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뻐꾸기 아이들’의 눈물
입력 2011.05.27 (09:03)
수정 2011.05.2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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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멀쩡한 부모를 두고도, 위탁 가정이나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이른바 뻐꾸기 아이들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수가 최근 7년 사이에 두배 훌쩍 넘게 늘었다고 합니다.
대책이 시급합니다.
정수영 기자,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는 뻐꾸기 아이들의 사연을 밀착 취재했죠?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낳아준 부모를 두고도 고아처럼 살아야 하는 딱한 사연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한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는 어머니는 얼굴도 모르고 아버지와는 7살 때부터 헤어져 지내 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와 재회했지만 1년도 안 돼 또다시 이별했습니다.
12살 남자 어린이는 고등학생 미혼 부모에게 태어나 젖을 떼기가 무섭게 보호시설과 위탁 가정을 전전했습니다.
고아 아닌 고아들이 10만 명에 가까운 실정입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13살 박모 양은 부모가 멀쩡히 살아 있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위탁 가정 식구들과 살고 있습니다.
이혼 뒤 박 양을 홀로 키우던 아버지가 양육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송정순(위탁모) : "(박 양이) 아주 어릴 때, 걔를 버리고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다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아버지는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까 더군다나 또 여자아이고."
박 양이 돌을 갓 지났을 무렵 부모는 이혼했고 어린 시절은 유흥업소 연주자로 일하는 아버지와 단 둘이 보냈습니다.
홀몸으로 딸을 돌보던 아버지는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박 양이 7살이 되던 해 박 양을 위탁 가정에 맡겼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 품을 떠난 충격에 낯선 새 가정에 적응하지 못했고 이내 또다시 버림받았습니다.
<인터뷰>송정순(위탁모) : "(전 위탁가정에서) 도저히 이 아이를 돌볼 능력이 안 된다, 좀 더 젊고 (박 양에게) 대차게 대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그런 가정으로 가는 게 좋겠다."
두 번째 위탁 가정에서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학교생활을 시작했지만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인터뷰>송정순(위탁모) : "(박 양이) 집에서는 욕을 전혀 안 써요. 그런데 밖에 나가면 그렇게 사납게 욕을 한다는 거예요. 제가 그것 때문에 너무 속상했어요. 자꾸 뒤통수 맞는 격이거든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2년 전, 박 양은 위탁 가정을 떠나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와 다시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반가움도 잠시 뿐,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나날 속에 어린 박 양은 지칠 대로 지쳐갔습니다.
<녹취>박 양 (음성변조) : "((아버지에게) 라면 끓여드렸다고요?) 네. (아버지가 맛있다고 하던가요?) 못 끓인다고 화냈어요. 아빠가 워낙 불만이 많아서..."
아버지와 재회는 1년 만에 끝났고 박 양은 가슴 속에 원망만 담은 채 위탁 가정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인터뷰>송정순(위탁모) : "아이의 마음을 떠봤죠. ‘다시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느냐’ 그랬더니 아이가 굉장히 반색을 하고 좋아하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두 차례나 아버지와 이별을 겪은 상처로 박 양이 마음에 벽을 쌓고 있다며 위탁 가정 부모는 안타까워합니다.
<인터뷰>송정순(위탁모) : "(아버지에게) 궁금한 것도 없는지 전화를 거의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전화) 해라해라 해야 겨우 그냥 마지못해 한 번 하고 이런 정도라 그런 면에서. 감정이 너무 서로 냉담해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김모 군 역시 자신을 낳아준 부모 대신 위탁 가정 부모 슬하에 자라고 있습니다.
12년 전 김 군 아버지는 고등학생 나이로 또래 여자친구와 만나 원치 않는 임신 끝에 김 군을 낳았습니다.
<인터뷰>한영경(소장 / 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 : "(친모가) 아이를 좀 때리고 그 다음에 나이어린 이모가 애를 돌보면서 학교도 못가고 이런 것들 때문에 신고가 되어서 아동보호 전문기간에서 여기에서 이 부모가 이 아이를 키울 수가 없겠다."
고등학생 어머니는 미혼모 보호시설을 전전하며 김 군이 돌 무렵까지 키웠지만 이내 양육을 포기했습니다.
