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등교

입력 2010.11.21 (08:3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만일 내 집 마련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우리 어깨가 얼마나 가뿐해질까요?

집이 재산이 아니라 삶의 가장 기본적인 터전이라는 인식이 확고하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세입자는 자신이 원하는 기간만큼 살 수 있도록 보장받고, 장애인들은 특별한 주택에서 24시간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살 수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핀란드입니다.

집 걱정 없는 나라 핀란드 얘기는 잠시 후에 전해드리겠습니다.

11월 셋째 주 특파원현장보고 시작합니다.

만일 테러 위험을 감수하고 학교를 다녀야 한다면 그 등굣길이 얼마나 살벌할까요? 바로 탈레반의 테러 공격이 끊이지 않는 파키스탄 스왓밸리 얘기입니다.

탈레반은 이미 이 지역의 여학교 수 백 곳을 파괴했고 지금도 여학교를 겨냥한 공격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는데요.. 여자는 교육받아서는 안 된다는 극단적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등굣길을 오가는 소녀들의 사연.. 파키스탄 스왓밸리에서 손은혜 순회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아름다운 산맥과 계곡으로 유명한 파키스탄 북서부의 스왓 밸리, 한 때 최고의 관광지로 꼽히던 곳입니다. 자연은 그대로지만 이 지역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탈레반이 세력을 급속히 강화하면서 스왓 밸리의 평화는 깨졌습니다. 여성을 가르치는 것이 이슬람 교리에 반한다고 믿는 탈레반. 탈레반 점령 기간에 이 지역 여학교들은 공공연히 테러의 표적이 됐습니다.

스왓밸리에 있는 한 초등학교. 수업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진지합니다. 이 지역에 있는 학교는 탈레반 점령 기간인 2007년부터 약 2년동안 대부분 파괴됐습니다.

탈레반이 나간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학생들 대부분이 이런 텐트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십 여명의 학생들 가운데 여자 아이는 단 세 명 뿐. 탈레반은 물러갔지만, 여전히 여자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유난히 반짝이는 눈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 8살 소녀 리사를 만났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말하는 리사.

<인터뷰>리사(8살) : “커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왜요?) 지식을 나누는 것은 소중하니까요.”

수업을 마친 후 리사의 집을 찾아가봤습니다. 카메라를 보자마자 히잡으로 황급히 얼굴을 가리는 리사의 어머니. 외부인 앞에서는 반드시 천으로 얼굴을 가려야 하는 것이 이 지역 이슬람 전통입니다. 어머니는 이슬람 규율을 철저히 따르면서도 딸 아이를 교육시키겠다는 의지만큼은 숨지기 않았습니다.

<인터뷰>레이나(리사 어머니) : “저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저를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제 딸에겐 같은 슬픔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탈레반 점령 기간 리사를 집에만 있게 한 것이 가장 슬펐다는 레이나씨.

<인터뷰>레이나(리사 어머니) : “탈레반 점령 기간에는 딸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었어요. 딸 아이는 학교에 폭탄이 터질까봐 두려워했죠.”

그녀는 딸을 학교에 보내 꿈을 펼치게 해주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목표라고 했습니다.

파키스탄 북서쪽 아프간 접경 지역에서 이슬람 강경 노선을 내세워 세력을 키워온 탈레반. 스왓밸리 지역을 탈레반 세력이 접수한 것은 지난 2007년 부터였습니다. 지난해 정부군이 탈레반과의 전쟁 승리를 선언하기까지, 2년여 기간에 탈레반이 파괴한 여학교는 모두 200여개에 달합니다.

<녹취>현지 군인 : “(탈레반은) 사람들을 양을 죽이듯이 마구 죽였습니다. 지금은 다른 나라 군대들이 이 지역을 보고 놀라죠. 와. 파키스탄 군대가 이 일을 해내다니.”

탈레반은 물러갔지만 페사와르를 비롯한 스왓밸리에서는 여전히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인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위험한 땅으로 남아 있습니다.

3대째 스왓밸리 지역에서 살아온 내피사네 가족. 아침 시간, 가족들은 각기 출근과 등교 준비로 바빴습니다.

<녹취>달왓 칼리 : “이게 바로 우리의 전통 아침식사입니다. 어서 드세요.”

올해 열 다섯살, 중학생인 내피사도 학교갈 준비에 한창입니다. 내피사가 다니는 학교에 함께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내피사는 히잡으로 온 얼굴을 꽁꽁 숨긴 채 조심 조심 등교길에 올랐습니다.

총을 든 채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는 군인들. 아직도 이 지역 여학교들은 테러 공격에 대비해 철저한 경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내 나라 내 조국 영원히 빛나라 우리의 소망에 축복이 있으라.”

