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일본 칼에 중국 갑옷…이순신 장군 맞아?

입력 2010.11.17 (09:20) 수정 2010.11.1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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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심장부를 수호신처럼 지켜온 이순신 장군 동상이 최근 40여년만에 잠시 철거됐죠?



대대적인 보수를 위해서 경기도 이천의 공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죠.



그런데 이번 기회에 동상을 다시 만들잔 이야기까지 나오더군요.



장군의 동상이 실제 모습과 많이 다르다, 잘못됐다, 이런 주장들 때문인데요.



이민우 기자, 지적이 한 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네. 주장을 들어보면 조금 충격적인데요.



입고 있는 갑옷은 중국 갑옷이고, 들고 있는 칼은 일본도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동상의 얼굴도 역사 속 기록이나 그림 속의 이순신 장군과는 많이 다르다는 거죠.



그 동상이 또 보통 동상입니까.



서 있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든든해지는 나라의 수호신 같은 존재 아닙니까.



그런 이순신 장군이 외제 짝퉁으로 무장한 엉뚱한 사람이다.



국격과 관련된 문제 아니겠습니까. 사실 여부, 꼭 밝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4백여년 전.임 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불멸의 영웅 이순신 장군.



<녹취>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지금도 서울 한복판에 우뚝 서서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여겨지고 있는데요,



그에 대한 존경과 숭배만큼이나 신비한 이야기들도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죠.



<인터뷰> 김경학(서울시 동대문구) : "(밤 12시가 되면) 이순신 동상이랑 세종대왕 동상이 싸운다고..."



<인터뷰> 권순영(서울시 성북구) : "(밤만 되면) 동상도 잠을 자러 간다는, 잠은 경복궁에 가서 잔다는 소리도 들어본 것 같아요."



최근 이순신 장군이 옷을 벗었습니다.



서울시가 보수작업을 위해 동상을 이천으로 옮기며 임시 구조물을 세운 것인데요.



그런데 이를 계기로 잘못 제작된 동상을 다시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됐다는 걸까요?



먼저 이순신 장군이 입고 있는 갑옷이 덮어쓰는 형태의 중국식이라는 것인데요.



실제 옛 중국 군사의 사진을 보니 동상의 갑옷과 비슷합니다.



<인터뷰> 이상근(조계종 중앙신도회 총장) : "조선식 갑옷은 두루마기 형태로 되어 있잖아요. 근데 중국식 갑옷은 (어깨를) 덮어쓰는 형태로 돼있는데 지금 광화문 동상 갑옷이 덮어쓰는 중국식 형으로 돼 있다는 거죠."



반면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 제작됐다는 충남 아산의 충무공 동상은 두루마기 갑옷을 걸치고 있죠.



현재 현충사에 유물로 남아있는 이순신 장군의 칼입니다.



의전용 장검과 평상시 사용했던 쌍용검인대요.



문제는 동상의 칼이 이 두 개와 전혀 비슷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칼의 길이와 모양새가 일본도와 더 흡사하다는 것이죠.



<인터뷰> 혜문 스님(문화재 제자리 찾기 행동) : "(이순신 장군의) 쌍용검은 전형적인 조선식 환도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형상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도의 변형에 가까운 칼을 만든 것은 문제가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오른손에 칼집을 든 만큼 왼손으로 칼을 뽑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장군은 왼손잡이일까, 아닙니다.



장군이 왼손잡이라는 기록도 없고, 그 어떤 동상에서도 장군이 오른손으로 칼집을 쥔 모습은 없습니다.



<인터뷰> 이상근(조계종 중앙신도회 총장) : "전장에서 지도하는 무인이 칼을 제 손에 뽑지 못한다는 건, 전쟁을 포기하는 의미, 항복한다는 의미를 할 때 칼을 거둔다는 뜻인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동상의 얼굴이 장군의 실제 얼굴과 다르다는 논란입니다.



이순신의 실제 얼굴은 우리가 평소 알고 있던 카리스마 있는 얼굴과 달리 작고 고운 선비의 이미지였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였는지 장우성 화백이 그린 현충사의 이 영정이 지난 73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광화문 동상의 얼굴과는 많이 다른 모습인데요.



<인터뷰> 혜문 스님(문화재 제자리 찾기 행동) : "이미 당시에도 월천 장우성이 그렸던 현충사 영정은 화페 도안에도 쓰였고, 현충사에 걸려있었기 때문에 참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공교롭게도 그동안 등장한 20여점의 장군 영정 중에서 동상의 얼굴과 비슷한 그림은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수십년동안 보아온 이 동상의 얼굴은 대체 누구의 얼굴일까요. 항간에는 이 동상을 건립한 작가 본인의 얼굴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인터뷰> 안태성(前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 : "옆면이나 측면을 보면 이순신 눈매나 광대뼈가 거의 흡사하게 보여요. 그래서 자기 얼굴 모습을 투영시킨 거죠."



