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일본 대지진 2년! 여전한 아픔

입력 2013.03.10 (09:27) 수정 2013.03.1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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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봄이 왔는데 봄이 아닌 곳이 있습니다. 2년 전, 3월 11일. 바로 모렙니다. 지금도 현실이었나?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2년 되는 날입니다.

지진과 쓰나미, 원전사고라는 3중 피해를 입은 처참했던 당시 현장은 지금도 기억에 선한데요. 지진 규모 9. 최고 40미터 쓰나미가 덮치면서 만 5천 명 넘게 숨졌고, 3천 명 넘는 실종자는 결국 찾지 못 했습니다.

난민만 해도 50만 명 가까웠다고 하는데요. 2년이 지나면서 겉모습은 안정을 찾고 있지만, 그 속까지 평안할 수가 없겠죠? 홍수진 특파원이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3월11일 대지진 당시, 쓰나미에 이어 닥친 화재로 불바다로 변한 미야기현 게센누마시 입니다. 잿더미가 됐던 항구는 어부들이 돌아오면서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국 4위였던 꽁치 어획량은 크게 떨어졌고, 망가진 시설은 복구도 안 됐습니다.

<인터뷰>치바(어업 40년):“양도 줄었지만 냉동 시설 같은게 다 부서져 버렸으니까 지금은 많이 잡아도 보관이 안되고 그런 점이 있죠. 가장 피해가 심했던 시가지. 주저앉고 부서진 건물이 그대로 남아 2년 전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쓰나미로 바다에서 1km나 떨어진 여기까지 쓸려온 대형어선은 지금도 도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3분거리 중심가에서 보석상을 하던 나가이 씨가 터만 남은 예전 집 앞에 섰습니다.

다행히 가족 모두 무사했지만, 100년 가까이 지켜온 가업과 집을 눈앞에서 잃은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질 않습니다.

<인터뷰>나가이:“이 가게는 뭐 관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안 할 거예요. 여기에 다시 서면 쓰나미 그날로 돌아가는 것 같은 생각...”

나가이 씨를 비롯해 게센누마 에서 집을 잃은 500여 세대는 주변 높은 언덕에 있는 가설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던 사람들은 쓰나미로 집을 잃은 슬픔을 공유하며 이웃이 됐습니다. 최근엔 정부의 복구 계획마저 늦어져 3년째 접어드는 가설주택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게 걱정입니다.

<인터뷰>나가이:“지금 뭐 정해진 게 없어요. 공영주택 들어가고 싶은데 그것도 진행초기 단계이고...”

쓰나미가 남긴 흔적도 피해주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쓰나미가 옵니다. 피하세요.

마지막까지 대피 방송을 하다 숨져 일본 열도를 울렸던 엔도 씨 등 100여명이 희생된 방재센터 건물은 유가족 등의 요청에 따라 지난달 철거됐습니다.

그러나 직원 40명 등이 숨진 동사무소는 쓰나미 교훈을 위해 보존하자는 유가족과 해체를 원하는 유가족 의견이 엇갈리면서2년째 그대로 있습니다. 쓰나미가 덮친 집, 부인과 손녀, 아들부부까지 4명을 잃은 스즈키상은, 슬픔의 장소에서 다시한번 재기하기로 했습니다.

옛집을 떠날까도 생각했지만, 이제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던 손녀를 위해하루빨리 집을 복구하자는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인터뷰>스즈키(69세):“즐거운 일고 슬픈 일도 있는 것 이겠지만 여기에서 다시한번 시작하고 싶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 공포도 여전합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선 매일 2천 명이 방사능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수습까지는 최소한 40년이 걸릴 전망. 수소폭발로 폐허가 된 1호기에는 최근 방사능 유출을 줄이기 위한 지붕이 덮였고, 폐연료봉 천 5백개가 들어 후쿠시마의 화약고로 불리는 원전 4호기는 연료봉을 꺼내기 위한 철 구조물이 겨우 마련됐습니다. 주변 방사능 수치는 지금도 높습니다.

