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아내 구하려고 들어갔다 ‘부부’ 숨져

입력 2012.12.18 (08:37) 수정 2012.12.1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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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불이 난 집에서 일가족이 급히 대피했습니다.

두 딸과 노모를 모시고 나왔는데, 아내가 보이지 않자 남편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간 남편은 다시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김기흥 기자, 불이 난 집안에 뛰어들어가는 것, 정말 대단한 용기인데요.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만큼 컸던 거겠죠?

<기자 멘트>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어머니의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는데요.

하지만, 아내를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남편의 얘기는 처음 듣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화마가 집 전체를 거의 삼기고 있는 상황에서 온몸을 내던진 건데요.

어려운 살림에 노모를 모시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던 아내에 대한 사랑이 거센 불길보다도 더 뜨거웠던 것 같습니다.

노모와 어린 딸을 구하고 아내마저 구하기 위해 화마 속으로 다시 뛰어든 남편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세종시의 한 주택에서 매캐한 연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옵니다.

불이난 건, 지난 14일 저녁 7시 반쯤, 화마가 휩쓸고 간 현장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온통 까맣게 타버린 집안.

가재도구와 집기들이 재를 뒤집어 쓴 채 뒤엉켜 있는 모습이 당시의 위급했던 상황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는데요.

당시 소방서에 처음 신고를 한 건 이웃 주민이었다고 합니다.

<녹취> 이웃 주민(최초 신고자/음성변조) : "(불난 집에서) 할머니하고 손녀 딸내미가 나왔어요. 아빠가 나왔다가 할머니하고 모셔놓고 (다시) 들어갔다고 그러더라고요. 내복 바람에 나와 보니까 여기 현관문 있는 데가 불이 가득 찼더라고요. "

불이 나자 집주인 55살 김 모씨는 80대 노모와 고등학생인 딸을 먼저 대피시켰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내인 52살 이 모씨가 보이지 않자 불길에 휩싸인 집으로 뛰어들었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됐습니다.

<인터뷰> 송재원(대응2팀장/세종시 소방본부 ) : "딸은 안에 엄마와 아빠가 있다고 하면서 계속 소리를 쳤습니다. 화재를 진압한 후에 시야가 가려진 상황에서 일원에 대한 수색을 했는데 여자 분은 안방에 있는 상황이었고 남자 분은 화장실에 있었습니다. "

남편이 아내를 구하기 위해 집으로 들어갔을 당시, 이미 집안은 검은 연기로 가득 찬 상황이었고, 결국 부부는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안방과 화장실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출동했던 소방대원들 모두 엄청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간 남편의 용기에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송재원(대응2팀장/세종시 소방본부 ) : "화재는 (발생 후) 4~5분 지나면 굉장히 급속하게 최성기 상태에 도달하는데 그 정도 불길이면 굉장히 (화력이) 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

미처 피하지 못한 아내를 구하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든 남편.

집 밖에서 애타게 부부가 나타나길 기도했던 가족들은 아직도 두 사람의 죽음이 믿기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불길을 피해 무사히 집 밖으로 피신했던 어린 딸을 만나 당시 상황을 들어봤는데요.

<녹취> 김00(딸/음성변조) : "한 7시쯤에 엄마랑 같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가스난로를 틀어놨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끌려고 하니까 안 꺼지는 거예요. 그래서 안방에 있던 아빠 불러서 이거 꺼보라고 했는데 계속 만지작거리던 중 어디서 칙 소리가 나더니 불이 타오른 거죠. "

화재의 원인은 바로 추위 때문에 거실에 피워둔 가스난로였던 것.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고 합니다.

<녹취> 김00(딸/음성변조) : "저도 그때 할머니랑 같이 밖으로 나가서 가스(난로) 있는 거 불 먼저 끄고 있었는데 주위를 보니까 엄마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빠가 다시 들어가신 거죠. 들어 가시자마자 불이 더 세지더라고요. "

부부는 유난히 금슬이 좋아 항상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고 합니다.

하지만 죽음도 이들의 사랑을 갈라놓지는 못했습니다.

<녹취> 유가족(음성변조) : "두 분이 어딜 가든 항상 떨어져 있지를 않았어요. 집안에 식구들, 형제들 모일 때 잘 데가 없으면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자는 한이 있더라도, 창고에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두 분이서 같이 가서 주무셨어요."

또한 숨진 남편 김씨는 평소 노모를 모시며 봉양하는 데에도 결코 소홀함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녹취> 유가족(음성변조) : "(어머니와) 태어났을 때부터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어요. 저희들이 (오빠한테) 몇 번 권한 적 있어요. 시골에서 이러고 살지 말고 도시에 와서 살라고. 엄마가 고향을 못 떠난다고 하니까 (오빠가) 죽어도 고향 지키고 엄마 모시고 살아야 된다고, 나는 엄마 없으면 못 산다고.. "

아내 역시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을 끔찍이 위하며 살아왔습니다.

몇 년 전엔 효부상까지 받았던 착한 며느리였다고 합니다.

