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포착] 왕언니들의 반 세기만에 졸업하던 날

입력 2013.02.28 (08:42) 수정 2013.02.28 (10:0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이달에 아이들 졸업식 치른 분들 많죠?

졸업식날 장면, 누구나 가슴 한켠에 아련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텐데요.

아마 이 분들에겐 올해 졸업식이 한결 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수십 년 만에 졸업장을 받은 할머니 졸업생들 얘깁니다.

저마다 가슴 찡한 사연을 안고 있는데요.

양영은 기자, 늦깎이 여학생들의 졸업식 이야기를 취재하셨다고요?

<기자 멘트>

네, 졸업하는 학생들도 울고, 지켜보던 가족들도 울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요?

서러움, 기쁨... 이런 한 단어로는 표현이 잘 안 될 것 같습니다.

전에 할머니께 들은 얘기 중에 학교를 떠나던 날 많이 우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더 이상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게 서럽고 서글퍼서...'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지금은 상상이 잘 안 되지만, 우리네 할머니들은 여자라서, 가난해서, 전쟁이 나서, 금혼 학칙이 있어서 등등 여러 이유로 배움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할머니들이 드디어 졸업장을 받던 날, 화제포착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6일,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졸업식장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노숙녀들이 모여듭니다.

<녹취> 피디 : "좋은 날인가 봐요?"

<녹취> 김용자(서울시 신림동) : "예! 좋은 날이에요!"

<녹취> 피디 : "무슨 날인가요?"

<녹취> 김용자(서울시 신림동) : "평생 한 번, 졸업하는 날이에요."

<녹취> 피디 : "몇 년 만의 졸업인가요?"

<녹취> 김용자(서울시 신림동) : "50년이 넘었어요."

<녹취> 여(졸업생) : "67년 만이에요."

<녹취> 여(졸업생) : "60년도 넘었죠."

배우고 싶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사람들...

배움의 길에서 떠난 지 짧게는 30년에서 길게는 70년이 지나 드디어 졸업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졸업장의 의미는 더욱 남다르겠죠? 85세인 지상은 할머니도 최고령 졸업자로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환호가 쏟아지는데요.

<녹취> 지상은 (85세/경기도 부천시) : "고등학교를 배정받은 후 3월 4일에 입학해요.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 감회가 깊죠."

일제강점기 학교가 문을 닫거나, 전쟁 때문에, 또 어려운 집안형편 등으로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갖가지 사연들.

그래서 할머니들은 기쁘면서도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만학도 졸업생들의 소감, 직접 들어보시죠.

<녹취> 김선희 (78세/서울시 개포동) :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죠. 학교를 떠나니까."

<녹취> 장명자 (71세/서울시 영등포동) : "그래도 졸업장을 받으니까 기분이 정말 좋아요."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가족들은 더 감회가 깊습니다.

<녹취> 조해미 (서울시 대방동) : "기분이 정말 새롭고 엄마 고생하신 걸 생각하니까 여기 계신 분들이 정말 훌륭하십니다."

<녹취> 안경옥 (65세/서울시 대방동) : "(딸이) 저 공부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줘서 정말 감사하죠. 가족들한테 정말 고마워요. 우리 아들딸, 고마워."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겠죠.

이번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세 분의 할머니들을 따라가봤습니다.

3년 내내 동고동락한 단짝 여고생들인데요.

그런데 낯익은 분이 계십니다.

지난해 11월, 최고령 수능 응시자로 화제포착에서도 소개된 류옥이 할머니입니다.

류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교사가 학교를 떠나면서 휴교가 되는 바람에 초등학교 4학년을 끝으로 학교를 떠나게 됐는데요,

평생 소원이 이번에 이뤄졌습니다.

<녹취> 류옥이 (80세/경기도 고양시) :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니까 내가 진짜 소원을 이뤘구나, 생각했죠."

<녹취> 강선구 (74세/서울시 은평구) : "내가 얼마나 공부를 하고 싶었으면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녹취> 심영남 (72세/서울시 당산동) : "알파벳도 다 잊어버렸는데 조금씩 뭔가를 알아가니까 재미있는 거예요."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자신감이 더 많이 생겼다는 할머니들.

예전엔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꿨다는데요.

<녹취> 강선구 (74세/서울시 은평구) : "대학 가서 좋겠다!"

<녹취> 심영남 (72세/서울시 당산동) : "(동아리) 활동하는 거죠. 동아리가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합창부 들어가서 활동하고 싶어요."