그런데 사실, 동상에 대한 논란은 이미 30년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지난 1977년에도 이런 문제탓에 정부가 새 동상을 세우기로 결정했었는데요.



<녹취>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음성변조) : "70년대에 했던 내용에 대해서는 저희가 따로 가지고 있는 자료는 없어요."



<녹취> 서울시 관계자(음성변조) : "(그 당시) 진행이 안 된 이유에 대해서는 그 당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당시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나라가 어수선했고, 미술계의 반발도 거셌을 것이라는 추측만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동상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동상은 지난 1968년 국내 조소계의 대부였던 故 김세중 서울대 교수가 제작했는데요.



김 교수는 동상을 만들 당시, 이당 김은호가 그린 이순신 장군 영정을 참조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인터뷰> 혜문 스님(문화재 제자리 찾기 행동) : "이당 김은호의 갑옷은 전형적인 중국식 갑옷이라는 것이 지적되었고 최악의 모델을 참조했다는 거죠."



하지만 이당 김은호의 그림과 비교해도 얼굴도 다르고, 칼을 쥔 손의 방향도 다른데요.



과연 어디까지 참고했고, 어디부터 창작을 했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습니다.



<녹취> 故 김세중 작가 지인(음성변조) : "나로서는 지금 할 말이 없어요. 전혀. 노코멘트."



<녹취> 故 김세중 기념사업회 관계자(음성변조) : "(그 분이) 세상 떠난 지도 25년인데 수없이 보도고 신문이고... 그만 사절할게요."



의혹을 제기한 문화재 제자리 찾기 행동과 조계종 중앙신도회는 동상에 대한 공청회 요구자료를 서울시에 제출했는데요.

<인터뷰> 혜문 스님(문화재 제자리 찾기 행동) : "이미 79년도에 철거 결정을 내린 부분에 대해서 왜 이행되지 않는가에 대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될 시점이 아닌가..."



<녹취> 서울시 관계자(음성변조) : "서울시가 다시 제작에 대한 부분이 아니잖아요. 동상을 유지, 관리하는 부분에 대한거지."



42년간 광화문을 지키던 이순신 동상은 올 연말, 보수작업을 마친 뒤 돌아올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과연 이 논란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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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일본 칼에 중국 갑옷…이순신 장군 맞아?
    • 입력 2010-11-17 09:20:48
    • 수정2010-11-17 09: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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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심장부를 수호신처럼 지켜온 이순신 장군 동상이 최근 40여년만에 잠시 철거됐죠?

대대적인 보수를 위해서 경기도 이천의 공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죠.

그런데 이번 기회에 동상을 다시 만들잔 이야기까지 나오더군요.

장군의 동상이 실제 모습과 많이 다르다, 잘못됐다, 이런 주장들 때문인데요.

이민우 기자, 지적이 한 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네. 주장을 들어보면 조금 충격적인데요.

입고 있는 갑옷은 중국 갑옷이고, 들고 있는 칼은 일본도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동상의 얼굴도 역사 속 기록이나 그림 속의 이순신 장군과는 많이 다르다는 거죠.

그 동상이 또 보통 동상입니까.

서 있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든든해지는 나라의 수호신 같은 존재 아닙니까.

그런 이순신 장군이 외제 짝퉁으로 무장한 엉뚱한 사람이다.

국격과 관련된 문제 아니겠습니까. 사실 여부, 꼭 밝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4백여년 전.임 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불멸의 영웅 이순신 장군.

<녹취>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지금도 서울 한복판에 우뚝 서서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여겨지고 있는데요,

그에 대한 존경과 숭배만큼이나 신비한 이야기들도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죠.

<인터뷰> 김경학(서울시 동대문구) : "(밤 12시가 되면) 이순신 동상이랑 세종대왕 동상이 싸운다고..."

<인터뷰> 권순영(서울시 성북구) : "(밤만 되면) 동상도 잠을 자러 간다는, 잠은 경복궁에 가서 잔다는 소리도 들어본 것 같아요."

최근 이순신 장군이 옷을 벗었습니다.

서울시가 보수작업을 위해 동상을 이천으로 옮기며 임시 구조물을 세운 것인데요.

그런데 이를 계기로 잘못 제작된 동상을 다시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됐다는 걸까요?

먼저 이순신 장군이 입고 있는 갑옷이 덮어쓰는 형태의 중국식이라는 것인데요.

실제 옛 중국 군사의 사진을 보니 동상의 갑옷과 비슷합니다.

