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뿐인 전쟁’ 이라크 전 10년

입력 2013.03.24 (07:57) 수정 2013.03.2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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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제2차 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전쟁 직후 사담 후세인 독재 정권이 붕괴됐지만 이라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전쟁 명분이었던 대량 살상 무기는 아예 찾지도 못 했죠?

대신 10년 동안 쏟아부은 엄청난 전쟁 비용, 그리고 무엇보다 희생자 숫자는 18만 명을 넘길 정도로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실패한 전쟁이라는 솔직한 평가가 나오고 있을 정돕니다.

두바이를 연결합니다.

이영석 특파원!

<질문>

수요일 20일로 만 10년이 됐는데 이라크 상황은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소식 뿐이군요?

<답변>

네, 마치 전쟁 10주년을 노리기라도 한 듯 이번 주 폭탄 테러가 잇따라 일어났습니다.

지난 19일에는 수도 바그다드 등지에서 주로 시아파를 겨냥한 연쇄 테러 공격으로 65명이 숨지고 2백여 명이 다쳤습니다.

10주년 당일인 20일에도 출근 시간에 바그다드에서 주차된 차량이 폭발해 민간인 2명이 숨지는 등 테러가 이어졌습니다.

이라크에서는 지난 2006년과 2007년을 정점으로 점차 폭력과 테러 사건이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2011년 말 미군 철수 이후 다시 테러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 각종 폭력 사태로 4천5백여 명이 숨졌고요,

올해도 벌써 7백 명 이상 목숨을 잃었습니다.

10년 동안 희생자 수는 18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질문>

독재 정권이 무너진 지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혼란스러운 원인은 뭡니까?

<답변>

네, 이라크의 복잡한 종파와 민족 구성이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사담 후세인 시절 이라크는 소수인 수니파가 다수인 시아파를 지배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동안은 사담 후세인이라는 강력한 독재자가 폭력과 억압을 통해 국가를 하나로 유지해 왔는데요,

독재 정권이 사라지면서 그동안 억압받던 다수 시아파와 이전 집권 세력인 소수 수니파와의 갈등이 폭력 사태로 노출된 것입니다.

현재 일어나는 테러 상당수는 알 카에다 연계 세력 등 수니파 무장 단체가 시아파를 겨냥한 것입니다.

미군이 철수하고 현재 치안 관할권을 모두 이라크 정부가 갖고 있는데요,

치안 유지에는 아직 역부족입니다.

이런 종파 갈등에다 아랍 족과 쿠르드 족과의 민족 갈등까지 겹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은 정치권으로도 이어져 중앙 정부 내 수니-시아파 간 권력 암투, 석유 관할권에 대한 중앙 정부와 쿠르드 자치 정부의 다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쉬루크(바그다드 주민)

<질문>

개전 초기만 해도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손쉽게 승리를 거두면서 낙관적인 분위기가 팽패하지 않았습니까?

<답변>

네, 이라크 전쟁은 속전속결로 치러졌습니다.

2003년 3월 20일 현지 새벽 다섯시 반 쯤,

크루즈 미사일 수십여 대가 바그다드 외곽을 집중 폭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미군은 첨단무기를 동원해 20일 만에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했고, 이어 후세인 정권의 마지막 보루였던 티크리트까지 진격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40일 만에 종전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사담 후세인을 생포했고, 3년 뒤인 2006년에는 재판을 통해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독재 정권 붕괴 이후 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고, 새 총리 선출과 헌법 제정까지 이뤄졌지만 정국 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질문>

당시 내걸었던 명분도 논란이죠?

대량 살상 무기를 찾겠다는 게 가장 큰 명분 아니었습니까?

<답변>

네, 전쟁의 가장 큰 명분은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어 지역 안정과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이같은 자체 정보를 갖고 유엔 안보리 결의까지 이끌어 내면서 전쟁의 명분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대량살상무기는 결국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후세인 정권이 알 카에다와 연계돼 테러를 지원했다는 혐의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와 함께 독재 정권 붕괴와 민주주의 확산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지금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아부 그라이브 포로 수용소에서의 이라크 인 고문 사건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집단 학살 파문 등은 오히려 이라크 내 반미 감정을 부추기는 계기가 됐습니다.

<질문>

미국도 입장이 난처하겠어요? 미국 분위기도 전해주시죠?

<답변>

네, 미국의 여론도 지난 10년 사이 많이 변했습니다.

10년 전에는 미국인 70%가 이라크 전쟁에 찬성했었는데요,

지금은 전쟁을 '치를 가치가 없었다'는 의견이 6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참전 군인 가운데 4천4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생존 군인들도 높은 자살률과 사회 부적응 등 심각한 후유증을 보이면서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우리 돈 2천4백조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전쟁 비용 부담도 미국 정부에 큰 짐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탓에 오바마 대통령도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는 짧은 성명만을 내놨습니다.

<인터뷰>제이 카니(미국 백악관 대변인)

이라크 전은 세계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의 지도력에도 타격을 줬습니다,

미국이 현재 시리아 내전에 적극적인 개입을 꺼리는 것도 원치 않는 전쟁에 또다시 휘말릴 수 있다는 이라크 전의 쓰라린 경험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두바이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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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처뿐인 전쟁’ 이라크 전 10년
    • 입력 2013-03-24 07:57:22
    • 수정2013-03-24 11:38:04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제2차 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전쟁 직후 사담 후세인 독재 정권이 붕괴됐지만 이라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전쟁 명분이었던 대량 살상 무기는 아예 찾지도 못 했죠?

