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보도, 언론이 놓친 것은?

입력 2011.12.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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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달 22일이죠.

오랜 진통 끝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국가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문제인 만큼 언론 역시 지금까지도 관련 보도들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 폭력 사태 등 표면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면서 시민생활에 관련된 중요한 내용들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FTA를 둘러싼 보도들의 문제점을 최광호 기자와 함께 점검해보겠습니다.

<질문>

최 기자, 한미 FTA가 통과되는 과정에서 이번에도 마찰이 있었는데요.

이를 전하는 언론의 보도 경향은 어땠나요?

<답변>

네, 야당이 한나라당의 직권 상정에 반발하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의원이 최루탄을 터뜨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이 터진 건 유례가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언론들이 최루탄에 집중하면서 사태의 본질을 따지는 분석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지적입니다.

이번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건 최루탄이었습니다.

<녹취> KBS 9시. 11월 22일/ 강민수 : "오늘 FTA 비준안이 처리된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는 한 야당 의원이 준비해온 최루탄이 터지면서 큰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녹취> SBS 8시. 11월 22일/정유미 : "오늘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사람은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입니다. 몸싸움으로 유명한 대한민국 국회에 새 기록이 생겼습니다."

의원들의 거친 말투도 그대로 전달됐습니다.

<녹취> MBC 9시. 11월 22일/조현용 : "갑자기 의장석 아래에서 흰 연기가 터졌습니다. "악!" FTA 처리에 항의하던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가방에 숨겨온 최루탄을 터뜨린 것입니다. "야 테러리스트야!""

다음 날 신문들도 최루탄 관련 내용을 1면에 배치하며 당시 상황을 소설처럼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녹취> 조선 23일 1면 : "의장석 앞에 엉거주춤 앉은 김 의원이 가방 속에서 노란 깡통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 들었다. 곧이어 ‘펑’소리와 함께 흰색 가루가 터져 오르며 의장석 주변을 뒤덮었다."

<녹취> 동아 23일 1면 : "정 부의장은 수건으로 코를 막으면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의원은 바닥에 흩어진 백색 가루를 모아 정 부의장을 향해 뿌리기도 했다."

국회 역사상 지금까지 등장한 각종 폭력사건들도 함께 거론됐습니다.

<녹취> 조선 23일 5면 : "45년 전 김두한 의원은 사카린 밀수사건을 비난하면서 인분을 국무위원들에게 투척했다. 그 뒤 물컵, 의사봉, 명패, 신문, 서류 뭉치 등을 던진 적은 있지만 최루탄은 없었다. "

이렇게 언론이 최루탄과 폭력 사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동안,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뒤로 밀려났습니다.

실제로 FTA 비준안의 세부적인 내용이나 어떤 식의 대비가 필요한 지 등의 기사는 대부분 뉴스 후반부나 신문 뒷 지면에 배치됐습니다.

<인터뷰> 최영묵(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 "국회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건 거의 희박한 경운데 그걸 부각하는 방식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이었거든요."

그런 게 나오는 이유가 사태의 본질, FTA의 핵심적인 내용이나 이슈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언론이 정치에 너무 종속돼 있다. 거기 빠져 있다는 거죠.

<질문>

최루탄 말고도 이번 처리 과정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 또 있었는데, 바로 국회 본회의 비공개 처리였죠?

<답변>

그렇습니다.

국회 본회의 비공개 자체는 과거에도 몇차례 있기는 했지만 국가간 비준안을 비공개 처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국민들의 알 권리와 언론의 취재권이 제한당한 상황이었지만, 이를 둘러싸고 문제 제기를 한 언론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국회 현장을 가장 먼저 전한 것은 국회의원들의 트위터였습니다.

