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공화국’ 다툼없는 해법은?

입력 2012.11.1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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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살아있는 꽃새우입니다! 세일입니다!"



<녹취> "제주감귤입니다! 제주감귤이 (개당) 백원입니다. 백원씩!"



활력이 넘치는 시장 골목...



질 좋고 값도 싼 과일과 채소, 생선과 정육이 보기도 좋게 진열돼 있습니다.



<인터뷰> 송점미(서울 망원동) : "저 여기 시장보고 이사왔거든요. 그 전에 살던 데도 시장이 있기는 했지만 여기가 확실히 가격 면에서 싸긴 싸고"



<인터뷰> 최정자(서울 망원동) : "비 안맞고 다니는 것도 좋고 여름에 시원해서 좋고 그늘에 다니니까. 또 운동삼아 저 끝에서 저 끝까지 가는 것도 좋고"



서민들이 모여사는 곳이라 서울에서도 장사 잘 되기로 손꼽히는 시장입니다.



<인터뷰> 고종순(망원시장 상인) : "망원시장은 일단 야채, 과일, 생선 어떠한 시장보다 쌉니다. 이렇게 멋지게 인테리어 한 시장도 없고, 단골 손님도 많습니다."



걱정이 없을 것만 같지만, 상인들은 올 들어서만 벌써 3번, 영업을 중단하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지척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걸 막기 위해섭니다.



<인터뷰> 김진철(망원시장 상인) : “월드컵 경기장 마트가 지금 우리나라 매출 1위예요. 그 다음에 전국 2위 규모 대형마트가 합정동에 들어온다고 하고 있습니다. 1위와 2위의 거리는 2.3km밖에 안떨어져 있어요.”



직선거리 600미터 남짓, 시장 상인들은 마트가 들어설 이 건물 앞에서 시위를 이어갑니다.



<인터뷰> 오범수(망원시장 상인) : "우리로서는 저항할 방법이 없고, 또 이것은 생존권이 걸린 문제인데 대기업하고 시장 상인이 대치해가지고는 승산이라는 것이 0%에 가깝잖아요."



7월로 예정됐던 마트 개점이 넉 달째 지연되는 사이, 마트 입점을 바라는 주민들은 답답해합니다.



<인터뷰> 최금자(서울시 합정동) : “너무 물가가 비싸요. 합정동은 옛날부터 비쌌어요. 너무 힘들게 살아요. 그러니까 여기도 좀 그런 대형마트가 들어와야 해요. 좀 편하게 좀 살게”



시장과 마트 양측이 대화를 하고는 있지만,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습니다.



이해 관계가 충돌할 때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겠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 이해 관계의 대립을 풀어나가는 길이 최선이겠지만, 우리사회는 아직 이런 대화에 서툰 편입니다.



전국에 갈등이 넘쳐나는 요즘, 다투지 않고 풀어나갈 방법은 없는지?



성공 사례들을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동대문 시장 입구 청계6가의 밤, 빠르게 지나는 차도를 커다란 짐을 실은 상인들의 수레가 가로지릅니다.



위험천만한 한 밤의 무단횡단...



낮이 되자 관광객들도 거리낌 없이 길을 건넙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횡단보도가 있는 것만 같습니다.



<녹취> "(위험하지 않나요?)다들 건너는데요 뭐"



<녹취> "(건너시는 이유가 있을텐데요?) (수레 좀) 보실래요? 이거 끌고 어떻게 갈까요 그럼? (이렇게 건너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나요?) 없죠"



도로 바로 아래엔 지하상가가 있습니다.



새단장 중인 지하상가 상인들은 횡단보도가 생기면 생존권이 위협받는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서영렬(청계6가 지하도상가회장) : “다른 지하상가는 역세권 하고도 연결이 되어 있지만 우리 상가는 오로지 보도기능으로의 상가밖에 안됩니다. 이게 지금 횡단보도가 세워지면 저희들은 100% 전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행권을 요구하는 다른 동대문 상인들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횡단보도 설치가 4년 넘게 미뤄진 이윱니다.



<인터뷰> 홍수정(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 : “어려운 상황에서 매출은 떨어지고, 그런데 바로 위에 횡단보도는 생기고 이렇게 되면 보행권과 지하도 상가 상인의 생존권 문제가 부딪히는...”



