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리포트] 복지천국, 세금 많아도 불만은 없다

입력 2012.04.22 (10:12) 수정 2012.04.2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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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간접세든 직접세든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을 겁니다.

예, 하지만 세금 내는 걸 좋아하거나, 높은 세금에 불만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라고 할 텐데요, 핀란드에선 이게 거짓말이 아닙니다.

‘낸 만큼 돌려 받는다’는 의식이 자리를 잡았기에 가능한 얘기입니다.

부자 증세, 이른바 ‘버핏세’ 논란이 한창인 요즘, 핀란드를 눈여겨 볼만 합니다.

지형욱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헬싱키의 한낮은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그나마 교통경찰관이 바쁜 직업 가운데 하나,..... 헬싱키 교통경찰 데니스 경위를 만났습니다.

데니스 경위는 오늘 규정 속도보다 시속 20km를 과속한 차량 한 대를 적발했습니다.

범칙금을 부과하기 위해 그는 지금 바쁩니다.

운전자의 소득부터 파악하고 범칙금을 얼마를 매겨야 하는지 계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데니스(헬싱키경찰청 교통부 경위) : “과속에 대한 범칙금은 위반자의 소득에 따라 다릅니다.소득이 많으면 범칙금도 많습니다.”

데니스 경위는 세무서에 연락해 위반자의 연간 소득총액부터 알아냅니다.

보통 총소득액의 14분의 1을 범칙금으로 정합니다.

핀란드에선 이게 공평과 정의입니다.

<인터뷰> 데니스(헬싱키경찰청 교통부 경위) : “수입에 맞춰 벌칙금을 내는 것은 평등을 의미합니다. 수입을 기준으로 하면 같은 수준의 벌칙이 부과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핀란드 최고의 기업 노키아의 전 부사장은 시속 25km 속도 위반으로 우리 돈 1억 8천만 원을 냈고, 한 재벌 상속자는 시속 40km 속도위반 한 번으로 2억 8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 받았습니다.

<인터뷰> 마티 톨바낸(세무 전문 변호사) : “핀란드 벌금제도는 소득에 따라 세금을 많이 내는 누진세 제도와 비슷합니다. 즉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벌금 또한 많이 냅니다.“

헬싱키 시내의 한 세무서. 대학생 알렉산더씨가 방학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신고하러 왔습니다.

<인터뷰>알렉산더(대학생) : “2명이 근무하는 식당과 같이 소규모 업체에서 번 소득의 경우라도 신고해서 세금을 내야합니다.”

알렉산더씨처럼 핀란드 국민들은 공식적인 모든 수익은 물론이고 사소한 비공식적인 소득까지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아르키오마(헬싱키 세무서 부국장) : "근로소득 뿐 아니라 배당금, 이자수익과 같은 모든 소득에 대해 반드시 세금을 내야 합니다. 무조건 내야하기 때문에 세금 회피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소득신고의 투명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핀란드에선 세무서만 가면 개인의 소득과 세금 납부사항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흔히 '유리알 지갑'이라 불리는 샐러리맨 뿐 아니라 자영업자든, 아르바이트생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 아르키오마(세무서 부국장) : "유명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세금을 내는 지가 사람들의 큰 관심사입니다. 경영인, 운동선수, 연예인 등 고소득자의 세금정보가 공개되면서 그들의 세금액이 높은지 낮은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발생합니다."

국민들이 내는 세금이 푼돈이어서 꼬박꼬박 신고하고 마는 게 아닙니다.

핀란드 국민의 GDP대비 조세부담률은 31%, 덴마크보다는 낮지만 OECD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입니다.

특히 고소득자에 대한 최고 세율은 53%에 이르러 소득의 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합니다.

핀란드에서 최고 고소득자로 알려진 전 노키아 CEO는 지난해 우리 돈으로 1200억 원을 벌어 절반이 넘는 620억 원을 세금으로 냈습니다.

<인터뷰> 아르키오마(세무서 부국장) : “고소득자의 세금을 더 올려야 하느냐가 현재 이슈가 됐습니다. 과세율의 적절한 수준을 찾는 것이 세무당국의 과제라 할 수 있죠.”

당연히 고소득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올 법한데, 그렇지 않습니다.

경영컨설던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타코넨 사장, 지난해 150억 원의 소득에서 절반인 75억 원을 세금으로 납부한 고소득자입니다.

<인터뷰> 타코넨('핀란드 ID'사 사장) : “저는 세금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세금을 통해 사회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이죠.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낸 많은 세금으로 무상교육, 무상의료와 같은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금을 낸만큼 국가로부터 복지혜택을 받는, 다시 말해 '낸만큼 돌려 받는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헬싱키 외곽에 살고 있는 티티 아르뽀넨 주부.

