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개구리 소년’의 진실은?

입력 2011.03.13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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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최근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다룬 영화에 2백만 가까운 관객이 몰리면서 당시 사건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어딘가 있을 범인에게 진상만이라도 알려줄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수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난 1991년 3월 26일 대구 이곡동 초등학생 다섯 명이 집을 나섰습니다.

밤늦도록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부모들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인터뷰> 김현도(故 김영규 군 아버지):"경찰이 하는 말이‘애들 다섯 명인데 설마 어떻게 됐을라고. 가만있어보세요 부모님. (아이들) 집에 돌아온다'고."

뒤늦게 집단 실종 사건임을 눈치 챈 경찰은 대대적인 수색 작전에 착수했습니다.

사건 이후 11년간 수색인원 32만 명이 동원됐고 전국에 뿌린 실종 전단지는 8백만 장에 이릅니다.

<인터뷰> 우종우(故 우철원군 아버지):“1톤 차를 이렇게 개조를 해가지고, 선거 유세할 때 타고 다니는 차처럼 만들어서 양쪽에 우리 아이들 사진을 이만하게 붙여서 (다녔어요.)"

사건이 미궁에 빠져들면서 근거가 희박한 억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실종 어린이 아버지 한 명이 아이들이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나머지 집터를 파헤치는 소동까지 벌어졌습니다.

<인터뷰> 박건서(故 박차인군 아버지):“사람이 미치고 나자빠질 노릇 아닙니까. 그렇게 (아버지가 범인이라고) 하니깐. 그리고 또 안 파볼 수도 없는 거고, (중략) 그러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파게 된 거지.”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던 개구리 소년 사건은 2002년 9월 다시금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사라진 아이들 5명 유골이 와룡산 계곡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인터뷰> 김현도 (故 김영규군 아버지):“얼토당토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니겠지 (했어요.) 거기서 왜 우리 애들이 나올까. 경찰들 수 만 명이 붙어서 조사했는데, 왜 거기서 아이들이 나오나 (했어요.) (옷가지 등) 사실을 보니 맞아요. 맞다 그랬지."

경북대 법의학팀은 유골 한 구 두개골에서 동전 크기만한 구멍과 예리한 흉기 자국 10여 곳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경찰이 전면적인 수사를 재개했지만 단서를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녹취> 우상태(당시 개구리실종사건 경찰수사팀):“와룡산에서 짐승잡는 사람이 당시 몇 사람 있었는데 수사했어요. (혐의가) 안 나왔어요. 아이들이 어디를 다닌 행적이 나와야지 단서라 던지 나오는데, 흔적이 전혀 나오지를 않으니까.”

유족들에게 남은 마지막 바람은 단 한 가지, 진상을 규명하는 일 뿐입니다.

<인터뷰> 김현도(故 김영규군 아버지):“공소시효도 지났다, 시간도 20년 흘렀다. (범인이) 자기가 생각에 이 아버지들 보고 너무도 처량하니까 어떻게 해서 (그랬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은 게 다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죠.”

개구리 소년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20년, 하지만 부모들에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으로 남아 있습니다.

KBS뉴스 정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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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써 20년, ‘개구리 소년’의 진실은?
    • 입력 2011-03-13 07: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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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최근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다룬 영화에 2백만 가까운 관객이 몰리면서 당시 사건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어딘가 있을 범인에게 진상만이라도 알려줄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수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난 1991년 3월 26일 대구 이곡동 초등학생 다섯 명이 집을 나섰습니다. 밤늦도록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부모들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인터뷰> 김현도(故 김영규 군 아버지):"경찰이 하는 말이‘애들 다섯 명인데 설마 어떻게 됐을라고. 가만있어보세요 부모님. (아이들) 집에 돌아온다'고." 뒤늦게 집단 실종 사건임을 눈치 챈 경찰은 대대적인 수색 작전에 착수했습니다. 사건 이후 11년간 수색인원 32만 명이 동원됐고 전국에 뿌린 실종 전단지는 8백만 장에 이릅니다. <인터뷰> 우종우(故 우철원군 아버지):“1톤 차를 이렇게 개조를 해가지고, 선거 유세할 때 타고 다니는 차처럼 만들어서 양쪽에 우리 아이들 사진을 이만하게 붙여서 (다녔어요.)" 사건이 미궁에 빠져들면서 근거가 희박한 억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실종 어린이 아버지 한 명이 아이들이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나머지 집터를 파헤치는 소동까지 벌어졌습니다. <인터뷰> 박건서(故 박차인군 아버지):“사람이 미치고 나자빠질 노릇 아닙니까. 그렇게 (아버지가 범인이라고) 하니깐. 그리고 또 안 파볼 수도 없는 거고, (중략) 그러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파게 된 거지.”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던 개구리 소년 사건은 2002년 9월 다시금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사라진 아이들 5명 유골이 와룡산 계곡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인터뷰> 김현도 (故 김영규군 아버지):“얼토당토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니겠지 (했어요.) 거기서 왜 우리 애들이 나올까. 경찰들 수 만 명이 붙어서 조사했는데, 왜 거기서 아이들이 나오나 (했어요.) (옷가지 등) 사실을 보니 맞아요. 맞다 그랬지." 경북대 법의학팀은 유골 한 구 두개골에서 동전 크기만한 구멍과 예리한 흉기 자국 10여 곳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경찰이 전면적인 수사를 재개했지만 단서를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녹취> 우상태(당시 개구리실종사건 경찰수사팀):“와룡산에서 짐승잡는 사람이 당시 몇 사람 있었는데 수사했어요. (혐의가) 안 나왔어요. 아이들이 어디를 다닌 행적이 나와야지 단서라 던지 나오는데, 흔적이 전혀 나오지를 않으니까.” 유족들에게 남은 마지막 바람은 단 한 가지, 진상을 규명하는 일 뿐입니다. <인터뷰> 김현도(故 김영규군 아버지):“공소시효도 지났다, 시간도 20년 흘렀다. (범인이) 자기가 생각에 이 아버지들 보고 너무도 처량하니까 어떻게 해서 (그랬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은 게 다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죠.” 개구리 소년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20년, 하지만 부모들에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으로 남아 있습니다. KBS뉴스 정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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