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만은 제발…”

입력 2012.03.05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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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소년들의 대안학교인 여명학교 신입생 수련장.

여느 10대들처럼 밝아보이지만 모두가 쉽게 털어놓기 힘든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이 학교 동문인 한 탈북 청년은 8살 때 엄마 손을 잡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인터뷰> 탈북 청년 : "어차피 굶어죽으나 중국에 도망가다가 맞아죽으나 똑같은 거니까 그냥 앉아죽을 바에는 차라리 움직여라도보고 죽자 이런 생각으로 엄마 손잡고 같이 중국으로 넘어왔어요"

탈북 도중 아버지와 헤어졌지만 2년 만에 중국에서 다시 만났다고 합니다.

<인터뷰> 탈북 청년(아버지 강제 북송) : "(아버지가) 거기에서 북한에 잡혀서 북송됐어요. 종신형으로 13년을 선고받고 그쪽으로 감옥 이름은 정확히 모르겠는데 거기로 종신형을 받고 갔다는 것 외에는 저는 몰라요"

당시 아버지가 북송될 때 마지막 모습을 이 청년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탈북 청년(아버지 강제 북송) : "기차역이었는데 거기서 옆에서 공안들이 팔을 잡고가고 아빠가 뒤돌아보면서 저랑 눈이 마주치면서 뭔가 그 애절한 눈빛이. 네가 여기 있으면 잡히니까 빨리 도망가라는. 그 말로는 안했지만. 그 눈빛이 너무 강렬하게 지금도 왠지 (자꾸 떠올라요)"

아직 생사 여부조차 모르는 아버지.

통일이 돼서 아버지와 술 한잔 기울이는 게 소원이라고 이 청년은 말했습니다.

탈북자 북송 문제가 한중 외교부간 갈등을 넘어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여전히 강경한데요,

죽음의 북송길에 오른 혈육을 지켜봐야 하는 탈북자들의 고통과 삼엄한 북한 국경지역의 상황을 취재했습니다.

<녹취> KBS 뉴스9 (2.14) : "중국 공안에 붙잡힌 탈북자들이 또다시 강제 북송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10대 소년, 소녀도 포함돼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서 북송 위기에 놓인 한 10대 탈북자의 삼촌을 어렵게 만났습니다.

지난 2천8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22살 이모씨.

탈북자 가족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 인터뷰 장면을 재연했습니다.

이씨는 어린 조카가 중국에서 붙잡힌 당일 조카와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강제북송 위기 탈북자 가족 : "그냥 잡혔다고 울죠. (울어요?) 네, 나오면...(죽는 걸) 알죠. 걔가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그곳(북한)에서 살았는데...(총살당하는 걸 봤어요?) 거기서 (총살 장면을) 보이게 하는데 어떻게 (모르겠어요). 안보면 더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다 보죠. 그러니까 걔(공안에 붙잡힌 10대 탈북자)도 그 사람들(북한 당국자) 무서운거 알죠."

조카가 북송되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까지 말합니다.

<인터뷰> 강제북송 위기 탈북자 가족 : "그냥 죽여서 내보내는 것이 오히려 편한 것 같아요 왜냐면 어차피 (북한에) 나가서 죽을 것은 뻔한데...걔가 고통스러운 것 생각하면 저희도 힘들고...차라리 죽었다면 나중에 시체라도..."

탈북 청소년들이 한데 모여 생활하는 여명학교.

강제 북송 위기에 놓인 탈북자 중에 가족이나 친구가 포함돼 있습니다.

중국에서 10년을 숨어지내다 지난해 한국으로 온 이모씨.

최근 붙잡힌 탈북자 수십명 중에 어릴 때 헤어진 여동생이 있진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인터뷰> 탈북 청년 : "여동생이 지금 23살이거든요 아직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가지고.."

이제 자신은 한국에 왔지만 북한에 두고 온 여동생을 떠올리면 고통이 북받칩니다.

