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우리 한반도보다 더 큰, 세계 최대 규모의 습지가 있는데요, 바로 남미대륙의 판타날 습지입니다. 아마존이 그렇듯 이 판타날도 개발 여파로 점차 사라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예, 이 습지엔 특히 현지어로 ‘옹사’라고 불리는 재규어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판타날은 ‘옹사의 땅’ 즉 ‘재규어의 땅’ 이라고도 하는데, 판타날의 위기가 곧 재규어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습지 판타날의 재규어 운명, 박전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드넓은 녹색의 대지... 온갖 종류의 풀과 나무, 그리고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어울어진 생명의 땅. 남미대륙 판타날 습지입니다. 보기 드문 희귀조들이 수없이 모여 사는 곳, 새들의 화려한 군무 밑으로 신비로운 동물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커다란 쥐모양의 동물 가족이 길을 건넙니다. 느릿느릿 움직이지만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재빠른 이 동물.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설치류 카피바라입니다.
풀 숲에는 사슴과 노루들이 자유롭게 거닐고, 개미핥기도 이곳 판타날에서는 그리 낯선 존재가 아닙니다. 아메리카 여우 코요테와 '따투'라 불리는 남미 아르마딜로도 판타날습지의 또다른 주인들입니다.
판타날 습지는 세계에서 악어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입니다. 먹잇감이 풍부하다 보니 개체 수도 많고, 그러다 보니 생생하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커다란 악어를, 수쿠리(Sucuri)라 불리는 브라질 구렁이가 칭칭 감고 있습니다. 벌써 몇시간 째 힘겨루기를 했지만 잡아먹기엔 악어가 너무 컸던지 또아리를 풀고 재빨리 달아납니다.
<인터뷰>에지우손(판타날 주민): “어린 수쿠리(브라질 구렁이)가 사냥 연습을 했던 것 같습니다.“
수풀이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가자, 섬뜩한 느낌의 동물과 마주칩니다. 바로 판타날 습지의 진정한 강자, 재규어입니다. 배고픈 재규어가 카피바라 새끼를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현지어로 '옹사(onca)'라 불리는 판타날 재규어는 습지 먹이사슬의 최고점에 있습니다. 이 '옹사'들이 많다 해서 판타날은 '옹사의 땅' 즉, '재규어의 땅'으로도 불립니다.
브라질과 파라과이, 볼리비아에 걸쳐 24만㎢ 넓이로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이 판타날 습지는 그야말로 생명체의 보고입니다. 포유류와 파충류 3백여 종, 조류 660여 종, 어류 4백여 종 등 지구상에 보고된 종의 20% 정도가 이곳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보다 더 큰 세계 최대의 습지인 이곳 판타날은 그러나 속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1,500배가 넘는 광대한 면적의 습지가 각종 개발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환경 경찰이 위성을 통해 감시한 의심지역, 경찰과 함께 숲 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잘려나간 나무들이 여기저기에 쌓여 있습니다.
<인터뷰>호나우두 실바(브라질 환경 경찰관): “주로 사유지에서 불법행위가 일어나다 보니 접근이 쉽지 않고, 적발하기도 어렵습니다.”
드넓은 판타날 벌판에 연기가 자욱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거센 불길이 수풀을 온통 집어 삼키고 있습니다. 대지를 태우는 이 불, 수풀을 불태워 없앤 뒤 농경지로 바꾸기 위해 토지주가 일부러 불을 놓은 겁니다.
<인터뷰>에지르(판타날 관광 안내인): “판타날에서는 화재 때문에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누군가 불을 통제하다가도 나중에 걷잡을 수 없이 번져 큰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벌판 이곳 저곳에 크고 작은 불들이 연신 피어 오릅니다.
<인터뷰>엘모(판타날 주민): “쌀농사에 방해되는 해충들과 쥐 같은 동물들을 죽이기 위해 일부러 불을 놓는 거죠.”
