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조국을 위한 합창

입력 2012.04.15 (10:32) 수정 2012.04.1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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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노래부르기’ 하면 세계에서 우리 민족을 빼놓을 수 없을텐데, 우리 이상으로 노래를 사랑하는 독특한 나라가 바로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입니다.

옛소련에서의 독립투쟁을 국민들이 광장에 나와 합창을 하는 것으로 했을 정도니까, 이 나라에서 노래, 합창의 가치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형욱 순회특파원이 에스토니아 합창의 세계를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순수하고....울림이 깊은 합창 소리....방송국에 울려 퍼지는 이 맑고 고운 합창은 매일 들을 수 있습니다.

매일 이어지는 연습이지만 합창은 본 공연처럼 매력적입니다.

<녹취> (합창단에서 몇 년 활동했나요?) 4살 때 시작해 18년 됐습니다.

에스토니아 젊은 여성들의 가장 큰 꿈 가운데 하나는 합창단원으로 뽑혀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메리트 바인(에스토니아 필하모니 합창단원) : “합창은 에스토니아라는 작은 나라를 발전이 무궁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부심을 느끼게 합니다.“

4,50대로 구성된 중년의 합창단원들이 모여 노래를 부릅니다.

각자 생업이 따로 있지만 틈나는 대로 모여 연습을 합니다.

<인터뷰> 프레드(회사원) : “합창은 취미 이상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 노래하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합창에 대한 에스토니아인들의 애정은 각별합니다.

그리고 주로 부르는 합창곡 또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노래입니다.

<녹취> “나의 조국은 나의 사랑 애정을 바쳤던 그대에게 노래하네 행운을 생기발랄한 에스토니아인이여”

<인터뷰> 엉그리 하이드(합창동호회 지휘자) : “이 노래는 에스토니아 합창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노래입니다. 에스토니아의 독립을 일깨웠습니다.“

에스토니아는 15세기 이후 50년 이상 독립국가로 존재해 본 적이 없는 국가입니다.

700년이 넘는 기간을 덴마크, 스웨덴, 독일, 러시아 등 열강의 지배를 받았고, 2차 대전 뒤에는 소련에 편입됩니다.

<인터뷰> 트리비미(에스토니아 독립운동가) : “한국이 일본에 점령당했듯이 에스토니아는 소련에게 점령당했었습니다.”

수도 탈린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이른바 '점령 박물관'. 이곳에는 열강에 의해 지배당했던 에스토니아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시 외곽에 있는 식민지시절의 감옥. 정치범들을 수용했던 이 감옥은 암울했던 식민지 시절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인터뷰> 앵더스 윌림(에스토니아 독립운동가) : “이곳은 러시아, 독일의 점령시기에(정치범들) 감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독립을 추구했던 에스토니아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갇혔습니다.“

소련 지배하의 1985년,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고르바쵸프가 표방한 개혁, 개방 물결을 타고 독립의 기회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1988년 8월 에스토니아의 유명한 독립 혁명 'singing revolution' , 즉 '합창혁명'이 시작됩니다.

<인터뷰> 트리비미(에스토니아 독립운동가) : “에스토니아인들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소련군에게 평화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합창 혁명'은 이곳에서 이렇게 시작됩니다.“

3년여의 '합창혁명' 기간 동안 광장에서 독립을 노래한 사람들이 30여만 명. 에스토니아 전체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엄청난 인원이었습니다.

소련이 탱크를 앞세워 위협했지만, 에스토니아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습니다.

<인터뷰> 아르뜨르('합창혁명' 참가 시민) : “당시 탱크가 (시위대) 맞은편에 있었습니다. 아주 무서운 경험이었습니다. 무기가 없는 빈 손이었지만 폭력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목놓아 부른 독립을 위한 합창은 결국 1991년, 에스토니아 독립국가의 꿈을 실현시켰습니다.