<인터뷰> 탈북 청년 : "나 헤어질 때 동생한테 제가 못해준게 너무 많아요 동생을 때려놨어요 그 옥수수 빵 때문에. 옥수수빵 때문에 내가 동생 막 때려놓고서..."

심지어 형과 동생의 죽음을 직접 보거나 전해들은 학생들도 있습니다.

이 학생은 중국에 남아있던 형이 북송돼 수용소에 간 후 형의 처형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형의 나이는 19살이었습니다.

<인터뷰> 탈북 청년(형 강제 북송 후 처형) : "형이 우리가 한국에 올때 같이 오자고 했는데 안온다고 했는데 (엄마와 제가) 한국에 와서 3년 뒤에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형이)난징에서 잡혀서 죽었거든요. (잡혔어요 형이?) 네 잡혀서. 중국에서 5개월동안 있었는데 중국 분이 밀고해가지고 죽었거든요."

중국인 새아버지에게 학대받았던 고통보다 형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큽니다.

<인터뷰> 탈북 청년(형 강제 북송 후 처형) : "살 수만 있었다면 내 목숨이라도 형 목숨과 바꿀 수 있었다면 지금 바꾸고 싶어요 내가 맨날 어머니한테 미안한 마음이고 나 때문에 (형이) 죽은 것 같고 죄인 기분이 들어요"

네번이나 북송된 적 있다는 이 여학생은 강제 노역을 하다 동상에 걸려 손가락까지 잘린 상태.

당시 함께 붙잡힌 어린 동생이 숨지는 걸 곁에서 지켜봤다고 합니다.

<인터뷰> 탈북 여학생 : "4살이요.(4살 동생이요? 동생이 어떻게?) 집결소 한 달 있었는데 애가 먹지 못하고 나와가지고 앓다 죽었어요.(동생이 뭘했어요? 그 안에서?) 제가 업고 일했거든요 애가 있다해가지고 봐주는거 아니거든요 애 있어도 업고 일하고 그리고 동생 울면 니가 달래라 하고."

연일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 시위가 열리는 주한 중국대사관 앞. 탈북자들의 절규와 호소가 쏟아집니다.

<녹취> 탈북자(강제북송 경험) : "탈북자를 잡아 그곳에 북송하면 그곳에 1년도 있지 못하고 꽃동산에 묻힙니다. 꽃동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꽃처럼 아름다운 약산의 꽃동산이 아니라 죽어서 마음 편안히 가는 꽃동네를 꽃동산이라고 합니다."

시위장에 나온 한 탈북여성. 이 여성도 탈북 후 중국에서 붙잡혀 강제북송됐다가 3년의 수용소 생활을 한뒤 다시 탈북했습니다.

북한에 두고 온 동생이 마음에 걸려 밥 한끼도 편히 먹기 어렵다고 합니다.

<인터뷰> 탈북자(강제북송 경험) : "여기(한국) 와서는 진짜 밥 한공기도 다 못 먹어요. 먹을 것이 많으니까. 그렇게 볼 때 가족들이 많이 생각나요."

지난 2천8년 상영된 이 영화는 한 탈북자 가족의 사연을 담았습니다.

북한 함경도의 탄광마을에서 가난 속에도 단란하게 살아가지만 아버지가 병석에 누운 어머니의 약을 구하러 중국에 간 사이 11살 아들은 혼자 남겨집니다.

<녹취> '엄마 데려가지 마세요'

중국에서 바로 남한에 온 아버지는 두고 온 아들을 구하기 위해 온갖 역경을 겪지만 아들을 끝내 살아서 만나지 못합니다.

<인터뷰>차인표(주연 배우) : "다 누군가의 아버지고 아들이고 딸이고 우리랑 똑같은 동일한 소중한 생명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인간으로 최소한의 존중받아 마땅한 생명을 보존을 해야 되는데 그 분들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파요 너무 불쌍하고."