판타날에서는 건기에, 경찰에 보고되는 화재발생 건수가 주말에만 백여 건, 해마다 평균 1,200여 건이 넘습니다. 특히 올들어서는 지난해보다 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나무가 잘려 나가고 수풀들이 불길에 훼손되면서 물길도 말라가고 있습니다. 비가 안오는 건기에도 어느 정도 물이 남아 있던 하천들이 요즘은 땅이 쩍쩍 갈라질 정도로 바짝 말라가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판타날 습지에선 새소리 대신 기계음 소리가 더 자주 들리고 있습니다.
판타날의 습지가 줄어드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이와같은 대규모 농지 개간입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대부분의 사유지에서 개간이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습니다.
나무를 베내고, 수풀을 태워 농지를 만드면서 원형 그대로의 숲과 습지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판타날 지역에만 파젠다로 불리는 개인 농장들이 만여 곳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들 농장 대부분은 소떼와 양을 목초지에 방목하는 축산농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일부 대규모 파젠다 농장들은 수익성을 좇아 쌀농사 같은 기계 영농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호베르토 코엘류(판타날 농장주): “우리 농장의 가장 큰 사업은 쌀 생산입니다. 다른 지역에 팔고 있어요. 그 다음이 소를 키우는 축산입니다.”
논농사의 핵심은 원할한 물공급. 이를 위해 곳곳에 농업용 운하를 만들어 하천의 물길을 인위적으로 돌리다 보니 자연습지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한 때 판타날 습지엔 5천 마리가 넘는 재규어들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900년 이후 불과 30년 전까지 재규어 사냥은 합법이었고, 수많은 재규어들이 희생됐습니다. 현재는 불과 천마리도 안되는 것으로 브라질 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엔리케 코스타(재규어(옹사) 연구가): “판타날이 파라과이강 상류의 워낙 외진 데 있어 감시를 덜 받았고, 숲도 많이 파괴돼서 재규어(옹사) 개체수가 많이 준 것으로 보입니다.”
남미 재규어, 옹사들은 최근 '송아지'라는 또 다른 강력한 적을 만났습니다. 판타날에 농장이 늘면서 농장 송아지들이 재규어들의 밥이 됐습니다.
<인터뷰>엘리자베스 코엘류(농장주): “송아지가 태어나면 재규어(옹사)들이 접근해서 잡아먹거나, 재규어 새끼들에게 사냥훈련을 시키기 위해 죽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역설적으로 재규어의 희생을 키우고 있습니다. 재규어들이 송아지 사냥을 하다 농장주들의 총에 맞아 죽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와 풀, 물과 바람의 땅. 지상 최대의 습지 판타날은 점차 줄어들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불과 50년 후면 더 이상 습지라고도 부를 수 없는 땅으로 전락할 것이란 경고도 나왔습니다. 판타날이 없다면 멸종돼 가는 남미 재규어, 옹사들이 설 땅도 더 이상 없습니다.
우리 한반도보다 더 큰, 세계 최대 규모의 습지가 있는데요, 바로 남미대륙의 판타날 습지입니다. 아마존이 그렇듯 이 판타날도 개발 여파로 점차 사라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예, 이 습지엔 특히 현지어로 ‘옹사’라고 불리는 재규어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판타날은 ‘옹사의 땅’ 즉 ‘재규어의 땅’ 이라고도 하는데, 판타날의 위기가 곧 재규어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습지 판타날의 재규어 운명, 박전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드넓은 녹색의 대지... 온갖 종류의 풀과 나무, 그리고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어울어진 생명의 땅. 남미대륙 판타날 습지입니다. 보기 드문 희귀조들이 수없이 모여 사는 곳, 새들의 화려한 군무 밑으로 신비로운 동물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커다란 쥐모양의 동물 가족이 길을 건넙니다. 느릿느릿 움직이지만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재빠른 이 동물.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설치류 카피바라입니다.
풀 숲에는 사슴과 노루들이 자유롭게 거닐고, 개미핥기도 이곳 판타날에서는 그리 낯선 존재가 아닙니다. 아메리카 여우 코요테와 '따투'라 불리는 남미 아르마딜로도 판타날습지의 또다른 주인들입니다.
