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범죄 유혹에 빠진 ‘퀵서비스’

입력 2011.07.21 (08:53) 수정 2011.07.21 (11:5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요즘 급하게 물건이나 서류를 전해야할 때, 오토바이 퀵서비스 이용하는 분 많으시죠?

이분들 없던 시절엔 어떻게 급한 물건 전했을까 싶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이 오토바이 퀵서비스가 범죄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수영 기자, 불법적인 물건을 배달해본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들을 밀착 취재했죠?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들 사이에서 범죄에 쓰이는 물건을 배달하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로 통합니다.

경찰에 적발된 한 범죄 조직은 이른바 대포통장과 대포폰 수천 개를 거래하면서도 철저히 수사를 따돌렸습니다.

오로지 오토바이 퀵서비스로 물건을 주고받고 수금까지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퀵서비스 기사들은 수상쩍은 물건을 나른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좀처럼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지난해 4월 26살 임모 씨 등 일당 3명은 은밀히 범죄를 모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 명의를 훔쳐 통장이나 휴대전화를 만든 뒤 불법으로 판매하는 이른바 대포통장과 대포폰 장사였습니다.

<인터뷰> 김형태(팀장/ 군포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 "(대포)통장이 한 4천 개가 되고 (대포)폰이 한 2천 개로 지금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출을 해주겠다는 미끼로 신용불량자 등으로부터 인감증명서 따위를 마구잡이로 빼돌렸고 대포통장과 대포폰 수천 개를 만들어 검은 돈 수십억 원을 챙겼습니다.

<인터뷰> 김형태(팀장/ 군포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 "신용불량자들을 상대로 신용대출을 해준다고 속여서 인감증명서나 신분증 등을 받아서 그 받은 증명서를 이용해서 (대포폰과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수천 개에 이르는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팔아치우면서도 철저히 경찰 눈을 따돌릴 수 있었던 이유는 오토바이 퀵서비스 때문이었습니다.

물건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오로지 오토바이 퀵서비스만을 이용하는 바람에 판매자와 구매자를 추적할 만할 단서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형태(팀장/ 군포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 "택배인 경우 발송하는 사람하고 받는 사람하고의 기록이 남기 때문에 신원 노출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퀵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대포통장이나 대포폰 판매 대금 역시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가 대신 수금한 뒤 가져오도록 꾸몄습니다.

<인터뷰> 김형태(팀장/ 군포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 "퀵서비스 기사들이 (대포)통장을 어디까지 가져다주면 (대포통장을) 구입하는 사람한테 금액을 받아서 다시 판매자한테 가져다주면 판매자로부터 일부 배달 금액을 (받았습니다.)"

일선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들 사이에 수상쩍은 물건을 나르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랩니다.

오토바이 퀵서비스 경력 7년째인 39살 이모 씨는 물건을 배달받는 사람이 극도로 신분 노출을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합니다.

<녹취> 이 모씨(퀵서비스 기사/음성변조) :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둘 다 거의 첩보전을 연상케 해요. 어디에 도착해서 전화해라, 도착해서 전화하면 다른 쪽으로 오라 그러든가 한참 있다 나오던가."

여러 차례 비슷한 경험을 반복했고 이 씨는 자신이 배달한 물건이 대포 통장이나 대포폰이라는 사실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녹취> 이 모씨(퀵서비스 기사/음성변조) : "물건들이 몇 번 하다 보니까 저희가 딱 잡으면 표시가 나요. 그리고 도착지에 가면 받는 사람이 물건확인을 해요. 대포통장 같은 경우 통장과 현금카드가 같이 들어 있거든요."

배달 의뢰 전화만 받아봐도 불법적인 물건을 나르는 요구임을 금세 눈치챌 수 있지만 쉽게 뿌리칠 수 없다고 털어놓습니다.