대신 10년 동안 쏟아부은 엄청난 전쟁 비용, 그리고 무엇보다 희생자 숫자는 18만 명을 넘길 정도로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실패한 전쟁이라는 솔직한 평가가 나오고 있을 정돕니다.

두바이를 연결합니다.

이영석 특파원!

<질문>

수요일 20일로 만 10년이 됐는데 이라크 상황은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소식 뿐이군요?

<답변>

네, 마치 전쟁 10주년을 노리기라도 한 듯 이번 주 폭탄 테러가 잇따라 일어났습니다.

지난 19일에는 수도 바그다드 등지에서 주로 시아파를 겨냥한 연쇄 테러 공격으로 65명이 숨지고 2백여 명이 다쳤습니다.

10주년 당일인 20일에도 출근 시간에 바그다드에서 주차된 차량이 폭발해 민간인 2명이 숨지는 등 테러가 이어졌습니다.

이라크에서는 지난 2006년과 2007년을 정점으로 점차 폭력과 테러 사건이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2011년 말 미군 철수 이후 다시 테러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 각종 폭력 사태로 4천5백여 명이 숨졌고요,

올해도 벌써 7백 명 이상 목숨을 잃었습니다.

10년 동안 희생자 수는 18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질문>

독재 정권이 무너진 지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혼란스러운 원인은 뭡니까?

<답변>

네, 이라크의 복잡한 종파와 민족 구성이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사담 후세인 시절 이라크는 소수인 수니파가 다수인 시아파를 지배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동안은 사담 후세인이라는 강력한 독재자가 폭력과 억압을 통해 국가를 하나로 유지해 왔는데요,

독재 정권이 사라지면서 그동안 억압받던 다수 시아파와 이전 집권 세력인 소수 수니파와의 갈등이 폭력 사태로 노출된 것입니다.

현재 일어나는 테러 상당수는 알 카에다 연계 세력 등 수니파 무장 단체가 시아파를 겨냥한 것입니다.

미군이 철수하고 현재 치안 관할권을 모두 이라크 정부가 갖고 있는데요,

치안 유지에는 아직 역부족입니다.

이런 종파 갈등에다 아랍 족과 쿠르드 족과의 민족 갈등까지 겹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은 정치권으로도 이어져 중앙 정부 내 수니-시아파 간 권력 암투, 석유 관할권에 대한 중앙 정부와 쿠르드 자치 정부의 다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쉬루크(바그다드 주민)

<질문>

개전 초기만 해도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손쉽게 승리를 거두면서 낙관적인 분위기가 팽패하지 않았습니까?

<답변>

네, 이라크 전쟁은 속전속결로 치러졌습니다.

2003년 3월 20일 현지 새벽 다섯시 반 쯤,

크루즈 미사일 수십여 대가 바그다드 외곽을 집중 폭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미군은 첨단무기를 동원해 20일 만에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했고, 이어 후세인 정권의 마지막 보루였던 티크리트까지 진격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40일 만에 종전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사담 후세인을 생포했고, 3년 뒤인 2006년에는 재판을 통해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독재 정권 붕괴 이후 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고, 새 총리 선출과 헌법 제정까지 이뤄졌지만 정국 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질문>

당시 내걸었던 명분도 논란이죠?

대량 살상 무기를 찾겠다는 게 가장 큰 명분 아니었습니까?

<답변>

네, 전쟁의 가장 큰 명분은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어 지역 안정과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이같은 자체 정보를 갖고 유엔 안보리 결의까지 이끌어 내면서 전쟁의 명분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대량살상무기는 결국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후세인 정권이 알 카에다와 연계돼 테러를 지원했다는 혐의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와 함께 독재 정권 붕괴와 민주주의 확산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지금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아부 그라이브 포로 수용소에서의 이라크 인 고문 사건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집단 학살 파문 등은 오히려 이라크 내 반미 감정을 부추기는 계기가 됐습니다.

<질문>

미국도 입장이 난처하겠어요? 미국 분위기도 전해주시죠?

<답변>

네, 미국의 여론도 지난 10년 사이 많이 변했습니다.

10년 전에는 미국인 70%가 이라크 전쟁에 찬성했었는데요,

지금은 전쟁을 '치를 가치가 없었다'는 의견이 6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참전 군인 가운데 4천4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생존 군인들도 높은 자살률과 사회 부적응 등 심각한 후유증을 보이면서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우리 돈 2천4백조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전쟁 비용 부담도 미국 정부에 큰 짐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탓에 오바마 대통령도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는 짧은 성명만을 내놨습니다.

<인터뷰>제이 카니(미국 백악관 대변인)

이라크 전은 세계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의 지도력에도 타격을 줬습니다,

미국이 현재 시리아 내전에 적극적인 개입을 꺼리는 것도 원치 않는 전쟁에 또다시 휘말릴 수 있다는 이라크 전의 쓰라린 경험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두바이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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