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카다피 이후의 리비아는?
입력 2011.10.23 (10:45)
수정 2011.10.2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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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아랍 시민혁명 도미노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졌습니다. 42년 동안 리비아를 철권통치해온 카다피가 최후를 맞은 건데요, 이 지역에서 독재가 무너진 게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세 번째죠?
그렇습니다. 반카다피 시위가 처음 일어난 게 지난 2월 중순이었으니까 8개월이 지나서, 숱한 희생 끝에 리비아 사태가 일단락된 것이죠. 이번에도 설마 했지만 독재는 무너졌습니다.
카다피 사망 후 지금 리비아는 어떤 상황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긴급 진단했습니다.
<리포트>
카다피는 자신의 최후를 고향 시르테에서 맞았습니다. 나토군과 시민군에게 리비아 대부분 지역을 내준 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곳이었습니다. 반카다피 전선을 이끌어온 지브릴 국가과도위원회 총리가 그의 사망 사실을 담담하게 발표했습니다.
<녹취> 마무드 지브릴(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총리):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했습니다."
지난 목요일 시민군은 카다피측 병력과 90분에 걸친 치열한 전투를 치른 끝에 시르테를 장악했습니다. 카다피는 부상을 입은 채 마을 하수구에 숨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시민군이 그를 사살하려고 하자 황급히 자신이 카다피라며 쏘지 말라고 했다는 겁니다.
생포된 카다피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명확치 않습니다. 시민군이 머리에 총을 쐈다, 이미 출혈이 심해 병원 후송 도중 숨졌다, 체포된 직후 구타당해 사망했다는 등의 말이 들립니다.
<녹취> "죽이지 마! 죽이지 마!"
<녹취> 아흐메드 바니(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군사위 대변인): "혁명군에 대항하려 한 카다피를 사살했습니다. 누구도 우리를, 우리 군대를 비난하지 않을 겁니다."
카다피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리비아 주요 도시는 축제 물결에 휩싸였습니다. 수도 트리폴리에서는 시민들이 차량 경적을 울리고 공중에 총을 쏘며 환호했습니다.
<녹취> 트리폴리 시민: "리비아는 자유다! 리비아는 자유다! 신은 위대하다!"
미스라타 밤하늘에는 불꽃놀이가 펼쳐졌습니다. 수 개월 동안 포탄과 총소리만 들리던 도시에, 폭음과 함께 형형색색의 불꽃이 하늘을 수놓았습니다. 미스라타 시민들은 거리에 임시 무대를 마련하고 밤새 춤을 췄습니다.
<인터뷰> 미스라타 주민: "위대한 신께 감사드립니다. (전투중) 숨진 순교자들의 영혼에 자비가 임하기를 빕니다."
아랍권 시민혁명의 물결을 타고 리비아 벵가지에서 반카다피 시위가 시작된 건 8개월 전이었습니다. 시위는 금세 동부 전역으로 번져갔지만 카다피는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히며 무차별 진압에 나섭니다.
<녹취> 카다피(전 리비아 국가원수): "조상을 욕되게 할 수 없다. 조부의 묘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항복하느니) 결국 순교자로 생을 마감하겠다."
전투기까지 동원한 카다피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희생자가 속출하는 상황... 마침내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이 전격적으로 공습에 나섰습니다. '오디세이 새벽' 작전입니다. 서방국의 군사 개입으로 전황은 시민군 쪽으로 기울었지만 카디피의 끈질긴 저항은 계속됐습니다.
트리폴리가 함락된 이후에도 두 달 가까이.. 쫓고 쫓기는 전투가 이어졌고, 카다피 사망과 함께 비로소 내전은 종료됐습니다. 카디피는, 부패한 왕정을 무너뜨린 유능하고 촉망받는 청년 장교에서 잔인한 독재자이자 이단아로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1969년 무혈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42년 만입니다.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 "행복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이제 우리는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리비아 내전 상황을 주시해오던 서방국들은 일제히 환영 메시지를 내놓았습니다.