두 돌 무렵부터 엄마 품에서 떨어져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아동보호시설 생활을 시작했지만어린 김 군에게 낯선 단체 생활은 하루 하루가 고역이었습니다.
<녹취>김 군 (음성변조) : "제가 막내였어요. 한 열 명쯤 됐을 거예요. (아동 위탁 시설에서 지내는 건) 무서웠어요, 좀... 화장실은 저 멀리 있고.."
2년 뒤 5살이 되자 한 목사 부부 손에 맡겨져 위탁 가정 생활을 시작했지만 행복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위탁 가정 부부 슬하 친자녀들과 심한 갈등을 빚었고 따돌림과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인터뷰>한영경(소장 / 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 : "두 번째는 친 자녀들이 (박 군과) 갈등이 좀 심했어요. (친자녀들이 박 군과) 부모의 사랑을 나눠야 되잖아요. (위탁모가 박 군에게) 신경을 많이 쓰게 되니깐 친자녀들이 샘도 나고."
1년도 채 못 돼 첫 번째 위탁 가정을 떠나야 했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위탁 부모 손에 맡겨져 6년째 생활하고 있습니다.
<녹취>김 군 (음성변조) : "(처음 위탁가정에 왔을 때 본 사람은?) 할머니요. 무섭고 그럴 것 같았어요. (위탁 가정에) 살기도 싫었죠. 살기 싫었고..."
고등학생이던 아버지와는 이미 11년 전 연락이 끊겨 얼굴조차 잊어버린 지 오랩니다.
<녹취>김 군 (음성변조) : "(아빠가 연락 온 적 없어?) 네. (아빠 보고 싶어?) 그런 마음은 없어요. 보고 싶거나... (아빠가 왜 연락안하는 것 같아?) 힘들어서 그냥...키우기도 힘들고... 돈 버는 것도 힘들고..."
젖먹이 시절부터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원망이 마음속에 가득할 법도 하지만 어린 김 군에게 부모는 끝내 놓을 수 없는 끈입니다.
<인터뷰>최갑숙(위탁모) : "몰랐는데 어느 날 뭐 하다 보니깐, 세상에 자기 생부 주민등록 번호를 다 외우더라고요. 학교에서 뭘 적어내라고 하는데... (외우더라고요)"
누구에게도 속내를 드러내보이진 않지만 언젠가 아버지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바람은 간절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녹취>김 군 (음성변조) : "(아빠 만나면) 주민등록번호 대라고 할 거예요. 난 아니까요. (왜?) 그래야 아빠 맞는지 아닌지 알죠."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거나 가정 해체 등으로 부모 손에서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은 현재 9만7천 명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인터뷰>조민선(소장 /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 : "가정위탁보호제도가 처음에 시작되었던 2003년도에 비하면 약 2.6배 정도 증가한 걸 알 수 있습니다."
탁아 지원이나 양육 보조 등 아이를 포기해야만 하는 부모들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지 않는 한 낯선 이들 손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멀쩡한 부모를 두고도, 위탁 가정이나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이른바 뻐꾸기 아이들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수가 최근 7년 사이에 두배 훌쩍 넘게 늘었다고 합니다.
대책이 시급합니다.
정수영 기자,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는 뻐꾸기 아이들의 사연을 밀착 취재했죠?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낳아준 부모를 두고도 고아처럼 살아야 하는 딱한 사연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한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는 어머니는 얼굴도 모르고 아버지와는 7살 때부터 헤어져 지내 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와 재회했지만 1년도 안 돼 또다시 이별했습니다.
12살 남자 어린이는 고등학생 미혼 부모에게 태어나 젖을 떼기가 무섭게 보호시설과 위탁 가정을 전전했습니다.
고아 아닌 고아들이 10만 명에 가까운 실정입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13살 박모 양은 부모가 멀쩡히 살아 있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위탁 가정 식구들과 살고 있습니다.
이혼 뒤 박 양을 홀로 키우던 아버지가 양육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송정순(위탁모) : "(박 양이) 아주 어릴 때, 걔를 버리고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다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아버지는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까 더군다나 또 여자아이고."
박 양이 돌을 갓 지났을 무렵 부모는 이혼했고 어린 시절은 유흥업소 연주자로 일하는 아버지와 단 둘이 보냈습니다.
