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10명 사망했던 음식점입니다”

입력 2011.02.24 (08:54) 수정 2011.02.2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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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가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지금부터 보실 가게 사장님들은 좀 다릅니다.



가스 폭발 사고로 손님과 종업원 수십 명이 숨지거나 다쳤던 사실을 보란 듯이 공개하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정수영 기자, 손님들이 겁이 나서 발길을 돌리진 않나요?





<리포트>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대단하다, 어려움을 극복해냈다면서 도리어 음식점 사장을 칭찬합니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끊이질 않습니다. 이런 호프집도 있습니다.



미성년자 손님에게 술을 팔았다, 영업정지 2개월을 당했다, 죄송하다, 대문짝만하게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네티즌들은 솔직함에 박수를 보냅니다.



1981년 8월 경기도 안양의 한 음식점. 영업시간이 끌날 무렵이던 밤 10시 쯤, 건물 지하에 있던 음식점 한복판에서 가스가 폭발했습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식당 안에는 당시 식당 종업원을 비롯한 손님 60여명이 있었는데요,



<인터뷰> 주명자(창업자) : “(가스폭발로) 이 집이, 건물이 다 무너졌어요. 정신을 차려보니까 깜깜하고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못해. (종업원한테) ‘너 여기 있으면 어떡하느냐, 가자’그러고 내가 끌고 나왔는데...”



모두 10명이 사망하고, 38명이 중경상을 입은 이 사고는 당시 언론에 대서특필됐는데요.



식당 주인은 보험사에서 받은 돈 5천만 원과 가족 명의 전 재산 14억 원을 모두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내 놓았습니다.



<인터뷰> 주명자(창업자) : “우리는 5만 원짜리 사글세방으로 옮겨서 살았어요. 그래가지고 살면서 (남편)할아버지는 교도소에 가시고...”



그 후 30년이 지난 지금, 이 식당 입구에는 가스폭발 사고를 비롯해 음식점이 걸어온 파란만장한 지난날을 적은 연혁이 보란 듯이 붙어있습니다.



글을 읽는 손님 오금 저리게 만드는 1981년 가스 폭발사고 외에도, 88 서울올림픽을 앞둔 시점, 정부정책 때문에 쫓겨나듯 외딴 시골로 2년간 이전해야 했던 사연도 있습니다.



<인터뷰> 주명자(창업자) : "‘여기 사고 난 집이야, 사람이 죽은 집이야’ 이렇게 하고 가시는 손님도 (있고,) 옛날 주인이 지금 살아 있느냐, 주인이 하느냐 그렇게 물어보시고 (그랬어요.)"



자칫 음식점 영업하는 데 치명적일 수 있는 치부들을 대놓고 손님들 읽어보시라며 안내판까지 걸어놓은 식당.



이런 사고가 있었는지 몰랐던 손님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인터뷰> 신성칠(10년 단골) : "놀랐지 이 사람들 미친 사람 아니야? 왜 자기 잘못된 거를 여기다..."



<인터뷰> 김병기(첫 번째 방문) : "어려움을 겪고도 사업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살리신 걸 보면 굉장하신 것 같아요.“



부모님 대를 이어 현재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은 틈만 나면 식당 직원들에게 가스안전을 주의시키고, 시설을 점검합니다.



<인터뷰> 장수민(사장) : “전기시설, 특히 가스시설 (점검은) 이건 제가 죽을 때까지 머리에 박혀있는 일이다 하고 있습니다. 그냥 저희가 솔직하게 써놓은 일이 이렇게 방송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이런 게 좋은 이미지로 됐다는 너무 감사하고요.”



경기도 군포의 한 호프집 앞. 한참 영업 준비를 하고 있어야할 시간이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습니다.



영업정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문 앞에는 호프집 사장이 적은 다섯 장의 종이가 붙어 있는데요.