<녹취> 버락 오바마(미국 대통령): "이번 작전 성과가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리비아인들의 성취가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캐머런(영국 총리): "오늘은 카다피에게 희생된 모든 사람들을 기억해야 하는 날입니다."
<녹취> 바호주(EU 집행위원장): "독재 시대의 종식을 알리는 날입니다. 리비아 사람들이 고통을 너무 오래 겪었기 때문에 그런 시대가 끝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환호가 얼마나 갈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카다피 독재의 잔재를 씻어내고 내전으로 황폐화된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하는 힘겨운 과제를 눈 앞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부족간 단합이 관건입니다.
리비아에는 140개나 되는 부족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지역적으로도 동부와 서부, 남부로 크게 나뉘어 항상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습니다. 카다피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지금, 반카다피 전선으로 뭉친 이들이 국가 재건에 얼마나 힘을 합칠 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카다피 사망 직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강조한 것도 바로 리비아인의 단합이었습니다.
<인터뷰> 반기문(유엔 사무총장): "모든 리비아인들이 함께 해야 할 때입니다. 국가적 단합과 화해를 통해서만 리비아는 약속된 미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당장의 문제는 카다피 이후의 혼란한 정세를 가라앉히며, 나라의 기틀을 세울 수 있는 지도자가 분명치 않다는 점입니다. 리더십 공백으로 헌법 제정과 총선거 등 새 리비아 건설에 필수적인 정치 일정이 원만히 진행되지 못할 경우, 리비아는 부족간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옵니다.
오랜 세월 1인 독재 체제에 짓눌리면서 정치적 역량을 갖춘 인물이 성장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선은 진공 상태를 메울 인물로 무스타파 압둘 잘릴 국가과도위원회 위원장, 국가과도위원회 2인자인 마무드 지브릴 등이 꼽힙니다.
<인터뷰> 무스타파 압둘 잘릴(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위원장): “내가 여기 온 건 여러분이 역사에 길이 남을 과업을 해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리비아인을 독재자로부터 해방시킨 겁니다."
서방국들의 도움으로 카다피 체제를 끝냈다는 점은 리비아에 양날의 칼입니다. 국가 재건에 필요한 지원을 쉽게 받을 수 있는 반면, 서방국들이 노리는 이권도 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권의 핵심은 원유가, 논공행상의 맨 윗자리는 프랑스와 영국이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프랑스는 군사개입을 주도한데다 가장 먼저 반군 세력을 합법 정부로 인정하는 등 시종 반카다피 전선의 선두에 서 왔습니다. 이런 도움의 대가로 프랑스가 리비아 생산 원유의 35%를 할당받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파리에서, 다른 서방국 지도자들과 리비아 과도위원회 수장을 불러모아, 포스트 카다피 체제를 논의했습니다.
<녹취> 사르코지(프랑스 대통령/지난달 1일): "첫번째 결정은 리비아 자산 동결 조치해제를 만장일치로 요청한 겁니다. 카다피와 측근들에게 빼앗긴 돈은 리비아 사람들에게 되돌려져야 합니다."
보름 후인 지난달 15일 사르코지는 캐머런 영국 총리와 함께 리비아를 직접 방문했습니다.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잘릴 위원장은, 향후 논공행상에서 이들에게 우선권이 있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녹취> 무스타파 압둘 잘릴(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위원장); "계약하거나 합의한 건 아니지만 감사를 아는 이슬람국으로서 우리는 그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투명한 방법으로 우선권을 줄 것입니다."
독재자는 사라졌고 리비아는 지금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리비아인들은 이슬람 원리에 바탕을 두되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현대국가를 만들겠다는 다짐과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사막을 지배해온 베두인의 나라 리비아, 오랜 억압을 뒤로 하고, 외세의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번영의 미래를 열어갈 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랍 시민혁명 도미노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졌습니다. 42년 동안 리비아를 철권통치해온 카다피가 최후를 맞은 건데요, 이 지역에서 독재가 무너진 게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세 번째죠?
