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천안함 1년…아물지 않는 상처

입력 2011.03.2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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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46명의 젊은 장병이 희생되며 대한민국 안보에 경종을 울린 천안함 사태가 내일로 꼭 1년을 맞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싶은 분도 있겠지만, 유족들은 지난 하루하루 그 아픔을 잊을 수가 없었을겁니다.

정수영 기자, 천안함 전사 장병들의 가족들을 만나봤죠?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천안함 사건 이전 일상으로 온전히 돌아간 유족은 없었습니다.

바다를 지키다 전사한 아들을 가슴에 묻은 것으로 모자랐을까요.

한 아버지는 암에 걸려 반년간 투병 생활을 겪었습니다.

전사한 아들의 보상금만 타내 사라진 원망스런 아버지와 송사를 벌인 어머니도 있습니다.

그저 좋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 오래오래 행복하라며 가슴에 맺힌 슬픔과 응어리를 삭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갑작스런 천안함 침몰 사건에 온 국민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장병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써내려간 장문의 글은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만들었습니다.

“작전지역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가스터어빈실 서승원 하사 대답하라. 디젤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 그대 임무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가기 전에 귀대하라”

바다 아래 천안함에 갇힌 장병 전원이 극적 생환하길 기원하는 애끓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전선의 초계는 이제 전우들에게 맡기고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마지막 명령이다”

하지만 장병들은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들의 품에 돌아왔습니다.

천안함 ‘기관부 생활반장’으로 통했던 故서승원 하사.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 서천식씨의 슬픔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는데요.

<인터뷰> 서천식(故서승원 하사 아버지) : “1년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니까. 어떻게 지났는지를 모르겠어. 평생 볼 수 없다, 그런 이야기 하면 이제 울컥하는 거지. 어느 순간 (갑자기) 아들을 한 번 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들과 이별한 뒤, 지난해 8월 서씨는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반년에 걸친 투병생활과 수술 끝에 간신히 건강을 회복했고, 생업인 화물차 운전일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서천식(故서승원 하사 아버지) : “일 시작한 지는 얼마 안됐죠. 구정 전쯤? 그 때서야 (다시) 나와서. 남들이 겪지 말아야 할 일을 나는 1년 동안 다 겪은 것 같아.”

스물 둘,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 삶을 마감한 故정범구 병장.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눈물로 떠나보낸 어머니, 심 모씨는 지난해 8월, 20년이 넘도록 생사조차 모르던 친부가 아들의 사망보상금 1억 원을 몰래 찾아가자, 답답한 심경을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털어놨습니다.

“범구야, 어떻게 지내는지. 엄마가 속을 끓이다 도저히 안돼서 이렇게... 어리석게 당하고만 살아온 이 엄마 탓인지 혼란스럽다.”

<인터뷰> 심00(故정범구 병장 어머니) : “(아들을) 보낸 것도 괴롭고 슬프고 아픈데, 가정사로 그렇게 되니까...”

심씨는 양육비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4개월 뒤, 친부 정모씨로부터 5천만 원을 돌려받는 것으로 소속은 마무리됐습니다.

<인터뷰> 심00(故정범구 병장 어머니) : “(변호사한테) ‘그 사람(친부)은 눈물 흘리면서 아들한테 가서 미안하다고 사죄할 사람도 아니니까, 그냥 제가 포기하고 두 다리 뻗고 자겠습니다. 그 대신 범구에 대해서 포기각서를 받아 내주세요.’”

지난해 9월, 심씨는 아들의 사망보상금 1억 원 전액을 아들이 다니던 학교에 기부했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인터뷰> 심00(故정범구 병장 어머니) : “아들이 떠나고, 혼자가 되니까 내가 나를 위해서 (사망보상금을) 쓴 다는 것이 더 죄인같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쓸 수 없겠더라고요.”

최근 심씨는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늦깎이 대학생이 돼 학업을 시작했습니다.

대학 졸업장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아들을 대신해,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다시 만날 날, 대학 졸업장을 자랑스레 꺼내 보이겠다고 다짐합니다.

<인터뷰> 심00(故정범구 병장 어머니) : “(다음에는)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울산에서 태어나, 10년 가까이 바다를 지킨 바다 사나이, 故신선준 상사.

지난해 7월, 신상사의 아버지 신국현씨도 안타까운 상황을 겪었습니다.

신상사가 두 살 때 집을 나갔던 친모가 사망 소식을 듣고 나타나, 아들의 사망보험금 1억5천만 원을 받아간 것입니다.

<인터뷰> 신국현(故신선준 상사 아버지) : “친모는 한 것이 없잖아. 그냥 (아들을) 낳았다는 것뿐이지. (솔직히) 한 푼도 주기 싫었지요.”

친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신씨는 지난해 8월, 소송을 취하했습니다.

친모가 손에 넣은 보험금을 그대로 두는 대신, 달마다 지급받는 40만원을 친모가 포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인터뷰> 신국현(故신선준 상사 아버지) : “(지난해) 5월 달에 (소송을) 시작해서 8월인가, 9월쯤.”

아들한테 미안하고, 돈 때문에 싸우는 것 같고 이런 게 미안하니까...

신씨는 아들과 함께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인터뷰> 신국현(故신선준 상사 아버지) : “(동네사람들 만나면) 마음은 안타깝다 뿐이지, 그 사람들도 위로할 말이 별로 없으니까. 울고 있으면 생각이 더 나잖아. 열심히 일해야지.”