학교의 일과는 신의 축복을 비는 기도와 애국가 제창으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외국 취재진의 등장에 당황한 학생들에게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엄격한 이슬람 전통을 따르고 있는 여학교에 나와있습니다. 탈레반이 물러간 이후 점점 여성들을 위한 교육의 기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여학생들에게 탈레반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인터뷰>나타샤(15살) : “탈레반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죠. 탈레반이 물러간 후에야 이렇게 학교에 오게 됐습니다.”

죽을 때까지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줄 알았다는 한 여학생.

<인터뷰>세르만티나(15살) : “여자들도 이제는 공부할 수 있어요. 그러니 더 열심히 노력해서 앞으로 직업도 가져야 해요.”

이 여학생은 두 번 다시 탈레반 점령 시기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아침 8시.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는 여학생들.

<녹취> “사람들은 이슬람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어요. 이슬람에서 남녀는 평등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수업 중간 중간, 이슬람의 참된 가르침은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며 공부를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쉬는 시간. 내피사와 친구들이 장난을 걸어왔습니다.

<녹취> “안녕~”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자신들의 전통이자 의무라고 말하는 소녀들. 매점에 와서 과자를 먹는 이 시간이 가장 즐겁다는 내피사.

<녹취> “조금만 사요. 조금만. 점심 먹을 거예요.”

여학생들은 탈레반 점령과 전쟁을 거쳐 테러 위협 속에 살고 있지만, 밝고 명랑한 십 대 소녀의 웃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안전하게 공부하는 게 꿈인 스왓밸리의 여학생들.. 그러나 때론 목숨을 걸고 학교에 가야 하는 현실이 가혹하기만 합니다.

<녹취>교사 : “우리는 현실을 잘 몰라요. 누가 탈레반이었는지. 왜 그들이 왔는지. 우리는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어린 소녀들은 이제 이 모든 공포에서 벗어나기를 신에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내피사 : “많은 소녀와 아이들이 탈레반의 폭격으로 죽었어요. 신의 뜻대로 이제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요.”