<녹취> “나는 영원히 에스토니아인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나는 언제나 에스토니아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에스토니아는 나의 조국입니다.”


<인터뷰> 아르뜨르(합창혁명 참가시민) : “이 노래는 '합창혁명' 당시 유명했던 노래이고 지금도 이 노래를 부르면 울컥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곳이 바로 에스토니아 합창혁명의 자료들이 보관된 박물관입니다.

에스토니아인들은 점령의 시대에 맞서 합창으로 자유에 대한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에스토니아,...합창으로 독립을 이룬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나라입니다.

<인터뷰> 키티(합창동호회 회원) : “합창에 대한 애정은 150년 전 부터 존재 해온 에스토니아의 합창대축제(SONG FESTIVAL) 전통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합창대축제는 보통 3-5년마다 열리는데, 많은 에스토니아 인들이 모여대형 합창단을 꾸리고 노래를 부릅니다.“

축제에 20여만 명이 참여하는 그야말로 국민 대축제입니다. 광장 무대에 서는 합창단원만 3만여 명에 이릅니다.

<인터뷰> 트리비미(에스토니아 독립운동가) : “이틀 동안 열리는 축제의 음악적인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축제로 인해 에스토니아인들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합창혁명'의 중요한 배경입니다.“

합창혁명이 나고 20여 년, 에스토니아는 옛소련 국가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국가로 발 돋음 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거의 2만 달러에 근접했고 유로화를 사용하는 등 세계적인 경제국가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독립 후 20여년 만에 이룬 기적이나 다름없습니다.

<인터뷰> 아르보 산도르(에스토니아 필하모니 합창단 지휘자) : “에스토니아 인에게 합창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며, 가슴속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다시 지금의 음악축제에서 합창을 합니다. 이것은 자유를 향한 끊임없는 추구입니다.“

자유를 합창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노래하는 민족' 에스토니아.