탈북자 문제에 남다른 공감을 갖게 됐다는 배우 차인표씨는 탈북자 문제가 정치적 이념화된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인터뷰> 차인표(배우) : "극장.공연장 같은데 모여서 탈북자들을 위해서 콘서트도 하고 싶은데 공연장들이 정치집회인줄 알고 허가를 안 해줘요. 생명 살리자고 이 사람들 생명 살리자고 그런 콘서트를 하려고 하는데 아무 정치적인 뜻 없이. 진보 보수 이게 아니라 그냥. 근데 '이것은 정치집회입니다 우리 극장은 할 수 없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북한 국경지역의 탈북자 인권은 최악으로 치닫고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압록강에선 탈북 남성이 현장에서 총살되기도 했습니다.

김정일 사망 이후 현지 분위기를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최근 중국의 북한 접경지에는 빈틈없이 철조망이 설치됐지만 탈북 난민의 수는 여전히 늘고 있다고 합니다.

<녹취>북한 내부 소식통 (음성변조) : "옛날에 가시철망 없었는데 가시철망까지 쳐가지고...중국하고 조선(북한)하고 해서 (설치)한거죠 그래도 (탈북자는) 들어오는데 그건 막을 길이 없어요."

이달 초 중국 선양에서 붙잡힌 탈북자들은 검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 제보에 의해 검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터뷰> 김용화(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 : "그 많은 공안이 그 버스 하나를 이렇게 해가지고(우연히 검색하다) 잡을 수가 없죠 거기에 또 12명이 탄다는 정확한 숫자도 파악할 수도 없고..."

그런데 함께 붙잡힌 탈북자 중 2명이 다음날 곧바로 풀려났다고 합니다.

이들이 탈북자인 것처럼 위장해 다른 탈북자의 위치와 신원을 중국 공안에 넘겨준 것은 아닌가 의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인터뷰> 김용화(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 : "(요원들이) 북한에서 파견돼왔지만 중국 공안에서도 협조를 주기 때문에 빠르게 잡혔다 빠르게 풀려나고...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탈북자 위장 체포조) 숫자가 약 2천명 정도인데 대부분 30대 미만(입니다)."

이전의 '조용한 외교'를 벗어나 공개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나선 우리 정부.

이같은 공개적 압박이 중국 내 탈북자를 더 위험하게 한다는 논란도 있습니다.

관건은 중국의 실제 태도 변화를 이끌 수 있는가 여부. 중국의 입장은 여전히 강경합니다.

<녹취> 훙레이(중국 외교부 대변인) : "해당 월경자들은 난민의 범위에 속하지 않으며 유엔 시스템에서 논의할 문제도 아닙니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 비난 여론은 거세지고 있습니다.

탈북자 북송 반대 온라인 서명에 100여개 국 14만여 명이 참여했고, 서명부는 맨발 행렬을 통해 일본, 미국, 중국 대사관에 전달됐습니다.

북한과 혈맹관계인 중국 내 여론도 주목할 만 합니다.

한 중국인이 트위터를 통해 실시한 투표에서 82%의 중국인이 강제 북송에 반대했고, 포털 사이트에는 자국의 강제북송 조치를 비판하는 수백건의 댓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로 갈린 한국에서도 젊은 변호사 304명이 중국의 전향적 결단을 촉구하며 법리적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인터뷰> 배의철(변호사) : "고문방지협약 제3조는 중국이 1988년에 비준해서 체약국이 돼있는 상태기 때문에 중국이 탈북자들이 난민이라고 규정을 하건 아니건 간에 무관하게 고문방지협약을 준수해야 되는 분명한 국제법적 책임이 있는 것이죠."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의 여론과 관심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명숙(여명학교 교감) : "먼 역사의 훗날에 우리 동포가 굶고 우리 동포가 끌려가고 죽음의 사지에 몰려있을 때 우리는 뭐하고 있었나라고 우리의 후손들이 물을 때(를 생각해서)...그 사람들의 생명만 생각해주시고 이 절규하는 아이들(탈북 청소년)의 소원을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분단의 비극에 또다른 고통을 더하는 탈북 난민의 강제 북송 문제.

