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의 현장, 시리아를 가다

입력 2012.08.2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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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1년하고도 반이 지나갈만큼 긴 시간동안 시리아가 총소리, 포탄소리에 묻혀 있습니다. 나날이 희생자가 늘고 있는 이 시리아 내전 현장에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kbs 특파원이 취재를 하고 왔습니다.

예, 파괴된 도시, 그리고 고향을 등지고 이웃나라로 탈출하는 난민들, 전쟁은 이만큼 무서운 것인데, 21세기에 이런 참혹한 현장이 바로 시리아에 있었습니다.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난민들을 비집고 역으로 시리아 국경을 넘어간 이영석 특파원이 이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시리아 국경...시리아 땅으로 들어서자 반정부군의 깃발이 펄럭입니다. 한 달 전, 반정부군인 자유 시리아군은 치열한 교전 끝에 정부군이 지키던 이 국경을 장악했습니다. 이제 이 땅은 아사드 정권의 압제에서 벗어난 자유의 땅이 된 것입니다.

인구 5만의 시리아 최북단 국경 도시 아자즈. 도시 초입의 주유소 건물이 불에 그을린 채 심하게 부서져 있습니다. 정부군과 반정부군 사이에 벌어진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입니다.

조금 더 도시 안쪽으로 들어가자 포탄에 벽이 뚫리고 무너진 건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불에 탄 정부군의 탱크도 곳곳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정부군이 도시 길목을 장악하기 위해 설치했던 검문소에도 부서진 탱크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습니다.

<인터뷰>무아타즈(시리아 아자즈 주민):"이 도시는 알 아사드 군대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한 달 반전쯤 자유 시리아 군이 와서 전투 끝에 해방시켰습니다."

정부군에 비해 열악한 무기를 들고 싸웠지만 반정부군 병사들은 승리했고, 도시를 장악했습니다.

<인터뷰>아부 앗틴(자유 시리아군 병사):"보다시피 이 도시를 차지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고, (아사드 정권 퇴출 투쟁을) 멈추지도 포기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도시를 빼앗긴 정부군은 수시로 전투기까지 동원해 보복에 나서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도착하기 하루 전에도 정부군이 민가를 공습했습니다.

이곳은 어제도 정부군에 의해 대대적인 공습이 이뤄졌습니다. 모두 80여 명이 숨지고
150명 넘게 다쳤습니다.

희생자는 여성과 어린이 등 대부분 민간인이었습니다. 도시 중심부.... 멀쩡한 건물은 거의 없습니다. 내전이 확산되면서 상당수 주민들이 이미 도시를 탈출했고, 어쩔 수 없이 남은 사람들은 하루하루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인터뷰>아흐마드 무사(아자즈 주민):"저격수들이 움직이는 것이면 다 총을 쐈습니다. 보다시피 저도 이곳을 다쳤습니다."

이같은 시리아의 참상은 이웃 터키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터키의 한 종합병원. 응급 환자를 실은 구급차 한 대가 다급하게 도착합니다. 환자는 시리아에서 부상을 입은 반정부군 병사들.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신음을 토해냅니다. 이 병원엔 하루에도 수십 명씩 시리아 내전 환자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인터뷰>아드난(시리아 환자 가족):"시리아에서는 환자들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부상자를 공격하는 건 범죄아닙니까? 시리아 정부군은 병원도 포격하고 우리가 세운 야전병원도 파괴했습니다."

국경을 넘는 피난길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일어납니다.

<인터뷰>파하드(시리아 난민):"전투기와 헬기를 피해 달아나고 있는데 공격을 받았습니다. 제 아들이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끝내 숨졌습니다."

취재진이 인터뷰를 시작하자 병원 앞은 금세 시리아 정부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합니다.

<인터뷰>아부 만수르(시리아 난민):"시리아 정권은 여성들까지 공격합니다. 아무런 인간적 감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잔인한 테러리스트들입니다. 어떤 말로도 그들을 표현하기 힘듭니다. 악마가 그들보다 낫습니다."

시리아는 이웃 나라 중 터키와 가장 넓게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양국 국경 길이는 900킬로미터가 넘습니다.

