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문화강국의 힘, ‘기부’

입력 2012.12.09 (10:27) 수정 2012.12.0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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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문화와 예술의 나라’라고 하면 바로 프랑스를 꼽으실텐데요, 20세기 초까지 세계 문화의 중심이던 프랑스가 이젠 미국, 중국에 밀려 그 위상이 조금씩 약화되고 있습니다.

최근엔 유럽 경제위기 여파로 정부 지원이 줄면서 프랑스가 자랑해오던 박물관, 미술관들의 재정 사정이 아주 열악해진 때문에도 체면 유지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네, 그래도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프랑스에선 줄어든 정부 지원의 빈자리를 시민들이 메워나가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서, 즉 ‘기부’를 해서 미술관과 문화유산들을 지켜간다는 겁니다.

‘문화강국’을 만드는 힘, 파리 김성모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20여 km 떨어진 오베르 쉬르 우와즈, 주민이 7천 명 정도인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매년 15만 명이 넘습니다.

이들이 들르는 곳은 화가 고흐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여관과 그의 무덤입니다.

<인터뷰> 로라(스페인 관광객) : "마치 옛 이야기 속에 있는 것 같아요. 경치나 분위기가 매우 좋고요."

고흐의 소박한 발자취는 역설적이지만 20세기 초까지 세계 예술의 중심이었던 프랑스의 화려했던 역사를 말해줍니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회에는 하루 평균 6천 명이 넘게 찾아옵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은 히치콕 등 영화감독들도 영화 배경으로 똑같이 재현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디디에 오팅거(호퍼 전시회 기획자) : "미국이 외부에는 대중과 광적인 에너지의 나라로 비쳐졌지만 호퍼는 미국인의 고독과 내면을 보여줬습니다."

호퍼의 회고전은 프랑스 미술의 현주소를 돌아보게도 합니다.

호퍼는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고국인 미국에서 성공했고 세계 미술의 중심도 비슷한 시기,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갔습니다.

현재 세계 미술 시장은 중국이 전체의 41%를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이 미국이며 프랑스는 영국에도 뒤지고 있습니다.

또 생존 작가 중 프랑스 작가들의 국제적 지명도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인터뷰> 꺄스틀랭(미술잡지사 편집국장) : "프랑스 작가들은 국제 미술 시장이 선호하는 그림 보다는 설치 미술을 많이 하는데 이게 프랑스 작가들이 많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납니다."

파리의 퐁피두 센터는 요즘 살바도르 달리의 전시회로 북적입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이런 대규모 전시회 횟수를 줄여야 할 처집니다.

경제 위기로 프랑스 정부가 올해 지원액을 5% 삭감한 데 이어 내년에도 보조금을 줄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알렘(프랑스 문화부 노조위원장) : "프랑스 정부는 좌파건 우파건 문화부의 예산을 일정하게 유지해왔는데 이번에 문화부가 생긴 이후로 처음으로 예산이 삭감됐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문화의 나라라는 프랑스의 명성은 점점 옛말이 돼가고 있는 것인가? 늘 관람객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을 항상 묘한 미소로 맞이하는 모나리자 등, 루브르는 숱한 걸작들을 자랑합니다.

17세기 유럽의 화려하고 웅장한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루벤스의 그림으로 가득한 방입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작가들의 수많은 명작을 보유한 세계 최고의 미술관 루브르도 경제 위기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루브르의 관람객은 모두 8백80만 명으로 입장 수입은 5천 만 유로, 우리 돈으로 750억 원 정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관리와 투자 등을 위해 쓴 비용은 2억 유로가 넘어 정부 보조를 1억 유로 이상 받아야 했습니다.

미술관의 재정이 어려운데 정부 보조마저 줄게 되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새 작품 구입이 어려워진 겁니다.

그래서 루브르는 대책으로 개인 기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보물로 지정된 중세시대 상아 조각상 세트 가운데 그동안 보유하지 못했던 2개를 추가로 구입하기 위해섭니다.

루브르가 기부를 호소하자 시민들이 이에 화답했습니다.

상아조각상을 사는 데 필요한 80만 유로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한 달 만에 모아졌고, 다음 달까지는 구입비용이 충분히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모넹(루브르 미술관 기부담당 국장) : "루브르 미술관에 애착이 많은 프랑스인들이 특히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루브르의 개인 기부는 경제 위기 이후 해마다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2년 전에는 7천 명이 모금한 126만 유로로 그림을 구입했고 지난해에도 50만 유로의 기부금으로 소장품을 복원했습니다.