<인터뷰>원전 작업원:"이곳은 방사선량이 300마이크로시버트로 매우 높아요"

3시간만 서 있으면 일반인의 1년 피폭 허용치를 넘는 수준, 세슘과 스트론튬 등 60여종 방사성 물질은 공기로 물로 새어나옵니다.

방사성 물질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 원전 20km 내 반경을 제외하고도 후쿠시마현 주민 16만명 등 31만 명은 고향을 떠나 전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도쿄인근 사이타마현의 폐교. 후쿠시마 원전 3km 내 후타바마치에 살던 150명이 생활하는
집단 피난솝니다. 지진에 집이 무너지면서 옷 하나들고 나온 사가라 씨는 2년이나 집단 피난소에 살 줄 몰랐습니다. 아들과 어머니는 도쿄로, 방사능 피해 때문에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인터뷰>사가라:“짐 들고 피난할 때는 내일이면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지 설마 내가 2년을....”

피난소 주변에는 후타바마치 사람들 수백 명이 새로운 생활터전을 마련했습니다. 원전 직원이던 후루야마 씨. 제 2의 고향에서 재기를 꿈꾸며 간병자격증도 땄지만, 원전 피해지역 주민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털어놓습니다.

<인터뷰>후루야마:“면접에 가면 또 피난민이라고 하면 꼭 떨어지더라고요 왜 그런지,. 그나마 여자는 나은데 저같이 나이든 남자는....”

돌아갈 집도 고향도, 직장도 잃고, 기약 없는 생활하는 이들, 자신들은 이제 피난민이 아닌
원전난민이라고 말합니다.

원전에서 10~30km 떨어져 마을 절반만 사람이 살 수 있는 후쿠시마현 가와우치무라
두릅 농사를 짓는 75세 히라이 씨 부부는 귀향을 선택했습니다. 겨우 2년 만에 방사능 없이 두릅 수확이 가능해졌습니다,

<인터뷰>히라이:“방사능 검사를 다 일일이 받아요. 전혀 안 나왔다는 표시죠. 안 그러면 출하 안 됩니다.”

고향이 좋아서 왔지만, 손자손녀까지 10명이 북적이던 집에 노부부만 있으려니 쓸쓸합니다.

집 앞, 마을 입구에 있는 방사능 선량계는 시간당 0.168마이크로 시버트. 도쿄의 2배 정도지만 별 문제없는 수준입니다. 히라이 씨는 그러나 마을에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여기 저기 빈집들뿐 이라고 말합니다.

이 곳 가와우치무라는 젊은 층 주민들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원전 사고 전에 3000명이 넘던 주민은 400여명으로 줄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학교도, 고향도 없어지는 건 아닌지 귀향을 선택한 사람들은 위기감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인터뷰>히라이:“이제 뭐 이 마을이야 나 같은 노인네들만 남고 그런 곳이 되겠죠... 누가 살겠나”

일본 정부는 이와테와 미야기, 후쿠시마 등 3개 피해지의 빠른 복구와 귀촌을 돕기 위해 예산 19조엔 을 편성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지의 주택건설은 0.1%만 진척됐고, 고용창출은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인터뷰>아베(일본 총리):“주택 건설 등 피해지에 대한 복구 부흥이 상당히 진척 느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동북지방의 성장을 위해 힘 쏟겠다.”

정부의 설명에도 피해지역 자치단체장들은 복구까지 최소 6년에서 10년은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곳곳에 보이는 빨간 리본. 방사능 오염물질을 완전히 제거했다는 표십니다.

그러나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흙과 쓰레기 등은 중간저장시설과 최종 처분장이 없어 6만톤이 도로 등에 방치돼 있습니다. 원전에서 매일 나오는 4백 톤의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도 이미 부지 내 70%를 채워 더 이상 둘 곳도 없습니다.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쓰레기 처리는 재해 복구의 또 다른 큰 걸림돌입니다. 피해지 3개현에선 이미 7만 2천명이 고향을 떠나는 등 인구유출도 심각합니다.