지금도 중국 땅에서 죽음의 북송 길에 오르는 수많은 탈북자들은 한국으로 올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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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송만은 제발…”
    • 입력 2012-03-05 08:17:37
    취재파일K
탈북 청소년들의 대안학교인 여명학교 신입생 수련장. 여느 10대들처럼 밝아보이지만 모두가 쉽게 털어놓기 힘든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이 학교 동문인 한 탈북 청년은 8살 때 엄마 손을 잡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인터뷰> 탈북 청년 : "어차피 굶어죽으나 중국에 도망가다가 맞아죽으나 똑같은 거니까 그냥 앉아죽을 바에는 차라리 움직여라도보고 죽자 이런 생각으로 엄마 손잡고 같이 중국으로 넘어왔어요" 탈북 도중 아버지와 헤어졌지만 2년 만에 중국에서 다시 만났다고 합니다. <인터뷰> 탈북 청년(아버지 강제 북송) : "(아버지가) 거기에서 북한에 잡혀서 북송됐어요. 종신형으로 13년을 선고받고 그쪽으로 감옥 이름은 정확히 모르겠는데 거기로 종신형을 받고 갔다는 것 외에는 저는 몰라요" 당시 아버지가 북송될 때 마지막 모습을 이 청년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탈북 청년(아버지 강제 북송) : "기차역이었는데 거기서 옆에서 공안들이 팔을 잡고가고 아빠가 뒤돌아보면서 저랑 눈이 마주치면서 뭔가 그 애절한 눈빛이. 네가 여기 있으면 잡히니까 빨리 도망가라는. 그 말로는 안했지만. 그 눈빛이 너무 강렬하게 지금도 왠지 (자꾸 떠올라요)" 아직 생사 여부조차 모르는 아버지. 통일이 돼서 아버지와 술 한잔 기울이는 게 소원이라고 이 청년은 말했습니다. 탈북자 북송 문제가 한중 외교부간 갈등을 넘어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여전히 강경한데요, 죽음의 북송길에 오른 혈육을 지켜봐야 하는 탈북자들의 고통과 삼엄한 북한 국경지역의 상황을 취재했습니다. <녹취> KBS 뉴스9 (2.14) : "중국 공안에 붙잡힌 탈북자들이 또다시 강제 북송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10대 소년, 소녀도 포함돼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서 북송 위기에 놓인 한 10대 탈북자의 삼촌을 어렵게 만났습니다. 지난 2천8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22살 이모씨. 탈북자 가족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 인터뷰 장면을 재연했습니다. 이씨는 어린 조카가 중국에서 붙잡힌 당일 조카와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강제북송 위기 탈북자 가족 : "그냥 잡혔다고 울죠. (울어요?) 네, 나오면...(죽는 걸) 알죠. 걔가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그곳(북한)에서 살았는데...(총살당하는 걸 봤어요?) 거기서 (총살 장면을) 보이게 하는데 어떻게 (모르겠어요). 안보면 더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다 보죠. 그러니까 걔(공안에 붙잡힌 10대 탈북자)도 그 사람들(북한 당국자) 무서운거 알죠." 조카가 북송되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까지 말합니다. <인터뷰> 강제북송 위기 탈북자 가족 : "그냥 죽여서 내보내는 것이 오히려 편한 것 같아요 왜냐면 어차피 (북한에) 나가서 죽을 것은 뻔한데...걔가 고통스러운 것 생각하면 저희도 힘들고...차라리 죽었다면 나중에 시체라도..." 탈북 청소년들이 한데 모여 생활하는 여명학교. 강제 북송 위기에 놓인 탈북자 중에 가족이나 친구가 포함돼 있습니다. 중국에서 10년을 숨어지내다 지난해 한국으로 온 이모씨. 최근 붙잡힌 탈북자 수십명 중에 어릴 때 헤어진 여동생이 있진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인터뷰> 탈북 청년 : "여동생이 지금 23살이거든요 아직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가지고.." 