판타날 습지는 세계에서 악어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입니다. 먹잇감이 풍부하다 보니 개체 수도 많고, 그러다 보니 생생하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커다란 악어를, 수쿠리(Sucuri)라 불리는 브라질 구렁이가 칭칭 감고 있습니다. 벌써 몇시간 째 힘겨루기를 했지만 잡아먹기엔 악어가 너무 컸던지 또아리를 풀고 재빨리 달아납니다.
<인터뷰>에지우손(판타날 주민): “어린 수쿠리(브라질 구렁이)가 사냥 연습을 했던 것 같습니다.“
수풀이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가자, 섬뜩한 느낌의 동물과 마주칩니다. 바로 판타날 습지의 진정한 강자, 재규어입니다. 배고픈 재규어가 카피바라 새끼를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현지어로 '옹사(onca)'라 불리는 판타날 재규어는 습지 먹이사슬의 최고점에 있습니다. 이 '옹사'들이 많다 해서 판타날은 '옹사의 땅' 즉, '재규어의 땅'으로도 불립니다.
브라질과 파라과이, 볼리비아에 걸쳐 24만㎢ 넓이로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이 판타날 습지는 그야말로 생명체의 보고입니다. 포유류와 파충류 3백여 종, 조류 660여 종, 어류 4백여 종 등 지구상에 보고된 종의 20% 정도가 이곳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보다 더 큰 세계 최대의 습지인 이곳 판타날은 그러나 속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1,500배가 넘는 광대한 면적의 습지가 각종 개발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환경 경찰이 위성을 통해 감시한 의심지역, 경찰과 함께 숲 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잘려나간 나무들이 여기저기에 쌓여 있습니다.
<인터뷰>호나우두 실바(브라질 환경 경찰관): “주로 사유지에서 불법행위가 일어나다 보니 접근이 쉽지 않고, 적발하기도 어렵습니다.”
드넓은 판타날 벌판에 연기가 자욱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거센 불길이 수풀을 온통 집어 삼키고 있습니다. 대지를 태우는 이 불, 수풀을 불태워 없앤 뒤 농경지로 바꾸기 위해 토지주가 일부러 불을 놓은 겁니다.
<인터뷰>에지르(판타날 관광 안내인): “판타날에서는 화재 때문에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누군가 불을 통제하다가도 나중에 걷잡을 수 없이 번져 큰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벌판 이곳 저곳에 크고 작은 불들이 연신 피어 오릅니다.
<인터뷰>엘모(판타날 주민): “쌀농사에 방해되는 해충들과 쥐 같은 동물들을 죽이기 위해 일부러 불을 놓는 거죠.”
판타날에서는 건기에, 경찰에 보고되는 화재발생 건수가 주말에만 백여 건, 해마다 평균 1,200여 건이 넘습니다. 특히 올들어서는 지난해보다 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나무가 잘려 나가고 수풀들이 불길에 훼손되면서 물길도 말라가고 있습니다. 비가 안오는 건기에도 어느 정도 물이 남아 있던 하천들이 요즘은 땅이 쩍쩍 갈라질 정도로 바짝 말라가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판타날 습지에선 새소리 대신 기계음 소리가 더 자주 들리고 있습니다.
판타날의 습지가 줄어드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이와같은 대규모 농지 개간입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대부분의 사유지에서 개간이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습니다.
나무를 베내고, 수풀을 태워 농지를 만드면서 원형 그대로의 숲과 습지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판타날 지역에만 파젠다로 불리는 개인 농장들이 만여 곳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들 농장 대부분은 소떼와 양을 목초지에 방목하는 축산농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일부 대규모 파젠다 농장들은 수익성을 좇아 쌀농사 같은 기계 영농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호베르토 코엘류(판타날 농장주): “우리 농장의 가장 큰 사업은 쌀 생산입니다. 다른 지역에 팔고 있어요. 그 다음이 소를 키우는 축산입니다.”