<녹취> 유가족(음성변조) : "(어머니) 다리가 불편하시고 허리가 불편하시니까 요강까지 다 챙겨서 차에 싣고 다니고.. 올케가 잘했어요. 뭐 사오면 어머니부터 드리고 어디 여행을 가도 어머니 모시고 가고.. 고맙다고 항상 우리 시누들이 가서 그랬어요. "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늙은 어머니를 모시며 화목하게 살던 부부의 죽음 앞에 유가족들은 오열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바로 어머니일 겁니다.

어머니는 효심 가득한 아들 내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차마 지켜볼 수는 없었습니다.

<녹취> 어머니(음성변조) : "아들도 나 없이 못살고 나도 아들 없이 못 사는데.. 어떡해요.. "

아들 내외에게 받은 게 너무 많아 죄책감마저 든다는 어머니는 자식을 앞세우고 앞으로 살아갈 일이 그저 막막할 따름입니다.

<녹취> 어머니(음성변조) : "밥 사먹으러 갈 때도 저를 데리고 가고 어디 구경 갈 때도 데리고 가고.. 한 번은 너희끼리 가서 먹고 와라 (그랬더니) 엄마가 안 가면 우리끼리 밥을 어떻게 먹느냐고, 그러니까 엄마 무조건 가자. 따라 나서라. 그랬는데 (제가) 걸음을 못 걸으니까 휠체어 사다주고.. "

끝까지 믿고 싶지 않았던 아들 내외의 죽음.

이제는 어린 손녀들이 걱정입니다.

잠시 마을회관에서 지내고는 있지만 앞으로 학업을 계속 이어가야하는 두 손녀의 거취가 막막할 따름인데요.

<녹취> 어머니(음성변조) : "(손녀들) 학교 다니잖아요. 하나는 중학교 3학년, 하나는 고등학교 2학년. 어디 방이라도 얻어 살아야지 어떡해요. "

<녹취> 유가족(음성변조) : "걔네들이 가지고 나온 게 하나도 없어요. 그것도 좀 챙겨줘야 될 것 같고.. 방법을 찾아봐야하니까 이제 면사무소라든가 어디든 찾아가서 도움 요청해보려고요. 학교 문제가 있으니까.. "

첫째 아이의 나이 이제 열여덟, 아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인데요.

그동안 부모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이 가슴 한편에 남았습니다.

<녹취> 김00(딸/음성변조) : "엄마 아빠, 말은 못했지만 항상 사랑하고 너무 속만 썩여서 미안하고 꼭 좋은 곳 가서 우리 걱정 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

유달리 금실 좋고, 효심까지 지극했던 부부.