'합창혁명'으로 독립의 꿈을 이루었듯, 에스토니아 국민들은 조국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지금도 노래를 합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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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eye] 조국을 위한 합창
    • 입력 2012-04-15 10:32:10
    • 수정2012-04-15 11:16:13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노래부르기’ 하면 세계에서 우리 민족을 빼놓을 수 없을텐데, 우리 이상으로 노래를 사랑하는 독특한 나라가 바로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입니다. 옛소련에서의 독립투쟁을 국민들이 광장에 나와 합창을 하는 것으로 했을 정도니까, 이 나라에서 노래, 합창의 가치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형욱 순회특파원이 에스토니아 합창의 세계를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순수하고....울림이 깊은 합창 소리....방송국에 울려 퍼지는 이 맑고 고운 합창은 매일 들을 수 있습니다. 매일 이어지는 연습이지만 합창은 본 공연처럼 매력적입니다. <녹취> (합창단에서 몇 년 활동했나요?) 4살 때 시작해 18년 됐습니다. 에스토니아 젊은 여성들의 가장 큰 꿈 가운데 하나는 합창단원으로 뽑혀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메리트 바인(에스토니아 필하모니 합창단원) : “합창은 에스토니아라는 작은 나라를 발전이 무궁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부심을 느끼게 합니다.“ 4,50대로 구성된 중년의 합창단원들이 모여 노래를 부릅니다. 각자 생업이 따로 있지만 틈나는 대로 모여 연습을 합니다. <인터뷰> 프레드(회사원) : “합창은 취미 이상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 노래하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합창에 대한 에스토니아인들의 애정은 각별합니다. 그리고 주로 부르는 합창곡 또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노래입니다. <녹취> “나의 조국은 나의 사랑 애정을 바쳤던 그대에게 노래하네 행운을 생기발랄한 에스토니아인이여” <인터뷰> 엉그리 하이드(합창동호회 지휘자) : “이 노래는 에스토니아 합창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노래입니다. 에스토니아의 독립을 일깨웠습니다.“ 에스토니아는 15세기 이후 50년 이상 독립국가로 존재해 본 적이 없는 국가입니다. 700년이 넘는 기간을 덴마크, 스웨덴, 독일, 러시아 등 열강의 지배를 받았고, 2차 대전 뒤에는 소련에 편입됩니다. <인터뷰> 트리비미(에스토니아 독립운동가) : “한국이 일본에 점령당했듯이 에스토니아는 소련에게 점령당했었습니다.” 수도 탈린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이른바 '점령 박물관'. 이곳에는 열강에 의해 지배당했던 에스토니아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시 외곽에 있는 식민지시절의 감옥. 정치범들을 수용했던 이 감옥은 암울했던 식민지 시절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인터뷰> 앵더스 윌림(에스토니아 독립운동가) : “이곳은 러시아, 독일의 점령시기에(정치범들) 감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독립을 추구했던 에스토니아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갇혔습니다.“ 소련 지배하의 1985년,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고르바쵸프가 표방한 개혁, 개방 물결을 타고 독립의 기회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1988년 8월 에스토니아의 유명한 독립 혁명 'singing revolution' , 즉 '합창혁명'이 시작됩니다. <인터뷰> 트리비미(에스토니아 독립운동가) : “에스토니아인들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소련군에게 평화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합창 혁명'은 이곳에서 이렇게 시작됩니다.“ 3년여의 '합창혁명' 기간 동안 광장에서 독립을 노래한 사람들이 30여만 명. 에스토니아 전체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엄청난 인원이었습니다. 소련이 탱크를 앞세워 위협했지만, 에스토니아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습니다. <인터뷰> 아르뜨르('합창혁명' 참가 시민) : “당시 탱크가 (시위대) 맞은편에 있었습니다. 아주 무서운 경험이었습니다. 무기가 없는 빈 손이었지만 폭력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목놓아 부른 독립을 위한 합창은 결국 1991년, 에스토니아 독립국가의 꿈을 실현시켰습니다. <녹취> “나는 영원히 에스토니아인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나는 언제나 에스토니아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에스토니아는 나의 조국입니다.” <인터뷰> 아르뜨르(합창혁명 참가시민) : “이 노래는 '합창혁명' 당시 유명했던 노래이고 지금도 이 노래를 부르면 울컥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곳이 바로 에스토니아 합창혁명의 자료들이 보관된 박물관입니다. 에스토니아인들은 점령의 시대에 맞서 합창으로 자유에 대한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에스토니아,...합창으로 독립을 이룬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나라입니다. <인터뷰> 키티(합창동호회 회원) : “합창에 대한 애정은 150년 전 부터 존재 해온 에스토니아의 합창대축제(SONG FESTIVAL) 전통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합창대축제는 보통 3-5년마다 열리는데, 많은 에스토니아 인들이 모여대형 합창단을 꾸리고 노래를 부릅니다.“ 축제에 20여만 명이 참여하는 그야말로 국민 대축제입니다. 광장 무대에 서는 합창단원만 3만여 명에 이릅니다. <인터뷰> 트리비미(에스토니아 독립운동가) : “이틀 동안 열리는 축제의 음악적인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축제로 인해 에스토니아인들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합창혁명'의 중요한 배경입니다.“ 합창혁명이 나고 20여 년, 에스토니아는 옛소련 국가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국가로 발 돋음 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거의 2만 달러에 근접했고 유로화를 사용하는 등 세계적인 경제국가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독립 후 20여년 만에 이룬 기적이나 다름없습니다. <인터뷰> 아르보 산도르(에스토니아 필하모니 합창단 지휘자) : “에스토니아 인에게 합창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며, 가슴속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다시 지금의 음악축제에서 합창을 합니다. 이것은 자유를 향한 끊임없는 추구입니다.“ 자유를 합창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노래하는 민족' 에스토니아. '합창혁명'으로 독립의 꿈을 이루었듯, 에스토니아 국민들은 조국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지금도 노래를 합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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