논농사의 핵심은 원할한 물공급. 이를 위해 곳곳에 농업용 운하를 만들어 하천의 물길을 인위적으로 돌리다 보니 자연습지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한 때 판타날 습지엔 5천 마리가 넘는 재규어들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900년 이후 불과 30년 전까지 재규어 사냥은 합법이었고, 수많은 재규어들이 희생됐습니다. 현재는 불과 천마리도 안되는 것으로 브라질 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엔리케 코스타(재규어(옹사) 연구가): “판타날이 파라과이강 상류의 워낙 외진 데 있어 감시를 덜 받았고, 숲도 많이 파괴돼서 재규어(옹사) 개체수가 많이 준 것으로 보입니다.”
남미 재규어, 옹사들은 최근 '송아지'라는 또 다른 강력한 적을 만났습니다. 판타날에 농장이 늘면서 농장 송아지들이 재규어들의 밥이 됐습니다.
<인터뷰>엘리자베스 코엘류(농장주): “송아지가 태어나면 재규어(옹사)들이 접근해서 잡아먹거나, 재규어 새끼들에게 사냥훈련을 시키기 위해 죽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역설적으로 재규어의 희생을 키우고 있습니다. 재규어들이 송아지 사냥을 하다 농장주들의 총에 맞아 죽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와 풀, 물과 바람의 땅. 지상 최대의 습지 판타날은 점차 줄어들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불과 50년 후면 더 이상 습지라고도 부를 수 없는 땅으로 전락할 것이란 경고도 나왔습니다. 판타날이 없다면 멸종돼 가는 남미 재규어, 옹사들이 설 땅도 더 이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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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지는 ‘재규어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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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08-19 10:52:46
<앵커 멘트>
우리 한반도보다 더 큰, 세계 최대 규모의 습지가 있는데요, 바로 남미대륙의 판타날 습지입니다. 아마존이 그렇듯 이 판타날도 개발 여파로 점차 사라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예, 이 습지엔 특히 현지어로 ‘옹사’라고 불리는 재규어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판타날은 ‘옹사의 땅’ 즉 ‘재규어의 땅’ 이라고도 하는데, 판타날의 위기가 곧 재규어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습지 판타날의 재규어 운명, 박전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드넓은 녹색의 대지... 온갖 종류의 풀과 나무, 그리고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어울어진 생명의 땅. 남미대륙 판타날 습지입니다. 보기 드문 희귀조들이 수없이 모여 사는 곳, 새들의 화려한 군무 밑으로 신비로운 동물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커다란 쥐모양의 동물 가족이 길을 건넙니다. 느릿느릿 움직이지만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재빠른 이 동물.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설치류 카피바라입니다.
풀 숲에는 사슴과 노루들이 자유롭게 거닐고, 개미핥기도 이곳 판타날에서는 그리 낯선 존재가 아닙니다. 아메리카 여우 코요테와 '따투'라 불리는 남미 아르마딜로도 판타날습지의 또다른 주인들입니다.
판타날 습지는 세계에서 악어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입니다. 먹잇감이 풍부하다 보니 개체 수도 많고, 그러다 보니 생생하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커다란 악어를, 수쿠리(Sucuri)라 불리는 브라질 구렁이가 칭칭 감고 있습니다. 벌써 몇시간 째 힘겨루기를 했지만 잡아먹기엔 악어가 너무 컸던지 또아리를 풀고 재빨리 달아납니다.
<인터뷰>에지우손(판타날 주민): “어린 수쿠리(브라질 구렁이)가 사냥 연습을 했던 것 같습니다.“
수풀이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가자, 섬뜩한 느낌의 동물과 마주칩니다. 바로 판타날 습지의 진정한 강자, 재규어입니다. 배고픈 재규어가 카피바라 새끼를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현지어로 '옹사(onca)'라 불리는 판타날 재규어는 습지 먹이사슬의 최고점에 있습니다. 이 '옹사'들이 많다 해서 판타날은 '옹사의 땅' 즉, '재규어의 땅'으로도 불립니다.
브라질과 파라과이, 볼리비아에 걸쳐 24만㎢ 넓이로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이 판타날 습지는 그야말로 생명체의 보고입니다. 포유류와 파충류 3백여 종, 조류 660여 종, 어류 4백여 종 등 지구상에 보고된 종의 20% 정도가 이곳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보다 더 큰 세계 최대의 습지인 이곳 판타날은 그러나 속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1,500배가 넘는 광대한 면적의 습지가 각종 개발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환경 경찰이 위성을 통해 감시한 의심지역, 경찰과 함께 숲 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잘려나간 나무들이 여기저기에 쌓여 있습니다.