<녹취> "너무 낡아 창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고, 벽의 페인트칠도 군데군데 벗겨졌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정신병원이 지역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며 이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녹취> "국내 하나뿐인 국립정신 병원이 낡은 건물을 다시 지으려다가 주민 반대로.... "



지하철 중곡역 바로 앞 국립 서울병원 건물은 지은 지 50년 된 노후 시설입니다.



이 때문에 20년 전부터 재건축을 추진해왔지만 주민 반발로 번번히 무산됐습니다.



역세권 개발이 정신병원 때문에 가로막힌다는 겁니다.



<인터뷰> 박상순(서울 중곡3동 주민대표) : “지역이 굉장히 낙후되어있어요. 서울(정신)병원이 들어오고 나서 이 지역에 개발이 안되다보니까 굉장히 낙후되어 있었죠.”



횡단보도를 만들 것이냐 말 것이냐, 정신병원을 이전할 것이냐 말 것이냐, 팽팽한 평행선만 그리는 이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지난 1992년 미국 달라스.



한 호텔에 마련된 특설링에서 팔씨름 대회가 열립니다.



세계 최대의 저가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항공과 지역 항공사 사이의 대결입니다.



두 회사는 특정 광고 표현 문구를 놓고 분쟁을 벌였는데 이 분쟁을 소송 대신 팔씨름으로 결판짓기로 한 겁니다.



지는 쪽은 광고 문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



<녹취> "주목하세요 여러분, 미래가 바로 이 팔씨름에 달렸습니다."



팔씨름 자체에는 승-패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이 시합에선 두 회사 모두 승자였습니다.



황당한 팔씨름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막대한 홍보 효과를 누린 겁니다.



<인터뷰> 김동영(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홍보문구 분쟁에서 두 기업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기업의 홍보입니다. 창의적인 대안을 마련했구요, 팔씨름이라는 대안을 가지고 홍보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즉 가치를 키움으로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죠."



횡단보도 설치 문제로 갈등하던 상인들도 상생의 묘안을 생각해냈습니다.



횡단보도를 설치하되 가능한 지하상가에 피해가 덜 가도록 횡단보도 위치를 바꾼 수정안을 낸 겁니다.



<인터뷰> 이자룡(신평화패션타운 회장) : "다 같이 만나서 대화도 하고 뭐 이런 것은 봐 주십시오, 이런것은 어떻게 해주십시오, 해가지고 서로 이제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를 한거죠."



정신병원 문제를 놓고 대립하던 주민과 병원 역시 제3의 절충안을 찾았습니다.



병원 규모는 3분의 1로 줄이되 남는 부지에는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의료 복합단지를 만들기로 한 겁니다.



<인터뷰> 박상순(서울 중곡3동 주민대표) : "최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우리지역의 도시개발 문제에 대해 만족스럽진 않지만 진척이 많이 되었다고 봅니다."



기피시설을 제 자리에 두면서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솔로몬의 지혜’가 나온겁니다.



<인터뷰> 이선우(방송통신대학교 교수) : "서울병원을 옮기라는 주민입장에서는 경제적인 문제, 지역 이미지 문제가 있는 거예요, 병원의 입장에서는 빨리 시설을 현대화시켜야하는 거구요. 그렇게 따지면은 꼭 병원을 이전해야 된다는 것만 안이 아니죠. 안은 다양해지는거죠."



창의적인 해법이 있다고 해서 갈등이 저절로 풀리는 건 아닙니다.



경기도의 안양교도소 역시 재건축과 이전을 놓고 20년 동안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한 때 교도소 면적을 축소하고 공원 등의 주민 편의시설을 만드는, 서울 정신병원 해법과 유사한 절충안이 나왔지만 중재는 실패했습니다.



절충안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의 반발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이종만(안양교도소 이전 공동추진위원장) : "시민들이 알 수 있는 시간도 없이 일방적인 결정이 되었기 때문에 시민들이 반대를 하니까,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라는 것이죠.)"



민주적인 과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해관계자가 모두 본인들의 입장을 충분히 말할 기회를 얻고 상대의 입장도 들어야 결론에 동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서영렬(청계6가 지하도상가회장) : "어차피 주변 상가라든지 시민이나 다수를 위한 편의를 위해서는 어차피 저희들도 어느 정도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된다는 판단이 섰고..."



<인터뷰> 이자룡(신평화패션타운 회장) : "이 사람들도 사정 들어보니까 좀.. 딱하더라구요. 뭐 같은 상가에서 장사하는 다 같은 입장인데, 우리 속만 챙기고 주장할 수도 없고."



