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수첩] 실패 그 후, 재기에 성공한 스타

입력 2012.10.23 (09:05) 수정 2012.10.2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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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안녕하세요.

연예수첩 최동석입니다.

멀쩡한 길을 걷다가 한번쯤 넘어져 본 경험 있으실 텐데요.

인생이라는 길을 걷는 것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때론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실패의 늪에서 당당히 재기에 성공한 스타들의 이야기,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리포트>

한국 배우계의 살아있는 전설 박근형 씨, 그의 인생사전에는 조금은 의외의 단어가 포함돼 있었는데요.

<녹취> 김승우(배우) : “박근형에게 트러블 메이커란?”

<녹취> 박근형(배우) : “연기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니까 다른 사람이 나한테 얘기하는 것들이 이론상 많이 다르더라고요.”

반론을 제기하고자 입을 열었던 것 때문에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말았습니다.

<녹취> 박근형(배우) : “어느 날 방송국에 올라가니까 퇴출자 명단을 발표한다는 거예요. 근데 내 이름이 박근형 올라가 있더라고. 연기를 못한다고.”

퇴출 후 1년이 지나서야 방송에 복귀할 수 있었는데요.

한국연기자협회 임원으로 파업을 선동했던 것이 또 한 번 시련을 가져왔습니다.

<녹취> 박근형(배우) : “요주의 인물이기 때문에 방송 출연을 안 시키는 거야. 4년을. 3사에서 돌아가면서. 묵비 속에서 안 쓰는 거예요. 내 이름을 올리면 삭제.”

활동이 정지당하고 분노만 쌓여갔는데요.

<녹취> 박근형(배우) : “이 세상은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가보다 차라리 죽어 없어져야겠다.”

여러 군데의 약국을 돌며 독한 감기약을 한뭉치 사서 모은 박근형 씨.

<녹취> 박근형(배우) : “먹고 집에 들어와서 거의 다 죽었는데 토하고 살아남았어요.”

모든 것을 포기한 그때, 날아온 엽서 한 장.

<녹취> 박근형(배우) : “와서 연극 한 편하고 갈려느냐. 그러니 고민이 되지. 맨날 가슴은 뛰지 이거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그래서 그 한 편, 첫 번에 한 것이 동아연극상을 받게 된 거예요.”

연극상 수상을 시작으로 재기의 발판이 마련된 건데요.

<녹취> 남자 목소리 : “영화 이중섭에 출연한 박근형 씨가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형제의 강의 박근형 씨, 꼭지의 박근형 씨, 박근형 씨, 축하합니다.”

이후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녹취> 탁재훈(가수) : “만약에 그 작품이 없었다면 지금의 박근형 씨가 없네요.”

<녹취> 박근형(배우) : “아마 시골에서 술이나 먹고 돌아다녔을거야. 거의 폐인되서.”

앞으로 건강 지키면서 오랫동안 명품 연기 보여주세요~

1973년 영화로 데뷔해 지금까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을 인정받는 중견 연기자 독고영재 씨.

굴곡진 인생사를 털어놨는데요.

<녹취> 조영구(방송인) : “1973년 영화 빗방울로 은곰상 신인 남우상을 수상하면서 인생 최고점을 찍었어요. 근데 지금 여기서 인생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친구와 함께 무역회사를 차려 번 돈으로 광고회사, 가구회사까지 여러 가지 업종에 도전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녹취> 독고영재(배우) : “그동안 못 냈던 것 내고 나니까 수중에 삼십 몇만원. 차가 있으니까 당분간 차에서 지내지 생각했어요.”

겨우 남은 돈으로는 집을 대신한 자동차를 유지하는 것만도 빠듯했던 독고영재 씨.

<녹취> 독고영재(배우) : “후배네 카페에 가서 제가 기타치고 노래 부르고 그럼 후배들이 형, 이거 기름값 하세요. 그럼 그거 가져다 쓰고 그럴 때니까. 내가 이렇게 살려고 했던 건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 그때, 떠나자 생각을 했죠.”