<인터뷰>호나우두 실바(브라질 환경 경찰관): “주로 사유지에서 불법행위가 일어나다 보니 접근이 쉽지 않고, 적발하기도 어렵습니다.”
드넓은 판타날 벌판에 연기가 자욱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거센 불길이 수풀을 온통 집어 삼키고 있습니다. 대지를 태우는 이 불, 수풀을 불태워 없앤 뒤 농경지로 바꾸기 위해 토지주가 일부러 불을 놓은 겁니다.
<인터뷰>에지르(판타날 관광 안내인): “판타날에서는 화재 때문에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누군가 불을 통제하다가도 나중에 걷잡을 수 없이 번져 큰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벌판 이곳 저곳에 크고 작은 불들이 연신 피어 오릅니다.
<인터뷰>엘모(판타날 주민): “쌀농사에 방해되는 해충들과 쥐 같은 동물들을 죽이기 위해 일부러 불을 놓는 거죠.”
판타날에서는 건기에, 경찰에 보고되는 화재발생 건수가 주말에만 백여 건, 해마다 평균 1,200여 건이 넘습니다. 특히 올들어서는 지난해보다 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나무가 잘려 나가고 수풀들이 불길에 훼손되면서 물길도 말라가고 있습니다. 비가 안오는 건기에도 어느 정도 물이 남아 있던 하천들이 요즘은 땅이 쩍쩍 갈라질 정도로 바짝 말라가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판타날 습지에선 새소리 대신 기계음 소리가 더 자주 들리고 있습니다.
판타날의 습지가 줄어드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이와같은 대규모 농지 개간입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대부분의 사유지에서 개간이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습니다.
나무를 베내고, 수풀을 태워 농지를 만드면서 원형 그대로의 숲과 습지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판타날 지역에만 파젠다로 불리는 개인 농장들이 만여 곳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들 농장 대부분은 소떼와 양을 목초지에 방목하는 축산농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일부 대규모 파젠다 농장들은 수익성을 좇아 쌀농사 같은 기계 영농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호베르토 코엘류(판타날 농장주): “우리 농장의 가장 큰 사업은 쌀 생산입니다. 다른 지역에 팔고 있어요. 그 다음이 소를 키우는 축산입니다.”
논농사의 핵심은 원할한 물공급. 이를 위해 곳곳에 농업용 운하를 만들어 하천의 물길을 인위적으로 돌리다 보니 자연습지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한 때 판타날 습지엔 5천 마리가 넘는 재규어들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900년 이후 불과 30년 전까지 재규어 사냥은 합법이었고, 수많은 재규어들이 희생됐습니다. 현재는 불과 천마리도 안되는 것으로 브라질 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엔리케 코스타(재규어(옹사) 연구가): “판타날이 파라과이강 상류의 워낙 외진 데 있어 감시를 덜 받았고, 숲도 많이 파괴돼서 재규어(옹사) 개체수가 많이 준 것으로 보입니다.”
남미 재규어, 옹사들은 최근 '송아지'라는 또 다른 강력한 적을 만났습니다. 판타날에 농장이 늘면서 농장 송아지들이 재규어들의 밥이 됐습니다.
<인터뷰>엘리자베스 코엘류(농장주): “송아지가 태어나면 재규어(옹사)들이 접근해서 잡아먹거나, 재규어 새끼들에게 사냥훈련을 시키기 위해 죽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역설적으로 재규어의 희생을 키우고 있습니다. 재규어들이 송아지 사냥을 하다 농장주들의 총에 맞아 죽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와 풀, 물과 바람의 땅. 지상 최대의 습지 판타날은 점차 줄어들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불과 50년 후면 더 이상 습지라고도 부를 수 없는 땅으로 전락할 것이란 경고도 나왔습니다. 판타날이 없다면 멸종돼 가는 남미 재규어, 옹사들이 설 땅도 더 이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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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전식 기자 jspa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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