<녹취> 이 모씨(퀵서비스 기사/음성변조) : "고민도 되죠. 이걸 내가 배달해야 하나. 하지만 사실 그게 또 어떻게 보면 대포폰, 대포통장은 퀵서비스 기사들한테는 어떤 면에서는 보너스거든요. 보통 만원 갈 거리를 그런 사람들은 만 오천 원씩 줘요."

양심에 따라 배달을 거부할 경우 자신이 속한 퀵서비스 오토바이 회사로부터 가혹한 처벌이 뒤따르기도 합니다.

<녹취> 이 모씨(퀵서비스 기사/음성변조) : "아예 그 회사 오더를 못 보게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러면 저희로서는 수입에 엄청난 차이가 나는 거예요. 그 한 건 때문에 그 정도 감수할 만큼 아직은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요."

또다른 퀵서비스 기사 42살 김모 씨는 아예 불법 거래에 쓰이는 물건들을 전담 배달해줄 것을 요구받기도 했습니다.

<녹취> 김 모씨(퀵서비스 기사) : "기사님, 우리 서울에 거래처가 많은데 서울에서 중점적으로 물건을 수거해서 부산으로 보내주면 월급이니 아니면 건당 아주 흡족할 만큼 돈을 준다고 그렇게 말한 적은 있었어요."

평소 한 달 수입 두세 배를 한꺼번에 만질 수 있는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대포통장 거래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결국 거절했습니다.