대학 입학을 앞두고 기대에 찬 모습이 여느 대학 새내기들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 달 입학을 앞둔 심영남 할머니는 가족들의 응원과 도움이 아니었다면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을 거라는데요,

<녹취> 문정선 (서울시 당산동) : "고등학교까지는 이해하고 보내드렸는데 이번에 대학교까지 가신다고 해서 또 한 번 집안이 뒤집어졌죠. 그런데 어머니께서 정말 (공부)하고 싶어 하시니까 하고 싶은 걸 하시면서 늘 건강하게 열심히 사시는 것도 자식으로서 해드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특히 남편의 소리 없는 외조는 두고두고 고맙다고요.

<녹취> 남편 : "내가 도와준 게 뭐 있어."

<녹취> 문정선 (서울시 당산동) : "아버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가방 들어주셨어요. 어머니께서 힘들고 책이 무겁잖아요. 그러니까 지하철역까지 배웅해주셨어요."

<녹취> 심영남 (72세/서울시 당산동) : "지하철역이 뭐야. 학교까지 데려다 줬지!"

덕분에 부부간의 금슬도 더 좋아졌다고 합니다.

<녹취> 심영남 (72세/서울시 당산동) : "나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당신이 건강하세요. 내 뒷바라지 해주려면! 우리 남편같이 좋은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예요. 사실 내가 대학 다니고, 고등학교 다닌 것도 당신 덕분이야."

배움에 대한 한을 간직한 채 평생을 주부로만 살아왔기에 평생 소원이었던 여대생이 된다는 게 아직도 잘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책상 앞에 앉는 할머니.

뭘 하시나 봤더니!

가장 자신 있는 과목, 한자를 공부 중입니다.

대학 입학을 앞둔 할머니의 각오를 한번 들어볼까요?

<녹취> 심영남 (72세/서울시 당산동) : "나이 먹어서도 내 나이를 잊어버리고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하고 졸업하고 싶어요. (대학 생활이) 나중에 후회 없이 남을 수 있도록. 자랑스럽게!"

평생 목말랐던 공부에 대한 열정.

그 열정은 아무도, 아무것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공부하는 재미 덕에 치매 걱정도 덜었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라는 말이 그야말로 실감납니다.

