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기적…투르판 포도

입력 2011.08.2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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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4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 일 년 강수량이 20밀리미터도 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척박한 사막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런 불모의 땅에서 고품질의 포도가 생산되고 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농사에 필요한 그 많은 물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손관수 특파원이 그 비밀을 알려드립니다.

<리포트>

중국 신장의 중심 도시인 우르무치와 투르판은 이 거대한 텐산산맥 아래에 형성돼 있습니다. 신장의 성도인 우르무치에서 투르판까지는 약 200킬로미터, 투르판 가는 길은, 마치 화염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화염산은 투르판의 상징입니다.

소설 서유기 속의 손오공이 불타는 산이 가로막자 파초선을 빌려 불을 껐다는 그 '화염산'이 바로 여깁니다. 선선해졌다는 날씨가 섭씨 41도.. 달궈진 지표면을 측정하는 이곳의 온도계는 63도를 가리킵니다. 투르판을 왜 불의 도시라고 부르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입니다.

<인터뷰> 우지앤중(관광객): “열기가 너무 높아 땀이 너무 나요. 밖엔 못 서 있겠습니다. 에어컨 있는 방안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 왕홍팡(관광객): “조금만 더 있으면 못 견딜 것 같습니다. 한번은 와 봐야 할 것 같아서 아무리 더워도 이렇게 왔습니다.”

투르판이 이처럼 숨막힐 정도로 더운 이유는 무엇일까? 거북등처럼 갈라진 이곳에서부터 그 의문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에딩후로 불리는 호수지역 입니다. 해발은 -154미터, 이스라엘의 사해 지역을 제외하곤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낮은 지역입니다.

이에 반해 주변을 에워싼 산들은 해발 4,5000미터..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들에 바람의 숨통이 막히면서 투르판은 달궈질대로 달궈지는 솥단지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일년내내 내리는 비라야 평균 16mm. 사막기후나 다름없습니다.

투르판의 풍성한 포도는 그래서, 놀라운 기적입니다. 초록의 축복, 초록 보석으로 불리는 투르판의 포도.. 포도 넝쿨 아래에선 연일 신나는 축제가 한창입니다.

<녹취> “아~ 소녀야, 설산의 초소를 아득히 바라보는 소녀야. 이 달디단 송이송이 포도를 내가 가져 가~노라. 투르판의 포도는 익어가는데..”

콧수염이 인상적인 이 위그르 청년은 멋진 외줄 공연으로 포도골을 찾은 관광객들을 맞습니다. 이곳의 농가 주택은 마당 뜰부터가 아예 포도밭입니다. 탐스런 포도를 한송이 한송이 조심스럽게 따고, 시장에 낼 상품은 정성스럽게 바구니에 담습니다.

포도가 지천인지라 인심도 넉넉합니다. 이곳 투르판의 포도는 대략 70여종..거리마다 형형색색의 포도가 넘쳐납니다.

<녹취> “(이것은 무슨 포도죠?) ‘우허빠이'라고 하는 겁니다. (1kg에 얼마합니까?) 1kg에 8위엔(우리돈 1500원)입니다.”

투르판은 전체 농지의 70% 이상이 포도밭일 정도로 포도 왕국입니다. 극한적인 더위는 역설적으로 포도의 당도를 높이고 건포도를 생산하는데 더없이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숭숭뚫린 네모난 구멍이 이색적인 이 단순한 건축물은 포도를 말리는 '량팡'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2주일 정도면 적당히 잘 마르면 당도가 생포도의 2배 이상 되는 질좋은 건포도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아이케베이 (위그르족): “'마라이즈' 말린 것은 '여인의 향기'라고 하는데요. 투르판의 건포도는 '초록 보석'이라 부릅니다.”

세계 최대의 불모지에서 생산되는 세계 최고의 포도.. 이 역설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비밀은 바로 이곳사람들의 자랑 캉얼징, 영어로는 KAREZ라고 하는 우물 동굴에 있습니다.

위그르인들은 2500년 전부터 이 메마른 땅 수십미터 지하에, 설산에서 녹아 내린 물을 끌어오는 이 우물 동굴을 건설했습니다. 이 우물 같은 모양은 지하 동굴을 파내는 작업에서 나온 흙을 밖으로 반출하는 통로입니다.

<인터뷰> 리레이 투르판시 공무원: “저 우물에선 물론 물을 뜰 수 있죠.하지만 동굴을 파는 과정에서 나온 흙을 밖으로 내보내는 게 가장 큰 역할입니다.”