세상과의 이별을 결심한 후 차를 몰고 댐으로 향했는데요.

<녹취> 독고영재(배우) : “차가 굴러 떨어지다가 걸렸어요. 빵빵빵빵하다가 섰는데 앞에선 김이 막나고, 핸들을 잡고 있었는데 눈앞으로 피가 막 나더라고요.”

위험에 처한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요?

<녹취> 독고영재(배우) : “이 차를 어떻게 끌어올리지 하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웃음이 막 나오는 거예요. 삼십 초 전만 하더라도 떠나야지 생각했는데.”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갈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데요.

<녹취> 독고영재(배우) : “아, 내가 죽겠다는 생각과 살겠다는 생각이 내 여기에 있구나. 내가 극단적인 마음만 안 먹고 그러면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다가올 어떤 역경도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길 응원할게요.

<녹취> 홍영주(안무가) : “지영이가 이렇게 살아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가장 가까운 지인의 속 깊은 한 마디에 눈물이 흘러내린 백지영 씨.

<녹취> 백지영(가수) : “옛날에 제가 한참 힘든 스캔들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을 때 가족들 때문에도 더 힘들었던 것 같거든요.”

데뷔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던 지난 이천년. 비디오 유출 사건에 휘말려 대중에게 외면받았던 과거를 고백했습니다.

<녹취> 백지영(가수) : “처음으로 외식을 한 날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고 수군거리죠. 어, 백지영 이러면서 저와 눈이 마주칠 때가 있잖아요, 그럼 그냥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어요.”

차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을 묵묵히 견뎌야 했던 건데요.

<녹취> 백지영(가수) : “그때 제일 끔찍했었던 것은 이 일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이라는 것 그게 제일 끔찍했던 고민이었는데 견뎌내야 할 시간 분명히 있어요.”

당시의 힘겨웠던 시간이 떠오르는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마는데요.

<녹취> 백지영(가수) : “마음이 많이 아파요.”

지난 시간을 견디고 6년 만에 가수로서 정상에 오른 백지영 씨.

<녹취> 백지영(가수) : “사랑 안해로 1위를 막 하고 난 다음에 어안이 벙벙하고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대기실에 들어왔는데 아버지한테서 문자가 와 있었는데 딱 세 글자가 와 있었어요. 브라보.”

앞으로 좋은 음악, 좋은 활동 기대할게요.

<녹취> 조우종(아나운서) : “나는 몇 점짜리 아빠라고 생각하시는지 한번 들어볼까요?”

<녹취> 찰리박(가수) : “나는 50대 50. 50점.”

결혼과 재혼에 실패를 거듭하며 아들 전진 씨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는 찰리박 씨.

<녹취> 찰리박(가수) : “엄마하고 같이 있는 아이들을 계속 보는 거예요. 그 모습이 너무 짠해 가지고 지금 내가 못할 짓을 하고 있구나.”

심리치료를 위해 속마음을 조용히 털어놨습니다.

<녹취> 찰리박(가수) : “엄마가 필요했기 때문에 결혼을 심사숙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의 실수가 있고, 두 번의 실수가 있게 된 거고.”

찰리박 씨가 직접 아들의 입장이 되어 마음을 헤아려 보는 시간.

<녹취> 찰리박(가수) :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난 엄마 얼굴도 모르고 사는데. 한 번은 엄마라고. 두 번째 또 엄마라고 그러고. 저한테 뭘 바라시는데요.”

아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 눈물을 흘리고 마는데요.

아들 전진 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녹취> 전진(가수) : “아버지 인생 때문에 제가 더 힘들어 하고 그랬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항상 미안해하고 나쁜 아빠다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고. 이런 말 잘 안하지만 사랑합니다.”

이제는 아들과 함께 더욱 행복할 날들 보내세요.