함께 응원할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화제포착] 왕언니들의 반 세기만에 졸업하던 날
    • 입력 2013-02-28 08:44:12
    • 수정2013-02-28 10:08:43
    아침뉴스타임
<앵커 멘트> 이달에 아이들 졸업식 치른 분들 많죠? 졸업식날 장면, 누구나 가슴 한켠에 아련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텐데요. 아마 이 분들에겐 올해 졸업식이 한결 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수십 년 만에 졸업장을 받은 할머니 졸업생들 얘깁니다. 저마다 가슴 찡한 사연을 안고 있는데요. 양영은 기자, 늦깎이 여학생들의 졸업식 이야기를 취재하셨다고요? <기자 멘트> 네, 졸업하는 학생들도 울고, 지켜보던 가족들도 울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요? 서러움, 기쁨... 이런 한 단어로는 표현이 잘 안 될 것 같습니다. 전에 할머니께 들은 얘기 중에 학교를 떠나던 날 많이 우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더 이상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게 서럽고 서글퍼서...'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지금은 상상이 잘 안 되지만, 우리네 할머니들은 여자라서, 가난해서, 전쟁이 나서, 금혼 학칙이 있어서 등등 여러 이유로 배움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할머니들이 드디어 졸업장을 받던 날, 화제포착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6일,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졸업식장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노숙녀들이 모여듭니다. <녹취> 피디 : "좋은 날인가 봐요?" <녹취> 김용자(서울시 신림동) : "예! 좋은 날이에요!" <녹취> 피디 : "무슨 날인가요?" <녹취> 김용자(서울시 신림동) : "평생 한 번, 졸업하는 날이에요." <녹취> 피디 : "몇 년 만의 졸업인가요?" <녹취> 김용자(서울시 신림동) : "50년이 넘었어요." <녹취> 여(졸업생) : "67년 만이에요." <녹취> 여(졸업생) : "60년도 넘었죠." 배우고 싶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사람들... 배움의 길에서 떠난 지 짧게는 30년에서 길게는 70년이 지나 드디어 졸업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졸업장의 의미는 더욱 남다르겠죠? 85세인 지상은 할머니도 최고령 졸업자로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환호가 쏟아지는데요. <녹취> 지상은 (85세/경기도 부천시) : "고등학교를 배정받은 후 3월 4일에 입학해요.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 감회가 깊죠." 일제강점기 학교가 문을 닫거나, 전쟁 때문에, 또 어려운 집안형편 등으로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갖가지 사연들. 그래서 할머니들은 기쁘면서도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만학도 졸업생들의 소감, 직접 들어보시죠. <녹취> 김선희 (78세/서울시 개포동) :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죠. 학교를 떠나니까." <녹취> 장명자 (71세/서울시 영등포동) : "그래도 졸업장을 받으니까 기분이 정말 좋아요."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가족들은 더 감회가 깊습니다. <녹취> 조해미 (서울시 대방동) : "기분이 정말 새롭고 엄마 고생하신 걸 생각하니까 여기 계신 분들이 정말 훌륭하십니다." <녹취> 안경옥 (65세/서울시 대방동) : "(딸이) 저 공부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줘서 정말 감사하죠. 가족들한테 정말 고마워요. 우리 아들딸, 고마워."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겠죠. 이번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세 분의 할머니들을 따라가봤습니다. 3년 내내 동고동락한 단짝 여고생들인데요. 그런데 낯익은 분이 계십니다. 지난해 11월, 최고령 수능 응시자로 화제포착에서도 소개된 류옥이 할머니입니다. 류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교사가 학교를 떠나면서 휴교가 되는 바람에 초등학교 4학년을 끝으로 학교를 떠나게 됐는데요, 평생 소원이 이번에 이뤄졌습니다. <녹취> 류옥이 (80세/경기도 고양시) :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니까 내가 진짜 소원을 이뤘구나, 생각했죠." <녹취> 강선구 (74세/서울시 은평구) : "내가 얼마나 공부를 하고 싶었으면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녹취> 심영남 (72세/서울시 당산동) : "알파벳도 다 잊어버렸는데 조금씩 뭔가를 알아가니까 재미있는 거예요."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자신감이 더 많이 생겼다는 할머니들. 예전엔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꿨다는데요. <녹취> 강선구 (74세/서울시 은평구) : "대학 가서 좋겠다!" <녹취> 심영남 (72세/서울시 당산동) : "(동아리) 활동하는 거죠. 동아리가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합창부 들어가서 활동하고 싶어요." 대학 입학을 앞두고 기대에 찬 모습이 여느 대학 새내기들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 달 입학을 앞둔 심영남 할머니는 가족들의 응원과 도움이 아니었다면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을 거라는데요, <녹취> 문정선 (서울시 당산동) : "고등학교까지는 이해하고 보내드렸는데 이번에 대학교까지 가신다고 해서 또 한 번 집안이 뒤집어졌죠. 그런데 어머니께서 정말 (공부)하고 싶어 하시니까 하고 싶은 걸 하시면서 늘 건강하게 열심히 사시는 것도 자식으로서 해드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특히 남편의 소리 없는 외조는 두고두고 고맙다고요. <녹취> 남편 : "내가 도와준 게 뭐 있어." <녹취> 문정선 (서울시 당산동) : "아버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가방 들어주셨어요. 어머니께서 힘들고 책이 무겁잖아요. 그러니까 지하철역까지 배웅해주셨어요." <녹취> 심영남 (72세/서울시 당산동) : "지하철역이 뭐야. 학교까지 데려다 줬지!" 덕분에 부부간의 금슬도 더 좋아졌다고 합니다. <녹취> 심영남 (72세/서울시 당산동) : "나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당신이 건강하세요. 내 뒷바라지 해주려면! 우리 남편같이 좋은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예요. 사실 내가 대학 다니고, 고등학교 다닌 것도 당신 덕분이야." 배움에 대한 한을 간직한 채 평생을 주부로만 살아왔기에 평생 소원이었던 여대생이 된다는 게 아직도 잘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책상 앞에 앉는 할머니. 뭘 하시나 봤더니! 가장 자신 있는 과목, 한자를 공부 중입니다. 대학 입학을 앞둔 할머니의 각오를 한번 들어볼까요? <녹취> 심영남 (72세/서울시 당산동) : "나이 먹어서도 내 나이를 잊어버리고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하고 졸업하고 싶어요. (대학 생활이) 나중에 후회 없이 남을 수 있도록. 자랑스럽게!" 평생 목말랐던 공부에 대한 열정. 그 열정은 아무도, 아무것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공부하는 재미 덕에 치매 걱정도 덜었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라는 말이 그야말로 실감납니다. 함께 응원할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