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포착] 석지영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성공 비결
입력 2013.02.01 (08:40)
수정 2013.02.0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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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가끔 신문에 보면요,
세계적인 명문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인이 교수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는데요.
같은 한국인으로서 참 뿌듯하고 자랑스럽더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별한 분이 있는데요. 아시아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하버드 법대 종신 교수로 임명된 석지영 교수입니다.
네 이번에 석지영 교수가 한국을 직접 찾았다고 하는데요,
양영은 기자, 석 교수가 한국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요?
<기자 멘트>
네, 석 교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가 이렇게 한국과 다시 연결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하는데요,
한국으로부터 굉장히 많은 이메일과 성원을 받게 되면서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석지영 교수는 아는 분들도 있고, 모르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성공의 대명사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좌절과 시련이 있었다는데요.
석 교수의 이야기 함께 들어보시죠.
<리포트>
지난 달 서울 한 대학에서 열린 강연회입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였는데요.
미국 하버드 법대 석지영 교수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석 교수는 어린 시절 처음 이민 갔을 때를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녹취> 석지영(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십대 때 나는 나를 마비시킬 만큼의 수줍음과 두려움을 안고 살았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두려웠고 사람들 자체도 무서워했고 극단적으로 강한 자의식으로 인해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압박감과 무대 공포증이 나를 눌렀습니다."
영어를 못해 소심했던 소녀는 30여 년 후,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서게 되는데요.
아시아 여성 최초의 하버드 법대 종신 교수, 40세 미만 최고의 변호사 등에 선출됩니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 한국에 오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지금 이 순간 한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것은 희망을 주는 메시지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 사회 속에 뭔가 삶을 버거워하는 듯한 정서가 느껴졌고, 그 속에서 한국인들이 삶의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더욱 갈구하는 것으로 비춰졌고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처럼 한국에서 유명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석 교수, 그래서 한국과의 '재회'가 더 특별하다고요.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부모님께서는 제가 한국에서 자라서 교육을 받았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라고 늘 말씀하십니다. 제 성격이나 성향으로 봐서 한국에서 이만큼의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원래 석지영 교수의 꿈은 발레리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그 꿈을 접어야 했는데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도 큽니다.
어머니는 왜 반대를 하셨을까요?
<녹취> 최정남(석지영 교수 어머니) : "발레리나로서 무대에서 대단한 위치가 된다는 것을 말릴 부모는 없는데 그 보장이 없잖아요. 저희로서는 (성공에 대한) 보장 없이 따라 하다가 못하면 그만이니까 중간은 갈 수 있게, 발레는 취미로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이처럼 한국식 교육열이 강했던 부모님과 미국식 교육 제도 사이에서 석 교수는 갈등도 많이 겪었다는데요.
이를 헤쳐나가는 과정이 오히려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며 소신을 밝힙니다.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이렇게 빨리 변하는 환경 속에서 학문의 한 분야가 다른 많은 분야의 영향을 받기도 하는 상황인데 이러한 편협한 전문성 교육이 효과를 발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다양한 방면의 교육을 하는 것이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더 효과적인 교육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발레는 포기한 석 교수는 줄리어드예비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다시 문학 쪽으로 진로를 바꿔 박사 학위까지 딴 뒤 하버드 법대 대학원에 입학했는데요.
이런 다양한 경험은 그녀에게 남과는 다른 자신만의 시각을 갖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녀가 예술과 법을 접목해서 만든 독특한 강의는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해 유명 발레리나와 작가들을 강사로 초청해 열띤 토론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위험을 무릅쓰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석지영 교수, 그 용기와 열정은 어디서 나올까요?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제가 생각하는 열정이란 스스로의 내면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 안에서 열정이 나오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바깥에 있는 무엇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과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의 존재가 중요한 것인데요. 제 경우에는 성생님들이 저의 개인의 삶의 방향을 잡아 나가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중요성을 알기에 그녀 역시 누군가의 스승이 되는 일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데요.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갖는 걸 보고 이번 한국 방문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바람 간의 상충이고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내면의 불빛, 즉 창의성과 상상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석지영 교수는 한국 사람들에게 '성공'에 있어서도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하는데요,
먼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찾으라고 조언합니다.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우리는 단 하나, 오직 그 일만을 하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는 아니에요. 하나를 포기했다 하더라도 인생에는 여전히 우리에게 기쁨과 성취감을 줄 수 있는 많은 일이 존재해요. 저는 앞으로 나이가 40대가 되든 50대, 60대 70대가 되어도 늘 내 자신을 새롭게 바꾸어 갈 거예요. 이것이 내가 그 경험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것입니다. "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는 여정이라고 말하는 석지영 교수.
그녀가 오로지 하나의 길만 보고, 하나의 길만 달려왔다면 지금의 그녀가 있을 수 있었을까요?
단순히 '엄친딸'이라고 불리기보다 한 인간으로써 성공과 좌절까지도 함께 나누며, 앞으로도 한국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석지영 교수...