<인터뷰>아베(일본여자대 교수):“인구 이동이 굉장히 대규모이고 게다가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사고가 남긴 상처. 다시 일어서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완전히 극복 하는 데는 지난 2년 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삶을 크게 바꿔놓은 방사능 피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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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리포트] 일본 대지진 2년! 여전한 아픔
    • 입력 2013-03-10 09:27:45
    • 수정2013-03-10 09:49:04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봄이 왔는데 봄이 아닌 곳이 있습니다. 2년 전, 3월 11일. 바로 모렙니다. 지금도 현실이었나?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2년 되는 날입니다.

지진과 쓰나미, 원전사고라는 3중 피해를 입은 처참했던 당시 현장은 지금도 기억에 선한데요. 지진 규모 9. 최고 40미터 쓰나미가 덮치면서 만 5천 명 넘게 숨졌고, 3천 명 넘는 실종자는 결국 찾지 못 했습니다.

난민만 해도 50만 명 가까웠다고 하는데요. 2년이 지나면서 겉모습은 안정을 찾고 있지만, 그 속까지 평안할 수가 없겠죠? 홍수진 특파원이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3월11일 대지진 당시, 쓰나미에 이어 닥친 화재로 불바다로 변한 미야기현 게센누마시 입니다. 잿더미가 됐던 항구는 어부들이 돌아오면서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국 4위였던 꽁치 어획량은 크게 떨어졌고, 망가진 시설은 복구도 안 됐습니다.

<인터뷰>치바(어업 40년):“양도 줄었지만 냉동 시설 같은게 다 부서져 버렸으니까 지금은 많이 잡아도 보관이 안되고 그런 점이 있죠. 가장 피해가 심했던 시가지. 주저앉고 부서진 건물이 그대로 남아 2년 전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쓰나미로 바다에서 1km나 떨어진 여기까지 쓸려온 대형어선은 지금도 도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3분거리 중심가에서 보석상을 하던 나가이 씨가 터만 남은 예전 집 앞에 섰습니다.

다행히 가족 모두 무사했지만, 100년 가까이 지켜온 가업과 집을 눈앞에서 잃은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질 않습니다.

<인터뷰>나가이:“이 가게는 뭐 관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안 할 거예요. 여기에 다시 서면 쓰나미 그날로 돌아가는 것 같은 생각...”

나가이 씨를 비롯해 게센누마 에서 집을 잃은 500여 세대는 주변 높은 언덕에 있는 가설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던 사람들은 쓰나미로 집을 잃은 슬픔을 공유하며 이웃이 됐습니다. 최근엔 정부의 복구 계획마저 늦어져 3년째 접어드는 가설주택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게 걱정입니다.

<인터뷰>나가이:“지금 뭐 정해진 게 없어요. 공영주택 들어가고 싶은데 그것도 진행초기 단계이고...”

쓰나미가 남긴 흔적도 피해주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쓰나미가 옵니다. 피하세요.

마지막까지 대피 방송을 하다 숨져 일본 열도를 울렸던 엔도 씨 등 100여명이 희생된 방재센터 건물은 유가족 등의 요청에 따라 지난달 철거됐습니다.

그러나 직원 40명 등이 숨진 동사무소는 쓰나미 교훈을 위해 보존하자는 유가족과 해체를 원하는 유가족 의견이 엇갈리면서2년째 그대로 있습니다. 쓰나미가 덮친 집, 부인과 손녀, 아들부부까지 4명을 잃은 스즈키상은, 슬픔의 장소에서 다시한번 재기하기로 했습니다.

옛집을 떠날까도 생각했지만, 이제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던 손녀를 위해하루빨리 집을 복구하자는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인터뷰>스즈키(69세):“즐거운 일고 슬픈 일도 있는 것 이겠지만 여기에서 다시한번 시작하고 싶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 공포도 여전합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선 매일 2천 명이 방사능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수습까지는 최소한 40년이 걸릴 전망. 수소폭발로 폐허가 된 1호기에는 최근 방사능 유출을 줄이기 위한 지붕이 덮였고, 폐연료봉 천 5백개가 들어 후쿠시마의 화약고로 불리는 원전 4호기는 연료봉을 꺼내기 위한 철 구조물이 겨우 마련됐습니다. 주변 방사능 수치는 지금도 높습니다.