그렇습니다. 반카다피 시위가 처음 일어난 게 지난 2월 중순이었으니까 8개월이 지나서, 숱한 희생 끝에 리비아 사태가 일단락된 것이죠. 이번에도 설마 했지만 독재는 무너졌습니다.
카다피 사망 후 지금 리비아는 어떤 상황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긴급 진단했습니다.
<리포트>
카다피는 자신의 최후를 고향 시르테에서 맞았습니다. 나토군과 시민군에게 리비아 대부분 지역을 내준 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곳이었습니다. 반카다피 전선을 이끌어온 지브릴 국가과도위원회 총리가 그의 사망 사실을 담담하게 발표했습니다.
<녹취> 마무드 지브릴(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총리):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했습니다."
지난 목요일 시민군은 카다피측 병력과 90분에 걸친 치열한 전투를 치른 끝에 시르테를 장악했습니다. 카다피는 부상을 입은 채 마을 하수구에 숨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시민군이 그를 사살하려고 하자 황급히 자신이 카다피라며 쏘지 말라고 했다는 겁니다.
생포된 카다피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명확치 않습니다. 시민군이 머리에 총을 쐈다, 이미 출혈이 심해 병원 후송 도중 숨졌다, 체포된 직후 구타당해 사망했다는 등의 말이 들립니다.
<녹취> "죽이지 마! 죽이지 마!"
<녹취> 아흐메드 바니(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군사위 대변인): "혁명군에 대항하려 한 카다피를 사살했습니다. 누구도 우리를, 우리 군대를 비난하지 않을 겁니다."
카다피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리비아 주요 도시는 축제 물결에 휩싸였습니다. 수도 트리폴리에서는 시민들이 차량 경적을 울리고 공중에 총을 쏘며 환호했습니다.
<녹취> 트리폴리 시민: "리비아는 자유다! 리비아는 자유다! 신은 위대하다!"
미스라타 밤하늘에는 불꽃놀이가 펼쳐졌습니다. 수 개월 동안 포탄과 총소리만 들리던 도시에, 폭음과 함께 형형색색의 불꽃이 하늘을 수놓았습니다. 미스라타 시민들은 거리에 임시 무대를 마련하고 밤새 춤을 췄습니다.
<인터뷰> 미스라타 주민: "위대한 신께 감사드립니다. (전투중) 숨진 순교자들의 영혼에 자비가 임하기를 빕니다."
아랍권 시민혁명의 물결을 타고 리비아 벵가지에서 반카다피 시위가 시작된 건 8개월 전이었습니다. 시위는 금세 동부 전역으로 번져갔지만 카다피는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히며 무차별 진압에 나섭니다.
<녹취> 카다피(전 리비아 국가원수): "조상을 욕되게 할 수 없다. 조부의 묘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항복하느니) 결국 순교자로 생을 마감하겠다."
전투기까지 동원한 카다피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희생자가 속출하는 상황... 마침내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이 전격적으로 공습에 나섰습니다. '오디세이 새벽' 작전입니다. 서방국의 군사 개입으로 전황은 시민군 쪽으로 기울었지만 카디피의 끈질긴 저항은 계속됐습니다.
트리폴리가 함락된 이후에도 두 달 가까이.. 쫓고 쫓기는 전투가 이어졌고, 카다피 사망과 함께 비로소 내전은 종료됐습니다. 카디피는, 부패한 왕정을 무너뜨린 유능하고 촉망받는 청년 장교에서 잔인한 독재자이자 이단아로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1969년 무혈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42년 만입니다.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 "행복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이제 우리는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리비아 내전 상황을 주시해오던 서방국들은 일제히 환영 메시지를 내놓았습니다.