실패와 역경 앞에서도 당당히 맞서 이겨낸 스타들, 이제는 아픔 대신 행복한 날들만 펼쳐지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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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예수첩] 실패 그 후, 재기에 성공한 스타
    • 입력 2012-10-23 09:05:50
    • 수정2012-10-23 09:18:02
    아침뉴스타임
<앵커 멘트> 안녕하세요. 연예수첩 최동석입니다. 멀쩡한 길을 걷다가 한번쯤 넘어져 본 경험 있으실 텐데요. 인생이라는 길을 걷는 것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때론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실패의 늪에서 당당히 재기에 성공한 스타들의 이야기,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리포트> 한국 배우계의 살아있는 전설 박근형 씨, 그의 인생사전에는 조금은 의외의 단어가 포함돼 있었는데요. <녹취> 김승우(배우) : “박근형에게 트러블 메이커란?” <녹취> 박근형(배우) : “연기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니까 다른 사람이 나한테 얘기하는 것들이 이론상 많이 다르더라고요.” 반론을 제기하고자 입을 열었던 것 때문에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말았습니다. <녹취> 박근형(배우) : “어느 날 방송국에 올라가니까 퇴출자 명단을 발표한다는 거예요. 근데 내 이름이 박근형 올라가 있더라고. 연기를 못한다고.” 퇴출 후 1년이 지나서야 방송에 복귀할 수 있었는데요. 한국연기자협회 임원으로 파업을 선동했던 것이 또 한 번 시련을 가져왔습니다. <녹취> 박근형(배우) : “요주의 인물이기 때문에 방송 출연을 안 시키는 거야. 4년을. 3사에서 돌아가면서. 묵비 속에서 안 쓰는 거예요. 내 이름을 올리면 삭제.” 활동이 정지당하고 분노만 쌓여갔는데요. <녹취> 박근형(배우) : “이 세상은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가보다 차라리 죽어 없어져야겠다.” 여러 군데의 약국을 돌며 독한 감기약을 한뭉치 사서 모은 박근형 씨. <녹취> 박근형(배우) : “먹고 집에 들어와서 거의 다 죽었는데 토하고 살아남았어요.” 모든 것을 포기한 그때, 날아온 엽서 한 장. <녹취> 박근형(배우) : “와서 연극 한 편하고 갈려느냐. 그러니 고민이 되지. 맨날 가슴은 뛰지 이거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그래서 그 한 편, 첫 번에 한 것이 동아연극상을 받게 된 거예요.” 연극상 수상을 시작으로 재기의 발판이 마련된 건데요. <녹취> 남자 목소리 : “영화 이중섭에 출연한 박근형 씨가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형제의 강의 박근형 씨, 꼭지의 박근형 씨, 박근형 씨, 축하합니다.” 이후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녹취> 탁재훈(가수) : “만약에 그 작품이 없었다면 지금의 박근형 씨가 없네요.” <녹취> 박근형(배우) : “아마 시골에서 술이나 먹고 돌아다녔을거야. 거의 폐인되서.” 앞으로 건강 지키면서 오랫동안 명품 연기 보여주세요~ 1973년 영화로 데뷔해 지금까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을 인정받는 중견 연기자 독고영재 씨. 굴곡진 인생사를 털어놨는데요. <녹취> 조영구(방송인) : “1973년 영화 빗방울로 은곰상 신인 남우상을 수상하면서 인생 최고점을 찍었어요. 근데 지금 여기서 인생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친구와 함께 무역회사를 차려 번 돈으로 광고회사, 가구회사까지 여러 가지 업종에 도전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녹취> 독고영재(배우) : “그동안 못 냈던 것 내고 나니까 수중에 삼십 몇만원. 차가 있으니까 당분간 차에서 지내지 생각했어요.” 겨우 남은 돈으로는 집을 대신한 자동차를 유지하는 것만도 빠듯했던 독고영재 씨. <녹취> 독고영재(배우) : “후배네 카페에 가서 제가 기타치고 노래 부르고 그럼 후배들이 형, 이거 기름값 하세요. 그럼 그거 가져다 쓰고 그럴 때니까. 내가 이렇게 살려고 했던 건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 그때, 떠나자 생각을 했죠.” 세상과의 이별을 결심한 후 차를 몰고 댐으로 향했는데요. <녹취> 독고영재(배우) : “차가 굴러 떨어지다가 걸렸어요. 빵빵빵빵하다가 섰는데 앞에선 김이 막나고, 핸들을 잡고 있었는데 눈앞으로 피가 막 나더라고요.” 