<인터뷰>원전 작업원:"이곳은 방사선량이 300마이크로시버트로 매우 높아요"

3시간만 서 있으면 일반인의 1년 피폭 허용치를 넘는 수준, 세슘과 스트론튬 등 60여종 방사성 물질은 공기로 물로 새어나옵니다.

방사성 물질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 원전 20km 내 반경을 제외하고도 후쿠시마현 주민 16만명 등 31만 명은 고향을 떠나 전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도쿄인근 사이타마현의 폐교. 후쿠시마 원전 3km 내 후타바마치에 살던 150명이 생활하는
집단 피난솝니다. 지진에 집이 무너지면서 옷 하나들고 나온 사가라 씨는 2년이나 집단 피난소에 살 줄 몰랐습니다. 아들과 어머니는 도쿄로, 방사능 피해 때문에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인터뷰>사가라:“짐 들고 피난할 때는 내일이면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지 설마 내가 2년을....”

피난소 주변에는 후타바마치 사람들 수백 명이 새로운 생활터전을 마련했습니다. 원전 직원이던 후루야마 씨. 제 2의 고향에서 재기를 꿈꾸며 간병자격증도 땄지만, 원전 피해지역 주민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털어놓습니다.

<인터뷰>후루야마:“면접에 가면 또 피난민이라고 하면 꼭 떨어지더라고요 왜 그런지,. 그나마 여자는 나은데 저같이 나이든 남자는....”

돌아갈 집도 고향도, 직장도 잃고, 기약 없는 생활하는 이들, 자신들은 이제 피난민이 아닌
원전난민이라고 말합니다.

원전에서 10~30km 떨어져 마을 절반만 사람이 살 수 있는 후쿠시마현 가와우치무라
두릅 농사를 짓는 75세 히라이 씨 부부는 귀향을 선택했습니다. 겨우 2년 만에 방사능 없이 두릅 수확이 가능해졌습니다,

<인터뷰>히라이:“방사능 검사를 다 일일이 받아요. 전혀 안 나왔다는 표시죠. 안 그러면 출하 안 됩니다.”

고향이 좋아서 왔지만, 손자손녀까지 10명이 북적이던 집에 노부부만 있으려니 쓸쓸합니다.

집 앞, 마을 입구에 있는 방사능 선량계는 시간당 0.168마이크로 시버트. 도쿄의 2배 정도지만 별 문제없는 수준입니다. 히라이 씨는 그러나 마을에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여기 저기 빈집들뿐 이라고 말합니다.

이 곳 가와우치무라는 젊은 층 주민들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원전 사고 전에 3000명이 넘던 주민은 400여명으로 줄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학교도, 고향도 없어지는 건 아닌지 귀향을 선택한 사람들은 위기감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인터뷰>히라이:“이제 뭐 이 마을이야 나 같은 노인네들만 남고 그런 곳이 되겠죠... 누가 살겠나”

일본 정부는 이와테와 미야기, 후쿠시마 등 3개 피해지의 빠른 복구와 귀촌을 돕기 위해 예산 19조엔 을 편성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지의 주택건설은 0.1%만 진척됐고, 고용창출은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인터뷰>아베(일본 총리):“주택 건설 등 피해지에 대한 복구 부흥이 상당히 진척 느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동북지방의 성장을 위해 힘 쏟겠다.”

정부의 설명에도 피해지역 자치단체장들은 복구까지 최소 6년에서 10년은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곳곳에 보이는 빨간 리본. 방사능 오염물질을 완전히 제거했다는 표십니다.

그러나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흙과 쓰레기 등은 중간저장시설과 최종 처분장이 없어 6만톤이 도로 등에 방치돼 있습니다. 원전에서 매일 나오는 4백 톤의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도 이미 부지 내 70%를 채워 더 이상 둘 곳도 없습니다.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쓰레기 처리는 재해 복구의 또 다른 큰 걸림돌입니다. 피해지 3개현에선 이미 7만 2천명이 고향을 떠나는 등 인구유출도 심각합니다.

<인터뷰>아베(일본여자대 교수):“인구 이동이 굉장히 대규모이고 게다가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사고가 남긴 상처. 다시 일어서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완전히 극복 하는 데는 지난 2년 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삶을 크게 바꿔놓은 방사능 피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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