<녹취> 민주당 강기정 의원 : "민주당에서는 저 혼자 본회의장에 있습니다. 전부 한나라당 의원만 있고 기자도 없고, 불도 안켜져 있습니다"

<녹취> 민노당 이정희 의원 : "한나라당 의원들 모두 본회의장 모였습니다. 홍준표 대표, 안상수 의원에게 이러시네요 '시작하자마자 비공개결정하고'"

최루탄이 터지고 아수라장이 되던 현장도 비준동의안이 가결되는 순간도 모두 국회의원들의 스마트폰으로 외부에 전해졌습니다.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하면서 언론 출입 통제를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현행 국회법상 본회의는 공개가 원칙이지만 의결을 통해 비공개로 진행할 수가 있습니다.

<녹취> 국회법 제 75조 : "본회의는 공개한다. 다만 의장의 제의 또는 의원 10인 이상의 연서에 의한 동의로 본회의의 의결이 있거나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하여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국회는 지난 8월.

강용석 의원 제명안 처리 과정 등에서 본회의를 비공개 처리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FTA와 같은 국가간 비준안이 비공개 처리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언론의 취재권은 물론 국민의 알 권리도 침해당한 셈이지만, 비공개 처리 자체를 문제삼은 보도는 많지 않았습니다.

<녹취> 경향 11월 23일 3면 : "한나라당은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강행처리 과정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본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비공개 본회의를 의결해 의안을 처리한 것은 처음이다. 언론 접근을 봉쇄해 국민의 알권리마저도 무시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원칙적으로 비공개 본회의는 표결 결과도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의원이 찬반 의견을 던졌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자들이 유리창 너머로 찍은 화면을 통해 찬반 의원 명단은 사실상 공개됐고, 본회의 모습 또한 의원들의 휴대전화를 통해 중계되면서 의회 비공개 자체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녹취> 중앙 11월 24일 4면 : "의원들이 100-200명씩 모이는 본회의를 비공개로 해봤자 실익도 없고 쓸데없는 오해만 사기 쉽다. 의원들의 스마트폰을 모두 수거할 생각이 아니라면 비공개 회의는 폐지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헌법 역시 본회의를 포함한 국회의 모든 회의를 공개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가 안전보장을 해할 경우 등에 한해 엄격히 제한돼야 할 비공개 사유가 남용됐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임지봉(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 "한미FTA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미래가 달려있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런 것은 국가의 안전보장과는 무관한 사유이기 때문에 헌법의 정신에 비춰 봤을 때 이런 것이야 말로 더더욱 국민들에게 회의 과정을 공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질문>

비준안과 함께 당시에 여당 단독으로 처리했던 게 또 있었죠.

바로 14개의 부수 법안들인데요.

이 내용들은 충분히 전달이 됐나요?

<답변>

한미 FTA의 원안도 중요하지만 실제 국민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내용들은 바로 이 14개의 부수 법안에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어떤 법안이 함께 통과됐고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언론을 통해 알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한미FTA 관련 14개 부수 법안에 대한 언론보도는 대부분 짧게 그쳤습니다.

<녹취> KBS 11월 22일/최영철 : "관세법 특례법과 행정절차법 등 한미 FTA 이행을 위한 14개 부수 법안들도 비준동의안 통과 직후 모두 처리됐습니다."

<녹취> SBS 11월 22일/정호선 : "한미 FTA 관련 14개 이행법안이 모두 처리되면서 FTA는 양국의 약속대로 내년 1월 1일 발효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비준안과 함께 국회에서 처리된 부수 법안은 약사법, 특허법 등 모두 14개입니다.

FTA 협정문의 내용과 기존 국내법이 충돌할 수 있어 원활한 국내 적용을 위해 해당 법들을 손질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겨레는 약사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녹취> 한겨레 11월 26일 1면 :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로 다국적 제약회사가 다함께 혜택을 보게 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에 약사법이 개정되면서 유럽계나 일본계 제약사까지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경향신문은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음원사용료가 오를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녹취> 경향 11월 25일 1면 : "예컨대 음원을 이용한 벨소리, 통화연결음, 홈페이지나 블로그 배경음악 등 음원사용료 전체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14개 법안을 단순히 나열만 할 뿐 법안 개정에 따른 변화나 대비책을 내놓는 데 소홀했습니다.