이곳이 현재도 이용되고 있는 캉얼징입니다. 높이가 1.5미터에도 못미칩니다. 그러니까 이 우물 동굴을 파는 작업이 얼마나 지난했을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피나는 노력끝에 건설된 캉얼징을 통해 이들은 텐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내린 물을
끌어와 척박한 이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해수면보다 낮은 지형은 투르판에 숨막히는 고통을 줬지만 동시에 만년설 녹은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릴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인터뷰> 캉얼징 박물관 안내원: “투르판은 해발 -154미터에 있습니다. 따라서 외부 동력 없이도 물이 높은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자연적으로 흐르는 우물, 비동력관개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겠죠.”

우물 동굴을 흐르는 물은 그냥 마셔도 좋은 말그대로 광천수입니다.

<녹취> “물은 그냥 물인데 너무 차가워요. 차가워 죽겠어요. 조금 달아요.”

이같은 우물 동굴은 현재 신장 전지역에 1700여개가 있으며 그 중 1200여개가 투르판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 길이를 다 합할 경우 약 5000킬로미터에 이를 정도여서 만리장성, 대운하와 함께 중국의 3대 대역사로 불립니다.

<인터뷰> 탕리시앤(관광객): “정말 감동적입니다. 고대인들이 일찍이이런 것을 만들어냈는데, 정말 위대합니다.”

<인터뷰>원지앤(관광 안내원): “캉얼징은 투르판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적으로도 정말 대단한 공정입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캉얼징은 현대적 관개시설이 도입된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곳 역시 우물 동굴이 인근 마을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시골마을에선 이곳이 바로 세면장이자 약수텁니다.

<인터뷰> 쿠얼판(위그르족): “30년 동안 마셔왔는데 신장 그 어느 지역 물도 여기만 못합니다. 여기 물은 맑고 답니다.”

집앞까지 이어진 캉얼징은 이곳 사람들에게 생명수나 다름없습니다.