이혼녀인 그녀는 중. 고등학생인 두 딸과 살고 있습니다. 큰 수입은 없지만 국가의 무상교육 덕분에 두 딸의 학비걱정은 없다고 합니다.

<인터뷰> 티티 아르뽀넨(주부) : “무상교육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제공됩니다. 모든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됩니다.”

아르뽀넨씨의 딸은 학비는 물론이고 특기적성 교육을 위한 각종 활동비도 지원받아 왔다고 자랑합니다.

모두 세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인터뷰> 라우하(고3 학생) : “세금을 높게 내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교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됩니다.”

헬싱키에서 250km 떨어진, 유명 아동브랜드 의류공장입니다.

이곳에선 이른바 mother's pack이라 불리는 상자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상자 속에는 배냇저고리를 비롯해 임산부와 신생아에게 필요한 의류와 잡화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임산부들에게 지급되는 선물상자입니다.

이 선물 상자는 국가가 엄마 뱃속부터 책임지겠다는 따뜻한 복지의 상징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전통적 복지사회의 슬로건이 이곳 핀란드에선 '엄마 뱃속부터 무덤까지'라는 한 차원 높은 따뜻한 복지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터뷰> 요한나 아호넨(핀란드 사회보험청 팀장) : “복지서비스를 줄이는 것보다 세금을 올려 복지혜택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기가 낸 세금이 자신에게 곧 돌아온다는 믿음이 매우 강합니다.”

2차 세계대전 후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핀란드, 불과 60년 만에 가장 복지제도가 잘된 나라의 하나로 발돋음 했습니다.

경제성장이 밑바탕이지만 높은 세금을 감수했던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인터뷰> 타코넨('핀란드 ID'사 사장) : “세금제도를 통해 우리는 핀란드를 평등한 사회로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금제도에 깔려있는) 기본 사회사상입니다.“