<인터뷰> 최영묵(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 "우리 다른 법안들도 같이 개정됐거든요. 부수법안들이. 그건 사실 그게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거 제대로 검토도 안되고 주목도 못 받는 상태에서 부수법안이 바뀐건데 그건 사실 법안이 바뀐 거 충분히 검토되고 예고되고 알려져야 대비할 수 있거든요. 해당되는 사람들이나 국민들이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막판에 대통령이 비준하는 단계에서 언급하는 정도에 끝났다는 점에서 대단히 큰 오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질문>

이번 FTA 처리 과정에서 대결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보자는 여야의 협상파도 적지 않았는데, 이들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전달이 덜 된 것 아닌가요?

<답변>

그렇습니다.

이번 한미 FTA 논의 과정에서 여야 협상파가 적지 않았다는 점은 특기할만 했는데요.

그러나 대결과 갈등에 파묻혀 이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언론은 여야의 일부 협상파, 쇄신파 의원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결과론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경향 11월 24일 6면 : "한미FTA 날치기로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쇄신명분을 잃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후 이명박 대통령 사과와 국정기조 변화를 요구했던 쇄신파들은 의도했든 안 했든 이 대통령의 돌격명령에 합세한 꼴이 됐다."

<녹취> 한겨레 11월 23일 2면 : "(민주당) 협상파는 한미FTA 비준안의 물리적 처리에 반대하며 당내 강경파를 설득하는 구실을 해왔으나 강행처리로 그간의 노력이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과정에서 여야 협상파를 바라보는 언론의 정파적인 시각이 적지 않게 투영됐습니다.

보수성향의 동아일보는 한나라당 쇄신파 남경필 의원의 당내 입지가 줄었다고 전했고.

<녹취> 동아 11월 25일 4면 : "미국 의회가 지난 달 비준안을 처리한 뒤 남 최고위원의 입지는 좁아졌다. 야당의 요구사항을 상당부분 들어주고서도 아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자 친이계 강경파를 중심으로 위원장 퇴진 여론이 비등했다."

경향신문은 한나라당 협상파와 대화를 해 온 민주당 김성곤 의원에 대한 당내 비판여론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경향 11월 25일 8면 : "협상파를 자처했던 김성곤 의원은 날치기 후 ‘대화와 타협은 계속돼야 한다. 몸싸움 시 불출마를 선언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출마해도 된다’고 말했다. 김의원의 발언과 행동에 당내에서 해당. 이적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언론이 정당 대리전 성격의 보도를 계속하면서 상대적으로 정치인들의 대화나 타협 노력은 가볍게 처리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성곤(민주당 의원) : "우리당의 협상하자는 의원들은 진보 신문에서는 마치 적처럼 돌리고, 보수 신문들은 아군처럼 이렇게 묘사를 하고 그러니까 당내에서 우리 협상파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겁니다."

협상파를 소홀히 다룬 언론의 이런 보도 행태는 국민의 건강한 정치 의식 형성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인터뷰> 이정희(교수/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 "각 정당의 절충파 의원들의 주장이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서 대변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아쉽고 결국 와선 그렇게 강경한 목소리드이 서로 부딪치다 보니까 국민들은 점차 정치권과 멀어지고 국민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그런 정치권, 정치사회를 찾기가 어렵다."

이번 한미 FTA 비준안 처리 과정은 우리 사회에 많은 논쟁거리를 던져줬습니다.