<인터뷰> 홍수정(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 : “모든 갈등사례가 절차적인 면을 굉장히 많이 문제삼게 되거든요. 그런 절차적인 문제로부터 야기되는 그런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대화와 타협에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비교적 간단한 중재였던 횡단보도의 경우 타협안에 이르기까지 석 달 동안 회의를 했고, 훨씬 갈등이 심각했던 정신병원의 경우 주민과 병원 측이 1년 동안 60여 차례나 만났습니다.



시작하고 반 년은 주민의 요구에만 귀기울였습니다.



<인터뷰> 문기호(서울 중곡2동 주민대표) : "정신병원을 위해서 지역이 낙후되고 주민들이 피해를 봤으니 이제 보상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이전을 추진해달라, 그것만 가지고 5-6개월 씨름을 했죠"



<인터뷰> 남윤영(국립 서울병원 기획홍보과장) :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시설문제가 아니었거든요. 제일 중요한 것은 주민들 한분 한분들이 그동안 쌓여왔던 불만을 당사자, 상대방한테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인터뷰> 이강원(경실련 갈등조정센터 소장) : “20년 동안 상호대립과 감정의 골이 깊었기 때문에 첫 번째로 상호불신을 해소하고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이 필요하다, 라고 하는 그런 인식을 도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갈등을 대화로 풀어낸 주민들의 해법은 단순합니다.



<인터뷰> 문기호(서울 중곡2동 대표) : "역지사지, 역지사지라는 그 단어를 항상 가슴에 안고 살고 있습니다. 역지사지하면 안될 것이 없다."



공정하고 충분한 대화의 틀은 타협의 필수조건입니다.



<인터뷰> 김동영(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는가, 또 어떤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고, 목적은 또 무엇인가, 이런 주제들을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정당해야만 참여자들이 자발적인 의사를 가지고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습니다."



멀게는 부안 방폐장 사태로부터 지난해 동남권 신공항 갈등과 제주 해군기지 갈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갈등 관리 실패로 인한 값비싼 비용을 반복해서 치르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광구(경희대 행정학과 교수) :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참여하고싶은 욕구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물리적이고 집단적이고 저항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대화를 통해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절충점을 만들어가는 길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다투지 않고 갈등을 해결하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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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등 공화국’ 다툼없는 해법은?
    • 입력 2012-11-12 09:06:13
    취재파일K
<녹취> "살아있는 꽃새우입니다! 세일입니다!"

<녹취> "제주감귤입니다! 제주감귤이 (개당) 백원입니다. 백원씩!"

활력이 넘치는 시장 골목...

질 좋고 값도 싼 과일과 채소, 생선과 정육이 보기도 좋게 진열돼 있습니다.

<인터뷰> 송점미(서울 망원동) : "저 여기 시장보고 이사왔거든요. 그 전에 살던 데도 시장이 있기는 했지만 여기가 확실히 가격 면에서 싸긴 싸고"

<인터뷰> 최정자(서울 망원동) : "비 안맞고 다니는 것도 좋고 여름에 시원해서 좋고 그늘에 다니니까. 또 운동삼아 저 끝에서 저 끝까지 가는 것도 좋고"

서민들이 모여사는 곳이라 서울에서도 장사 잘 되기로 손꼽히는 시장입니다.

<인터뷰> 고종순(망원시장 상인) : "망원시장은 일단 야채, 과일, 생선 어떠한 시장보다 쌉니다. 이렇게 멋지게 인테리어 한 시장도 없고, 단골 손님도 많습니다."

걱정이 없을 것만 같지만, 상인들은 올 들어서만 벌써 3번, 영업을 중단하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지척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걸 막기 위해섭니다.

<인터뷰> 김진철(망원시장 상인) : “월드컵 경기장 마트가 지금 우리나라 매출 1위예요. 그 다음에 전국 2위 규모 대형마트가 합정동에 들어온다고 하고 있습니다. 1위와 2위의 거리는 2.3km밖에 안떨어져 있어요.”

직선거리 600미터 남짓, 시장 상인들은 마트가 들어설 이 건물 앞에서 시위를 이어갑니다.

<인터뷰> 오범수(망원시장 상인) : "우리로서는 저항할 방법이 없고, 또 이것은 생존권이 걸린 문제인데 대기업하고 시장 상인이 대치해가지고는 승산이라는 것이 0%에 가깝잖아요."

7월로 예정됐던 마트 개점이 넉 달째 지연되는 사이, 마트 입점을 바라는 주민들은 답답해합니다.

