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연평도의 봄

입력 2011.02.2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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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야단났어요, 지금. 폭탄 떨어져 가지고 몇 집이 지금 불타고….”



북한의 포격 도발 이후 지난 석 달 동안 육지에서 피란생활을 하던 연평도 주민들이 봄을 앞두고 대부분 섬으로 돌아왔습니다.



적막했던 연평도는 오랜만에 활기가 넘쳐나고 있는데요.



주민들도 일상으로 복귀를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지난 18일, 옷가지와 세간도 주민들에 이어 섬에 도착했습니다.



연평도 주민들이 임시로 머물던 경기도 김포시의 아파트 거주기간이 끝나면서 돌아온 짐들입니다.



주민들은 손수레나 경운기를 끌고 나와 이삿짐을 찾았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 지난 석 달간 돌보지 못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인터뷰>채영자(연평도 주민) : “김포에 있다가 여기 내 고향에 오니까 좋고요. 이제 마음대로 활동하고 다니니까 굴도 따러 다녀야겠고 벌어먹고 살아야하니까 좋지, 뭐.”



이웃들은 오랜만에 모여 앉았습니다.



<녹취> “이런 시골에서 살다가 아파트 가서 사니까 갇혀있으니까 갑갑해서 그렇지.”



<녹취> “거기래도 내 집이 아니고 남의 집에서 살림하는 거, 뭐. 내 살림이 아니니까.”



<인터뷰>오연옥(연평도 주민) : “연평도가 오고 싶더라고. 여기서 한 60년 살았는데. 오고 싶지. 여기가 제일이지.”



주민들이 돌아오면서 식당과 상점들도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인터뷰>최옥선(식당 운영) : “많이 편해졌어요. 이제는 지금도 슈퍼도 들어오고 엊그제 또 장사를 시작했고 하니까 그런 불편한 건 많이 없어졌어요. 이제 괜찮은 것 같아요.”



인천으로 피항했던 꽃게잡이 어선들도 4월부터 시작되는 꽃게 조업을 준비하기 위해 대부분 돌아왔습니다.



<녹취> “조업을 하려고 들어왔어요. 바다에 지금 어장이 있단 말이에요. 어장이 있는 걸 다 뽑아야 되거든요. 철망을 해야 돼요, 지금.”



석 달 동안 방치해놨던 어구 손질에 다들 분주한 모습입니다.



<인터뷰>권충선(연평도 어민) :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무서운 거죠. 여기 나가면서도 무서웠었는데, 뭐. 배타기는 아주 숙달이 돼가지고요. 배에 대해서는 직업인만큼 무섭고 그런 건 없어요.”



갯벌에서는 굴 채취가 한창입니다.



섬 아낙네들의 능숙한 솜씨에 바구니가 금세 채워집니다.



굴은 10월부터 2월까지가 제철로 섬에 돌아오기 무섭게 갯벌로 나왔습니다.



<인터뷰>이순녀(연평도 주민) : “하루 종일 쪼면 관 반은 쫘요. 그럼 한 관에 4만원이거든. 4만원이니까 관 반이면 6만원은 사.”



연평도 주민들에게 굴은 짭짤한 부업거리이자 그리웠던 고향의 맛입니다.



<인터뷰>이기숙(연평도 주민) : “아무래도 먹고 싶잖아. 먹던 사람이니까. 양곡에 가서 굴 먹고 싶어서 굴 먹고 싶어서 애들 보고 야 굴이라도 누구네 쫘오면 조금 사먹어야겠다 하니까….”



섬마을은 활기를 되찾았지만, 포격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습니다.



<녹취> “지붕이 다 떨어졌어요.”



북한의 포격으로 건물 46동이 완전히 부서졌고, 144동은 일부가 부서졌습니다.



보수는 아직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북한의 포격으로 까맣게 탄 집은 아직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웅크리고 있습니다.



<인터뷰>백연순(연평도 주민) : “저는 그 동안 무서워가지고 못 들어오고 들어가자고 자꾸 들어오라고 하는데도 못 들어왔어요. 근데 오늘 처음 왔어요. 지금 보니까….”