FTA 자체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가를 수 있는 중차대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는 만큼, 언론의 역할 역시 과거보다 더욱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FTA 이야기만 나오면 피로감을 호소하며 이를 외면하고자 하는 국민들이 늘어나는데 언론이 한 몫을 한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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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 FTA 보도, 언론이 놓친 것은?
    • 입력 2011-12-03 10: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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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달 22일이죠. 오랜 진통 끝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국가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문제인 만큼 언론 역시 지금까지도 관련 보도들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 폭력 사태 등 표면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면서 시민생활에 관련된 중요한 내용들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FTA를 둘러싼 보도들의 문제점을 최광호 기자와 함께 점검해보겠습니다. <질문> 최 기자, 한미 FTA가 통과되는 과정에서 이번에도 마찰이 있었는데요. 이를 전하는 언론의 보도 경향은 어땠나요? <답변> 네, 야당이 한나라당의 직권 상정에 반발하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의원이 최루탄을 터뜨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이 터진 건 유례가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언론들이 최루탄에 집중하면서 사태의 본질을 따지는 분석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지적입니다. 이번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건 최루탄이었습니다. <녹취> KBS 9시. 11월 22일/ 강민수 : "오늘 FTA 비준안이 처리된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는 한 야당 의원이 준비해온 최루탄이 터지면서 큰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녹취> SBS 8시. 11월 22일/정유미 : "오늘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사람은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입니다. 몸싸움으로 유명한 대한민국 국회에 새 기록이 생겼습니다." 의원들의 거친 말투도 그대로 전달됐습니다. <녹취> MBC 9시. 11월 22일/조현용 : "갑자기 의장석 아래에서 흰 연기가 터졌습니다. "악!" FTA 처리에 항의하던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가방에 숨겨온 최루탄을 터뜨린 것입니다. "야 테러리스트야!"" 다음 날 신문들도 최루탄 관련 내용을 1면에 배치하며 당시 상황을 소설처럼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녹취> 조선 23일 1면 : "의장석 앞에 엉거주춤 앉은 김 의원이 가방 속에서 노란 깡통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 들었다. 곧이어 ‘펑’소리와 함께 흰색 가루가 터져 오르며 의장석 주변을 뒤덮었다." <녹취> 동아 23일 1면 : "정 부의장은 수건으로 코를 막으면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의원은 바닥에 흩어진 백색 가루를 모아 정 부의장을 향해 뿌리기도 했다." 국회 역사상 지금까지 등장한 각종 폭력사건들도 함께 거론됐습니다. <녹취> 조선 23일 5면 : "45년 전 김두한 의원은 사카린 밀수사건을 비난하면서 인분을 국무위원들에게 투척했다. 그 뒤 물컵, 의사봉, 명패, 신문, 서류 뭉치 등을 던진 적은 있지만 최루탄은 없었다. " 이렇게 언론이 최루탄과 폭력 사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동안,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뒤로 밀려났습니다. 실제로 FTA 비준안의 세부적인 내용이나 어떤 식의 대비가 필요한 지 등의 기사는 대부분 뉴스 후반부나 신문 뒷 지면에 배치됐습니다. <인터뷰> 최영묵(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 "국회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건 거의 희박한 경운데 그걸 부각하는 방식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이었거든요." 그런 게 나오는 이유가 사태의 본질, FTA의 핵심적인 내용이나 이슈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언론이 정치에 너무 종속돼 있다. 거기 빠져 있다는 거죠. <질문> 최루탄 말고도 이번 처리 과정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 또 있었는데, 바로 국회 본회의 비공개 처리였죠? <답변> 그렇습니다. 