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지금 보시는 곳. 어느 민속촌 같지만 중국 옌벤에 있는 조선족 마을입니다.
동포들이 이렇게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점차 한족 문화에 동화돼 가고 있습니다.
김주영 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신민촌은 중국 옌볜의 조선족 전통공예마을입니다.
이곳 농민들은 겨울 농한기 동안 볏짚으로 온갖 공예품을 만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전수자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인터뷰>권영철(60세/옌볜 신민촌 주민) : "동삼(겨울 석달)만 하면 일년 농사비용이 넉넉히 나오죠.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없지.."
이웃마을 조선족 초등학교는 문을 닫았고 마을엔 이제 한족 농민이 더 많습니다.
<인터뷰>박주실(옌볜 화룽시 주민) : "70~80%는 다 한국 나가 있습니다. (젊은 분들은 얼마나 있어요?) 젊은 분들은 없습니다."
인구 50만명을 거느린 자치주의 중심도시 옌지, 상가 간판에는 한글과 중국어가 함께 표기돼 있습니다.
그래서 옌볜에서만큼은 중국어를 전혀 몰라도 불편할 것이 없다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녹취> "(한국말로 주문되나요?) 죄송하지만 저는 한족입니다. 중국어로 주문해주세요."
한국식당 종업원도 한족 일색이지만 그래도 한국에 나간 동포들은 매년 수천억원을 송금하고 귀향후 창업에도 앞장서는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인터뷰> 노광일(옌지시 참치 전문점 사장) : "꼭 뭔가 이루겠다는 마음에서 한국에서 한푼 쓰지 않고 모은 돈으로 시작했습니다."
심각한 인구 유출 속에 조선족 사회는 중국 문화와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옌볜 자치주에서 KBS 뉴스 김주영입니다.
<앵커 멘트>
60년 전 옌벤에서 조선족 자치주가 출범할 때, 인구에서 동포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62%나 됐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2010년 말 통계치를 보니까 한국에 와 있는 동포들까지 싹 더해도 36%에 불과하네요.
다들 어디로 갔을까요? 성공한 조선족들은 지금 새로운 곳에서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원종진 특파원이 가 봤습니다.
<리포트>
휴대전화 액세서리를 만드는 이 회사 사장은 옌지가 고향인 조선족입니다.
회사 설립 8년 만에 직원이 9명에서 180명으로 늘었습니다.
한해 매출도 54억 원으로 서른 배 키웠습니다.
한국업체에서 근무한 3년 경험이 밑거름입니다.
<인터뷰>이영남(조선족 기업가) : "한국회사에 근무하면서 경험했던 경력과 기술, 노하우들이 제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14년 전 옌지를 떠난 이 미용사도 지금은 칭다오의 유명 미용실 대표가 됐습니다.
한국을 오가며 익힌 미용 기술과 유행이 성공 배경입니다.
<인터뷰>이철수(조선족 미용사) : "처음 올 때는 빈손으로 왔어요. 여기 와서 집도 사고 있을 것은 다 있으니까 정말 성공했죠."
칭다오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13만여 명, 1992년 한중수교 후 한국기업들이 진출하면서 조선족들도 몰려왔습니다.
산둥성에 동북지역을 대체할 새로운 조선족 사회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칭다오는 제2의 옌볜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칭다오는 물론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40~5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중국 경제성장과 함께 성공한 사업가들도 늘면서 조선족 사이에서는 조선족이 이제 한국을 도울 때가 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칭다오에서 KBS 뉴스 원종진입니다.
지금 보시는 곳. 어느 민속촌 같지만 중국 옌벤에 있는 조선족 마을입니다.
동포들이 이렇게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점차 한족 문화에 동화돼 가고 있습니다.
김주영 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신민촌은 중국 옌볜의 조선족 전통공예마을입니다.
이곳 농민들은 겨울 농한기 동안 볏짚으로 온갖 공예품을 만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전수자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인터뷰>권영철(60세/옌볜 신민촌 주민) : "동삼(겨울 석달)만 하면 일년 농사비용이 넉넉히 나오죠.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없지.."
이웃마을 조선족 초등학교는 문을 닫았고 마을엔 이제 한족 농민이 더 많습니다.
<인터뷰>박주실(옌볜 화룽시 주민) : "70~80%는 다 한국 나가 있습니다. (젊은 분들은 얼마나 있어요?) 젊은 분들은 없습니다."
인구 50만명을 거느린 자치주의 중심도시 옌지, 상가 간판에는 한글과 중국어가 함께 표기돼 있습니다.
그래서 옌볜에서만큼은 중국어를 전혀 몰라도 불편할 것이 없다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녹취> "(한국말로 주문되나요?) 죄송하지만 저는 한족입니다. 중국어로 주문해주세요."
한국식당 종업원도 한족 일색이지만 그래도 한국에 나간 동포들은 매년 수천억원을 송금하고 귀향후 창업에도 앞장서는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인터뷰> 노광일(옌지시 참치 전문점 사장) : "꼭 뭔가 이루겠다는 마음에서 한국에서 한푼 쓰지 않고 모은 돈으로 시작했습니다."
심각한 인구 유출 속에 조선족 사회는 중국 문화와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옌볜 자치주에서 KBS 뉴스 김주영입니다.