<녹취> 버락 오바마(미국 대통령): "이번 작전 성과가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리비아인들의 성취가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캐머런(영국 총리): "오늘은 카다피에게 희생된 모든 사람들을 기억해야 하는 날입니다."
<녹취> 바호주(EU 집행위원장): "독재 시대의 종식을 알리는 날입니다. 리비아 사람들이 고통을 너무 오래 겪었기 때문에 그런 시대가 끝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환호가 얼마나 갈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카다피 독재의 잔재를 씻어내고 내전으로 황폐화된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하는 힘겨운 과제를 눈 앞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부족간 단합이 관건입니다.
리비아에는 140개나 되는 부족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지역적으로도 동부와 서부, 남부로 크게 나뉘어 항상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습니다. 카다피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지금, 반카다피 전선으로 뭉친 이들이 국가 재건에 얼마나 힘을 합칠 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카다피 사망 직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강조한 것도 바로 리비아인의 단합이었습니다.
<인터뷰> 반기문(유엔 사무총장): "모든 리비아인들이 함께 해야 할 때입니다. 국가적 단합과 화해를 통해서만 리비아는 약속된 미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당장의 문제는 카다피 이후의 혼란한 정세를 가라앉히며, 나라의 기틀을 세울 수 있는 지도자가 분명치 않다는 점입니다. 리더십 공백으로 헌법 제정과 총선거 등 새 리비아 건설에 필수적인 정치 일정이 원만히 진행되지 못할 경우, 리비아는 부족간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옵니다.
오랜 세월 1인 독재 체제에 짓눌리면서 정치적 역량을 갖춘 인물이 성장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선은 진공 상태를 메울 인물로 무스타파 압둘 잘릴 국가과도위원회 위원장, 국가과도위원회 2인자인 마무드 지브릴 등이 꼽힙니다.
<인터뷰> 무스타파 압둘 잘릴(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위원장): “내가 여기 온 건 여러분이 역사에 길이 남을 과업을 해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리비아인을 독재자로부터 해방시킨 겁니다."
서방국들의 도움으로 카다피 체제를 끝냈다는 점은 리비아에 양날의 칼입니다. 국가 재건에 필요한 지원을 쉽게 받을 수 있는 반면, 서방국들이 노리는 이권도 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권의 핵심은 원유가, 논공행상의 맨 윗자리는 프랑스와 영국이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프랑스는 군사개입을 주도한데다 가장 먼저 반군 세력을 합법 정부로 인정하는 등 시종 반카다피 전선의 선두에 서 왔습니다. 이런 도움의 대가로 프랑스가 리비아 생산 원유의 35%를 할당받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파리에서, 다른 서방국 지도자들과 리비아 과도위원회 수장을 불러모아, 포스트 카다피 체제를 논의했습니다.
<녹취> 사르코지(프랑스 대통령/지난달 1일): "첫번째 결정은 리비아 자산 동결 조치해제를 만장일치로 요청한 겁니다. 카다피와 측근들에게 빼앗긴 돈은 리비아 사람들에게 되돌려져야 합니다."
보름 후인 지난달 15일 사르코지는 캐머런 영국 총리와 함께 리비아를 직접 방문했습니다.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잘릴 위원장은, 향후 논공행상에서 이들에게 우선권이 있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녹취> 무스타파 압둘 잘릴(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위원장); "계약하거나 합의한 건 아니지만 감사를 아는 이슬람국으로서 우리는 그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투명한 방법으로 우선권을 줄 것입니다."
독재자는 사라졌고 리비아는 지금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리비아인들은 이슬람 원리에 바탕을 두되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현대국가를 만들겠다는 다짐과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사막을 지배해온 베두인의 나라 리비아, 오랜 억압을 뒤로 하고, 외세의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번영의 미래를 열어갈 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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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리포트] 카다피 이후의 리비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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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1-10-23 10:45:48
- 수정2011-10-23 12:06:31
<앵커 멘트>
아랍 시민혁명 도미노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졌습니다. 42년 동안 리비아를 철권통치해온 카다피가 최후를 맞은 건데요, 이 지역에서 독재가 무너진 게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세 번째죠?