범죄 수단으로 쓰이는 물건을 배달하다 경찰 조사를 받은 경험이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김 모씨(퀵서비스 기사) : "창피하지만 두 번이나 참고인 조사 받으러 갔었어요. 한번은 모르고 배달한 거였고요. 한번은 물건 받을 때부터 찜찜했는데…"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들이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예방을 위한 이렇다 할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양용민(위원장 / 퀵서비스 노동조합) : "범죄자들이 퀵(서비스)의 그런 맹점을 이용하는데 어떤 규정을 두어서 고객으로부터 수화물의 내용물을 기본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그런 규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범죄에 악용되기 쉬운 허점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관리 감독 사각지대에 놓인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들은 언제든 범죄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뉴스 따라잡기] 범죄 유혹에 빠진 ‘퀵서비스’
    • 입력 2011-07-21 08:53:23
    • 수정2011-07-21 11:52:40
    아침뉴스타임
<앵커 멘트> 요즘 급하게 물건이나 서류를 전해야할 때, 오토바이 퀵서비스 이용하는 분 많으시죠? 이분들 없던 시절엔 어떻게 급한 물건 전했을까 싶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이 오토바이 퀵서비스가 범죄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수영 기자, 불법적인 물건을 배달해본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들을 밀착 취재했죠?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들 사이에서 범죄에 쓰이는 물건을 배달하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로 통합니다. 경찰에 적발된 한 범죄 조직은 이른바 대포통장과 대포폰 수천 개를 거래하면서도 철저히 수사를 따돌렸습니다. 오로지 오토바이 퀵서비스로 물건을 주고받고 수금까지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퀵서비스 기사들은 수상쩍은 물건을 나른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좀처럼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지난해 4월 26살 임모 씨 등 일당 3명은 은밀히 범죄를 모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 명의를 훔쳐 통장이나 휴대전화를 만든 뒤 불법으로 판매하는 이른바 대포통장과 대포폰 장사였습니다. <인터뷰> 김형태(팀장/ 군포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 "(대포)통장이 한 4천 개가 되고 (대포)폰이 한 2천 개로 지금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출을 해주겠다는 미끼로 신용불량자 등으로부터 인감증명서 따위를 마구잡이로 빼돌렸고 대포통장과 대포폰 수천 개를 만들어 검은 돈 수십억 원을 챙겼습니다. <인터뷰> 김형태(팀장/ 군포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 "신용불량자들을 상대로 신용대출을 해준다고 속여서 인감증명서나 신분증 등을 받아서 그 받은 증명서를 이용해서 (대포폰과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수천 개에 이르는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팔아치우면서도 철저히 경찰 눈을 따돌릴 수 있었던 이유는 오토바이 퀵서비스 때문이었습니다. 물건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오로지 오토바이 퀵서비스만을 이용하는 바람에 판매자와 구매자를 추적할 만할 단서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형태(팀장/ 군포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 "택배인 경우 발송하는 사람하고 받는 사람하고의 기록이 남기 때문에 신원 노출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퀵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대포통장이나 대포폰 판매 대금 역시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가 대신 수금한 뒤 가져오도록 꾸몄습니다. <인터뷰> 김형태(팀장/ 군포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 "퀵서비스 기사들이 (대포)통장을 어디까지 가져다주면 (대포통장을) 구입하는 사람한테 금액을 받아서 다시 판매자한테 가져다주면 판매자로부터 일부 배달 금액을 (받았습니다.)" 일선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들 사이에 수상쩍은 물건을 나르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랩니다. 오토바이 퀵서비스 경력 7년째인 39살 이모 씨는 물건을 배달받는 사람이 극도로 신분 노출을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합니다. <녹취> 이 모씨(퀵서비스 기사/음성변조) :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둘 다 거의 첩보전을 연상케 해요. 어디에 도착해서 전화해라, 도착해서 전화하면 다른 쪽으로 오라 그러든가 한참 있다 나오던가." 여러 차례 비슷한 경험을 반복했고 이 씨는 자신이 배달한 물건이 대포 통장이나 대포폰이라는 사실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녹취> 이 모씨(퀵서비스 기사/음성변조) : "물건들이 몇 번 하다 보니까 저희가 딱 잡으면 표시가 나요. 그리고 도착지에 가면 받는 사람이 물건확인을 해요. 대포통장 같은 경우 통장과 현금카드가 같이 들어 있거든요." 배달 의뢰 전화만 받아봐도 불법적인 물건을 나르는 요구임을 금세 눈치챌 수 있지만 쉽게 뿌리칠 수 없다고 털어놓습니다. <녹취> 이 모씨(퀵서비스 기사/음성변조) : "고민도 되죠. 이걸 내가 배달해야 하나. 하지만 사실 그게 또 어떻게 보면 대포폰, 대포통장은 퀵서비스 기사들한테는 어떤 면에서는 보너스거든요. 보통 만원 갈 거리를 그런 사람들은 만 오천 원씩 줘요." 양심에 따라 배달을 거부할 경우 자신이 속한 퀵서비스 오토바이 회사로부터 가혹한 처벌이 뒤따르기도 합니다. <녹취> 이 모씨(퀵서비스 기사/음성변조) : "아예 그 회사 오더를 못 보게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러면 저희로서는 수입에 엄청난 차이가 나는 거예요. 그 한 건 때문에 그 정도 감수할 만큼 아직은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요." 또다른 퀵서비스 기사 42살 김모 씨는 아예 불법 거래에 쓰이는 물건들을 전담 배달해줄 것을 요구받기도 했습니다. <녹취> 김 모씨(퀵서비스 기사) : "기사님, 우리 서울에 거래처가 많은데 서울에서 중점적으로 물건을 수거해서 부산으로 보내주면 월급이니 아니면 건당 아주 흡족할 만큼 돈을 준다고 그렇게 말한 적은 있었어요." 평소 한 달 수입 두세 배를 한꺼번에 만질 수 있는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대포통장 거래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결국 거절했습니다. 범죄 수단으로 쓰이는 물건을 배달하다 경찰 조사를 받은 경험이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김 모씨(퀵서비스 기사) : "창피하지만 두 번이나 참고인 조사 받으러 갔었어요. 한번은 모르고 배달한 거였고요. 한번은 물건 받을 때부터 찜찜했는데…"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들이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예방을 위한 이렇다 할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양용민(위원장 / 퀵서비스 노동조합) : "범죄자들이 퀵(서비스)의 그런 맹점을 이용하는데 어떤 규정을 두어서 고객으로부터 수화물의 내용물을 기본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그런 규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범죄에 악용되기 쉬운 허점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관리 감독 사각지대에 놓인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들은 언제든 범죄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