다.

<인터뷰> 유철수(탈북 국군포로) : "주로 많은 사람들이 함경북도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갔습니다."

북한에 남겨진 이들은 이후 출신 성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수십년 동안 온갖 박해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인터뷰> 허재식(탈북 국군포로) : "얼굴이 사람이지 북한 내에 있을 때는 사람 구실 못해..."

지난해 8월 두만강을 헤엄쳐 건넜던 국군 포로 82살 정상운 씨.

8일 만에 중국 당국에 체포돼 북송된 것만 알려졌을 뿐, 아직까지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국군 포로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은 이산가족 상봉뿐입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32명 가운데 생존자는 19명, 사망자는 13명이었습니다.

국방부는 북한에 5백여 명이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전사자로 분류된 실종자 수가 4만 천 명에 이르는 만큼 정확한 생사 확인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스튜디오에는 이번에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취재하고 돌아온 김기현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질문> 국군 출신 상봉자가 4명이 나왔는데 남측 기자들이 이들에게 다가가 취재하면 북 측 안내원들이 제지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였습니까?

<답변>

네, 이들 자리 주변에는 항상 북측 관계자들이 오가면서 취재가 길어진다 싶으면 가족 상봉임을 강조하며 이동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질문> 북측 관계자들이 없이 가족별로 방에서 만나는 개별상봉의 자리도 있었데, 국군 출신 상봉자들은 가족에게 어떤 얘기를 전했습니까?

<답변>

네, 국군출신 상봉자 4명은 개별상봉 때마저도 약속이나 한 듯 지난 60년 동안 북한에서의 삶을 자세히 말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심지어 호텔 방에서도 도청을 우려해 개인적인 얘기는 난간으로 나가서 나눴다고 가족들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왜 이렇게 국군 출신 상봉자를 4명이나 내보내는지 그 의도를 송영석 기자가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60년 만에 살아 돌아온 전사자들, 이번 상봉의 최고 화제였습니다.

북한은 지난 10년 동안 17차례 상봉에서 국군 출신을 내보내길 꺼려오다가 이번에 갑자기 4명이나 상봉장에 등장시켰
습니다.

억류당한 포로가 아니라, 전향자라고 주장하려는 선전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달 31일) :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에서 행복하고 보람찬 삶을 누려온데 대해서 얘기했다."

북한은 국군포로가 많이 생존해 있음을 보여주고 남북협상에서 지원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터뷰> 양무진(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현 정부가 최우선 해결 과제로 정한 국군포로 문제를 부각시킴으로써 차후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받기 위한 협상 카드로 쓰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실제로 최성익 북 측 단장은 사흘 전 금강산에서 이뤄진 남북 적십자간 비공식 면담에서 대규모 쌀과 비료 지원을 거듭 요청했습니다.

<질문> 김 기자... 북한은 국군 포로를 전향자로 우기고 있는데, 현재로선 이를 반박하기도 쉽지 않죠?

<답변>

그렇습니다.

현재 정부는 북한의 비협조로 국군출신 생존자가 몇 명인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처럼 이산상봉에 국군출신이 나올 경우,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칠 수 밖에 없는데요.

김희용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국방부는 지금까지 탈북자나 귀환포로의 진술을 근거로 국군포로 수를 추정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상봉에서 보았듯이 실제와 차이가 있었습니다.

정부는 정확한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우선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가 몇 명이나 되는지부터 다시 조사할 예정입니다.

문제는 국군포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북한이 얼마나 협조하느냐입니다.

국군 출신 북한 생존자가 북으로 전향했는지 여부는 직접 면담을 하지 않고서는 정확히 가리기 어렵습니다.

살아 있는 전사자, 즉 법으로는 전사한 것으로 돼 있지만 살아있는 게 확인된 국군 출신을 법적으로 어떻게 다시 규정하느냐도 고민입니다.

군 당국은 그 동안 가족들이 전사자 연금을 이미 받았거나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군포로가 탈북해 남한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전사자 지위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버젓이 살아있는 사람을 전사자로 분류하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습니다.

결국, 남북이 군사회담에서 실태조사와 본인 의사 확인에 합의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 상봉에서 전사자로 통보된 국군 출신 4명이 북한에 살아 있다는 사실이 또 다시 확인됐습니다.

모두들 나이가 많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생을 어디에서 보내고 싶은지 본인 의사를 물어 봐야합니다.

남측은 비전향 장기수를 돌려보낸 전례가 있기 때문에 남한 행을 원하는 국군포로를 데려올 권한이 있습니다.

독일은 통일 이전 대가를 주고서라도 동독의 정치범을 서독으로 데려온 사례를 참고할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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