그녀의 미래가 더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가끔 신문에 보면요,
세계적인 명문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인이 교수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는데요.
같은 한국인으로서 참 뿌듯하고 자랑스럽더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별한 분이 있는데요. 아시아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하버드 법대 종신 교수로 임명된 석지영 교수입니다.
네 이번에 석지영 교수가 한국을 직접 찾았다고 하는데요,
양영은 기자, 석 교수가 한국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요?
<기자 멘트>
네, 석 교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가 이렇게 한국과 다시 연결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하는데요,
한국으로부터 굉장히 많은 이메일과 성원을 받게 되면서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석지영 교수는 아는 분들도 있고, 모르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성공의 대명사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좌절과 시련이 있었다는데요.
석 교수의 이야기 함께 들어보시죠.
<리포트>
지난 달 서울 한 대학에서 열린 강연회입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였는데요.
미국 하버드 법대 석지영 교수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석 교수는 어린 시절 처음 이민 갔을 때를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녹취> 석지영(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십대 때 나는 나를 마비시킬 만큼의 수줍음과 두려움을 안고 살았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두려웠고 사람들 자체도 무서워했고 극단적으로 강한 자의식으로 인해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압박감과 무대 공포증이 나를 눌렀습니다."
영어를 못해 소심했던 소녀는 30여 년 후,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서게 되는데요.
아시아 여성 최초의 하버드 법대 종신 교수, 40세 미만 최고의 변호사 등에 선출됩니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 한국에 오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지금 이 순간 한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것은 희망을 주는 메시지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 사회 속에 뭔가 삶을 버거워하는 듯한 정서가 느껴졌고, 그 속에서 한국인들이 삶의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더욱 갈구하는 것으로 비춰졌고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처럼 한국에서 유명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석 교수, 그래서 한국과의 '재회'가 더 특별하다고요.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부모님께서는 제가 한국에서 자라서 교육을 받았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라고 늘 말씀하십니다. 제 성격이나 성향으로 봐서 한국에서 이만큼의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원래 석지영 교수의 꿈은 발레리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그 꿈을 접어야 했는데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도 큽니다.
어머니는 왜 반대를 하셨을까요?
<녹취> 최정남(석지영 교수 어머니) : "발레리나로서 무대에서 대단한 위치가 된다는 것을 말릴 부모는 없는데 그 보장이 없잖아요. 저희로서는 (성공에 대한) 보장 없이 따라 하다가 못하면 그만이니까 중간은 갈 수 있게, 발레는 취미로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이처럼 한국식 교육열이 강했던 부모님과 미국식 교육 제도 사이에서 석 교수는 갈등도 많이 겪었다는데요.
이를 헤쳐나가는 과정이 오히려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며 소신을 밝힙니다.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이렇게 빨리 변하는 환경 속에서 학문의 한 분야가 다른 많은 분야의 영향을 받기도 하는 상황인데 이러한 편협한 전문성 교육이 효과를 발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다양한 방면의 교육을 하는 것이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더 효과적인 교육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발레는 포기한 석 교수는 줄리어드예비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다시 문학 쪽으로 진로를 바꿔 박사 학위까지 딴 뒤 하버드 법대 대학원에 입학했는데요.
이런 다양한 경험은 그녀에게 남과는 다른 자신만의 시각을 갖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녀가 예술과 법을 접목해서 만든 독특한 강의는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해 유명 발레리나와 작가들을 강사로 초청해 열띤 토론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위험을 무릅쓰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석지영 교수, 그 용기와 열정은 어디서 나올까요?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제가 생각하는 열정이란 스스로의 내면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 안에서 열정이 나오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바깥에 있는 무엇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과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의 존재가 중요한 것인데요. 제 경우에는 성생님들이 저의 개인의 삶의 방향을 잡아 나가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중요성을 알기에 그녀 역시 누군가의 스승이 되는 일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데요.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갖는 걸 보고 이번 한국 방문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바람 간의 상충이고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내면의 불빛, 즉 창의성과 상상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석지영 교수는 한국 사람들에게 '성공'에 있어서도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하는데요,
먼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찾으라고 조언합니다.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우리는 단 하나, 오직 그 일만을 하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는 아니에요. 하나를 포기했다 하더라도 인생에는 여전히 우리에게 기쁨과 성취감을 줄 수 있는 많은 일이 존재해요. 저는 앞으로 나이가 40대가 되든 50대, 60대 70대가 되어도 늘 내 자신을 새롭게 바꾸어 갈 거예요. 이것이 내가 그 경험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것입니다. "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는 여정이라고 말하는 석지영 교수.
그녀가 오로지 하나의 길만 보고, 하나의 길만 달려왔다면 지금의 그녀가 있을 수 있었을까요?
단순히 '엄친딸'이라고 불리기보다 한 인간으로써 성공과 좌절까지도 함께 나누며, 앞으로도 한국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석지영 교수...