<인터뷰> 최금자(서울시 합정동) : “너무 물가가 비싸요. 합정동은 옛날부터 비쌌어요. 너무 힘들게 살아요. 그러니까 여기도 좀 그런 대형마트가 들어와야 해요. 좀 편하게 좀 살게”

시장과 마트 양측이 대화를 하고는 있지만,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습니다.

이해 관계가 충돌할 때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겠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 이해 관계의 대립을 풀어나가는 길이 최선이겠지만, 우리사회는 아직 이런 대화에 서툰 편입니다.

전국에 갈등이 넘쳐나는 요즘, 다투지 않고 풀어나갈 방법은 없는지?

성공 사례들을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동대문 시장 입구 청계6가의 밤, 빠르게 지나는 차도를 커다란 짐을 실은 상인들의 수레가 가로지릅니다.

위험천만한 한 밤의 무단횡단...

낮이 되자 관광객들도 거리낌 없이 길을 건넙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횡단보도가 있는 것만 같습니다.

<녹취> "(위험하지 않나요?)다들 건너는데요 뭐"

<녹취> "(건너시는 이유가 있을텐데요?) (수레 좀) 보실래요? 이거 끌고 어떻게 갈까요 그럼? (이렇게 건너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나요?) 없죠"

도로 바로 아래엔 지하상가가 있습니다.

새단장 중인 지하상가 상인들은 횡단보도가 생기면 생존권이 위협받는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서영렬(청계6가 지하도상가회장) : “다른 지하상가는 역세권 하고도 연결이 되어 있지만 우리 상가는 오로지 보도기능으로의 상가밖에 안됩니다. 이게 지금 횡단보도가 세워지면 저희들은 100% 전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행권을 요구하는 다른 동대문 상인들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횡단보도 설치가 4년 넘게 미뤄진 이윱니다.

<인터뷰> 홍수정(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 : “어려운 상황에서 매출은 떨어지고, 그런데 바로 위에 횡단보도는 생기고 이렇게 되면 보행권과 지하도 상가 상인의 생존권 문제가 부딪히는...”

<녹취> "너무 낡아 창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고, 벽의 페인트칠도 군데군데 벗겨졌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정신병원이 지역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며 이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녹취> "국내 하나뿐인 국립정신 병원이 낡은 건물을 다시 지으려다가 주민 반대로.... "

지하철 중곡역 바로 앞 국립 서울병원 건물은 지은 지 50년 된 노후 시설입니다.

이 때문에 20년 전부터 재건축을 추진해왔지만 주민 반발로 번번히 무산됐습니다.

역세권 개발이 정신병원 때문에 가로막힌다는 겁니다.

<인터뷰> 박상순(서울 중곡3동 주민대표) : “지역이 굉장히 낙후되어있어요. 서울(정신)병원이 들어오고 나서 이 지역에 개발이 안되다보니까 굉장히 낙후되어 있었죠.”

횡단보도를 만들 것이냐 말 것이냐, 정신병원을 이전할 것이냐 말 것이냐, 팽팽한 평행선만 그리는 이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지난 1992년 미국 달라스.

한 호텔에 마련된 특설링에서 팔씨름 대회가 열립니다.

세계 최대의 저가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항공과 지역 항공사 사이의 대결입니다.

두 회사는 특정 광고 표현 문구를 놓고 분쟁을 벌였는데 이 분쟁을 소송 대신 팔씨름으로 결판짓기로 한 겁니다.

지는 쪽은 광고 문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

<녹취> "주목하세요 여러분, 미래가 바로 이 팔씨름에 달렸습니다."

팔씨름 자체에는 승-패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이 시합에선 두 회사 모두 승자였습니다.

황당한 팔씨름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막대한 홍보 효과를 누린 겁니다.

<인터뷰> 김동영(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홍보문구 분쟁에서 두 기업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기업의 홍보입니다. 창의적인 대안을 마련했구요, 팔씨름이라는 대안을 가지고 홍보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즉 가치를 키움으로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죠."

횡단보도 설치 문제로 갈등하던 상인들도 상생의 묘안을 생각해냈습니다.

횡단보도를 설치하되 가능한 지하상가에 피해가 덜 가도록 횡단보도 위치를 바꾼 수정안을 낸 겁니다.

<인터뷰> 이자룡(신평화패션타운 회장) : "다 같이 만나서 대화도 하고 뭐 이런 것은 봐 주십시오, 이런것은 어떻게 해주십시오, 해가지고 서로 이제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를 한거죠."

