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경매시장, 그리스

입력 2012.08.1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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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연극에서 희극과 대조되는 ‘비극’은 고대 그리스를 그 기원으로 하고 있는데요, 이런 그리스가 재정 위기로 인해 지금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비극에 젖어있습니다.

예, 그리스 정부는 구제금융의 조건을 완화시키기 위한 자구책으로, 사회기반시설을 포함한 국유재산들을 대거 판다고 매물로 내놨고, 가계는 가계대로 가재도구까지 시장에 들고 나오는 형편입니다.

실업에, 마약에, 먹을 식량마저 부족해진 그리스의 비극, 정성호 순회특파원이 그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구 문명의 요람이자, 민주주의의 발상지...소크라테스와 같은 수많은 현인은 물론 신화 속 수많은 신들의 영혼을 간직한 발칸반도 남단의 나라 그리스. 하지만, 재정위기는 그리스를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아테네 인근의 피레우스 항. 유럽에서 승객이 가장 많은 항구답게 초대형 크루즈선이 즐비합니다. 그리스 제 1의 항구인 이 곳은 그러나 그리스인들의 손을 떠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정부가 해외에 팔기 위해 내놨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드미트리스(피레우스항 직원): “이 항구는 그리스인들 것입니다. 여기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해요. IMF나 EU 등 트로이카처럼 우릴 통제하는 외국인들이 가져가선 안 됩니다.”

그리스 정부는 28개 국영기업을 민영화 대상으로 꼽아놨습니다. 상하수도와 전력, 통신을 비롯해 공항과 철도, 항만 등 거의 모든 사회기반시설이 포함됐습니다. 심지어 로또 발행업체 지분까지...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팔 수 있는 건 다 팔겠다는 입장이지만, 거래는 변변찮습니다. 시위가 한창인 아테네 도심거리...정부가 34%의 지분을 보유한 우체국 은행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급속화 민영화 추진에 대한 역풍도 거셉니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 때문에 매각 대상이 된 기업 노조는 물론 노동계 전체가 반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엔 헐값 매각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를 트로이카에 팔고 있다. 우리가 답할 수 있는 건 투쟁 뿐이다.”

헐값 매각에 반대하는 시위입니다.

<인터뷰>게오르기우스(그리스 우체국은행 노조 위원장): "우리 은행을 대형은행에 매각한다는 보도가 최근 있었어요. 이건 특혜입니다. 항의할 수 밖에 없는 이유죠."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매각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인터뷰>무따피스(그리스 전국노조협회 사무총장): "매각이 되면 임금이 줄고, 해고의 가능성도 높아요. 하지만 해고를 해도 투자는 하지 않을 겁니다."

공장이 밀집한 아테네 인근의 스키마따리 지역. 문이 닫힌 한 공장을 찾아갔습니다.

<녹취>깔라브리스(경비원): "공장도 폐쇄됐죠. 저는 건물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문 닫은 지 10개월 정도 됐어요."

말린 과일을 판매했던 이 회사는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폐업했습니다. 먼지를 뒤집어 쓴 차량과 시설만이 분주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할 뿐입니다. 8개월이나 월급을 받지 못했던 70여 명의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완전한 실업자로 전락했습니다.

<녹취>깔라브리스(경비원): "이 근처의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어요. 공업지역인데, 문을 많이 닫았죠. 경제 위기 때문이에요."

이 지역 전체가 재정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천여 개의 공장 가운데 가동 중인 곳은 70%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폐업이 잇따르면서 그리스의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 2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실업자일 정도로 청년 실업은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28살 마르가니또 씨. 은행에서 일을 하다 끝내 재계약을 거부당했습니다. 그 뒤 1년 동안 그리스는 물론 해외 기업까지 무려 400군데가 넘는 곳에 원서를 냈지만, 결과는 모두 불합격이었습니다.

<인터뷰>마르가니또(구직자): "이력서를 보냈는데, 원서를 받았다는 연락은 물론, 아예 아무런 답이 없을 때가 많아요. 그럴 땐 정말 너무 힘들어요."

'이제는 매일 아침 눈을 뜨기조차 두렵다'는 이 실업자는. 어쩔 수 없이 부모 집에 얹혀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연금이 집안 수입의 전부.겨우 미안한 마음을 털어 놓습니다.

<인터뷰>마르가니또(구직자): "저도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럴 땐 아버지께 돈을 달라고 하는데, 가슴이 아파요. 28살이나 됐는데,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경제 위기의 그림자는 그리스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습니다. 아테네 엑살히야 거리. 마약을 만들거나 사고파는 건 예삿일입니다. 인근 골목은 온통 마약에 취한 듯 몸을 가누지 못하는 젊은이들 차집니다. 2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자신의 팔을 다리로 감 싼 채 손등에 마약을 투약합니다.