아직 긴장이 가시지 않은 스왓밸리. 테러 위협도 꺾지 못한 이 지역 소녀들의 꿈이 탈레반 점령기를 거치며 더욱 강하게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녹취> “삶이 책이라면 저는 단어입니다. 삶이 새장이라면 저는 새입니다. 삶이 바다라면 저는 물 한방울입니다. 삶이 들판이라면 저는 곡식입니다. 삶은 단 한 번 뿐이기에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등교
    • 입력 2010-11-21 08:31:17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만일 내 집 마련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우리 어깨가 얼마나 가뿐해질까요? 집이 재산이 아니라 삶의 가장 기본적인 터전이라는 인식이 확고하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세입자는 자신이 원하는 기간만큼 살 수 있도록 보장받고, 장애인들은 특별한 주택에서 24시간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살 수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핀란드입니다. 집 걱정 없는 나라 핀란드 얘기는 잠시 후에 전해드리겠습니다. 11월 셋째 주 특파원현장보고 시작합니다. 만일 테러 위험을 감수하고 학교를 다녀야 한다면 그 등굣길이 얼마나 살벌할까요? 바로 탈레반의 테러 공격이 끊이지 않는 파키스탄 스왓밸리 얘기입니다. 탈레반은 이미 이 지역의 여학교 수 백 곳을 파괴했고 지금도 여학교를 겨냥한 공격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는데요.. 여자는 교육받아서는 안 된다는 극단적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등굣길을 오가는 소녀들의 사연.. 파키스탄 스왓밸리에서 손은혜 순회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아름다운 산맥과 계곡으로 유명한 파키스탄 북서부의 스왓 밸리, 한 때 최고의 관광지로 꼽히던 곳입니다. 자연은 그대로지만 이 지역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탈레반이 세력을 급속히 강화하면서 스왓 밸리의 평화는 깨졌습니다. 여성을 가르치는 것이 이슬람 교리에 반한다고 믿는 탈레반. 탈레반 점령 기간에 이 지역 여학교들은 공공연히 테러의 표적이 됐습니다. 스왓밸리에 있는 한 초등학교. 수업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진지합니다. 이 지역에 있는 학교는 탈레반 점령 기간인 2007년부터 약 2년동안 대부분 파괴됐습니다. 탈레반이 나간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학생들 대부분이 이런 텐트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십 여명의 학생들 가운데 여자 아이는 단 세 명 뿐. 탈레반은 물러갔지만, 여전히 여자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유난히 반짝이는 눈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 8살 소녀 리사를 만났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말하는 리사. <인터뷰>리사(8살) : “커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왜요?) 지식을 나누는 것은 소중하니까요.” 수업을 마친 후 리사의 집을 찾아가봤습니다. 카메라를 보자마자 히잡으로 황급히 얼굴을 가리는 리사의 어머니. 외부인 앞에서는 반드시 천으로 얼굴을 가려야 하는 것이 이 지역 이슬람 전통입니다. 어머니는 이슬람 규율을 철저히 따르면서도 딸 아이를 교육시키겠다는 의지만큼은 숨지기 않았습니다. <인터뷰>레이나(리사 어머니) : “저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저를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제 딸에겐 같은 슬픔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탈레반 점령 기간 리사를 집에만 있게 한 것이 가장 슬펐다는 레이나씨. <인터뷰>레이나(리사 어머니) : “탈레반 점령 기간에는 딸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었어요. 딸 아이는 학교에 폭탄이 터질까봐 두려워했죠.” 그녀는 딸을 학교에 보내 꿈을 펼치게 해주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목표라고 했습니다. 파키스탄 북서쪽 아프간 접경 지역에서 이슬람 강경 노선을 내세워 세력을 키워온 탈레반. 스왓밸리 지역을 탈레반 세력이 접수한 것은 지난 2007년 부터였습니다. 지난해 정부군이 탈레반과의 전쟁 승리를 선언하기까지, 2년여 기간에 탈레반이 파괴한 여학교는 모두 200여개에 달합니다. <녹취>현지 군인 : “(탈레반은) 사람들을 양을 죽이듯이 마구 죽였습니다. 지금은 다른 나라 군대들이 이 지역을 보고 놀라죠. 와. 파키스탄 군대가 이 일을 해내다니.” 탈레반은 물러갔지만 페사와르를 비롯한 스왓밸리에서는 여전히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인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위험한 땅으로 남아 있습니다. 3대째 스왓밸리 지역에서 살아온 내피사네 가족. 아침 시간, 가족들은 각기 출근과 등교 준비로 바빴습니다. <녹취>달왓 칼리 : “이게 바로 우리의 전통 아침식사입니다. 어서 드세요.” 올해 열 다섯살, 중학생인 내피사도 학교갈 준비에 한창입니다. 내피사가 다니는 학교에 함께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내피사는 히잡으로 온 얼굴을 꽁꽁 숨긴 채 조심 조심 등교길에 올랐습니다. 총을 든 채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는 군인들. 아직도 이 지역 여학교들은 테러 공격에 대비해 철저한 경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내 나라 내 조국 영원히 빛나라 우리의 소망에 축복이 있으라.” 학교의 일과는 신의 축복을 비는 기도와 애국가 제창으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외국 취재진의 등장에 당황한 학생들에게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엄격한 이슬람 전통을 따르고 있는 여학교에 나와있습니다. 탈레반이 물러간 이후 점점 여성들을 위한 교육의 기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여학생들에게 탈레반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인터뷰>나타샤(15살) : “탈레반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죠. 탈레반이 물러간 후에야 이렇게 학교에 오게 됐습니다.” 죽을 때까지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줄 알았다는 한 여학생. <인터뷰>세르만티나(15살) : “여자들도 이제는 공부할 수 있어요. 그러니 더 열심히 노력해서 앞으로 직업도 가져야 해요.” 이 여학생은 두 번 다시 탈레반 점령 시기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아침 8시.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는 여학생들. <녹취> “사람들은 이슬람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어요. 이슬람에서 남녀는 평등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수업 중간 중간, 이슬람의 참된 가르침은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며 공부를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쉬는 시간. 내피사와 친구들이 장난을 걸어왔습니다. <녹취> “안녕~”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자신들의 전통이자 의무라고 말하는 소녀들. 매점에 와서 과자를 먹는 이 시간이 가장 즐겁다는 내피사. <녹취> “조금만 사요. 조금만. 점심 먹을 거예요.” 여학생들은 탈레반 점령과 전쟁을 거쳐 테러 위협 속에 살고 있지만, 밝고 명랑한 십 대 소녀의 웃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안전하게 공부하는 게 꿈인 스왓밸리의 여학생들.. 그러나 때론 목숨을 걸고 학교에 가야 하는 현실이 가혹하기만 합니다. <녹취>교사 : “우리는 현실을 잘 몰라요. 누가 탈레반이었는지. 왜 그들이 왔는지. 우리는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어린 소녀들은 이제 이 모든 공포에서 벗어나기를 신에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내피사 : “많은 소녀와 아이들이 탈레반의 폭격으로 죽었어요. 신의 뜻대로 이제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요.” 아직 긴장이 가시지 않은 스왓밸리. 테러 위협도 꺾지 못한 이 지역 소녀들의 꿈이 탈레반 점령기를 거치며 더욱 강하게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녹취> “삶이 책이라면 저는 단어입니다. 삶이 새장이라면 저는 새입니다. 삶이 바다라면 저는 물 한방울입니다. 삶이 들판이라면 저는 곡식입니다. 삶은 단 한 번 뿐이기에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