이곳 국경에서 시리아 제 2 도시 알레포까지는 직선 거리로 5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최근 알레포가 정부군과 반정부군 사이에 최대 격전지가 되면서 주민들의 탈출 행렬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터키의 한 국경 검문소. 시리아 번호판을 단 자동차들이 줄을 지어 입국 심사를 기다립니다. 내전을 피해 터키로 탈출하려는 시리아 난민들입니다.

<인터뷰>아부 칼리드(시리아 난민):"방금 시리아를 탈출했습니다. 가족들은 이틀 전에 먼저 보냈고 저는 짐을 챙겨 지금 오는 길입니다. 고향에서는 폭탄이 수시로 터져 살 수가 없습니다."

국경을 넘었지만 난민들의 표정은 아직도 굳어 있습니다. 시리아에 남은 가족이나 친척들이 혹시라도 해를 입을까 인터뷰를 거절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인터뷰>움므 무함마드(시리아 난민):"가족과 함께 왔습니다. 하지만 동생들은 (시리아에)남아 있습니다. 우리집 옆 건물이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폭탄이 비처럼 내렸거든요."

정식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경우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여권이나 돈이 없어 불법 월경을 한 사람들은 집단 난민촌에 수용되고 있습니다.

넓은 대지에 하얀색 텐트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터키 최남단에 있는 한 시리아 난민촌입니다.

이곳에 수용된 시리아 난민은 5천 명 정도. 잠자리를 배정받고 음식을 배급 받습니다. 하지만 정든 집을 떠나 남의 나라, 남의 땅에 살고 있는 난민들의 삶은 곤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무라드(시리아 난민):"필요한 것은 난민촌 밖으로 나가 구입해 돌아옵니다. 경제적으로 사정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적어도 전쟁은 피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난민촌이 터키에만 모두 9개. 공식적인 난민 수만 6만 명에 달하고 있고, 이 수는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올해 72살인 무함마드 씨는 이 난민촌 근처 민가에 머물고 있습니다. 나흘 전, 60킬로미터 떨어진 이들리브 고향집에서 꼬박 24시간을 걸어 국경을 넘었다고 합니다. 고향집엔 아흔살의 노모와 가족이 남았습니다.

<인터뷰>무함마드 파디르(시리아 난민/72살):"우리집이 탱크 포격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돈도 귀중품도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가족들의 안전이 제일 걱정되고 중요합니다."

시리아 난민 사이에는 자유 시리아군 소속 병사들도 섞여 있습니다. 이들은 수시로 국경을 넘어 전투에 참여하거나, 필요한 물자와 의약품을 자유시리아군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아부 알리(자유 시리아군 지휘관):"강대국들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거나 적어도 양질의 무기를 제공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시리아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시리아 난민촌. 다른 곳과 달리 텐트 대신 컨테이너가 들어서 있습니다.

이 난민 캠프엔 모두 만 2천 명의 난민들이 수용돼 있습니다. 터키에 있는 난민 캠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시설도 가장 잘 돼 있는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른 난민촌처럼 이곳도 언론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지만, 어렵사리 난민촌 내부를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빼곡하게 들어찬 컨테이너엔 자체 화장실과 간이 부엌 시설이 딸려 있습니다.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작은 상점도 문을 열었고, 병원과 학교 등 공동 시설도 갖춰져 있습니다.

이곳 거주민 상당수는 1년 넘게 난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2살 마지드도 고향 집을 떠난 지 벌써 1년 5개월이 됐다고 합니다.

<인터뷰>마지드(시리아 난민):"집에 정말 가고 싶습니다. 어찌됐든 우리나라(시리아)가 더 좋습니다. 이곳도 나쁘지 않지만 저는 우리나라를 더 사랑합니다."

