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태국의 ‘공공의 적’

입력 2012.08.2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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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요즘 태국에선 최대 ‘공공의 적’이 바로 마약입니다. 태국 남부의 젊은이들 사이에 천연 신종 마약이 유행병처럼 번져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예, 태국 남부의 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뭇잎이 이 신종 마약으로 둔갑하는 것인데요, 마약에 취한 젊은이들이 테러세력에 이용까지 당하고 있어 그 폐혜가 더욱 크다고 합니다.
태국의 새로운 ‘공공의 적’, 한재호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빽빽하게 우거진 태국 최남단 사툰 주의 한 산림. 마을 주민 10여 명이 자동 소총과 무전기를 들고 산속으로 들어갑니다. 나무 군락지를 지키려는 자경 단원들입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섭씨 35도의 무더위. 나무다리를 건너고.. 깍아지른 바위를 넘어..2시간을 걸었더니 동굴너머로 숲 하나가 펼쳐집니다.

크라톰으로 통하는 열대관목 미트라지나 나무 집단 자생지입니다. 잎을 씹으면 강한 쓴맛이 돕니다. 오래전부터 태국 남부지역 농민들이 힘이 생긴다고 믿어 습관처럼 씹곤했습니다.

<인터뷰>솜칫(마을 자경단원):“이 걸 먹으면 힘이 나니까 뙤약볕 아래서도 일을 계속할 수 있어요. 머리도 맑아지고요.”

이 나뭇잎이 근래 들어 '크라톰 칵테일'이라는 마약으로 돌변해 젊은이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크라톰은 태국 남부 지역 곳곳에 광범위하게 자생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잎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

태국 남단 얄라주의 한 마을. 젊은이들이 모여 크라톰 칵테일을 만들고 있습니다. 잎을 여러장 잘개 쪼개 그릇에 넣고 물을 부어 달입니다.

이른바 마시는 마약으로 나뭇잎만 있으면 손쉽게 만들어 마실 수 있습니다. 제조과정이 극히 간단해 이 지역 젊은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돕니다.

<인터뷰>마을 청년:"이걸 마시게 되면 정신이 멍해졌다가 맑아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졸리다가 다시 힘이 생겨요. "

태국정부는 크라톰 칵테일을 마약으로 분류해 강력히 단속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은 마약이 아닌 그저 차를 마시는 정도로 생각해 중독자가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태국 정부 조사결과 최남단 파타니와 얄라, 나라티왓 3개주의 10대 청소년 94%가 크라톰을 먹는 걸로 나타났을 정돕니다. 크라톰 칵테일에 중독된 젊은이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잎을 따러 숲에 들어갑니다.

자경 단원들은 바로 이들을 찾아내려고 숲속에서 매복을 하거나 하루 몇 차례 식 순찰을 돕니다. 소총으로 무장한 채 잠입하는 경우도 있어 때론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인터뷰>분촉(자경단원):"이쪽 동굴로 들어와서 숲으로 들어가 잎을 딴 다음 다시 이 길로 동굴을 빠져 나갑니다."

숲 여기 저기에 거대한 통나무들이 넘어져 있습니다. 크라톰 나무를 베어 넘어뜨린 뒤 잎을 모조리 훑어갔습니다. 이전엔 큰 나무들이 많았지만 잎을 따라온 사람들의 손에 죄다 잘려 지금은 작은 나무들밖에 없습니다.

<인터뷰>빤야(자경단장):"이 곳이 크라톰 나무로 유명하니까 여기서 잎을 채취해서 남부 3개 지역으로 반출해 가는 겁니다."

크라톰 잎은 보통 20장 단위로 묶어 파는 데 우리돈으로 3천 원 정도면 삽니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은밀한 장소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적발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깊은 숲 속에서, 때론 도심의 건물 안에서도 거래가 이뤄집니다. 트럭에 잎을 가득 싣고 가다가 경찰의 추적 단속에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태국 최남단 곳곳에선 매일같이 경찰과 크라톰 밀매꾼과의 숨바꼭질이 계속됩니다.

<녹취>경찰:“어디로 가져 가죠?”
<녹취>크라톰 운반자:“글쎄요..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크라톰 단속엔 군도 합세합니다. 태국 남단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육군 제4군은 마약 단속 전담팀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마약 차단에 군까지 나선 것은 테러가 일상화된 태국 최남단 지역만의 절박한 이유가 있습니다. 테러 세력과 마약 간의 연관성 때문입니다.

<인터뷰>수완(태국 육군제4군 마약단속팀장):"테러세력이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을 테러에 이용하고 있는 걸로 저희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오토바이로 도로 순찰을 하던 군인들을 따라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바로 옆에서 소총을 난사합니다. 군인들을 확인 사살까지 하고, 총을 약탈한 뒤, 이번엔 뒤에 오던 군인들에게
또 총질을 합니다.