국토의 절반이 숲과 호수인 나라, 주변 강대국의 외침에 더해 혹독한 추위와도 맞서 싸워야 했던 핀란드 국민, 이들이 기꺼이 내는 세금이 핀란드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국가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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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 리포트] 복지천국, 세금 많아도 불만은 없다
    • 입력 2012-04-22 10:12:07
    • 수정2012-04-22 14:49:32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간접세든 직접세든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을 겁니다. 예, 하지만 세금 내는 걸 좋아하거나, 높은 세금에 불만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라고 할 텐데요, 핀란드에선 이게 거짓말이 아닙니다. ‘낸 만큼 돌려 받는다’는 의식이 자리를 잡았기에 가능한 얘기입니다. 부자 증세, 이른바 ‘버핏세’ 논란이 한창인 요즘, 핀란드를 눈여겨 볼만 합니다. 지형욱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헬싱키의 한낮은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그나마 교통경찰관이 바쁜 직업 가운데 하나,..... 헬싱키 교통경찰 데니스 경위를 만났습니다. 데니스 경위는 오늘 규정 속도보다 시속 20km를 과속한 차량 한 대를 적발했습니다. 범칙금을 부과하기 위해 그는 지금 바쁩니다. 운전자의 소득부터 파악하고 범칙금을 얼마를 매겨야 하는지 계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데니스(헬싱키경찰청 교통부 경위) : “과속에 대한 범칙금은 위반자의 소득에 따라 다릅니다.소득이 많으면 범칙금도 많습니다.” 데니스 경위는 세무서에 연락해 위반자의 연간 소득총액부터 알아냅니다. 보통 총소득액의 14분의 1을 범칙금으로 정합니다. 핀란드에선 이게 공평과 정의입니다. <인터뷰> 데니스(헬싱키경찰청 교통부 경위) : “수입에 맞춰 벌칙금을 내는 것은 평등을 의미합니다. 수입을 기준으로 하면 같은 수준의 벌칙이 부과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핀란드 최고의 기업 노키아의 전 부사장은 시속 25km 속도 위반으로 우리 돈 1억 8천만 원을 냈고, 한 재벌 상속자는 시속 40km 속도위반 한 번으로 2억 8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 받았습니다. <인터뷰> 마티 톨바낸(세무 전문 변호사) : “핀란드 벌금제도는 소득에 따라 세금을 많이 내는 누진세 제도와 비슷합니다. 즉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벌금 또한 많이 냅니다.“ 헬싱키 시내의 한 세무서. 대학생 알렉산더씨가 방학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신고하러 왔습니다. <인터뷰>알렉산더(대학생) : “2명이 근무하는 식당과 같이 소규모 업체에서 번 소득의 경우라도 신고해서 세금을 내야합니다.” 알렉산더씨처럼 핀란드 국민들은 공식적인 모든 수익은 물론이고 사소한 비공식적인 소득까지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아르키오마(헬싱키 세무서 부국장) : "근로소득 뿐 아니라 배당금, 이자수익과 같은 모든 소득에 대해 반드시 세금을 내야 합니다. 무조건 내야하기 때문에 세금 회피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소득신고의 투명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핀란드에선 세무서만 가면 개인의 소득과 세금 납부사항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흔히 '유리알 지갑'이라 불리는 샐러리맨 뿐 아니라 자영업자든, 아르바이트생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 아르키오마(세무서 부국장) : "유명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세금을 내는 지가 사람들의 큰 관심사입니다. 경영인, 운동선수, 연예인 등 고소득자의 세금정보가 공개되면서 그들의 세금액이 높은지 낮은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발생합니다." 국민들이 내는 세금이 푼돈이어서 꼬박꼬박 신고하고 마는 게 아닙니다. 핀란드 국민의 GDP대비 조세부담률은 31%, 덴마크보다는 낮지만 OECD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입니다. 특히 고소득자에 대한 최고 세율은 53%에 이르러 소득의 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합니다. 핀란드에서 최고 고소득자로 알려진 전 노키아 CEO는 지난해 우리 돈으로 1200억 원을 벌어 절반이 넘는 620억 원을 세금으로 냈습니다. <인터뷰> 아르키오마(세무서 부국장) : “고소득자의 세금을 더 올려야 하느냐가 현재 이슈가 됐습니다. 과세율의 적절한 수준을 찾는 것이 세무당국의 과제라 할 수 있죠.” 당연히 고소득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올 법한데, 그렇지 않습니다. 경영컨설던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타코넨 사장, 지난해 150억 원의 소득에서 절반인 75억 원을 세금으로 납부한 고소득자입니다. <인터뷰> 타코넨('핀란드 ID'사 사장) : “저는 세금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세금을 통해 사회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이죠.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낸 많은 세금으로 무상교육, 무상의료와 같은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금을 낸만큼 국가로부터 복지혜택을 받는, 다시 말해 '낸만큼 돌려 받는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헬싱키 외곽에 살고 있는 티티 아르뽀넨 주부. 이혼녀인 그녀는 중. 고등학생인 두 딸과 살고 있습니다. 큰 수입은 없지만 국가의 무상교육 덕분에 두 딸의 학비걱정은 없다고 합니다. <인터뷰> 티티 아르뽀넨(주부) : “무상교육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제공됩니다. 모든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됩니다.” 아르뽀넨씨의 딸은 학비는 물론이고 특기적성 교육을 위한 각종 활동비도 지원받아 왔다고 자랑합니다. 모두 세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인터뷰> 라우하(고3 학생) : “세금을 높게 내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교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됩니다.” 헬싱키에서 250km 떨어진, 유명 아동브랜드 의류공장입니다. 이곳에선 이른바 mother's pack이라 불리는 상자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상자 속에는 배냇저고리를 비롯해 임산부와 신생아에게 필요한 의류와 잡화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임산부들에게 지급되는 선물상자입니다. 이 선물 상자는 국가가 엄마 뱃속부터 책임지겠다는 따뜻한 복지의 상징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전통적 복지사회의 슬로건이 이곳 핀란드에선 '엄마 뱃속부터 무덤까지'라는 한 차원 높은 따뜻한 복지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터뷰> 요한나 아호넨(핀란드 사회보험청 팀장) : “복지서비스를 줄이는 것보다 세금을 올려 복지혜택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기가 낸 세금이 자신에게 곧 돌아온다는 믿음이 매우 강합니다.” 2차 세계대전 후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핀란드, 불과 60년 만에 가장 복지제도가 잘된 나라의 하나로 발돋음 했습니다. 경제성장이 밑바탕이지만 높은 세금을 감수했던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인터뷰> 타코넨('핀란드 ID'사 사장) : “세금제도를 통해 우리는 핀란드를 평등한 사회로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금제도에 깔려있는) 기본 사회사상입니다.“ 국토의 절반이 숲과 호수인 나라, 주변 강대국의 외침에 더해 혹독한 추위와도 맞서 싸워야 했던 핀란드 국민, 이들이 기꺼이 내는 세금이 핀란드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국가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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