그 바로 뒤에서 태연하게 몸에 주사기를 꽂는 한 남성. 심지어 탁 트인 공원에서 버젓이 마약을 투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마약중독자들이 주사기를 돌려쓰면서 에이즈 환자도 늘었습니다.

올 5월까지 에이즈 판정을 받은 사람만 380여 명.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나 증가했습니다. 자살자도 급증해 삶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그리스인만 하루 평균 3명에 이릅니다. 재정 위기 이전보다 세 배 이상 높은 수치입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거리시장이 거의 끝날 무렵, 어디선가 나타난 가정주부들... 쓰레기통을 뒤져 야채와 과일 등을 주워 담습니다. 상인들이 버린 것들이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끼니를 거르는 것보단 존엄을 포기하기는 게 낫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아테네의 한 교회 앞...순서를 기다려 저마다 검은 봉지를 두 손에 받아듭니다. 이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설탕, 밀가루, 쌀, 통조림...한 단체가 음식 등 구호품을 배급하는 겁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한 여성. 세 아이를 둔 그는 물론 남편까지 모두 직장을 잃었습니다. 돈이 없어 구호품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소마 블라(구호 대상자): "구호품 말고는 전혀 수입이 없어요. 월세도 내야하고, 생활비도 필요한데. 빚까지 있어서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씩 5백여 명에게 음식이나 생필품이 전달됩니다.

<인터뷰>타게지스(헬레닉구호재단 책임자): "구호단체 아니면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현재 우리 말고도 여러 단체가 구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생계가 막막한 이들은 직접 거리로 나섭니다. 매일 열리는 벼룩시장...대부분 상인들이지만,
집에서 물건을 들고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작은 모형을 들고 나온 한 노인. 15유로, 우리돈 2만 원 정도에 팔 생각입니다.

<인터뷰>이나스타시(아테네 시민): "돈이 필요할 때마다 여기 나와요. 내 호주머니 속엔 지금 단 한 푼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사지 않네요."

각종 가전제품과 가구가 가득한 거리시장. 오히려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들이 전보다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인터뷰>아씨노도로스(시장 상인): “예전엔 연금이 없는 노인들이 궁여지책으로 물건을 팔았는데, 요즘엔 불행하게도 젊은이들이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자기 물건을 팔아요.”

그리스가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관광산업은 어떨까? 아테네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아크로폴리스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모신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곳입니다. 여느 때라면 긴 줄을 서야만 둘러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관광객이 크게 줄어든 겁니다. 기념품 가게들도 울상입니다. 많게는 50% 가량 매출이 떨어진 곳도 있습니다.

<인터뷰>에프띠미스(기념품가게 점원): “3,4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 위기 이후에 관광업이 쇠퇴했어요.”

이런 상황은 다른 곳도 마찬가집니다.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남부의 크레타 섬.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물론 그리스 로마신화에도 등장하는 크노소스 궁전 등 수많은 역사 유적지가 보존돼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았지만,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해변에 위치한 한 대형 호텔은 자물쇠가 굳게 잠긴 채 적막합니다. 관리인조차 없습니다. 부서진 집기만 어지러이 널린 채 폐허로 변했습니다. 2년 전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뒤 방치된 겁니다. 이 섬에 있는 호텔 천 5백여 개 가운데 50여 곳이 새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문을 연 호텔의 사정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최대 성수기를 맞아 대부분의 호텔들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객실요금의 20%를 깎아주는 등 각종 할인 정책을 펴고 있지만, 그 효과는 신통치 않습니다.

올해 그리스를 찾는 관광객이 지난해보다 150만 명 정도 줄어들 것이란 비관 섞인 전망도 나옵니다.

<인터뷰>마리따 카라치(헤라클리온 호텔협회 부회장): "올해 초부터 관광산업이 좋이 않았습니다. 성수기 관광객이 20% 줄었으니까요. 그리스에겐 치명적인 거죠."

덩달아 부동산 가격도 전보다 3분의 1가량 떨어졌지만, 팔려는 사람만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엔 풍광이 뛰어난 그리스의 섬 수십 곳까지 매물로 나왔습니다.

<인터뷰>아르테미스 마브라키(헬레닉 부동산중개인협회 회장): "대부분 개인이 소유한 섬입니다. 1,000~10,000㎡ 규모인데,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이 섬들을 많이 팔려고 하죠."