이곳 투르판을 비롯한 신장 동북부 지역에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캉얼징, 우물 동굴은 자연을 극복한 인간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오늘도 이땅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투르판의 초록 보석, 포도는 거친 자연을 이겨내며 수천년을 헤쳐 온 이곳 위그르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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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막의 기적…투르판 포도
    • 입력 2011-08-28 11:17:10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4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 일 년 강수량이 20밀리미터도 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척박한 사막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런 불모의 땅에서 고품질의 포도가 생산되고 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농사에 필요한 그 많은 물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손관수 특파원이 그 비밀을 알려드립니다. <리포트> 중국 신장의 중심 도시인 우르무치와 투르판은 이 거대한 텐산산맥 아래에 형성돼 있습니다. 신장의 성도인 우르무치에서 투르판까지는 약 200킬로미터, 투르판 가는 길은, 마치 화염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화염산은 투르판의 상징입니다. 소설 서유기 속의 손오공이 불타는 산이 가로막자 파초선을 빌려 불을 껐다는 그 '화염산'이 바로 여깁니다. 선선해졌다는 날씨가 섭씨 41도.. 달궈진 지표면을 측정하는 이곳의 온도계는 63도를 가리킵니다. 투르판을 왜 불의 도시라고 부르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입니다. <인터뷰> 우지앤중(관광객): “열기가 너무 높아 땀이 너무 나요. 밖엔 못 서 있겠습니다. 에어컨 있는 방안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 왕홍팡(관광객): “조금만 더 있으면 못 견딜 것 같습니다. 한번은 와 봐야 할 것 같아서 아무리 더워도 이렇게 왔습니다.” 투르판이 이처럼 숨막힐 정도로 더운 이유는 무엇일까? 거북등처럼 갈라진 이곳에서부터 그 의문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에딩후로 불리는 호수지역 입니다. 해발은 -154미터, 이스라엘의 사해 지역을 제외하곤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낮은 지역입니다. 이에 반해 주변을 에워싼 산들은 해발 4,5000미터..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들에 바람의 숨통이 막히면서 투르판은 달궈질대로 달궈지는 솥단지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일년내내 내리는 비라야 평균 16mm. 사막기후나 다름없습니다. 투르판의 풍성한 포도는 그래서, 놀라운 기적입니다. 초록의 축복, 초록 보석으로 불리는 투르판의 포도.. 포도 넝쿨 아래에선 연일 신나는 축제가 한창입니다. <녹취> “아~ 소녀야, 설산의 초소를 아득히 바라보는 소녀야. 이 달디단 송이송이 포도를 내가 가져 가~노라. 투르판의 포도는 익어가는데..” 콧수염이 인상적인 이 위그르 청년은 멋진 외줄 공연으로 포도골을 찾은 관광객들을 맞습니다. 이곳의 농가 주택은 마당 뜰부터가 아예 포도밭입니다. 탐스런 포도를 한송이 한송이 조심스럽게 따고, 시장에 낼 상품은 정성스럽게 바구니에 담습니다. 포도가 지천인지라 인심도 넉넉합니다. 이곳 투르판의 포도는 대략 70여종..거리마다 형형색색의 포도가 넘쳐납니다. <녹취> “(이것은 무슨 포도죠?) ‘우허빠이'라고 하는 겁니다. (1kg에 얼마합니까?) 1kg에 8위엔(우리돈 1500원)입니다.” 투르판은 전체 농지의 70% 이상이 포도밭일 정도로 포도 왕국입니다. 극한적인 더위는 역설적으로 포도의 당도를 높이고 건포도를 생산하는데 더없이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숭숭뚫린 네모난 구멍이 이색적인 이 단순한 건축물은 포도를 말리는 '량팡'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2주일 정도면 적당히 잘 마르면 당도가 생포도의 2배 이상 되는 질좋은 건포도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아이케베이 (위그르족): “'마라이즈' 말린 것은 '여인의 향기'라고 하는데요. 투르판의 건포도는 '초록 보석'이라 부릅니다.” 세계 최대의 불모지에서 생산되는 세계 최고의 포도.. 이 역설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비밀은 바로 이곳사람들의 자랑 캉얼징, 영어로는 KAREZ라고 하는 우물 동굴에 있습니다. 위그르인들은 2500년 전부터 이 메마른 땅 수십미터 지하에, 설산에서 녹아 내린 물을 끌어오는 이 우물 동굴을 건설했습니다. 이 우물 같은 모양은 지하 동굴을 파내는 작업에서 나온 흙을 밖으로 반출하는 통로입니다. <인터뷰> 리레이 투르판시 공무원: “저 우물에선 물론 물을 뜰 수 있죠.하지만 동굴을 파는 과정에서 나온 흙을 밖으로 내보내는 게 가장 큰 역할입니다.” 이곳이 현재도 이용되고 있는 캉얼징입니다. 높이가 1.5미터에도 못미칩니다. 그러니까 이 우물 동굴을 파는 작업이 얼마나 지난했을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피나는 노력끝에 건설된 캉얼징을 통해 이들은 텐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내린 물을 끌어와 척박한 이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해수면보다 낮은 지형은 투르판에 숨막히는 고통을 줬지만 동시에 만년설 녹은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릴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인터뷰> 캉얼징 박물관 안내원: “투르판은 해발 -154미터에 있습니다. 따라서 외부 동력 없이도 물이 높은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자연적으로 흐르는 우물, 비동력관개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겠죠.” 우물 동굴을 흐르는 물은 그냥 마셔도 좋은 말그대로 광천수입니다. <녹취> “물은 그냥 물인데 너무 차가워요. 차가워 죽겠어요. 조금 달아요.” 이같은 우물 동굴은 현재 신장 전지역에 1700여개가 있으며 그 중 1200여개가 투르판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 길이를 다 합할 경우 약 5000킬로미터에 이를 정도여서 만리장성, 대운하와 함께 중국의 3대 대역사로 불립니다. <인터뷰> 탕리시앤(관광객): “정말 감동적입니다. 고대인들이 일찍이이런 것을 만들어냈는데, 정말 위대합니다.” <인터뷰>원지앤(관광 안내원): “캉얼징은 투르판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적으로도 정말 대단한 공정입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캉얼징은 현대적 관개시설이 도입된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곳 역시 우물 동굴이 인근 마을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시골마을에선 이곳이 바로 세면장이자 약수텁니다. <인터뷰> 쿠얼판(위그르족): “30년 동안 마셔왔는데 신장 그 어느 지역 물도 여기만 못합니다. 여기 물은 맑고 답니다.” 집앞까지 이어진 캉얼징은 이곳 사람들에게 생명수나 다름없습니다. 이곳 투르판을 비롯한 신장 동북부 지역에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캉얼징, 우물 동굴은 자연을 극복한 인간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오늘도 이땅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투르판의 초록 보석, 포도는 거친 자연을 이겨내며 수천년을 헤쳐 온 이곳 위그르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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