<인터뷰> 이상근(조계종 중앙신도회 총장) : "조선식 갑옷은 두루마기 형태로 되어 있잖아요. 근데 중국식 갑옷은 (어깨를) 덮어쓰는 형태로 돼있는데 지금 광화문 동상 갑옷이 덮어쓰는 중국식 형으로 돼 있다는 거죠."

반면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 제작됐다는 충남 아산의 충무공 동상은 두루마기 갑옷을 걸치고 있죠.

현재 현충사에 유물로 남아있는 이순신 장군의 칼입니다.

의전용 장검과 평상시 사용했던 쌍용검인대요.

문제는 동상의 칼이 이 두 개와 전혀 비슷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칼의 길이와 모양새가 일본도와 더 흡사하다는 것이죠.

<인터뷰> 혜문 스님(문화재 제자리 찾기 행동) : "(이순신 장군의) 쌍용검은 전형적인 조선식 환도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형상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도의 변형에 가까운 칼을 만든 것은 문제가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오른손에 칼집을 든 만큼 왼손으로 칼을 뽑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장군은 왼손잡이일까, 아닙니다.

장군이 왼손잡이라는 기록도 없고, 그 어떤 동상에서도 장군이 오른손으로 칼집을 쥔 모습은 없습니다.

<인터뷰> 이상근(조계종 중앙신도회 총장) : "전장에서 지도하는 무인이 칼을 제 손에 뽑지 못한다는 건, 전쟁을 포기하는 의미, 항복한다는 의미를 할 때 칼을 거둔다는 뜻인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동상의 얼굴이 장군의 실제 얼굴과 다르다는 논란입니다.

이순신의 실제 얼굴은 우리가 평소 알고 있던 카리스마 있는 얼굴과 달리 작고 고운 선비의 이미지였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였는지 장우성 화백이 그린 현충사의 이 영정이 지난 73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광화문 동상의 얼굴과는 많이 다른 모습인데요.

<인터뷰> 혜문 스님(문화재 제자리 찾기 행동) : "이미 당시에도 월천 장우성이 그렸던 현충사 영정은 화페 도안에도 쓰였고, 현충사에 걸려있었기 때문에 참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공교롭게도 그동안 등장한 20여점의 장군 영정 중에서 동상의 얼굴과 비슷한 그림은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수십년동안 보아온 이 동상의 얼굴은 대체 누구의 얼굴일까요. 항간에는 이 동상을 건립한 작가 본인의 얼굴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인터뷰> 안태성(前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 : "옆면이나 측면을 보면 이순신 눈매나 광대뼈가 거의 흡사하게 보여요. 그래서 자기 얼굴 모습을 투영시킨 거죠."

그런데 사실, 동상에 대한 논란은 이미 30년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지난 1977년에도 이런 문제탓에 정부가 새 동상을 세우기로 결정했었는데요.

<녹취>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음성변조) : "70년대에 했던 내용에 대해서는 저희가 따로 가지고 있는 자료는 없어요."

<녹취> 서울시 관계자(음성변조) : "(그 당시) 진행이 안 된 이유에 대해서는 그 당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당시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나라가 어수선했고, 미술계의 반발도 거셌을 것이라는 추측만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동상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동상은 지난 1968년 국내 조소계의 대부였던 故 김세중 서울대 교수가 제작했는데요.

김 교수는 동상을 만들 당시, 이당 김은호가 그린 이순신 장군 영정을 참조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인터뷰> 혜문 스님(문화재 제자리 찾기 행동) : "이당 김은호의 갑옷은 전형적인 중국식 갑옷이라는 것이 지적되었고 최악의 모델을 참조했다는 거죠."

하지만 이당 김은호의 그림과 비교해도 얼굴도 다르고, 칼을 쥔 손의 방향도 다른데요.

과연 어디까지 참고했고, 어디부터 창작을 했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습니다.

<녹취> 故 김세중 작가 지인(음성변조) : "나로서는 지금 할 말이 없어요. 전혀. 노코멘트."

<녹취> 故 김세중 기념사업회 관계자(음성변조) : "(그 분이) 세상 떠난 지도 25년인데 수없이 보도고 신문이고... 그만 사절할게요."

의혹을 제기한 문화재 제자리 찾기 행동과 조계종 중앙신도회는 동상에 대한 공청회 요구자료를 서울시에 제출했는데요.
<인터뷰> 혜문 스님(문화재 제자리 찾기 행동) : "이미 79년도에 철거 결정을 내린 부분에 대해서 왜 이행되지 않는가에 대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될 시점이 아닌가..."

<녹취> 서울시 관계자(음성변조) : "서울시가 다시 제작에 대한 부분이 아니잖아요. 동상을 유지, 관리하는 부분에 대한거지."

42년간 광화문을 지키던 이순신 동상은 올 연말, 보수작업을 마친 뒤 돌아올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과연 이 논란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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