국회 본회의 비공개 자체는 과거에도 몇차례 있기는 했지만 국가간 비준안을 비공개 처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국민들의 알 권리와 언론의 취재권이 제한당한 상황이었지만, 이를 둘러싸고 문제 제기를 한 언론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국회 현장을 가장 먼저 전한 것은 국회의원들의 트위터였습니다. <녹취> 민주당 강기정 의원 : "민주당에서는 저 혼자 본회의장에 있습니다. 전부 한나라당 의원만 있고 기자도 없고, 불도 안켜져 있습니다" <녹취> 민노당 이정희 의원 : "한나라당 의원들 모두 본회의장 모였습니다. 홍준표 대표, 안상수 의원에게 이러시네요 '시작하자마자 비공개결정하고'" 최루탄이 터지고 아수라장이 되던 현장도 비준동의안이 가결되는 순간도 모두 국회의원들의 스마트폰으로 외부에 전해졌습니다.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하면서 언론 출입 통제를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현행 국회법상 본회의는 공개가 원칙이지만 의결을 통해 비공개로 진행할 수가 있습니다. <녹취> 국회법 제 75조 : "본회의는 공개한다. 다만 의장의 제의 또는 의원 10인 이상의 연서에 의한 동의로 본회의의 의결이 있거나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하여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국회는 지난 8월. 강용석 의원 제명안 처리 과정 등에서 본회의를 비공개 처리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FTA와 같은 국가간 비준안이 비공개 처리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언론의 취재권은 물론 국민의 알 권리도 침해당한 셈이지만, 비공개 처리 자체를 문제삼은 보도는 많지 않았습니다. <녹취> 경향 11월 23일 3면 : "한나라당은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강행처리 과정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본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비공개 본회의를 의결해 의안을 처리한 것은 처음이다. 언론 접근을 봉쇄해 국민의 알권리마저도 무시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원칙적으로 비공개 본회의는 표결 결과도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의원이 찬반 의견을 던졌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자들이 유리창 너머로 찍은 화면을 통해 찬반 의원 명단은 사실상 공개됐고, 본회의 모습 또한 의원들의 휴대전화를 통해 중계되면서 의회 비공개 자체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녹취> 중앙 11월 24일 4면 : "의원들이 100-200명씩 모이는 본회의를 비공개로 해봤자 실익도 없고 쓸데없는 오해만 사기 쉽다. 의원들의 스마트폰을 모두 수거할 생각이 아니라면 비공개 회의는 폐지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헌법 역시 본회의를 포함한 국회의 모든 회의를 공개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가 안전보장을 해할 경우 등에 한해 엄격히 제한돼야 할 비공개 사유가 남용됐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임지봉(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 "한미FTA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미래가 달려있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런 것은 국가의 안전보장과는 무관한 사유이기 때문에 헌법의 정신에 비춰 봤을 때 이런 것이야 말로 더더욱 국민들에게 회의 과정을 공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질문> 비준안과 함께 당시에 여당 단독으로 처리했던 게 또 있었죠. 바로 14개의 부수 법안들인데요. 이 내용들은 충분히 전달이 됐나요? <답변> 한미 FTA의 원안도 중요하지만 실제 국민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내용들은 바로 이 14개의 부수 법안에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어떤 법안이 함께 통과됐고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언론을 통해 알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한미FTA 관련 14개 부수 법안에 대한 언론보도는 대부분 짧게 그쳤습니다. <녹취> KBS 11월 22일/최영철 : "관세법 특례법과 행정절차법 등 한미 FTA 이행을 위한 14개 부수 법안들도 비준동의안 통과 직후 모두 처리됐습니다." <녹취> SBS 11월 22일/정호선 : "한미 FTA 관련 14개 이행법안이 모두 처리되면서 FTA는 양국의 약속대로 내년 1월 1일 발효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비준안과 함께 국회에서 처리된 부수 법안은 약사법, 특허법 등 모두 14개입니다. FTA 협정문의 내용과 기존 국내법이 충돌할 수 있어 원활한 국내 적용을 위해 해당 법들을 손질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겨레는 약사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녹취> 한겨레 11월 26일 1면 :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로 다국적 제약회사가 다함께 혜택을 보게 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에 약사법이 개정되면서 유럽계나 일본계 제약사까지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경향신문은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음원사용료가 오를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녹취> 경향 11월 25일 1면 : "예컨대 음원을 이용한 벨소리, 통화연결음, 홈페이지나 블로그 배경음악 등 음원사용료 전체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14개 법안을 단순히 나열만 할 뿐 법안 개정에 따른 변화나 대비책을 내놓는 데 소홀했습니다. <인터뷰> 최영묵(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 "우리 다른 법안들도 같이 개정됐거든요. 