이제 자신은 한국에 왔지만 북한에 두고 온 여동생을 떠올리면 고통이 북받칩니다. <인터뷰> 탈북 청년 : "나 헤어질 때 동생한테 제가 못해준게 너무 많아요 동생을 때려놨어요 그 옥수수 빵 때문에. 옥수수빵 때문에 내가 동생 막 때려놓고서..." 심지어 형과 동생의 죽음을 직접 보거나 전해들은 학생들도 있습니다. 이 학생은 중국에 남아있던 형이 북송돼 수용소에 간 후 형의 처형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형의 나이는 19살이었습니다. <인터뷰> 탈북 청년(형 강제 북송 후 처형) : "형이 우리가 한국에 올때 같이 오자고 했는데 안온다고 했는데 (엄마와 제가) 한국에 와서 3년 뒤에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형이)난징에서 잡혀서 죽었거든요. (잡혔어요 형이?) 네 잡혀서. 중국에서 5개월동안 있었는데 중국 분이 밀고해가지고 죽었거든요." 중국인 새아버지에게 학대받았던 고통보다 형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큽니다. <인터뷰> 탈북 청년(형 강제 북송 후 처형) : "살 수만 있었다면 내 목숨이라도 형 목숨과 바꿀 수 있었다면 지금 바꾸고 싶어요 내가 맨날 어머니한테 미안한 마음이고 나 때문에 (형이) 죽은 것 같고 죄인 기분이 들어요" 네번이나 북송된 적 있다는 이 여학생은 강제 노역을 하다 동상에 걸려 손가락까지 잘린 상태. 당시 함께 붙잡힌 어린 동생이 숨지는 걸 곁에서 지켜봤다고 합니다. <인터뷰> 탈북 여학생 : "4살이요.(4살 동생이요? 동생이 어떻게?) 집결소 한 달 있었는데 애가 먹지 못하고 나와가지고 앓다 죽었어요.(동생이 뭘했어요? 그 안에서?) 제가 업고 일했거든요 애가 있다해가지고 봐주는거 아니거든요 애 있어도 업고 일하고 그리고 동생 울면 니가 달래라 하고." 연일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 시위가 열리는 주한 중국대사관 앞. 탈북자들의 절규와 호소가 쏟아집니다. <녹취> 탈북자(강제북송 경험) : "탈북자를 잡아 그곳에 북송하면 그곳에 1년도 있지 못하고 꽃동산에 묻힙니다. 꽃동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꽃처럼 아름다운 약산의 꽃동산이 아니라 죽어서 마음 편안히 가는 꽃동네를 꽃동산이라고 합니다." 시위장에 나온 한 탈북여성. 이 여성도 탈북 후 중국에서 붙잡혀 강제북송됐다가 3년의 수용소 생활을 한뒤 다시 탈북했습니다. 북한에 두고 온 동생이 마음에 걸려 밥 한끼도 편히 먹기 어렵다고 합니다. <인터뷰> 탈북자(강제북송 경험) : "여기(한국) 와서는 진짜 밥 한공기도 다 못 먹어요. 먹을 것이 많으니까. 그렇게 볼 때 가족들이 많이 생각나요." 지난 2천8년 상영된 이 영화는 한 탈북자 가족의 사연을 담았습니다. 북한 함경도의 탄광마을에서 가난 속에도 단란하게 살아가지만 아버지가 병석에 누운 어머니의 약을 구하러 중국에 간 사이 11살 아들은 혼자 남겨집니다. <녹취> '엄마 데려가지 마세요' 중국에서 바로 남한에 온 아버지는 두고 온 아들을 구하기 위해 온갖 역경을 겪지만 아들을 끝내 살아서 만나지 못합니다. <인터뷰>차인표(주연 배우) : "다 누군가의 아버지고 아들이고 딸이고 우리랑 똑같은 동일한 소중한 생명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인간으로 최소한의 존중받아 마땅한 생명을 보존을 해야 되는데 그 분들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파요 너무 불쌍하고." 탈북자 문제에 남다른 공감을 갖게 됐다는 배우 차인표씨는 탈북자 문제가 정치적 이념화된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인터뷰> 차인표(배우) : "극장.공연장 같은데 모여서 탈북자들을 위해서 콘서트도 하고 싶은데 공연장들이 정치집회인줄 알고 허가를 안 해줘요. 생명 살리자고 이 사람들 생명 살리자고 그런 콘서트를 하려고 하는데 아무 정치적인 뜻 없이. 진보 보수 이게 아니라 그냥. 