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최근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다룬 영화에 2백만 가까운 관객이 몰리면서 당시 사건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어딘가 있을 범인에게 진상만이라도 알려줄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수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난 1991년 3월 26일 대구 이곡동 초등학생 다섯 명이 집을 나섰습니다.
밤늦도록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부모들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인터뷰> 김현도(故 김영규 군 아버지):"경찰이 하는 말이‘애들 다섯 명인데 설마 어떻게 됐을라고. 가만있어보세요 부모님. (아이들) 집에 돌아온다'고."
뒤늦게 집단 실종 사건임을 눈치 챈 경찰은 대대적인 수색 작전에 착수했습니다.
사건 이후 11년간 수색인원 32만 명이 동원됐고 전국에 뿌린 실종 전단지는 8백만 장에 이릅니다.
<인터뷰> 우종우(故 우철원군 아버지):“1톤 차를 이렇게 개조를 해가지고, 선거 유세할 때 타고 다니는 차처럼 만들어서 양쪽에 우리 아이들 사진을 이만하게 붙여서 (다녔어요.)"
사건이 미궁에 빠져들면서 근거가 희박한 억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실종 어린이 아버지 한 명이 아이들이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나머지 집터를 파헤치는 소동까지 벌어졌습니다.
<인터뷰> 박건서(故 박차인군 아버지):“사람이 미치고 나자빠질 노릇 아닙니까. 그렇게 (아버지가 범인이라고) 하니깐. 그리고 또 안 파볼 수도 없는 거고, (중략) 그러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파게 된 거지.”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던 개구리 소년 사건은 2002년 9월 다시금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사라진 아이들 5명 유골이 와룡산 계곡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인터뷰> 김현도 (故 김영규군 아버지):“얼토당토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니겠지 (했어요.) 거기서 왜 우리 애들이 나올까. 경찰들 수 만 명이 붙어서 조사했는데, 왜 거기서 아이들이 나오나 (했어요.) (옷가지 등) 사실을 보니 맞아요. 맞다 그랬지."
경북대 법의학팀은 유골 한 구 두개골에서 동전 크기만한 구멍과 예리한 흉기 자국 10여 곳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경찰이 전면적인 수사를 재개했지만 단서를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녹취> 우상태(당시 개구리실종사건 경찰수사팀):“와룡산에서 짐승잡는 사람이 당시 몇 사람 있었는데 수사했어요. (혐의가) 안 나왔어요. 아이들이 어디를 다닌 행적이 나와야지 단서라 던지 나오는데, 흔적이 전혀 나오지를 않으니까.”
유족들에게 남은 마지막 바람은 단 한 가지, 진상을 규명하는 일 뿐입니다.
<인터뷰> 김현도(故 김영규군 아버지):“공소시효도 지났다, 시간도 20년 흘렀다. (범인이) 자기가 생각에 이 아버지들 보고 너무도 처량하니까 어떻게 해서 (그랬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은 게 다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죠.”
개구리 소년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20년, 하지만 부모들에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으로 남아 있습니다.
KBS뉴스 정수영입니다.
최근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다룬 영화에 2백만 가까운 관객이 몰리면서 당시 사건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어딘가 있을 범인에게 진상만이라도 알려줄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수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난 1991년 3월 26일 대구 이곡동 초등학생 다섯 명이 집을 나섰습니다.
밤늦도록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부모들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인터뷰> 김현도(故 김영규 군 아버지):"경찰이 하는 말이‘애들 다섯 명인데 설마 어떻게 됐을라고. 가만있어보세요 부모님. (아이들) 집에 돌아온다'고."
뒤늦게 집단 실종 사건임을 눈치 챈 경찰은 대대적인 수색 작전에 착수했습니다.
사건 이후 11년간 수색인원 32만 명이 동원됐고 전국에 뿌린 실종 전단지는 8백만 장에 이릅니다.
<인터뷰> 우종우(故 우철원군 아버지):“1톤 차를 이렇게 개조를 해가지고, 선거 유세할 때 타고 다니는 차처럼 만들어서 양쪽에 우리 아이들 사진을 이만하게 붙여서 (다녔어요.)"
사건이 미궁에 빠져들면서 근거가 희박한 억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실종 어린이 아버지 한 명이 아이들이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나머지 집터를 파헤치는 소동까지 벌어졌습니다.