홀몸으로 딸을 돌보던 아버지는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박 양이 7살이 되던 해 박 양을 위탁 가정에 맡겼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 품을 떠난 충격에 낯선 새 가정에 적응하지 못했고 이내 또다시 버림받았습니다.
<인터뷰>송정순(위탁모) : "(전 위탁가정에서) 도저히 이 아이를 돌볼 능력이 안 된다, 좀 더 젊고 (박 양에게) 대차게 대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그런 가정으로 가는 게 좋겠다."
두 번째 위탁 가정에서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학교생활을 시작했지만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인터뷰>송정순(위탁모) : "(박 양이) 집에서는 욕을 전혀 안 써요. 그런데 밖에 나가면 그렇게 사납게 욕을 한다는 거예요. 제가 그것 때문에 너무 속상했어요. 자꾸 뒤통수 맞는 격이거든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2년 전, 박 양은 위탁 가정을 떠나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와 다시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반가움도 잠시 뿐,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나날 속에 어린 박 양은 지칠 대로 지쳐갔습니다.
<녹취>박 양 (음성변조) : "((아버지에게) 라면 끓여드렸다고요?) 네. (아버지가 맛있다고 하던가요?) 못 끓인다고 화냈어요. 아빠가 워낙 불만이 많아서..."
아버지와 재회는 1년 만에 끝났고 박 양은 가슴 속에 원망만 담은 채 위탁 가정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인터뷰>송정순(위탁모) : "아이의 마음을 떠봤죠. ‘다시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느냐’ 그랬더니 아이가 굉장히 반색을 하고 좋아하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두 차례나 아버지와 이별을 겪은 상처로 박 양이 마음에 벽을 쌓고 있다며 위탁 가정 부모는 안타까워합니다.
<인터뷰>송정순(위탁모) : "(아버지에게) 궁금한 것도 없는지 전화를 거의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전화) 해라해라 해야 겨우 그냥 마지못해 한 번 하고 이런 정도라 그런 면에서. 감정이 너무 서로 냉담해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김모 군 역시 자신을 낳아준 부모 대신 위탁 가정 부모 슬하에 자라고 있습니다.
12년 전 김 군 아버지는 고등학생 나이로 또래 여자친구와 만나 원치 않는 임신 끝에 김 군을 낳았습니다.
<인터뷰>한영경(소장 / 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 : "(친모가) 아이를 좀 때리고 그 다음에 나이어린 이모가 애를 돌보면서 학교도 못가고 이런 것들 때문에 신고가 되어서 아동보호 전문기간에서 여기에서 이 부모가 이 아이를 키울 수가 없겠다."
고등학생 어머니는 미혼모 보호시설을 전전하며 김 군이 돌 무렵까지 키웠지만 이내 양육을 포기했습니다.
두 돌 무렵부터 엄마 품에서 떨어져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아동보호시설 생활을 시작했지만어린 김 군에게 낯선 단체 생활은 하루 하루가 고역이었습니다.
<녹취>김 군 (음성변조) : "제가 막내였어요. 한 열 명쯤 됐을 거예요. (아동 위탁 시설에서 지내는 건) 무서웠어요, 좀... 화장실은 저 멀리 있고.."
2년 뒤 5살이 되자 한 목사 부부 손에 맡겨져 위탁 가정 생활을 시작했지만 행복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위탁 가정 부부 슬하 친자녀들과 심한 갈등을 빚었고 따돌림과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인터뷰>한영경(소장 / 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 : "두 번째는 친 자녀들이 (박 군과) 갈등이 좀 심했어요. (친자녀들이 박 군과) 부모의 사랑을 나눠야 되잖아요. (위탁모가 박 군에게) 신경을 많이 쓰게 되니깐 친자녀들이 샘도 나고."
1년도 채 못 돼 첫 번째 위탁 가정을 떠나야 했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위탁 부모 손에 맡겨져 6년째 생활하고 있습니다.
<녹취>김 군 (음성변조) : "(처음 위탁가정에 왔을 때 본 사람은?) 할머니요. 무섭고 그럴 것 같았어요. (위탁 가정에) 살기도 싫었죠. 살기 싫었고..."
고등학생이던 아버지와는 이미 11년 전 연락이 끊겨 얼굴조차 잊어버린 지 오랩니다.