그렇습니다. 반카다피 시위가 처음 일어난 게 지난 2월 중순이었으니까 8개월이 지나서, 숱한 희생 끝에 리비아 사태가 일단락된 것이죠. 이번에도 설마 했지만 독재는 무너졌습니다.
카다피 사망 후 지금 리비아는 어떤 상황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긴급 진단했습니다.
<리포트>
카다피는 자신의 최후를 고향 시르테에서 맞았습니다. 나토군과 시민군에게 리비아 대부분 지역을 내준 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곳이었습니다. 반카다피 전선을 이끌어온 지브릴 국가과도위원회 총리가 그의 사망 사실을 담담하게 발표했습니다.
<녹취> 마무드 지브릴(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총리):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했습니다."
지난 목요일 시민군은 카다피측 병력과 90분에 걸친 치열한 전투를 치른 끝에 시르테를 장악했습니다. 카다피는 부상을 입은 채 마을 하수구에 숨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시민군이 그를 사살하려고 하자 황급히 자신이 카다피라며 쏘지 말라고 했다는 겁니다.
생포된 카다피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명확치 않습니다. 시민군이 머리에 총을 쐈다, 이미 출혈이 심해 병원 후송 도중 숨졌다, 체포된 직후 구타당해 사망했다는 등의 말이 들립니다.
<녹취> "죽이지 마! 죽이지 마!"
<녹취> 아흐메드 바니(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군사위 대변인): "혁명군에 대항하려 한 카다피를 사살했습니다. 누구도 우리를, 우리 군대를 비난하지 않을 겁니다."
카다피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리비아 주요 도시는 축제 물결에 휩싸였습니다. 수도 트리폴리에서는 시민들이 차량 경적을 울리고 공중에 총을 쏘며 환호했습니다.
<녹취> 트리폴리 시민: "리비아는 자유다! 리비아는 자유다! 신은 위대하다!"
미스라타 밤하늘에는 불꽃놀이가 펼쳐졌습니다. 수 개월 동안 포탄과 총소리만 들리던 도시에, 폭음과 함께 형형색색의 불꽃이 하늘을 수놓았습니다. 미스라타 시민들은 거리에 임시 무대를 마련하고 밤새 춤을 췄습니다.
<인터뷰> 미스라타 주민: "위대한 신께 감사드립니다. (전투중) 숨진 순교자들의 영혼에 자비가 임하기를 빕니다."
아랍권 시민혁명의 물결을 타고 리비아 벵가지에서 반카다피 시위가 시작된 건 8개월 전이었습니다. 시위는 금세 동부 전역으로 번져갔지만 카다피는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히며 무차별 진압에 나섭니다.
<녹취> 카다피(전 리비아 국가원수): "조상을 욕되게 할 수 없다. 조부의 묘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항복하느니) 결국 순교자로 생을 마감하겠다."
전투기까지 동원한 카다피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희생자가 속출하는 상황... 마침내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이 전격적으로 공습에 나섰습니다. '오디세이 새벽' 작전입니다. 서방국의 군사 개입으로 전황은 시민군 쪽으로 기울었지만 카디피의 끈질긴 저항은 계속됐습니다.
트리폴리가 함락된 이후에도 두 달 가까이.. 쫓고 쫓기는 전투가 이어졌고, 카다피 사망과 함께 비로소 내전은 종료됐습니다. 카디피는, 부패한 왕정을 무너뜨린 유능하고 촉망받는 청년 장교에서 잔인한 독재자이자 이단아로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1969년 무혈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42년 만입니다.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 "행복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이제 우리는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리비아 내전 상황을 주시해오던 서방국들은 일제히 환영 메시지를 내놓았습니다.