그날의 충격은 아직까지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인터뷰>박영여(연평도 주민) : “아픈 거야 뭐. 처참하죠. 너무 아프니까 말도 안 나와요. 웬만큼 이렇게 됐어야지. 너무…. 이거 새로 지붕도 해야죠.”



지난 21일부터 피해복구 신청을 받고 있는 면사무소는 주민들로 북적입니다.



<녹취> “집에 가셔서 작성해서 아예 반장, 이장 확인을 받아서 면사무소에 제출해주세요.”



1300여 명에 이르던 연평도 주민들은 북한의 포격 직후 대부분 피난을 떠났습니다.



차마 떠날 수 없었던 주민 30여명만이 연평도를 지키며 유난히 춥고 긴 겨울을 보냈습니다.



2월말이 되면서 언제 추웠냐는 듯이 날씨가 따뜻해지고, 떠났던 주민들도 열에 아홉은 돌아왔습니다.



골목길엔 다시 아이들 웃음소리와 어머니 밥 짓는 소리, 어르신 기침소리 같은 일상의 소리가 넘쳐납니다.



겉으로는 모든 게 포격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지만 주민들 마음에는 그날의 공포가 낙인처럼 찍혀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한미 키리졸브 훈련이 시작된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움츠러듭니다.



<인터뷰>김운선 (연평도 주민) : “이러한 일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아직 떠나지 않았어요. 잠을 못 자요, 지금.”



<인터뷰>안애자(연평도 주민) : “저희는 한 번 겪었던 사람들이니까 불안한 마음은 말도 못해요. 그렇다고 또 미리 터지지도 않았는데 미리 육지로 도망간다는 건 그것도 또 우스운 거고.”



연평도 주민들의 바람은 하나입니다.



<녹취> “고향이라고 이렇게 돌아와 있으니까 아까는 눈물이 나올라 그래서…. 우리가 옛날처럼 다시 평화롭게 고향 오빠, 언니, 친구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편안하게 안정되게 굴 따러도 가고 웃으면서 서로 나눠먹던 풍경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겨우내 얼어붙어있던 연평도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포격의 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는데요.



하루빨리 주민들이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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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한반도] 연평도의 봄
    • 입력 2011-02-26 09: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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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야단났어요, 지금. 폭탄 떨어져 가지고 몇 집이 지금 불타고….”

북한의 포격 도발 이후 지난 석 달 동안 육지에서 피란생활을 하던 연평도 주민들이 봄을 앞두고 대부분 섬으로 돌아왔습니다.

적막했던 연평도는 오랜만에 활기가 넘쳐나고 있는데요.

주민들도 일상으로 복귀를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지난 18일, 옷가지와 세간도 주민들에 이어 섬에 도착했습니다.

연평도 주민들이 임시로 머물던 경기도 김포시의 아파트 거주기간이 끝나면서 돌아온 짐들입니다.

주민들은 손수레나 경운기를 끌고 나와 이삿짐을 찾았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 지난 석 달간 돌보지 못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인터뷰>채영자(연평도 주민) : “김포에 있다가 여기 내 고향에 오니까 좋고요. 이제 마음대로 활동하고 다니니까 굴도 따러 다녀야겠고 벌어먹고 살아야하니까 좋지, 뭐.”

이웃들은 오랜만에 모여 앉았습니다.

<녹취> “이런 시골에서 살다가 아파트 가서 사니까 갇혀있으니까 갑갑해서 그렇지.”

<녹취> “거기래도 내 집이 아니고 남의 집에서 살림하는 거, 뭐. 내 살림이 아니니까.”

<인터뷰>오연옥(연평도 주민) : “연평도가 오고 싶더라고. 여기서 한 60년 살았는데. 오고 싶지. 여기가 제일이지.”

주민들이 돌아오면서 식당과 상점들도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인터뷰>최옥선(식당 운영) : “많이 편해졌어요. 이제는 지금도 슈퍼도 들어오고 엊그제 또 장사를 시작했고 하니까 그런 불편한 건 많이 없어졌어요. 이제 괜찮은 것 같아요.”

인천으로 피항했던 꽃게잡이 어선들도 4월부터 시작되는 꽃게 조업을 준비하기 위해 대부분 돌아왔습니다.