<녹취>김 군 (음성변조) : "(아빠가 연락 온 적 없어?) 네. (아빠 보고 싶어?) 그런 마음은 없어요. 보고 싶거나... (아빠가 왜 연락안하는 것 같아?) 힘들어서 그냥...키우기도 힘들고... 돈 버는 것도 힘들고..."
젖먹이 시절부터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원망이 마음속에 가득할 법도 하지만 어린 김 군에게 부모는 끝내 놓을 수 없는 끈입니다.
<인터뷰>최갑숙(위탁모) : "몰랐는데 어느 날 뭐 하다 보니깐, 세상에 자기 생부 주민등록 번호를 다 외우더라고요. 학교에서 뭘 적어내라고 하는데... (외우더라고요)"
누구에게도 속내를 드러내보이진 않지만 언젠가 아버지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바람은 간절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녹취>김 군 (음성변조) : "(아빠 만나면) 주민등록번호 대라고 할 거예요. 난 아니까요. (왜?) 그래야 아빠 맞는지 아닌지 알죠."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거나 가정 해체 등으로 부모 손에서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은 현재 9만7천 명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인터뷰>조민선(소장 /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 : "가정위탁보호제도가 처음에 시작되었던 2003년도에 비하면 약 2.6배 정도 증가한 걸 알 수 있습니다."
탁아 지원이나 양육 보조 등 아이를 포기해야만 하는 부모들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지 않는 한 낯선 이들 손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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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따라잡기] ‘뻐꾸기 아이들’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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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1-05-27 09:03:46
- 수정2011-05-27 09:39:31
<앵커 멘트>
멀쩡한 부모를 두고도, 위탁 가정이나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이른바 뻐꾸기 아이들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수가 최근 7년 사이에 두배 훌쩍 넘게 늘었다고 합니다.
대책이 시급합니다.
정수영 기자,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는 뻐꾸기 아이들의 사연을 밀착 취재했죠?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낳아준 부모를 두고도 고아처럼 살아야 하는 딱한 사연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한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는 어머니는 얼굴도 모르고 아버지와는 7살 때부터 헤어져 지내 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와 재회했지만 1년도 안 돼 또다시 이별했습니다.
12살 남자 어린이는 고등학생 미혼 부모에게 태어나 젖을 떼기가 무섭게 보호시설과 위탁 가정을 전전했습니다.
고아 아닌 고아들이 10만 명에 가까운 실정입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13살 박모 양은 부모가 멀쩡히 살아 있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위탁 가정 식구들과 살고 있습니다.
이혼 뒤 박 양을 홀로 키우던 아버지가 양육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송정순(위탁모) : "(박 양이) 아주 어릴 때, 걔를 버리고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다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아버지는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까 더군다나 또 여자아이고."
박 양이 돌을 갓 지났을 무렵 부모는 이혼했고 어린 시절은 유흥업소 연주자로 일하는 아버지와 단 둘이 보냈습니다.
홀몸으로 딸을 돌보던 아버지는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박 양이 7살이 되던 해 박 양을 위탁 가정에 맡겼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 품을 떠난 충격에 낯선 새 가정에 적응하지 못했고 이내 또다시 버림받았습니다.
<인터뷰>송정순(위탁모) : "(전 위탁가정에서) 도저히 이 아이를 돌볼 능력이 안 된다, 좀 더 젊고 (박 양에게) 대차게 대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그런 가정으로 가는 게 좋겠다."
두 번째 위탁 가정에서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학교생활을 시작했지만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인터뷰>송정순(위탁모) : "(박 양이) 집에서는 욕을 전혀 안 써요. 그런데 밖에 나가면 그렇게 사납게 욕을 한다는 거예요. 제가 그것 때문에 너무 속상했어요. 자꾸 뒤통수 맞는 격이거든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2년 전, 박 양은 위탁 가정을 떠나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와 다시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반가움도 잠시 뿐,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나날 속에 어린 박 양은 지칠 대로 지쳐갔습니다.
<녹취>박 양 (음성변조) : "((아버지에게) 라면 끓여드렸다고요?) 네. (아버지가 맛있다고 하던가요?) 못 끓인다고 화냈어요. 아빠가 워낙 불만이 많아서..."