이슬람 분리주의 세력의 소행으로 보이는 이 대낮 테러로 군인 4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2명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런 테러가 태국 최남단에서 거의 매일 일어나다시피 합니다.

지난 2004년 이슬람 분리주의 운동이 본격화된 이후 지금까지 군인과 경찰, 교사와 승려,일반 주민 등 5천 여명이 테러에 희생됐습니다.

태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크라톰과 같은 마약이 테러 세력의 자금줄로 전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태국 군은 테러 세력이 마약에 직접 손대거나 마약상과의 공생을 통해 테러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의심합니다. 운반과 거래도 치밀합니다.

어느 한 곳에서 테러를 저질러 군과 경찰의 눈이 그 쪽으로 쏠리면 그 틈에 다른 길로 마약을 운반하는 수법을 종종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찰은 아예 크라톰 나무를 눈에 띄는 족족 베어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싹을 잘라 마약이 되는 근원을 없애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만만찮습니다. 나무가 워낙 많기도 하지만 환경단체들의 반대가 더 큰 걸립돌입니다. 단속을 효과적으로 하면 되지, 왜 숲을 망가뜨리냐는 겁니다.

그래서 태국 군은 좀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마약 전담팀 요원들을 마을마다 파견해 이슬람 젊은이들에게 크라톰의 위험성과 위법성을 주지시킵니다.

<인터뷰>나롱(태국육군 제4군 마약단속팀):"날씨가 더워도 더위를 느끼지 못하고 일을 계속하게되니까 사람들은 크라톰을 아주 특별한 약으로 착각하는 거죠."

습관적으로 크라톰 마약을 만들어 먹는 젊은이들도 이젠 크라톰이 마약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크라톰을 끊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합니다. 한 때 크라톰을 약으로 생각해 젊은이들을 말리지 않았던 어른들도 그 폐해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하사나(마을 주민):"크라톰을 복용하지 못하게 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젊은이들이 보통 약처럼 마시게 돼 결국 죽고 말거예요."