<인터뷰> 박건서(故 박차인군 아버지):“사람이 미치고 나자빠질 노릇 아닙니까. 그렇게 (아버지가 범인이라고) 하니깐. 그리고 또 안 파볼 수도 없는 거고, (중략) 그러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파게 된 거지.”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던 개구리 소년 사건은 2002년 9월 다시금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사라진 아이들 5명 유골이 와룡산 계곡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인터뷰> 김현도 (故 김영규군 아버지):“얼토당토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니겠지 (했어요.) 거기서 왜 우리 애들이 나올까. 경찰들 수 만 명이 붙어서 조사했는데, 왜 거기서 아이들이 나오나 (했어요.) (옷가지 등) 사실을 보니 맞아요. 맞다 그랬지."
경북대 법의학팀은 유골 한 구 두개골에서 동전 크기만한 구멍과 예리한 흉기 자국 10여 곳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경찰이 전면적인 수사를 재개했지만 단서를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녹취> 우상태(당시 개구리실종사건 경찰수사팀):“와룡산에서 짐승잡는 사람이 당시 몇 사람 있었는데 수사했어요. (혐의가) 안 나왔어요. 아이들이 어디를 다닌 행적이 나와야지 단서라 던지 나오는데, 흔적이 전혀 나오지를 않으니까.”
유족들에게 남은 마지막 바람은 단 한 가지, 진상을 규명하는 일 뿐입니다.
<인터뷰> 김현도(故 김영규군 아버지):“공소시효도 지났다, 시간도 20년 흘렀다. (범인이) 자기가 생각에 이 아버지들 보고 너무도 처량하니까 어떻게 해서 (그랬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은 게 다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죠.”
개구리 소년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20년, 하지만 부모들에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으로 남아 있습니다.
KBS뉴스 정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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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20년, ‘개구리 소년’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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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1-03-13 07:35:28

<앵커 멘트>
최근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다룬 영화에 2백만 가까운 관객이 몰리면서 당시 사건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어딘가 있을 범인에게 진상만이라도 알려줄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수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난 1991년 3월 26일 대구 이곡동 초등학생 다섯 명이 집을 나섰습니다.
밤늦도록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부모들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인터뷰> 김현도(故 김영규 군 아버지):"경찰이 하는 말이‘애들 다섯 명인데 설마 어떻게 됐을라고. 가만있어보세요 부모님. (아이들) 집에 돌아온다'고."
뒤늦게 집단 실종 사건임을 눈치 챈 경찰은 대대적인 수색 작전에 착수했습니다.
사건 이후 11년간 수색인원 32만 명이 동원됐고 전국에 뿌린 실종 전단지는 8백만 장에 이릅니다.
<인터뷰> 우종우(故 우철원군 아버지):“1톤 차를 이렇게 개조를 해가지고, 선거 유세할 때 타고 다니는 차처럼 만들어서 양쪽에 우리 아이들 사진을 이만하게 붙여서 (다녔어요.)"
사건이 미궁에 빠져들면서 근거가 희박한 억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실종 어린이 아버지 한 명이 아이들이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나머지 집터를 파헤치는 소동까지 벌어졌습니다.
<인터뷰> 박건서(故 박차인군 아버지):“사람이 미치고 나자빠질 노릇 아닙니까. 그렇게 (아버지가 범인이라고) 하니깐. 그리고 또 안 파볼 수도 없는 거고, (중략) 그러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파게 된 거지.”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던 개구리 소년 사건은 2002년 9월 다시금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사라진 아이들 5명 유골이 와룡산 계곡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인터뷰> 김현도 (故 김영규군 아버지):“얼토당토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니겠지 (했어요.) 거기서 왜 우리 애들이 나올까. 경찰들 수 만 명이 붙어서 조사했는데, 왜 거기서 아이들이 나오나 (했어요.) (옷가지 등) 사실을 보니 맞아요. 맞다 그랬지."
경북대 법의학팀은 유골 한 구 두개골에서 동전 크기만한 구멍과 예리한 흉기 자국 10여 곳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경찰이 전면적인 수사를 재개했지만 단서를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녹취> 우상태(당시 개구리실종사건 경찰수사팀):“와룡산에서 짐승잡는 사람이 당시 몇 사람 있었는데 수사했어요. (혐의가) 안 나왔어요. 아이들이 어디를 다닌 행적이 나와야지 단서라 던지 나오는데, 흔적이 전혀 나오지를 않으니까.”
유족들에게 남은 마지막 바람은 단 한 가지, 진상을 규명하는 일 뿐입니다.
<인터뷰> 김현도(故 김영규군 아버지):“공소시효도 지났다, 시간도 20년 흘렀다. (범인이) 자기가 생각에 이 아버지들 보고 너무도 처량하니까 어떻게 해서 (그랬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은 게 다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죠.”
개구리 소년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20년, 하지만 부모들에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으로 남아 있습니다.
KBS뉴스 정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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