어쩔 수 없이 몸집을 줄여 돈을 마련해야 하는 그리스 정부. 그 뒤엔 '재정위기'라는 긴 터널에 갇혀 신음하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팔고 싶어도,..돈을 구하고 싶어도...이들의 운명은 이미 그리스의 손 밖에 놓여 있습니다. 당장 천 3백억 유로, 우리돈 180조 원의 2차 구제금융 조건을 전전긍긍하며 기다려야 하는 게 오늘 그리스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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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대한 경매시장, 그리스
    • 입력 2012-08-19 10:52:46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연극에서 희극과 대조되는 ‘비극’은 고대 그리스를 그 기원으로 하고 있는데요, 이런 그리스가 재정 위기로 인해 지금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비극에 젖어있습니다. 예, 그리스 정부는 구제금융의 조건을 완화시키기 위한 자구책으로, 사회기반시설을 포함한 국유재산들을 대거 판다고 매물로 내놨고, 가계는 가계대로 가재도구까지 시장에 들고 나오는 형편입니다. 실업에, 마약에, 먹을 식량마저 부족해진 그리스의 비극, 정성호 순회특파원이 그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구 문명의 요람이자, 민주주의의 발상지...소크라테스와 같은 수많은 현인은 물론 신화 속 수많은 신들의 영혼을 간직한 발칸반도 남단의 나라 그리스. 하지만, 재정위기는 그리스를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아테네 인근의 피레우스 항. 유럽에서 승객이 가장 많은 항구답게 초대형 크루즈선이 즐비합니다. 그리스 제 1의 항구인 이 곳은 그러나 그리스인들의 손을 떠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정부가 해외에 팔기 위해 내놨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드미트리스(피레우스항 직원): “이 항구는 그리스인들 것입니다. 여기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해요. IMF나 EU 등 트로이카처럼 우릴 통제하는 외국인들이 가져가선 안 됩니다.” 그리스 정부는 28개 국영기업을 민영화 대상으로 꼽아놨습니다. 상하수도와 전력, 통신을 비롯해 공항과 철도, 항만 등 거의 모든 사회기반시설이 포함됐습니다. 심지어 로또 발행업체 지분까지...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팔 수 있는 건 다 팔겠다는 입장이지만, 거래는 변변찮습니다. 시위가 한창인 아테네 도심거리...정부가 34%의 지분을 보유한 우체국 은행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급속화 민영화 추진에 대한 역풍도 거셉니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 때문에 매각 대상이 된 기업 노조는 물론 노동계 전체가 반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엔 헐값 매각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를 트로이카에 팔고 있다. 우리가 답할 수 있는 건 투쟁 뿐이다.” 헐값 매각에 반대하는 시위입니다. <인터뷰>게오르기우스(그리스 우체국은행 노조 위원장): "우리 은행을 대형은행에 매각한다는 보도가 최근 있었어요. 이건 특혜입니다. 항의할 수 밖에 없는 이유죠."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매각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인터뷰>무따피스(그리스 전국노조협회 사무총장): "매각이 되면 임금이 줄고, 해고의 가능성도 높아요. 하지만 해고를 해도 투자는 하지 않을 겁니다." 공장이 밀집한 아테네 인근의 스키마따리 지역. 문이 닫힌 한 공장을 찾아갔습니다. <녹취>깔라브리스(경비원): "공장도 폐쇄됐죠. 저는 건물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문 닫은 지 10개월 정도 됐어요." 말린 과일을 판매했던 이 회사는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폐업했습니다. 먼지를 뒤집어 쓴 차량과 시설만이 분주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할 뿐입니다. 8개월이나 월급을 받지 못했던 70여 명의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완전한 실업자로 전락했습니다. <녹취>깔라브리스(경비원): "이 근처의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어요. 공업지역인데, 문을 많이 닫았죠. 경제 위기 때문이에요." 이 지역 전체가 재정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천여 개의 공장 가운데 가동 중인 곳은 70%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폐업이 잇따르면서 그리스의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 2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실업자일 정도로 청년 실업은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28살 마르가니또 씨. 은행에서 일을 하다 끝내 재계약을 거부당했습니다. 그 뒤 1년 동안 그리스는 물론 해외 기업까지 무려 400군데가 넘는 곳에 원서를 냈지만, 결과는 모두 불합격이었습니다. <인터뷰>마르가니또(구직자): "이력서를 보냈는데, 원서를 받았다는 연락은 물론, 아예 아무런 답이 없을 때가 많아요. 그럴 땐 정말 너무 힘들어요." '이제는 매일 아침 눈을 뜨기조차 두렵다'는 이 실업자는. 어쩔 수 없이 부모 집에 얹혀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연금이 집안 수입의 전부.겨우 미안한 마음을 털어 놓습니다. <인터뷰>마르가니또(구직자): "저도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럴 땐 아버지께 돈을 달라고 하는데, 가슴이 아파요. 28살이나 됐는데,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경제 위기의 그림자는 그리스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습니다. 아테네 엑살히야 거리. 마약을 만들거나 사고파는 건 예삿일입니다. 인근 골목은 온통 마약에 취한 듯 몸을 가누지 못하는 젊은이들 차집니다. 2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자신의 팔을 다리로 감 싼 채 손등에 마약을 투약합니다. 