근데 '이것은 정치집회입니다 우리 극장은 할 수 없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북한 국경지역의 탈북자 인권은 최악으로 치닫고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압록강에선 탈북 남성이 현장에서 총살되기도 했습니다. 김정일 사망 이후 현지 분위기를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최근 중국의 북한 접경지에는 빈틈없이 철조망이 설치됐지만 탈북 난민의 수는 여전히 늘고 있다고 합니다. <녹취>북한 내부 소식통 (음성변조) : "옛날에 가시철망 없었는데 가시철망까지 쳐가지고...중국하고 조선(북한)하고 해서 (설치)한거죠 그래도 (탈북자는) 들어오는데 그건 막을 길이 없어요." 이달 초 중국 선양에서 붙잡힌 탈북자들은 검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 제보에 의해 검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터뷰> 김용화(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 : "그 많은 공안이 그 버스 하나를 이렇게 해가지고(우연히 검색하다) 잡을 수가 없죠 거기에 또 12명이 탄다는 정확한 숫자도 파악할 수도 없고..." 그런데 함께 붙잡힌 탈북자 중 2명이 다음날 곧바로 풀려났다고 합니다. 이들이 탈북자인 것처럼 위장해 다른 탈북자의 위치와 신원을 중국 공안에 넘겨준 것은 아닌가 의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인터뷰> 김용화(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 : "(요원들이) 북한에서 파견돼왔지만 중국 공안에서도 협조를 주기 때문에 빠르게 잡혔다 빠르게 풀려나고...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탈북자 위장 체포조) 숫자가 약 2천명 정도인데 대부분 30대 미만(입니다)." 이전의 '조용한 외교'를 벗어나 공개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나선 우리 정부. 이같은 공개적 압박이 중국 내 탈북자를 더 위험하게 한다는 논란도 있습니다. 관건은 중국의 실제 태도 변화를 이끌 수 있는가 여부. 중국의 입장은 여전히 강경합니다. <녹취> 훙레이(중국 외교부 대변인) : "해당 월경자들은 난민의 범위에 속하지 않으며 유엔 시스템에서 논의할 문제도 아닙니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 비난 여론은 거세지고 있습니다. 탈북자 북송 반대 온라인 서명에 100여개 국 14만여 명이 참여했고, 서명부는 맨발 행렬을 통해 일본, 미국, 중국 대사관에 전달됐습니다. 북한과 혈맹관계인 중국 내 여론도 주목할 만 합니다. 한 중국인이 트위터를 통해 실시한 투표에서 82%의 중국인이 강제 북송에 반대했고, 포털 사이트에는 자국의 강제북송 조치를 비판하는 수백건의 댓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로 갈린 한국에서도 젊은 변호사 304명이 중국의 전향적 결단을 촉구하며 법리적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인터뷰> 배의철(변호사) : "고문방지협약 제3조는 중국이 1988년에 비준해서 체약국이 돼있는 상태기 때문에 중국이 탈북자들이 난민이라고 규정을 하건 아니건 간에 무관하게 고문방지협약을 준수해야 되는 분명한 국제법적 책임이 있는 것이죠."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의 여론과 관심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명숙(여명학교 교감) : "먼 역사의 훗날에 우리 동포가 굶고 우리 동포가 끌려가고 죽음의 사지에 몰려있을 때 우리는 뭐하고 있었나라고 우리의 후손들이 물을 때(를 생각해서)...그 사람들의 생명만 생각해주시고 이 절규하는 아이들(탈북 청소년)의 소원을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분단의 비극에 또다른 고통을 더하는 탈북 난민의 강제 북송 문제. 지금도 중국 땅에서 죽음의 북송 길에 오르는 수많은 탈북자들은 한국으로 올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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