한때 교황청이 있었던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에선 중세시대 도시라는 공간 속에 현대 미술의 활력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변화의 원동력은 아비뇽에 있는 한 미술관, 관람객들은 전시된 작품을 보며 감탄을 연발합니다.

<인터뷰> 전시회 관람객: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전시회가 정말 훌륭합니다."

모두 프랑스의 국제적 화랑 대표인 이봉 랑베르가 올 여름 기증한 작품들입니다.

기증된 작품은 556점으로 90만 유로 어치가 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인터뷰> 메질(아비뇽 현대 미술관장) : "아비뇽은 교황청이나 아비뇽 페스티발, 그리고 오래된 건축물들로 알려져 온 반면 현대 미술이 빈약해 (랑베르가 이곳에 기증을 하게 됐습니다.)"

고흐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독일의 거장 안젤름 키퍼의 작품도 기증품 가운데 하납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작품 속 해바라기 씨처럼 랑베르의 기증은 미술관의 새로운 탄생을 가져왔습니다.

19세기 말에 지어진 파리의 한 가톨릭 교회, 오르간은 20년마다 보수를 받아야 하는데, 이 교회 오르간은 10년째 내부의 송풍장치 교체가 미뤄져 오고 있습니다.

문화재들이 많아 파리시의 관련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보수를 위한 자금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된 교회 측은 지난달 말 기부금 모금에 나섰습니다.

보수 비용 20만 유로 가운데 부족한 15만 유로를 모으기 위해 음악회를 열고 기부 받은 그림을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인터뷰> 블랑(오르간 연주자) : “필요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기업, 협회, 개인에게 기부를 요청하게 됐습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문화재 보호재단의 경우 지난해 개인 기부로만 9백만 유로를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기부금으로 교회 등 크고 작은 유산을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진귀한 유물과 오래된 유적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문화 강국이 될 수는 없습니다.

프랑스인들의 생활화된 기부는 문화의 나라가 무엇이고,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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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리포트] 문화강국의 힘, ‘기부’
    • 입력 2012-12-09 10:27:16
    • 수정2012-12-09 10:44:52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문화와 예술의 나라’라고 하면 바로 프랑스를 꼽으실텐데요, 20세기 초까지 세계 문화의 중심이던 프랑스가 이젠 미국, 중국에 밀려 그 위상이 조금씩 약화되고 있습니다.

최근엔 유럽 경제위기 여파로 정부 지원이 줄면서 프랑스가 자랑해오던 박물관, 미술관들의 재정 사정이 아주 열악해진 때문에도 체면 유지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네, 그래도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프랑스에선 줄어든 정부 지원의 빈자리를 시민들이 메워나가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서, 즉 ‘기부’를 해서 미술관과 문화유산들을 지켜간다는 겁니다.

‘문화강국’을 만드는 힘, 파리 김성모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20여 km 떨어진 오베르 쉬르 우와즈, 주민이 7천 명 정도인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매년 15만 명이 넘습니다.

이들이 들르는 곳은 화가 고흐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여관과 그의 무덤입니다.

<인터뷰> 로라(스페인 관광객) : "마치 옛 이야기 속에 있는 것 같아요. 경치나 분위기가 매우 좋고요."

고흐의 소박한 발자취는 역설적이지만 20세기 초까지 세계 예술의 중심이었던 프랑스의 화려했던 역사를 말해줍니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회에는 하루 평균 6천 명이 넘게 찾아옵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은 히치콕 등 영화감독들도 영화 배경으로 똑같이 재현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디디에 오팅거(호퍼 전시회 기획자) : "미국이 외부에는 대중과 광적인 에너지의 나라로 비쳐졌지만 호퍼는 미국인의 고독과 내면을 보여줬습니다."

호퍼의 회고전은 프랑스 미술의 현주소를 돌아보게도 합니다.

호퍼는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고국인 미국에서 성공했고 세계 미술의 중심도 비슷한 시기,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갔습니다.

현재 세계 미술 시장은 중국이 전체의 41%를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이 미국이며 프랑스는 영국에도 뒤지고 있습니다.