아버지와 재회는 1년 만에 끝났고 박 양은 가슴 속에 원망만 담은 채 위탁 가정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인터뷰>송정순(위탁모) : "아이의 마음을 떠봤죠. ‘다시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느냐’ 그랬더니 아이가 굉장히 반색을 하고 좋아하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두 차례나 아버지와 이별을 겪은 상처로 박 양이 마음에 벽을 쌓고 있다며 위탁 가정 부모는 안타까워합니다.
<인터뷰>송정순(위탁모) : "(아버지에게) 궁금한 것도 없는지 전화를 거의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전화) 해라해라 해야 겨우 그냥 마지못해 한 번 하고 이런 정도라 그런 면에서. 감정이 너무 서로 냉담해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김모 군 역시 자신을 낳아준 부모 대신 위탁 가정 부모 슬하에 자라고 있습니다.
12년 전 김 군 아버지는 고등학생 나이로 또래 여자친구와 만나 원치 않는 임신 끝에 김 군을 낳았습니다.
<인터뷰>한영경(소장 / 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 : "(친모가) 아이를 좀 때리고 그 다음에 나이어린 이모가 애를 돌보면서 학교도 못가고 이런 것들 때문에 신고가 되어서 아동보호 전문기간에서 여기에서 이 부모가 이 아이를 키울 수가 없겠다."
고등학생 어머니는 미혼모 보호시설을 전전하며 김 군이 돌 무렵까지 키웠지만 이내 양육을 포기했습니다.
두 돌 무렵부터 엄마 품에서 떨어져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아동보호시설 생활을 시작했지만어린 김 군에게 낯선 단체 생활은 하루 하루가 고역이었습니다.
<녹취>김 군 (음성변조) : "제가 막내였어요. 한 열 명쯤 됐을 거예요. (아동 위탁 시설에서 지내는 건) 무서웠어요, 좀... 화장실은 저 멀리 있고.."
2년 뒤 5살이 되자 한 목사 부부 손에 맡겨져 위탁 가정 생활을 시작했지만 행복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위탁 가정 부부 슬하 친자녀들과 심한 갈등을 빚었고 따돌림과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인터뷰>한영경(소장 / 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 : "두 번째는 친 자녀들이 (박 군과) 갈등이 좀 심했어요. (친자녀들이 박 군과) 부모의 사랑을 나눠야 되잖아요. (위탁모가 박 군에게) 신경을 많이 쓰게 되니깐 친자녀들이 샘도 나고."
1년도 채 못 돼 첫 번째 위탁 가정을 떠나야 했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위탁 부모 손에 맡겨져 6년째 생활하고 있습니다.
<녹취>김 군 (음성변조) : "(처음 위탁가정에 왔을 때 본 사람은?) 할머니요. 무섭고 그럴 것 같았어요. (위탁 가정에) 살기도 싫었죠. 살기 싫었고..."
고등학생이던 아버지와는 이미 11년 전 연락이 끊겨 얼굴조차 잊어버린 지 오랩니다.
<녹취>김 군 (음성변조) : "(아빠가 연락 온 적 없어?) 네. (아빠 보고 싶어?) 그런 마음은 없어요. 보고 싶거나... (아빠가 왜 연락안하는 것 같아?) 힘들어서 그냥...키우기도 힘들고... 돈 버는 것도 힘들고..."
젖먹이 시절부터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원망이 마음속에 가득할 법도 하지만 어린 김 군에게 부모는 끝내 놓을 수 없는 끈입니다.
<인터뷰>최갑숙(위탁모) : "몰랐는데 어느 날 뭐 하다 보니깐, 세상에 자기 생부 주민등록 번호를 다 외우더라고요. 학교에서 뭘 적어내라고 하는데... (외우더라고요)"
누구에게도 속내를 드러내보이진 않지만 언젠가 아버지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바람은 간절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녹취>김 군 (음성변조) : "(아빠 만나면) 주민등록번호 대라고 할 거예요. 난 아니까요. (왜?) 그래야 아빠 맞는지 아닌지 알죠."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거나 가정 해체 등으로 부모 손에서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은 현재 9만7천 명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인터뷰>조민선(소장 /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 : "가정위탁보호제도가 처음에 시작되었던 2003년도에 비하면 약 2.6배 정도 증가한 걸 알 수 있습니다."
탁아 지원이나 양육 보조 등 아이를 포기해야만 하는 부모들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지 않는 한 낯선 이들 손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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