가게를 찾아준 손님들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영업정지를 당하게 된 사연이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진심으로 송구하고 또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주민등록증 미소지자였던 고객이 미성년임이 밝혀져 청소년보호법을 위반한 것이 되었습니다.”



지난 해 12월 말 밤늦은 시각, 46살 이종국씨가 운영하는 이 호프집에 20대 여성 3명이 들어왔습니다.



<인터뷰> 이종국(00호프 사장) : “(지난 해) 12월 23일 (새벽) 1시 그 사이에 벌이진 일인데, 세 명 여자들이 들어왔어요. 두 명은 이미 제가 알던 단골고객이에요. 그런데 어려보이기 때문에 실제로 나이도 스무 살이니깐 많지 않은 거죠.”



앳되어 보이는 손님에게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동행한 단골손님들 부탁에 매몰차게 내쫓지 못했습니다.



20분 뒤 경찰 단속반이 들이닥쳤습니다.



성인이라던 일행은 미성년자로 밝혀졌고, 호프집은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호프집 사장 이 씨는 영문도 모르고 찾아온 단골손님들이 헛걸음할 것이 미안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인터뷰> 이종국(00호프 사장) : “그냥 아무 말 없이 쉬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요. 우리 집에 찾아왔던 손님들 그리고, 문을 닫게 됨으로서 찾아오셨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리는 고객한테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담담하게 썼는데...”



이 씨가 남긴 장문의 글은 호프집을 찾은 손님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서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또 심신도 더 단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꽃들이 만개하는 좋은 화창한 봄날에 보다 힘차고 밝은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네티즌들은 잘못을 시인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자세에 박수와 덕담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영업정지 당했다고 사회를 원망하지 않고, 사과를 올린 양심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대인배시네요. 정치하시는 분들 보고배우세요.”

“영업개시하면 꼭 한번 들르겠습니다. 힘내시길 바랍니다.”



손님들에게 감추고 싶은 치부마저 용기 있게 공개한 솔직한 가게들은 도리어 더 큰 신뢰와 격려를 모으면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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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10명 사망했던 음식점입니다”
    • 입력 2011-02-24 08:54:13
    • 수정2011-02-24 10: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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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가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지금부터 보실 가게 사장님들은 좀 다릅니다.

가스 폭발 사고로 손님과 종업원 수십 명이 숨지거나 다쳤던 사실을 보란 듯이 공개하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정수영 기자, 손님들이 겁이 나서 발길을 돌리진 않나요?


<리포트>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대단하다, 어려움을 극복해냈다면서 도리어 음식점 사장을 칭찬합니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끊이질 않습니다. 이런 호프집도 있습니다.

미성년자 손님에게 술을 팔았다, 영업정지 2개월을 당했다, 죄송하다, 대문짝만하게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네티즌들은 솔직함에 박수를 보냅니다.

1981년 8월 경기도 안양의 한 음식점. 영업시간이 끌날 무렵이던 밤 10시 쯤, 건물 지하에 있던 음식점 한복판에서 가스가 폭발했습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식당 안에는 당시 식당 종업원을 비롯한 손님 60여명이 있었는데요,

<인터뷰> 주명자(창업자) : “(가스폭발로) 이 집이, 건물이 다 무너졌어요. 정신을 차려보니까 깜깜하고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못해. (종업원한테) ‘너 여기 있으면 어떡하느냐, 가자’그러고 내가 끌고 나왔는데...”

모두 10명이 사망하고, 38명이 중경상을 입은 이 사고는 당시 언론에 대서특필됐는데요.

식당 주인은 보험사에서 받은 돈 5천만 원과 가족 명의 전 재산 14억 원을 모두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내 놓았습니다.

<인터뷰> 주명자(창업자) : “우리는 5만 원짜리 사글세방으로 옮겨서 살았어요. 그래가지고 살면서 (남편)할아버지는 교도소에 가시고...”

그 후 30년이 지난 지금, 이 식당 입구에는 가스폭발 사고를 비롯해 음식점이 걸어온 파란만장한 지난날을 적은 연혁이 보란 듯이 붙어있습니다.