해질 무렵 또 다른 난민촌에 소형 버스가 줄지어 들어갑니다. 막 국경을 넘어온 시리아 인들을 태운 버스입니다. 오늘 이 곳에 수용된 난민만 250명 남짓, 정든 고향을 뒤로 한 채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기약 없는 난민 생활을 시작하는 이 그늘진 얼굴들..이들 뒤편의, 국경 넘어 고향 땅 시리아에선 오늘도 총소리 대포소리가 요란하고, 주민들의 통곡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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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전의 현장, 시리아를 가다
    • 입력 2012-08-26 09:29:38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1년하고도 반이 지나갈만큼 긴 시간동안 시리아가 총소리, 포탄소리에 묻혀 있습니다. 나날이 희생자가 늘고 있는 이 시리아 내전 현장에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kbs 특파원이 취재를 하고 왔습니다. 예, 파괴된 도시, 그리고 고향을 등지고 이웃나라로 탈출하는 난민들, 전쟁은 이만큼 무서운 것인데, 21세기에 이런 참혹한 현장이 바로 시리아에 있었습니다.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난민들을 비집고 역으로 시리아 국경을 넘어간 이영석 특파원이 이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시리아 국경...시리아 땅으로 들어서자 반정부군의 깃발이 펄럭입니다. 한 달 전, 반정부군인 자유 시리아군은 치열한 교전 끝에 정부군이 지키던 이 국경을 장악했습니다. 이제 이 땅은 아사드 정권의 압제에서 벗어난 자유의 땅이 된 것입니다. 인구 5만의 시리아 최북단 국경 도시 아자즈. 도시 초입의 주유소 건물이 불에 그을린 채 심하게 부서져 있습니다. 정부군과 반정부군 사이에 벌어진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입니다. 조금 더 도시 안쪽으로 들어가자 포탄에 벽이 뚫리고 무너진 건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불에 탄 정부군의 탱크도 곳곳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정부군이 도시 길목을 장악하기 위해 설치했던 검문소에도 부서진 탱크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습니다. <인터뷰>무아타즈(시리아 아자즈 주민):"이 도시는 알 아사드 군대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한 달 반전쯤 자유 시리아 군이 와서 전투 끝에 해방시켰습니다." 정부군에 비해 열악한 무기를 들고 싸웠지만 반정부군 병사들은 승리했고, 도시를 장악했습니다. <인터뷰>아부 앗틴(자유 시리아군 병사):"보다시피 이 도시를 차지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고, (아사드 정권 퇴출 투쟁을) 멈추지도 포기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도시를 빼앗긴 정부군은 수시로 전투기까지 동원해 보복에 나서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도착하기 하루 전에도 정부군이 민가를 공습했습니다. 이곳은 어제도 정부군에 의해 대대적인 공습이 이뤄졌습니다. 모두 80여 명이 숨지고 150명 넘게 다쳤습니다. 희생자는 여성과 어린이 등 대부분 민간인이었습니다. 도시 중심부.... 멀쩡한 건물은 거의 없습니다. 내전이 확산되면서 상당수 주민들이 이미 도시를 탈출했고, 어쩔 수 없이 남은 사람들은 하루하루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인터뷰>아흐마드 무사(아자즈 주민):"저격수들이 움직이는 것이면 다 총을 쐈습니다. 보다시피 저도 이곳을 다쳤습니다." 이같은 시리아의 참상은 이웃 터키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터키의 한 종합병원. 응급 환자를 실은 구급차 한 대가 다급하게 도착합니다. 환자는 시리아에서 부상을 입은 반정부군 병사들.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신음을 토해냅니다. 이 병원엔 하루에도 수십 명씩 시리아 내전 환자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인터뷰>아드난(시리아 환자 가족):"시리아에서는 환자들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부상자를 공격하는 건 범죄아닙니까? 시리아 정부군은 병원도 포격하고 우리가 세운 야전병원도 파괴했습니다." 국경을 넘는 피난길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일어납니다. <인터뷰>파하드(시리아 난민):"전투기와 헬기를 피해 달아나고 있는데 공격을 받았습니다. 제 아들이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끝내 숨졌습니다." 취재진이 인터뷰를 시작하자 병원 앞은 금세 시리아 정부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합니다. <인터뷰>아부 만수르(시리아 난민):"시리아 정권은 여성들까지 공격합니다. 아무런 인간적 감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잔인한 테러리스트들입니다. 어떤 말로도 그들을 표현하기 힘듭니다. 악마가 그들보다 낫습니다." 