<녹취> 버락 오바마(미국 대통령): "이번 작전 성과가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리비아인들의 성취가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캐머런(영국 총리): "오늘은 카다피에게 희생된 모든 사람들을 기억해야 하는 날입니다."
<녹취> 바호주(EU 집행위원장): "독재 시대의 종식을 알리는 날입니다. 리비아 사람들이 고통을 너무 오래 겪었기 때문에 그런 시대가 끝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환호가 얼마나 갈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카다피 독재의 잔재를 씻어내고 내전으로 황폐화된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하는 힘겨운 과제를 눈 앞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부족간 단합이 관건입니다.
리비아에는 140개나 되는 부족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지역적으로도 동부와 서부, 남부로 크게 나뉘어 항상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습니다. 카다피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지금, 반카다피 전선으로 뭉친 이들이 국가 재건에 얼마나 힘을 합칠 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카다피 사망 직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강조한 것도 바로 리비아인의 단합이었습니다.
<인터뷰> 반기문(유엔 사무총장): "모든 리비아인들이 함께 해야 할 때입니다. 국가적 단합과 화해를 통해서만 리비아는 약속된 미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당장의 문제는 카다피 이후의 혼란한 정세를 가라앉히며, 나라의 기틀을 세울 수 있는 지도자가 분명치 않다는 점입니다. 리더십 공백으로 헌법 제정과 총선거 등 새 리비아 건설에 필수적인 정치 일정이 원만히 진행되지 못할 경우, 리비아는 부족간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옵니다.
오랜 세월 1인 독재 체제에 짓눌리면서 정치적 역량을 갖춘 인물이 성장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선은 진공 상태를 메울 인물로 무스타파 압둘 잘릴 국가과도위원회 위원장, 국가과도위원회 2인자인 마무드 지브릴 등이 꼽힙니다.
<인터뷰> 무스타파 압둘 잘릴(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위원장): “내가 여기 온 건 여러분이 역사에 길이 남을 과업을 해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리비아인을 독재자로부터 해방시킨 겁니다."
서방국들의 도움으로 카다피 체제를 끝냈다는 점은 리비아에 양날의 칼입니다. 국가 재건에 필요한 지원을 쉽게 받을 수 있는 반면, 서방국들이 노리는 이권도 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권의 핵심은 원유가, 논공행상의 맨 윗자리는 프랑스와 영국이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프랑스는 군사개입을 주도한데다 가장 먼저 반군 세력을 합법 정부로 인정하는 등 시종 반카다피 전선의 선두에 서 왔습니다. 이런 도움의 대가로 프랑스가 리비아 생산 원유의 35%를 할당받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파리에서, 다른 서방국 지도자들과 리비아 과도위원회 수장을 불러모아, 포스트 카다피 체제를 논의했습니다.
<녹취> 사르코지(프랑스 대통령/지난달 1일): "첫번째 결정은 리비아 자산 동결 조치해제를 만장일치로 요청한 겁니다. 카다피와 측근들에게 빼앗긴 돈은 리비아 사람들에게 되돌려져야 합니다."
보름 후인 지난달 15일 사르코지는 캐머런 영국 총리와 함께 리비아를 직접 방문했습니다.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잘릴 위원장은, 향후 논공행상에서 이들에게 우선권이 있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녹취> 무스타파 압둘 잘릴(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 위원장); "계약하거나 합의한 건 아니지만 감사를 아는 이슬람국으로서 우리는 그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투명한 방법으로 우선권을 줄 것입니다."
독재자는 사라졌고 리비아는 지금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리비아인들은 이슬람 원리에 바탕을 두되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현대국가를 만들겠다는 다짐과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사막을 지배해온 베두인의 나라 리비아, 오랜 억압을 뒤로 하고, 외세의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번영의 미래를 열어갈 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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