그 바로 뒤에서 태연하게 몸에 주사기를 꽂는 한 남성. 심지어 탁 트인 공원에서 버젓이 마약을 투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마약중독자들이 주사기를 돌려쓰면서 에이즈 환자도 늘었습니다. 올 5월까지 에이즈 판정을 받은 사람만 380여 명.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나 증가했습니다. 자살자도 급증해 삶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그리스인만 하루 평균 3명에 이릅니다. 재정 위기 이전보다 세 배 이상 높은 수치입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거리시장이 거의 끝날 무렵, 어디선가 나타난 가정주부들... 쓰레기통을 뒤져 야채와 과일 등을 주워 담습니다. 상인들이 버린 것들이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끼니를 거르는 것보단 존엄을 포기하기는 게 낫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아테네의 한 교회 앞...순서를 기다려 저마다 검은 봉지를 두 손에 받아듭니다. 이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설탕, 밀가루, 쌀, 통조림...한 단체가 음식 등 구호품을 배급하는 겁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한 여성. 세 아이를 둔 그는 물론 남편까지 모두 직장을 잃었습니다. 돈이 없어 구호품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소마 블라(구호 대상자): "구호품 말고는 전혀 수입이 없어요. 월세도 내야하고, 생활비도 필요한데. 빚까지 있어서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씩 5백여 명에게 음식이나 생필품이 전달됩니다. <인터뷰>타게지스(헬레닉구호재단 책임자): "구호단체 아니면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현재 우리 말고도 여러 단체가 구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생계가 막막한 이들은 직접 거리로 나섭니다. 매일 열리는 벼룩시장...대부분 상인들이지만, 집에서 물건을 들고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작은 모형을 들고 나온 한 노인. 15유로, 우리돈 2만 원 정도에 팔 생각입니다. <인터뷰>이나스타시(아테네 시민): "돈이 필요할 때마다 여기 나와요. 내 호주머니 속엔 지금 단 한 푼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사지 않네요." 각종 가전제품과 가구가 가득한 거리시장. 오히려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들이 전보다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인터뷰>아씨노도로스(시장 상인): “예전엔 연금이 없는 노인들이 궁여지책으로 물건을 팔았는데, 요즘엔 불행하게도 젊은이들이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자기 물건을 팔아요.” 그리스가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관광산업은 어떨까? 아테네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아크로폴리스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모신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곳입니다. 여느 때라면 긴 줄을 서야만 둘러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관광객이 크게 줄어든 겁니다. 기념품 가게들도 울상입니다. 많게는 50% 가량 매출이 떨어진 곳도 있습니다. <인터뷰>에프띠미스(기념품가게 점원): “3,4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 위기 이후에 관광업이 쇠퇴했어요.” 이런 상황은 다른 곳도 마찬가집니다.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남부의 크레타 섬.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물론 그리스 로마신화에도 등장하는 크노소스 궁전 등 수많은 역사 유적지가 보존돼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았지만,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해변에 위치한 한 대형 호텔은 자물쇠가 굳게 잠긴 채 적막합니다. 관리인조차 없습니다. 부서진 집기만 어지러이 널린 채 폐허로 변했습니다. 2년 전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뒤 방치된 겁니다. 이 섬에 있는 호텔 천 5백여 개 가운데 50여 곳이 새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문을 연 호텔의 사정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최대 성수기를 맞아 대부분의 호텔들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객실요금의 20%를 깎아주는 등 각종 할인 정책을 펴고 있지만, 그 효과는 신통치 않습니다. 올해 그리스를 찾는 관광객이 지난해보다 150만 명 정도 줄어들 것이란 비관 섞인 전망도 나옵니다. <인터뷰>마리따 카라치(헤라클리온 호텔협회 부회장): "올해 초부터 관광산업이 좋이 않았습니다. 성수기 관광객이 20% 줄었으니까요. 그리스에겐 치명적인 거죠." 덩달아 부동산 가격도 전보다 3분의 1가량 떨어졌지만, 팔려는 사람만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엔 풍광이 뛰어난 그리스의 섬 수십 곳까지 매물로 나왔습니다. <인터뷰>아르테미스 마브라키(헬레닉 부동산중개인협회 회장): "대부분 개인이 소유한 섬입니다. 1,000~10,000㎡ 규모인데,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이 섬들을 많이 팔려고 하죠." 어쩔 수 없이 몸집을 줄여 돈을 마련해야 하는 그리스 정부. 그 뒤엔 '재정위기'라는 긴 터널에 갇혀 신음하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팔고 싶어도,..돈을 구하고 싶어도...이들의 운명은 이미 그리스의 손 밖에 놓여 있습니다. 당장 천 3백억 유로, 우리돈 180조 원의 2차 구제금융 조건을 전전긍긍하며 기다려야 하는 게 오늘 그리스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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