글을 읽는 손님 오금 저리게 만드는 1981년 가스 폭발사고 외에도, 88 서울올림픽을 앞둔 시점, 정부정책 때문에 쫓겨나듯 외딴 시골로 2년간 이전해야 했던 사연도 있습니다.

<인터뷰> 주명자(창업자) : "‘여기 사고 난 집이야, 사람이 죽은 집이야’ 이렇게 하고 가시는 손님도 (있고,) 옛날 주인이 지금 살아 있느냐, 주인이 하느냐 그렇게 물어보시고 (그랬어요.)"

자칫 음식점 영업하는 데 치명적일 수 있는 치부들을 대놓고 손님들 읽어보시라며 안내판까지 걸어놓은 식당.

이런 사고가 있었는지 몰랐던 손님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인터뷰> 신성칠(10년 단골) : "놀랐지 이 사람들 미친 사람 아니야? 왜 자기 잘못된 거를 여기다..."

<인터뷰> 김병기(첫 번째 방문) : "어려움을 겪고도 사업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살리신 걸 보면 굉장하신 것 같아요.“

부모님 대를 이어 현재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은 틈만 나면 식당 직원들에게 가스안전을 주의시키고, 시설을 점검합니다.

<인터뷰> 장수민(사장) : “전기시설, 특히 가스시설 (점검은) 이건 제가 죽을 때까지 머리에 박혀있는 일이다 하고 있습니다. 그냥 저희가 솔직하게 써놓은 일이 이렇게 방송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이런 게 좋은 이미지로 됐다는 너무 감사하고요.”

경기도 군포의 한 호프집 앞. 한참 영업 준비를 하고 있어야할 시간이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습니다.

영업정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문 앞에는 호프집 사장이 적은 다섯 장의 종이가 붙어 있는데요.

가게를 찾아준 손님들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영업정지를 당하게 된 사연이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진심으로 송구하고 또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주민등록증 미소지자였던 고객이 미성년임이 밝혀져 청소년보호법을 위반한 것이 되었습니다.”

지난 해 12월 말 밤늦은 시각, 46살 이종국씨가 운영하는 이 호프집에 20대 여성 3명이 들어왔습니다.

<인터뷰> 이종국(00호프 사장) : “(지난 해) 12월 23일 (새벽) 1시 그 사이에 벌이진 일인데, 세 명 여자들이 들어왔어요. 두 명은 이미 제가 알던 단골고객이에요. 그런데 어려보이기 때문에 실제로 나이도 스무 살이니깐 많지 않은 거죠.”

앳되어 보이는 손님에게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동행한 단골손님들 부탁에 매몰차게 내쫓지 못했습니다.

20분 뒤 경찰 단속반이 들이닥쳤습니다.

성인이라던 일행은 미성년자로 밝혀졌고, 호프집은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호프집 사장 이 씨는 영문도 모르고 찾아온 단골손님들이 헛걸음할 것이 미안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인터뷰> 이종국(00호프 사장) : “그냥 아무 말 없이 쉬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요. 우리 집에 찾아왔던 손님들 그리고, 문을 닫게 됨으로서 찾아오셨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리는 고객한테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담담하게 썼는데...”

이 씨가 남긴 장문의 글은 호프집을 찾은 손님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서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또 심신도 더 단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꽃들이 만개하는 좋은 화창한 봄날에 보다 힘차고 밝은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네티즌들은 잘못을 시인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자세에 박수와 덕담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영업정지 당했다고 사회를 원망하지 않고, 사과를 올린 양심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대인배시네요. 정치하시는 분들 보고배우세요.”
“영업개시하면 꼭 한번 들르겠습니다. 힘내시길 바랍니다.”

손님들에게 감추고 싶은 치부마저 용기 있게 공개한 솔직한 가게들은 도리어 더 큰 신뢰와 격려를 모으면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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