<녹취> “조업을 하려고 들어왔어요. 바다에 지금 어장이 있단 말이에요. 어장이 있는 걸 다 뽑아야 되거든요. 철망을 해야 돼요, 지금.”

석 달 동안 방치해놨던 어구 손질에 다들 분주한 모습입니다.

<인터뷰>권충선(연평도 어민) :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무서운 거죠. 여기 나가면서도 무서웠었는데, 뭐. 배타기는 아주 숙달이 돼가지고요. 배에 대해서는 직업인만큼 무섭고 그런 건 없어요.”

갯벌에서는 굴 채취가 한창입니다.

섬 아낙네들의 능숙한 솜씨에 바구니가 금세 채워집니다.

굴은 10월부터 2월까지가 제철로 섬에 돌아오기 무섭게 갯벌로 나왔습니다.

<인터뷰>이순녀(연평도 주민) : “하루 종일 쪼면 관 반은 쫘요. 그럼 한 관에 4만원이거든. 4만원이니까 관 반이면 6만원은 사.”

연평도 주민들에게 굴은 짭짤한 부업거리이자 그리웠던 고향의 맛입니다.

<인터뷰>이기숙(연평도 주민) : “아무래도 먹고 싶잖아. 먹던 사람이니까. 양곡에 가서 굴 먹고 싶어서 굴 먹고 싶어서 애들 보고 야 굴이라도 누구네 쫘오면 조금 사먹어야겠다 하니까….”

섬마을은 활기를 되찾았지만, 포격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습니다.

<녹취> “지붕이 다 떨어졌어요.”

북한의 포격으로 건물 46동이 완전히 부서졌고, 144동은 일부가 부서졌습니다.

보수는 아직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북한의 포격으로 까맣게 탄 집은 아직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웅크리고 있습니다.

<인터뷰>백연순(연평도 주민) : “저는 그 동안 무서워가지고 못 들어오고 들어가자고 자꾸 들어오라고 하는데도 못 들어왔어요. 근데 오늘 처음 왔어요. 지금 보니까….”

그날의 충격은 아직까지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인터뷰>박영여(연평도 주민) : “아픈 거야 뭐. 처참하죠. 너무 아프니까 말도 안 나와요. 웬만큼 이렇게 됐어야지. 너무…. 이거 새로 지붕도 해야죠.”

지난 21일부터 피해복구 신청을 받고 있는 면사무소는 주민들로 북적입니다.

<녹취> “집에 가셔서 작성해서 아예 반장, 이장 확인을 받아서 면사무소에 제출해주세요.”

1300여 명에 이르던 연평도 주민들은 북한의 포격 직후 대부분 피난을 떠났습니다.

차마 떠날 수 없었던 주민 30여명만이 연평도를 지키며 유난히 춥고 긴 겨울을 보냈습니다.

2월말이 되면서 언제 추웠냐는 듯이 날씨가 따뜻해지고, 떠났던 주민들도 열에 아홉은 돌아왔습니다.

골목길엔 다시 아이들 웃음소리와 어머니 밥 짓는 소리, 어르신 기침소리 같은 일상의 소리가 넘쳐납니다.

겉으로는 모든 게 포격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지만 주민들 마음에는 그날의 공포가 낙인처럼 찍혀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한미 키리졸브 훈련이 시작된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움츠러듭니다.

<인터뷰>김운선 (연평도 주민) : “이러한 일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아직 떠나지 않았어요. 잠을 못 자요, 지금.”

<인터뷰>안애자(연평도 주민) : “저희는 한 번 겪었던 사람들이니까 불안한 마음은 말도 못해요. 그렇다고 또 미리 터지지도 않았는데 미리 육지로 도망간다는 건 그것도 또 우스운 거고.”

연평도 주민들의 바람은 하나입니다.

<녹취> “고향이라고 이렇게 돌아와 있으니까 아까는 눈물이 나올라 그래서…. 우리가 옛날처럼 다시 평화롭게 고향 오빠, 언니, 친구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편안하게 안정되게 굴 따러도 가고 웃으면서 서로 나눠먹던 풍경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겨우내 얼어붙어있던 연평도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포격의 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는데요.

하루빨리 주민들이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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