그녀의 미래가 더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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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3-02-01 08:41:40
- 수정2013-02-01 09: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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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신문에 보면요,
세계적인 명문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인이 교수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는데요.
같은 한국인으로서 참 뿌듯하고 자랑스럽더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별한 분이 있는데요. 아시아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하버드 법대 종신 교수로 임명된 석지영 교수입니다.
네 이번에 석지영 교수가 한국을 직접 찾았다고 하는데요,
양영은 기자, 석 교수가 한국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요?
<기자 멘트>
네, 석 교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가 이렇게 한국과 다시 연결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하는데요,
한국으로부터 굉장히 많은 이메일과 성원을 받게 되면서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석지영 교수는 아는 분들도 있고, 모르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성공의 대명사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좌절과 시련이 있었다는데요.
석 교수의 이야기 함께 들어보시죠.
<리포트>
지난 달 서울 한 대학에서 열린 강연회입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였는데요.
미국 하버드 법대 석지영 교수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석 교수는 어린 시절 처음 이민 갔을 때를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녹취> 석지영(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십대 때 나는 나를 마비시킬 만큼의 수줍음과 두려움을 안고 살았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두려웠고 사람들 자체도 무서워했고 극단적으로 강한 자의식으로 인해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압박감과 무대 공포증이 나를 눌렀습니다."
영어를 못해 소심했던 소녀는 30여 년 후,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서게 되는데요.
아시아 여성 최초의 하버드 법대 종신 교수, 40세 미만 최고의 변호사 등에 선출됩니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 한국에 오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지금 이 순간 한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것은 희망을 주는 메시지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 사회 속에 뭔가 삶을 버거워하는 듯한 정서가 느껴졌고, 그 속에서 한국인들이 삶의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더욱 갈구하는 것으로 비춰졌고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처럼 한국에서 유명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석 교수, 그래서 한국과의 '재회'가 더 특별하다고요.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부모님께서는 제가 한국에서 자라서 교육을 받았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라고 늘 말씀하십니다. 제 성격이나 성향으로 봐서 한국에서 이만큼의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원래 석지영 교수의 꿈은 발레리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그 꿈을 접어야 했는데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도 큽니다.
어머니는 왜 반대를 하셨을까요?
<녹취> 최정남(석지영 교수 어머니) : "발레리나로서 무대에서 대단한 위치가 된다는 것을 말릴 부모는 없는데 그 보장이 없잖아요. 저희로서는 (성공에 대한) 보장 없이 따라 하다가 못하면 그만이니까 중간은 갈 수 있게, 발레는 취미로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이처럼 한국식 교육열이 강했던 부모님과 미국식 교육 제도 사이에서 석 교수는 갈등도 많이 겪었다는데요.
이를 헤쳐나가는 과정이 오히려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며 소신을 밝힙니다.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이렇게 빨리 변하는 환경 속에서 학문의 한 분야가 다른 많은 분야의 영향을 받기도 하는 상황인데 이러한 편협한 전문성 교육이 효과를 발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다양한 방면의 교육을 하는 것이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더 효과적인 교육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발레는 포기한 석 교수는 줄리어드예비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다시 문학 쪽으로 진로를 바꿔 박사 학위까지 딴 뒤 하버드 법대 대학원에 입학했는데요.
이런 다양한 경험은 그녀에게 남과는 다른 자신만의 시각을 갖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녀가 예술과 법을 접목해서 만든 독특한 강의는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해 유명 발레리나와 작가들을 강사로 초청해 열띤 토론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위험을 무릅쓰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석지영 교수, 그 용기와 열정은 어디서 나올까요?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제가 생각하는 열정이란 스스로의 내면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 안에서 열정이 나오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바깥에 있는 무엇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과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의 존재가 중요한 것인데요. 제 경우에는 성생님들이 저의 개인의 삶의 방향을 잡아 나가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중요성을 알기에 그녀 역시 누군가의 스승이 되는 일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데요.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갖는 걸 보고 이번 한국 방문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바람 간의 상충이고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내면의 불빛, 즉 창의성과 상상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석지영 교수는 한국 사람들에게 '성공'에 있어서도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하는데요,
먼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찾으라고 조언합니다.
<녹취> 석지영(교수/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 "우리는 단 하나, 오직 그 일만을 하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는 아니에요. 하나를 포기했다 하더라도 인생에는 여전히 우리에게 기쁨과 성취감을 줄 수 있는 많은 일이 존재해요. 저는 앞으로 나이가 40대가 되든 50대, 60대 70대가 되어도 늘 내 자신을 새롭게 바꾸어 갈 거예요. 이것이 내가 그 경험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것입니다. "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는 여정이라고 말하는 석지영 교수.
그녀가 오로지 하나의 길만 보고, 하나의 길만 달려왔다면 지금의 그녀가 있을 수 있었을까요?
단순히 '엄친딸'이라고 불리기보다 한 인간으로써 성공과 좌절까지도 함께 나누며, 앞으로도 한국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석지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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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은 기자 yeya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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