또 생존 작가 중 프랑스 작가들의 국제적 지명도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인터뷰> 꺄스틀랭(미술잡지사 편집국장) : "프랑스 작가들은 국제 미술 시장이 선호하는 그림 보다는 설치 미술을 많이 하는데 이게 프랑스 작가들이 많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납니다."

파리의 퐁피두 센터는 요즘 살바도르 달리의 전시회로 북적입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이런 대규모 전시회 횟수를 줄여야 할 처집니다.

경제 위기로 프랑스 정부가 올해 지원액을 5% 삭감한 데 이어 내년에도 보조금을 줄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알렘(프랑스 문화부 노조위원장) : "프랑스 정부는 좌파건 우파건 문화부의 예산을 일정하게 유지해왔는데 이번에 문화부가 생긴 이후로 처음으로 예산이 삭감됐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문화의 나라라는 프랑스의 명성은 점점 옛말이 돼가고 있는 것인가? 늘 관람객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을 항상 묘한 미소로 맞이하는 모나리자 등, 루브르는 숱한 걸작들을 자랑합니다.

17세기 유럽의 화려하고 웅장한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루벤스의 그림으로 가득한 방입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작가들의 수많은 명작을 보유한 세계 최고의 미술관 루브르도 경제 위기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루브르의 관람객은 모두 8백80만 명으로 입장 수입은 5천 만 유로, 우리 돈으로 750억 원 정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관리와 투자 등을 위해 쓴 비용은 2억 유로가 넘어 정부 보조를 1억 유로 이상 받아야 했습니다.

미술관의 재정이 어려운데 정부 보조마저 줄게 되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새 작품 구입이 어려워진 겁니다.

그래서 루브르는 대책으로 개인 기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보물로 지정된 중세시대 상아 조각상 세트 가운데 그동안 보유하지 못했던 2개를 추가로 구입하기 위해섭니다.

루브르가 기부를 호소하자 시민들이 이에 화답했습니다.

상아조각상을 사는 데 필요한 80만 유로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한 달 만에 모아졌고, 다음 달까지는 구입비용이 충분히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모넹(루브르 미술관 기부담당 국장) : "루브르 미술관에 애착이 많은 프랑스인들이 특히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루브르의 개인 기부는 경제 위기 이후 해마다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2년 전에는 7천 명이 모금한 126만 유로로 그림을 구입했고 지난해에도 50만 유로의 기부금으로 소장품을 복원했습니다.

한때 교황청이 있었던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에선 중세시대 도시라는 공간 속에 현대 미술의 활력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변화의 원동력은 아비뇽에 있는 한 미술관, 관람객들은 전시된 작품을 보며 감탄을 연발합니다.

<인터뷰> 전시회 관람객: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전시회가 정말 훌륭합니다."

모두 프랑스의 국제적 화랑 대표인 이봉 랑베르가 올 여름 기증한 작품들입니다.

기증된 작품은 556점으로 90만 유로 어치가 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인터뷰> 메질(아비뇽 현대 미술관장) : "아비뇽은 교황청이나 아비뇽 페스티발, 그리고 오래된 건축물들로 알려져 온 반면 현대 미술이 빈약해 (랑베르가 이곳에 기증을 하게 됐습니다.)"

고흐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독일의 거장 안젤름 키퍼의 작품도 기증품 가운데 하납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작품 속 해바라기 씨처럼 랑베르의 기증은 미술관의 새로운 탄생을 가져왔습니다.

19세기 말에 지어진 파리의 한 가톨릭 교회, 오르간은 20년마다 보수를 받아야 하는데, 이 교회 오르간은 10년째 내부의 송풍장치 교체가 미뤄져 오고 있습니다.

문화재들이 많아 파리시의 관련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보수를 위한 자금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된 교회 측은 지난달 말 기부금 모금에 나섰습니다.

보수 비용 20만 유로 가운데 부족한 15만 유로를 모으기 위해 음악회를 열고 기부 받은 그림을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인터뷰> 블랑(오르간 연주자) : “필요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기업, 협회, 개인에게 기부를 요청하게 됐습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문화재 보호재단의 경우 지난해 개인 기부로만 9백만 유로를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기부금으로 교회 등 크고 작은 유산을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진귀한 유물과 오래된 유적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문화 강국이 될 수는 없습니다.

프랑스인들의 생활화된 기부는 문화의 나라가 무엇이고,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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