태국의 새로운 재앙, 공공의 적으로 떠오른 신종마약 크라톰 칵테일. 이슬람 테러 세력과 연계돼 더욱 위험한 파괴자. 지금 태국 최남단에선 이를 막는 쪽과 퍼뜨리는 쪽의 싸움이 테러와의 전쟁 못지않게 치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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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리포트] 태국의 ‘공공의 적’
    • 입력 2012-08-26 09:29:38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요즘 태국에선 최대 ‘공공의 적’이 바로 마약입니다. 태국 남부의 젊은이들 사이에 천연 신종 마약이 유행병처럼 번져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예, 태국 남부의 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뭇잎이 이 신종 마약으로 둔갑하는 것인데요, 마약에 취한 젊은이들이 테러세력에 이용까지 당하고 있어 그 폐혜가 더욱 크다고 합니다. 태국의 새로운 ‘공공의 적’, 한재호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빽빽하게 우거진 태국 최남단 사툰 주의 한 산림. 마을 주민 10여 명이 자동 소총과 무전기를 들고 산속으로 들어갑니다. 나무 군락지를 지키려는 자경 단원들입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섭씨 35도의 무더위. 나무다리를 건너고.. 깍아지른 바위를 넘어..2시간을 걸었더니 동굴너머로 숲 하나가 펼쳐집니다. 크라톰으로 통하는 열대관목 미트라지나 나무 집단 자생지입니다. 잎을 씹으면 강한 쓴맛이 돕니다. 오래전부터 태국 남부지역 농민들이 힘이 생긴다고 믿어 습관처럼 씹곤했습니다. <인터뷰>솜칫(마을 자경단원):“이 걸 먹으면 힘이 나니까 뙤약볕 아래서도 일을 계속할 수 있어요. 머리도 맑아지고요.” 이 나뭇잎이 근래 들어 '크라톰 칵테일'이라는 마약으로 돌변해 젊은이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크라톰은 태국 남부 지역 곳곳에 광범위하게 자생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잎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 태국 남단 얄라주의 한 마을. 젊은이들이 모여 크라톰 칵테일을 만들고 있습니다. 잎을 여러장 잘개 쪼개 그릇에 넣고 물을 부어 달입니다. 이른바 마시는 마약으로 나뭇잎만 있으면 손쉽게 만들어 마실 수 있습니다. 제조과정이 극히 간단해 이 지역 젊은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돕니다. <인터뷰>마을 청년:"이걸 마시게 되면 정신이 멍해졌다가 맑아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졸리다가 다시 힘이 생겨요. " 태국정부는 크라톰 칵테일을 마약으로 분류해 강력히 단속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은 마약이 아닌 그저 차를 마시는 정도로 생각해 중독자가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태국 정부 조사결과 최남단 파타니와 얄라, 나라티왓 3개주의 10대 청소년 94%가 크라톰을 먹는 걸로 나타났을 정돕니다. 크라톰 칵테일에 중독된 젊은이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잎을 따러 숲에 들어갑니다. 자경 단원들은 바로 이들을 찾아내려고 숲속에서 매복을 하거나 하루 몇 차례 식 순찰을 돕니다. 소총으로 무장한 채 잠입하는 경우도 있어 때론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인터뷰>분촉(자경단원):"이쪽 동굴로 들어와서 숲으로 들어가 잎을 딴 다음 다시 이 길로 동굴을 빠져 나갑니다." 숲 여기 저기에 거대한 통나무들이 넘어져 있습니다. 크라톰 나무를 베어 넘어뜨린 뒤 잎을 모조리 훑어갔습니다. 이전엔 큰 나무들이 많았지만 잎을 따라온 사람들의 손에 죄다 잘려 지금은 작은 나무들밖에 없습니다. <인터뷰>빤야(자경단장):"이 곳이 크라톰 나무로 유명하니까 여기서 잎을 채취해서 남부 3개 지역으로 반출해 가는 겁니다." 크라톰 잎은 보통 20장 단위로 묶어 파는 데 우리돈으로 3천 원 정도면 삽니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은밀한 장소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적발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깊은 숲 속에서, 때론 도심의 건물 안에서도 거래가 이뤄집니다. 트럭에 잎을 가득 싣고 가다가 경찰의 추적 단속에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태국 최남단 곳곳에선 매일같이 경찰과 크라톰 밀매꾼과의 숨바꼭질이 계속됩니다. <녹취>경찰:“어디로 가져 가죠?” <녹취>크라톰 운반자:“글쎄요..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크라톰 단속엔 군도 합세합니다. 태국 남단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육군 제4군은 마약 단속 전담팀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마약 차단에 군까지 나선 것은 테러가 일상화된 태국 최남단 지역만의 절박한 이유가 있습니다. 테러 세력과 마약 간의 연관성 때문입니다. <인터뷰>수완(태국 육군제4군 마약단속팀장):"테러세력이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을 테러에 이용하고 있는 걸로 저희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오토바이로 도로 순찰을 하던 군인들을 따라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바로 옆에서 소총을 난사합니다. 군인들을 확인 사살까지 하고, 총을 약탈한 뒤, 이번엔 뒤에 오던 군인들에게 또 총질을 합니다. 이슬람 분리주의 세력의 소행으로 보이는 이 대낮 테러로 군인 4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2명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런 테러가 태국 최남단에서 거의 매일 일어나다시피 합니다. 지난 2004년 이슬람 분리주의 운동이 본격화된 이후 지금까지 군인과 경찰, 교사와 승려,일반 주민 등 5천 여명이 테러에 희생됐습니다. 태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크라톰과 같은 마약이 테러 세력의 자금줄로 전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태국 군은 테러 세력이 마약에 직접 손대거나 마약상과의 공생을 통해 테러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의심합니다. 운반과 거래도 치밀합니다. 어느 한 곳에서 테러를 저질러 군과 경찰의 눈이 그 쪽으로 쏠리면 그 틈에 다른 길로 마약을 운반하는 수법을 종종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찰은 아예 크라톰 나무를 눈에 띄는 족족 베어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싹을 잘라 마약이 되는 근원을 없애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만만찮습니다. 나무가 워낙 많기도 하지만 환경단체들의 반대가 더 큰 걸립돌입니다. 단속을 효과적으로 하면 되지, 왜 숲을 망가뜨리냐는 겁니다. 그래서 태국 군은 좀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마약 전담팀 요원들을 마을마다 파견해 이슬람 젊은이들에게 크라톰의 위험성과 위법성을 주지시킵니다. <인터뷰>나롱(태국육군 제4군 마약단속팀):"날씨가 더워도 더위를 느끼지 못하고 일을 계속하게되니까 사람들은 크라톰을 아주 특별한 약으로 착각하는 거죠." 습관적으로 크라톰 마약을 만들어 먹는 젊은이들도 이젠 크라톰이 마약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크라톰을 끊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합니다. 한 때 크라톰을 약으로 생각해 젊은이들을 말리지 않았던 어른들도 그 폐해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하사나(마을 주민):"크라톰을 복용하지 못하게 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젊은이들이 보통 약처럼 마시게 돼 결국 죽고 말거예요." 태국의 새로운 재앙, 공공의 적으로 떠오른 신종마약 크라톰 칵테일. 이슬람 테러 세력과 연계돼 더욱 위험한 파괴자. 지금 태국 최남단에선 이를 막는 쪽과 퍼뜨리는 쪽의 싸움이 테러와의 전쟁 못지않게 치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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