시리아는 이웃 나라 중 터키와 가장 넓게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양국 국경 길이는 900킬로미터가 넘습니다. 이곳 국경에서 시리아 제 2 도시 알레포까지는 직선 거리로 5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최근 알레포가 정부군과 반정부군 사이에 최대 격전지가 되면서 주민들의 탈출 행렬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터키의 한 국경 검문소. 시리아 번호판을 단 자동차들이 줄을 지어 입국 심사를 기다립니다. 내전을 피해 터키로 탈출하려는 시리아 난민들입니다. <인터뷰>아부 칼리드(시리아 난민):"방금 시리아를 탈출했습니다. 가족들은 이틀 전에 먼저 보냈고 저는 짐을 챙겨 지금 오는 길입니다. 고향에서는 폭탄이 수시로 터져 살 수가 없습니다." 국경을 넘었지만 난민들의 표정은 아직도 굳어 있습니다. 시리아에 남은 가족이나 친척들이 혹시라도 해를 입을까 인터뷰를 거절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인터뷰>움므 무함마드(시리아 난민):"가족과 함께 왔습니다. 하지만 동생들은 (시리아에)남아 있습니다. 우리집 옆 건물이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폭탄이 비처럼 내렸거든요." 정식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경우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여권이나 돈이 없어 불법 월경을 한 사람들은 집단 난민촌에 수용되고 있습니다. 넓은 대지에 하얀색 텐트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터키 최남단에 있는 한 시리아 난민촌입니다. 이곳에 수용된 시리아 난민은 5천 명 정도. 잠자리를 배정받고 음식을 배급 받습니다. 하지만 정든 집을 떠나 남의 나라, 남의 땅에 살고 있는 난민들의 삶은 곤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무라드(시리아 난민):"필요한 것은 난민촌 밖으로 나가 구입해 돌아옵니다. 경제적으로 사정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적어도 전쟁은 피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난민촌이 터키에만 모두 9개. 공식적인 난민 수만 6만 명에 달하고 있고, 이 수는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올해 72살인 무함마드 씨는 이 난민촌 근처 민가에 머물고 있습니다. 나흘 전, 60킬로미터 떨어진 이들리브 고향집에서 꼬박 24시간을 걸어 국경을 넘었다고 합니다. 고향집엔 아흔살의 노모와 가족이 남았습니다. <인터뷰>무함마드 파디르(시리아 난민/72살):"우리집이 탱크 포격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돈도 귀중품도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가족들의 안전이 제일 걱정되고 중요합니다." 시리아 난민 사이에는 자유 시리아군 소속 병사들도 섞여 있습니다. 이들은 수시로 국경을 넘어 전투에 참여하거나, 필요한 물자와 의약품을 자유시리아군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아부 알리(자유 시리아군 지휘관):"강대국들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거나 적어도 양질의 무기를 제공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시리아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시리아 난민촌. 다른 곳과 달리 텐트 대신 컨테이너가 들어서 있습니다. 이 난민 캠프엔 모두 만 2천 명의 난민들이 수용돼 있습니다. 터키에 있는 난민 캠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시설도 가장 잘 돼 있는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른 난민촌처럼 이곳도 언론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지만, 어렵사리 난민촌 내부를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빼곡하게 들어찬 컨테이너엔 자체 화장실과 간이 부엌 시설이 딸려 있습니다.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작은 상점도 문을 열었고, 병원과 학교 등 공동 시설도 갖춰져 있습니다. 이곳 거주민 상당수는 1년 넘게 난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2살 마지드도 고향 집을 떠난 지 벌써 1년 5개월이 됐다고 합니다. <인터뷰>마지드(시리아 난민):"집에 정말 가고 싶습니다. 어찌됐든 우리나라(시리아)가 더 좋습니다. 이곳도 나쁘지 않지만 저는 우리나라를 더 사랑합니다." 해질 무렵 또 다른 난민촌에 소형 버스가 줄지어 들어갑니다. 막 국경을 넘어온 시리아 인들을 태운 버스입니다. 오늘 이 곳에 수용된 난민만 250명 남짓, 정든 고향을 뒤로 한 채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기약 없는 난민 생활을 시작하는 이 그늘진 얼굴들..이들 뒤편의, 국경 넘어 고향 땅 시리아에선 오늘도 총소리 대포소리가 요란하고, 주민들의 통곡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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