결국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이들 부부의 사연은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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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아내 구하려고 들어갔다 ‘부부’ 숨져
    • 입력 2012-12-18 08:39:33
    • 수정2012-12-18 18: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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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불이 난 집에서 일가족이 급히 대피했습니다. 두 딸과 노모를 모시고 나왔는데, 아내가 보이지 않자 남편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간 남편은 다시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김기흥 기자, 불이 난 집안에 뛰어들어가는 것, 정말 대단한 용기인데요.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만큼 컸던 거겠죠? <기자 멘트>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어머니의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는데요. 하지만, 아내를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남편의 얘기는 처음 듣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화마가 집 전체를 거의 삼기고 있는 상황에서 온몸을 내던진 건데요. 어려운 살림에 노모를 모시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던 아내에 대한 사랑이 거센 불길보다도 더 뜨거웠던 것 같습니다. 노모와 어린 딸을 구하고 아내마저 구하기 위해 화마 속으로 다시 뛰어든 남편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세종시의 한 주택에서 매캐한 연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옵니다. 불이난 건, 지난 14일 저녁 7시 반쯤, 화마가 휩쓸고 간 현장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온통 까맣게 타버린 집안. 가재도구와 집기들이 재를 뒤집어 쓴 채 뒤엉켜 있는 모습이 당시의 위급했던 상황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는데요. 당시 소방서에 처음 신고를 한 건 이웃 주민이었다고 합니다. <녹취> 이웃 주민(최초 신고자/음성변조) : "(불난 집에서) 할머니하고 손녀 딸내미가 나왔어요. 아빠가 나왔다가 할머니하고 모셔놓고 (다시) 들어갔다고 그러더라고요. 내복 바람에 나와 보니까 여기 현관문 있는 데가 불이 가득 찼더라고요. " 불이 나자 집주인 55살 김 모씨는 80대 노모와 고등학생인 딸을 먼저 대피시켰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내인 52살 이 모씨가 보이지 않자 불길에 휩싸인 집으로 뛰어들었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됐습니다. <인터뷰> 송재원(대응2팀장/세종시 소방본부 ) : "딸은 안에 엄마와 아빠가 있다고 하면서 계속 소리를 쳤습니다. 화재를 진압한 후에 시야가 가려진 상황에서 일원에 대한 수색을 했는데 여자 분은 안방에 있는 상황이었고 남자 분은 화장실에 있었습니다. " 남편이 아내를 구하기 위해 집으로 들어갔을 당시, 이미 집안은 검은 연기로 가득 찬 상황이었고, 결국 부부는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안방과 화장실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출동했던 소방대원들 모두 엄청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간 남편의 용기에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송재원(대응2팀장/세종시 소방본부 ) : "화재는 (발생 후) 4~5분 지나면 굉장히 급속하게 최성기 상태에 도달하는데 그 정도 불길이면 굉장히 (화력이) 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 미처 피하지 못한 아내를 구하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든 남편. 집 밖에서 애타게 부부가 나타나길 기도했던 가족들은 아직도 두 사람의 죽음이 믿기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불길을 피해 무사히 집 밖으로 피신했던 어린 딸을 만나 당시 상황을 들어봤는데요. <녹취> 김00(딸/음성변조) : "한 7시쯤에 엄마랑 같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가스난로를 틀어놨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끌려고 하니까 안 꺼지는 거예요. 그래서 안방에 있던 아빠 불러서 이거 꺼보라고 했는데 계속 만지작거리던 중 어디서 칙 소리가 나더니 불이 타오른 거죠. " 화재의 원인은 바로 추위 때문에 거실에 피워둔 가스난로였던 것.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고 합니다. <녹취> 김00(딸/음성변조) : "저도 그때 할머니랑 같이 밖으로 나가서 가스(난로) 있는 거 불 먼저 끄고 있었는데 주위를 보니까 엄마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빠가 다시 들어가신 거죠. 들어 가시자마자 불이 더 세지더라고요. " 부부는 유난히 금슬이 좋아 항상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고 합니다. 하지만 죽음도 이들의 사랑을 갈라놓지는 못했습니다. <녹취> 유가족(음성변조) : "두 분이 어딜 가든 항상 떨어져 있지를 않았어요. 집안에 식구들, 형제들 모일 때 잘 데가 없으면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자는 한이 있더라도, 창고에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두 분이서 같이 가서 주무셨어요." 또한 숨진 남편 김씨는 평소 노모를 모시며 봉양하는 데에도 결코 소홀함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녹취> 유가족(음성변조) : "(어머니와) 태어났을 때부터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어요. 저희들이 (오빠한테) 몇 번 권한 적 있어요. 시골에서 이러고 살지 말고 도시에 와서 살라고. 엄마가 고향을 못 떠난다고 하니까 (오빠가) 죽어도 고향 지키고 엄마 모시고 살아야 된다고, 나는 엄마 없으면 못 산다고.. " 아내 역시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을 끔찍이 위하며 살아왔습니다. 몇 년 전엔 효부상까지 받았던 착한 며느리였다고 합니다. <녹취> 유가족(음성변조) : "(어머니) 다리가 불편하시고 허리가 불편하시니까 요강까지 다 챙겨서 차에 싣고 다니고.. 올케가 잘했어요. 뭐 사오면 어머니부터 드리고 어디 여행을 가도 어머니 모시고 가고.. 고맙다고 항상 우리 시누들이 가서 그랬어요. "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늙은 어머니를 모시며 화목하게 살던 부부의 죽음 앞에 유가족들은 오열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바로 어머니일 겁니다. 어머니는 효심 가득한 아들 내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차마 지켜볼 수는 없었습니다. <녹취> 어머니(음성변조) : "아들도 나 없이 못살고 나도 아들 없이 못 사는데.. 어떡해요.. " 아들 내외에게 받은 게 너무 많아 죄책감마저 든다는 어머니는 자식을 앞세우고 앞으로 살아갈 일이 그저 막막할 따름입니다. <녹취> 어머니(음성변조) : "밥 사먹으러 갈 때도 저를 데리고 가고 어디 구경 갈 때도 데리고 가고.. 한 번은 너희끼리 가서 먹고 와라 (그랬더니) 엄마가 안 가면 우리끼리 밥을 어떻게 먹느냐고, 그러니까 엄마 무조건 가자. 따라 나서라. 그랬는데 (제가) 걸음을 못 걸으니까 휠체어 사다주고.. " 끝까지 믿고 싶지 않았던 아들 내외의 죽음. 이제는 어린 손녀들이 걱정입니다. 잠시 마을회관에서 지내고는 있지만 앞으로 학업을 계속 이어가야하는 두 손녀의 거취가 막막할 따름인데요. <녹취> 어머니(음성변조) : "(손녀들) 학교 다니잖아요. 하나는 중학교 3학년, 하나는 고등학교 2학년. 어디 방이라도 얻어 살아야지 어떡해요. " <녹취> 유가족(음성변조) : "걔네들이 가지고 나온 게 하나도 없어요. 그것도 좀 챙겨줘야 될 것 같고.. 방법을 찾아봐야하니까 이제 면사무소라든가 어디든 찾아가서 도움 요청해보려고요. 학교 문제가 있으니까.. " 첫째 아이의 나이 이제 열여덟, 아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인데요. 그동안 부모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이 가슴 한편에 남았습니다. <녹취> 김00(딸/음성변조) : "엄마 아빠, 말은 못했지만 항상 사랑하고 너무 속만 썩여서 미안하고 꼭 좋은 곳 가서 우리 걱정 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 유달리 금실 좋고, 효심까지 지극했던 부부. 결국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이들 부부의 사연은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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