부수법안들이. 그건 사실 그게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거 제대로 검토도 안되고 주목도 못 받는 상태에서 부수법안이 바뀐건데 그건 사실 법안이 바뀐 거 충분히 검토되고 예고되고 알려져야 대비할 수 있거든요. 해당되는 사람들이나 국민들이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막판에 대통령이 비준하는 단계에서 언급하는 정도에 끝났다는 점에서 대단히 큰 오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질문> 이번 FTA 처리 과정에서 대결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보자는 여야의 협상파도 적지 않았는데, 이들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전달이 덜 된 것 아닌가요? <답변> 그렇습니다. 이번 한미 FTA 논의 과정에서 여야 협상파가 적지 않았다는 점은 특기할만 했는데요. 그러나 대결과 갈등에 파묻혀 이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언론은 여야의 일부 협상파, 쇄신파 의원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결과론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경향 11월 24일 6면 : "한미FTA 날치기로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쇄신명분을 잃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후 이명박 대통령 사과와 국정기조 변화를 요구했던 쇄신파들은 의도했든 안 했든 이 대통령의 돌격명령에 합세한 꼴이 됐다." <녹취> 한겨레 11월 23일 2면 : "(민주당) 협상파는 한미FTA 비준안의 물리적 처리에 반대하며 당내 강경파를 설득하는 구실을 해왔으나 강행처리로 그간의 노력이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과정에서 여야 협상파를 바라보는 언론의 정파적인 시각이 적지 않게 투영됐습니다. 보수성향의 동아일보는 한나라당 쇄신파 남경필 의원의 당내 입지가 줄었다고 전했고. <녹취> 동아 11월 25일 4면 : "미국 의회가 지난 달 비준안을 처리한 뒤 남 최고위원의 입지는 좁아졌다. 야당의 요구사항을 상당부분 들어주고서도 아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자 친이계 강경파를 중심으로 위원장 퇴진 여론이 비등했다." 경향신문은 한나라당 협상파와 대화를 해 온 민주당 김성곤 의원에 대한 당내 비판여론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경향 11월 25일 8면 : "협상파를 자처했던 김성곤 의원은 날치기 후 ‘대화와 타협은 계속돼야 한다. 몸싸움 시 불출마를 선언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출마해도 된다’고 말했다. 김의원의 발언과 행동에 당내에서 해당. 이적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언론이 정당 대리전 성격의 보도를 계속하면서 상대적으로 정치인들의 대화나 타협 노력은 가볍게 처리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성곤(민주당 의원) : "우리당의 협상하자는 의원들은 진보 신문에서는 마치 적처럼 돌리고, 보수 신문들은 아군처럼 이렇게 묘사를 하고 그러니까 당내에서 우리 협상파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겁니다." 협상파를 소홀히 다룬 언론의 이런 보도 행태는 국민의 건강한 정치 의식 형성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인터뷰> 이정희(교수/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 "각 정당의 절충파 의원들의 주장이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서 대변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아쉽고 결국 와선 그렇게 강경한 목소리드이 서로 부딪치다 보니까 국민들은 점차 정치권과 멀어지고 국민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그런 정치권, 정치사회를 찾기가 어렵다." 이번 한미 FTA 비준안 처리 과정은 우리 사회에 많은 논쟁거리를 던져줬습니다. FTA 자체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가를 수 있는 중차대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는 만큼, 언론의 역할 역시 과거보다 더욱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FTA 이야기만 나오면 피로감을 호소하며 이를 외면하고자 하는 국민들이 늘어나는데 언론이 한 몫을 한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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