정신병원 문제를 놓고 대립하던 주민과 병원 역시 제3의 절충안을 찾았습니다.

병원 규모는 3분의 1로 줄이되 남는 부지에는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의료 복합단지를 만들기로 한 겁니다.

<인터뷰> 박상순(서울 중곡3동 주민대표) : "최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우리지역의 도시개발 문제에 대해 만족스럽진 않지만 진척이 많이 되었다고 봅니다."

기피시설을 제 자리에 두면서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솔로몬의 지혜’가 나온겁니다.

<인터뷰> 이선우(방송통신대학교 교수) : "서울병원을 옮기라는 주민입장에서는 경제적인 문제, 지역 이미지 문제가 있는 거예요, 병원의 입장에서는 빨리 시설을 현대화시켜야하는 거구요. 그렇게 따지면은 꼭 병원을 이전해야 된다는 것만 안이 아니죠. 안은 다양해지는거죠."

창의적인 해법이 있다고 해서 갈등이 저절로 풀리는 건 아닙니다.

경기도의 안양교도소 역시 재건축과 이전을 놓고 20년 동안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한 때 교도소 면적을 축소하고 공원 등의 주민 편의시설을 만드는, 서울 정신병원 해법과 유사한 절충안이 나왔지만 중재는 실패했습니다.

절충안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의 반발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이종만(안양교도소 이전 공동추진위원장) : "시민들이 알 수 있는 시간도 없이 일방적인 결정이 되었기 때문에 시민들이 반대를 하니까,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라는 것이죠.)"

민주적인 과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해관계자가 모두 본인들의 입장을 충분히 말할 기회를 얻고 상대의 입장도 들어야 결론에 동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서영렬(청계6가 지하도상가회장) : "어차피 주변 상가라든지 시민이나 다수를 위한 편의를 위해서는 어차피 저희들도 어느 정도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된다는 판단이 섰고..."

<인터뷰> 이자룡(신평화패션타운 회장) : "이 사람들도 사정 들어보니까 좀.. 딱하더라구요. 뭐 같은 상가에서 장사하는 다 같은 입장인데, 우리 속만 챙기고 주장할 수도 없고."

<인터뷰> 홍수정(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 : “모든 갈등사례가 절차적인 면을 굉장히 많이 문제삼게 되거든요. 그런 절차적인 문제로부터 야기되는 그런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대화와 타협에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비교적 간단한 중재였던 횡단보도의 경우 타협안에 이르기까지 석 달 동안 회의를 했고, 훨씬 갈등이 심각했던 정신병원의 경우 주민과 병원 측이 1년 동안 60여 차례나 만났습니다.

시작하고 반 년은 주민의 요구에만 귀기울였습니다.

<인터뷰> 문기호(서울 중곡2동 주민대표) : "정신병원을 위해서 지역이 낙후되고 주민들이 피해를 봤으니 이제 보상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이전을 추진해달라, 그것만 가지고 5-6개월 씨름을 했죠"

<인터뷰> 남윤영(국립 서울병원 기획홍보과장) :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시설문제가 아니었거든요. 제일 중요한 것은 주민들 한분 한분들이 그동안 쌓여왔던 불만을 당사자, 상대방한테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인터뷰> 이강원(경실련 갈등조정센터 소장) : “20년 동안 상호대립과 감정의 골이 깊었기 때문에 첫 번째로 상호불신을 해소하고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이 필요하다, 라고 하는 그런 인식을 도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갈등을 대화로 풀어낸 주민들의 해법은 단순합니다.

<인터뷰> 문기호(서울 중곡2동 대표) : "역지사지, 역지사지라는 그 단어를 항상 가슴에 안고 살고 있습니다. 역지사지하면 안될 것이 없다."

공정하고 충분한 대화의 틀은 타협의 필수조건입니다.

<인터뷰> 김동영(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는가, 또 어떤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고, 목적은 또 무엇인가, 이런 주제들을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정당해야만 참여자들이 자발적인 의사를 가지고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습니다."

멀게는 부안 방폐장 사태로부터 지난해 동남권 신공항 갈등과 제주 해군기지 갈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갈등 관리 실패로 인한 값비싼 비용을 반복해서 치르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광구(경희대 행정학과 교수) :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참여하고싶은 욕구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물리적이고 집단적이고 저항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대화를 통해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절충점을 만들어가는 길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다투지 않고 갈등을 해결하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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