위험에 처한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요? <녹취> 독고영재(배우) : “이 차를 어떻게 끌어올리지 하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웃음이 막 나오는 거예요. 삼십 초 전만 하더라도 떠나야지 생각했는데.”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갈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데요. <녹취> 독고영재(배우) : “아, 내가 죽겠다는 생각과 살겠다는 생각이 내 여기에 있구나. 내가 극단적인 마음만 안 먹고 그러면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다가올 어떤 역경도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길 응원할게요. <녹취> 홍영주(안무가) : “지영이가 이렇게 살아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가장 가까운 지인의 속 깊은 한 마디에 눈물이 흘러내린 백지영 씨. <녹취> 백지영(가수) : “옛날에 제가 한참 힘든 스캔들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을 때 가족들 때문에도 더 힘들었던 것 같거든요.” 데뷔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던 지난 이천년. 비디오 유출 사건에 휘말려 대중에게 외면받았던 과거를 고백했습니다. <녹취> 백지영(가수) : “처음으로 외식을 한 날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고 수군거리죠. 어, 백지영 이러면서 저와 눈이 마주칠 때가 있잖아요, 그럼 그냥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어요.” 차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을 묵묵히 견뎌야 했던 건데요. <녹취> 백지영(가수) : “그때 제일 끔찍했었던 것은 이 일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이라는 것 그게 제일 끔찍했던 고민이었는데 견뎌내야 할 시간 분명히 있어요.” 당시의 힘겨웠던 시간이 떠오르는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마는데요. <녹취> 백지영(가수) : “마음이 많이 아파요.” 지난 시간을 견디고 6년 만에 가수로서 정상에 오른 백지영 씨. <녹취> 백지영(가수) : “사랑 안해로 1위를 막 하고 난 다음에 어안이 벙벙하고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대기실에 들어왔는데 아버지한테서 문자가 와 있었는데 딱 세 글자가 와 있었어요. 브라보.” 앞으로 좋은 음악, 좋은 활동 기대할게요. <녹취> 조우종(아나운서) : “나는 몇 점짜리 아빠라고 생각하시는지 한번 들어볼까요?” <녹취> 찰리박(가수) : “나는 50대 50. 50점.” 결혼과 재혼에 실패를 거듭하며 아들 전진 씨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는 찰리박 씨. <녹취> 찰리박(가수) : “엄마하고 같이 있는 아이들을 계속 보는 거예요. 그 모습이 너무 짠해 가지고 지금 내가 못할 짓을 하고 있구나.” 심리치료를 위해 속마음을 조용히 털어놨습니다. <녹취> 찰리박(가수) : “엄마가 필요했기 때문에 결혼을 심사숙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의 실수가 있고, 두 번의 실수가 있게 된 거고.” 찰리박 씨가 직접 아들의 입장이 되어 마음을 헤아려 보는 시간. <녹취> 찰리박(가수) :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난 엄마 얼굴도 모르고 사는데. 한 번은 엄마라고. 두 번째 또 엄마라고 그러고. 저한테 뭘 바라시는데요.” 아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 눈물을 흘리고 마는데요. 아들 전진 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녹취> 전진(가수) : “아버지 인생 때문에 제가 더 힘들어 하고 그랬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항상 미안해하고 나쁜 아빠다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고. 이런 말 잘 안하지만 사랑합니다.” 이제는 아들과 함께 더욱 행복할 날들 보내세요. 실패와 역경 앞에서도 당당히 맞서 이겨낸 스타들, 이제는 아픔 대신 행복한 날들만 펼쳐지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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