아들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은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인터뷰> 신국현(故신선준 상사 아버지) : “어차피 내가 죽을 때까지는 안고 가야 될 일이니까...”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지 꼭 1년이 흐른 지금, 유족들은 여전히 가슴에 맺힌 슬픔과 응어리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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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천안함 1년…아물지 않는 상처
    • 입력 2011-03-25 08: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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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46명의 젊은 장병이 희생되며 대한민국 안보에 경종을 울린 천안함 사태가 내일로 꼭 1년을 맞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싶은 분도 있겠지만, 유족들은 지난 하루하루 그 아픔을 잊을 수가 없었을겁니다. 정수영 기자, 천안함 전사 장병들의 가족들을 만나봤죠?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천안함 사건 이전 일상으로 온전히 돌아간 유족은 없었습니다. 바다를 지키다 전사한 아들을 가슴에 묻은 것으로 모자랐을까요. 한 아버지는 암에 걸려 반년간 투병 생활을 겪었습니다. 전사한 아들의 보상금만 타내 사라진 원망스런 아버지와 송사를 벌인 어머니도 있습니다. 그저 좋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 오래오래 행복하라며 가슴에 맺힌 슬픔과 응어리를 삭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갑작스런 천안함 침몰 사건에 온 국민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장병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써내려간 장문의 글은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만들었습니다. “작전지역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가스터어빈실 서승원 하사 대답하라. 디젤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 그대 임무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가기 전에 귀대하라” 바다 아래 천안함에 갇힌 장병 전원이 극적 생환하길 기원하는 애끓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전선의 초계는 이제 전우들에게 맡기고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마지막 명령이다” 하지만 장병들은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들의 품에 돌아왔습니다. 천안함 ‘기관부 생활반장’으로 통했던 故서승원 하사.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 서천식씨의 슬픔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는데요. <인터뷰> 서천식(故서승원 하사 아버지) : “1년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니까. 어떻게 지났는지를 모르겠어. 평생 볼 수 없다, 그런 이야기 하면 이제 울컥하는 거지. 어느 순간 (갑자기) 아들을 한 번 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들과 이별한 뒤, 지난해 8월 서씨는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반년에 걸친 투병생활과 수술 끝에 간신히 건강을 회복했고, 생업인 화물차 운전일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서천식(故서승원 하사 아버지) : “일 시작한 지는 얼마 안됐죠. 구정 전쯤? 그 때서야 (다시) 나와서. 남들이 겪지 말아야 할 일을 나는 1년 동안 다 겪은 것 같아.” 스물 둘,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 삶을 마감한 故정범구 병장.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눈물로 떠나보낸 어머니, 심 모씨는 지난해 8월, 20년이 넘도록 생사조차 모르던 친부가 아들의 사망보상금 1억 원을 몰래 찾아가자, 답답한 심경을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털어놨습니다. “범구야, 어떻게 지내는지. 엄마가 속을 끓이다 도저히 안돼서 이렇게... 어리석게 당하고만 살아온 이 엄마 탓인지 혼란스럽다.” <인터뷰> 심00(故정범구 병장 어머니) : “(아들을) 보낸 것도 괴롭고 슬프고 아픈데, 가정사로 그렇게 되니까...” 심씨는 양육비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4개월 뒤, 친부 정모씨로부터 5천만 원을 돌려받는 것으로 소속은 마무리됐습니다. <인터뷰> 심00(故정범구 병장 어머니) : “(변호사한테) ‘그 사람(친부)은 눈물 흘리면서 아들한테 가서 미안하다고 사죄할 사람도 아니니까, 그냥 제가 포기하고 두 다리 뻗고 자겠습니다. 그 대신 범구에 대해서 포기각서를 받아 내주세요.’” 지난해 9월, 심씨는 아들의 사망보상금 1억 원 전액을 아들이 다니던 학교에 기부했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인터뷰> 심00(故정범구 병장 어머니) : “아들이 떠나고, 혼자가 되니까 내가 나를 위해서 (사망보상금을) 쓴 다는 것이 더 죄인같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쓸 수 없겠더라고요.” 최근 심씨는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늦깎이 대학생이 돼 학업을 시작했습니다. 대학 졸업장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아들을 대신해,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다시 만날 날, 대학 졸업장을 자랑스레 꺼내 보이겠다고 다짐합니다. <인터뷰> 심00(故정범구 병장 어머니) : “(다음에는)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울산에서 태어나, 10년 가까이 바다를 지킨 바다 사나이, 故신선준 상사. 지난해 7월, 신상사의 아버지 신국현씨도 안타까운 상황을 겪었습니다. 신상사가 두 살 때 집을 나갔던 친모가 사망 소식을 듣고 나타나, 아들의 사망보험금 1억5천만 원을 받아간 것입니다. <인터뷰> 신국현(故신선준 상사 아버지) : “친모는 한 것이 없잖아. 그냥 (아들을) 낳았다는 것뿐이지. (솔직히) 한 푼도 주기 싫었지요.” 친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신씨는 지난해 8월, 소송을 취하했습니다. 친모가 손에 넣은 보험금을 그대로 두는 대신, 달마다 지급받는 40만원을 친모가 포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인터뷰> 신국현(故신선준 상사 아버지) : “(지난해) 5월 달에 (소송을) 시작해서 8월인가, 9월쯤.” 아들한테 미안하고, 돈 때문에 싸우는 것 같고 이런 게 미안하니까... 신씨는 아들과 함께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인터뷰> 신국현(故신선준 상사 아버지) : “(동네사람들 만나면) 마음은 안타깝다 뿐이지, 그 사람들도 위로할 말이 별로 없으니까. 울고 있으면 생각이 더 나잖아. 열심히 일해야지.” 아들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은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인터뷰> 신국현(故신선준 상사 아버지) : “어차피 내가 죽을 때까지는 안고 가야 될 일이니까...”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지 꼭 1년이 흐른 지금, 유족들은 여전히 가슴에 맺힌 슬픔과 응어리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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