<앵커 멘트>
60년 전 옌벤에서 조선족 자치주가 출범할 때, 인구에서 동포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62%나 됐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2010년 말 통계치를 보니까 한국에 와 있는 동포들까지 싹 더해도 36%에 불과하네요.
다들 어디로 갔을까요? 성공한 조선족들은 지금 새로운 곳에서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원종진 특파원이 가 봤습니다.
<리포트>
휴대전화 액세서리를 만드는 이 회사 사장은 옌지가 고향인 조선족입니다.
회사 설립 8년 만에 직원이 9명에서 180명으로 늘었습니다.
한해 매출도 54억 원으로 서른 배 키웠습니다.
한국업체에서 근무한 3년 경험이 밑거름입니다.
<인터뷰>이영남(조선족 기업가) : "한국회사에 근무하면서 경험했던 경력과 기술, 노하우들이 제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14년 전 옌지를 떠난 이 미용사도 지금은 칭다오의 유명 미용실 대표가 됐습니다.
한국을 오가며 익힌 미용 기술과 유행이 성공 배경입니다.
<인터뷰>이철수(조선족 미용사) : "처음 올 때는 빈손으로 왔어요. 여기 와서 집도 사고 있을 것은 다 있으니까 정말 성공했죠."
칭다오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13만여 명, 1992년 한중수교 후 한국기업들이 진출하면서 조선족들도 몰려왔습니다.
산둥성에 동북지역을 대체할 새로운 조선족 사회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칭다오는 제2의 옌볜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칭다오는 물론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40~5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중국 경제성장과 함께 성공한 사업가들도 늘면서 조선족 사이에서는 조선족이 이제 한국을 도울 때가 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칭다오에서 KBS 뉴스 원종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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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진단] 자치주 지정 60년…변화하는 조선족촌
-
- 입력 2012-01-23 22:14:44

<앵커 멘트>
지금 보시는 곳. 어느 민속촌 같지만 중국 옌벤에 있는 조선족 마을입니다.
동포들이 이렇게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점차 한족 문화에 동화돼 가고 있습니다.
김주영 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신민촌은 중국 옌볜의 조선족 전통공예마을입니다.
이곳 농민들은 겨울 농한기 동안 볏짚으로 온갖 공예품을 만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전수자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인터뷰>권영철(60세/옌볜 신민촌 주민) : "동삼(겨울 석달)만 하면 일년 농사비용이 넉넉히 나오죠.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없지.."
이웃마을 조선족 초등학교는 문을 닫았고 마을엔 이제 한족 농민이 더 많습니다.
<인터뷰>박주실(옌볜 화룽시 주민) : "70~80%는 다 한국 나가 있습니다. (젊은 분들은 얼마나 있어요?) 젊은 분들은 없습니다."
인구 50만명을 거느린 자치주의 중심도시 옌지, 상가 간판에는 한글과 중국어가 함께 표기돼 있습니다.
그래서 옌볜에서만큼은 중국어를 전혀 몰라도 불편할 것이 없다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녹취> "(한국말로 주문되나요?) 죄송하지만 저는 한족입니다. 중국어로 주문해주세요."
한국식당 종업원도 한족 일색이지만 그래도 한국에 나간 동포들은 매년 수천억원을 송금하고 귀향후 창업에도 앞장서는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인터뷰> 노광일(옌지시 참치 전문점 사장) : "꼭 뭔가 이루겠다는 마음에서 한국에서 한푼 쓰지 않고 모은 돈으로 시작했습니다."
심각한 인구 유출 속에 조선족 사회는 중국 문화와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옌볜 자치주에서 KBS 뉴스 김주영입니다.
<앵커 멘트>
60년 전 옌벤에서 조선족 자치주가 출범할 때, 인구에서 동포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62%나 됐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2010년 말 통계치를 보니까 한국에 와 있는 동포들까지 싹 더해도 36%에 불과하네요.
다들 어디로 갔을까요? 성공한 조선족들은 지금 새로운 곳에서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원종진 특파원이 가 봤습니다.
<리포트>
휴대전화 액세서리를 만드는 이 회사 사장은 옌지가 고향인 조선족입니다.
회사 설립 8년 만에 직원이 9명에서 180명으로 늘었습니다.
한해 매출도 54억 원으로 서른 배 키웠습니다.
한국업체에서 근무한 3년 경험이 밑거름입니다.
<인터뷰>이영남(조선족 기업가) : "한국회사에 근무하면서 경험했던 경력과 기술, 노하우들이 제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14년 전 옌지를 떠난 이 미용사도 지금은 칭다오의 유명 미용실 대표가 됐습니다.
한국을 오가며 익힌 미용 기술과 유행이 성공 배경입니다.
<인터뷰>이철수(조선족 미용사) : "처음 올 때는 빈손으로 왔어요. 여기 와서 집도 사고 있을 것은 다 있으니까 정말 성공했죠."
칭다오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13만여 명, 1992년 한중수교 후 한국기업들이 진출하면서 조선족들도 몰려왔습니다.
산둥성에 동북지역을 대체할 새로운 조선족 사회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칭다오는 제2의 옌볜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칭다오는 물론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40~5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중국 경제성장과 함께 성공한 사업가들도 늘면서 조선족 사이에서는 조선족이 이제 한국을 도울 때가 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칭다오에서 KBS 뉴스 원종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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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기자 kjyou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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