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갈등 없는 해고의 비결

입력 2013.04.06 (22:38) 수정 2013.04.0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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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핀란드는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노키아의 나라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요.

대표기업 노키아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핀란드 내 모든 공장을 폐쇄하는 등 대량 해고와 실업이 이어졌는데요.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파업이나 대규모 시위같은 큰 갈등없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고된 노동자들을 돕고 있다고 하는데요.

조지현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한 때 전 세계 휴대전화의 70%를 차지했던 노키아.

북 유럽 핀란드의 신화였습니다.

국내 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했던 대표기업의 몰락은 핀란드에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노키아와 하청기업에선 지난 2년동안 무려 만 7천여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노키아의 대표제품을 생산하던 살로 공장.

핀란드의 마지막 휴대전화 생산공장으로 한 때 2천명 넘게 근무했지만 노키아 경영난으로 결국 지난해 9월 폐쇄됐습니다.

직원들은 대부분 해고됐습니다.

노키아에서 30년간 근무했던 따르야씨도 지난해 초 해고됐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공장이 아니라 직업학교로 출근합니다.

따르야씨는 해고되기 6개월 전부터 회사로부터 통지를 받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왔습니다.

결국 노키아의 도움으로 간호사 재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함께 교육받는 사람들도 모두 노키아의 전 직원들입니다.

학비도 무료인데다 해고되기 전부터 미리 미리 준비한 덕에 앞으로도 생활에 큰 걱정이 없습니다.

<인터뷰>따르야 바로 (간호사) :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실직 상태로 있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따르야씨와 동료들이 간호사라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은 노키아가 운영하고 있는 해고자 지원 프로그램 덕분입니다.

노키아는 대량 감원이 시작된 2년 전부터 해고된 직원들을 지원하기 위한 이른바 브릿지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습니다.

재교육 프로그램에서부터 창업 지원까지 다양합니다.

살로 공장도 문을 닫기 전 부터 살로 시와 함께 공장 안에 브릿지 프로그램 지원 센터를 열고 해고자를 지원했습니다.

공장이 폐쇄된 뒤에는 맞은 편으로 자리를 옮겨 시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전문 상담사들이 실업자들에게 새로운 직업을 소개하고, 재교육 학교를 연결해 줄 뿐만 아니라, 창업 지원까지 맞춤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2천 여명이 이곳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데 노키아에서 해고된 직원 대부분이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셈입니다.

<인터뷰>마르꾸(노키아 전 직원) : "이곳에서 노키아를 나온 직원들이 새로운 직업을 찾고 새로운 경력을 쌓는데 큰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살로 시는 그야말로 노키아의 도시였습니다.

시 전체 예산의 6분의 1이 노키아로부터 거둬들이는 법인세였을 정도입니다.

살로 시에서만 지난 5년동안 6천 여명, 이곳 인구의 10% 이상이 노키아에서 해고됐습니다.

때문에 이곳 전체 경제가 타격을 입었습니다.

실업률은 5년 만에 8%에서 16%로 두배로 뛰었고, 노키아로부터 거둬들이던 법인세는 6억 유로에서 1억 유로로 줄었습니다.

이 위기를 살로 시는 노키아와 함께 풀어가고 있습니다.

브릿지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단계부터 함께 논의하며 실업 문제를 해결해왔고 살로 시와 노키아가 살아남는 방안을 함께 찾고 있습니다.

<인터뷰>살로 시장 : "노키아 시설물에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는 방안 등 함께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습니다. 1주일에 한 번은 꼭 협의하고 있습니다."

시 정부와 노키아 뿐만 아니라 지역 기업들도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습니다.

3대에 걸쳐 80년째 이 지역에서 운수회사를 운영하는 마띠씨.

노키아가 직원들을 대량 해고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해고된 노키아 직원을 버스 운전기사로 채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시는 버스 운전기사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지금은 10여명의 노키아 전 직원이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마띠 바이니오(운수회사 사장) : "우리 회사에서는 은퇴 연령에 있는 기사들이 많아서 새로운 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지난해 4월 노키아에서 해고된 에베씨도 6개월 간의 교육을 거쳐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해고의 충격은 에베 씨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인터뷰>에베(노키아 전직원) :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습니다. 평생 휴대전화를 조립하는 것보다 새로운 직업을 찾을 전기가 마련된 것이니까요."

물론 재교육기간에도 국가에서 주는 실업자금으로 생활에 어려움이 없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인터뷰>미까 네발라(노키아 전직원) : "월급의 75%를 실업자금으로 받았으며, 교육 기간 동안 하루 8유로를 더 받았죠. 총액으로 치면 월급과 비슷한 액수였습니다."

노키아 브릿지 프로그램은 실업 문제 해결 뿐 만아니라 핀란드 전체 경제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보아온 자전거와는 다른 새로운 디자인의 자전거.

체인이 없어 내구성이 좋은데다 누위서 타는 방식이어서 힘도 덜 든다는 게 타투씨의 설명입니다.

타투씨는 노키아에서 지난해 해고된 뒤 동료들과 이 새로운 자전거를 만드는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노키아로부터 창업을 위한 조언도 듣고 창업 지원금도 받았습니다.

올 하반기 판매가 목표인데 벌써 외국 고객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터뷰>타투(노키아 전 직원) : "노키아에서 배운 노하우를 쓸 수 있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노키아 브릿지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활발한 분야는 창업지원입니다.

아이디어에 따라 최고 2만 5천유로, 3천5백만원까지 창업 자금을 지원하고 자문도 해줍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4백 개 넘는 벤처기업이 탄생했습니다.

여기서 시작된 벤처 창업 열풍은 핀란드 경제를 살리는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습니다.

노키 브릿지 프로그램이 핀란드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전 세계 13개 나라에서 만7천여명이 노키아 브릿지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노키아에서 해고된 직원의 85%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2년 가까이 계속된 적자에 본사 건물까지 팔아야 했던 노키아가 어떻게 해고자를 지원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인터뷰> 마띠 반스카(노키아 브릿지 프로그램 책임자) : "그것은 선택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가치를 둘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일한 사람들을 돌보고 싶었고 책임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선택이 결국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이렇게 쌓인 신뢰는 지역사회, 정부와 쉽게 협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 노키아의 설명입니다.

<인터뷰>핀란드 노동부 장관 : "핀란드에서 대기업은 보통 미리 해고를 정부에 통고합니다. 그래서 해고된 직원과 해고하는 회사를 모두 정부와 사회가 지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키아의 위기와 유럽 금융위기에도 핀란드는 실업률 8%로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안정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 돕는 것은 위기를 극복하는 아주 기본적인 방법일 지 모릅니다.

우리 눈에는 어려워보이지만 핀란드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보이는 이 원칙은 결국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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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리포트] 갈등 없는 해고의 비결
    • 입력 2013-04-07 08:19:30
    • 수정2013-04-07 08:45:49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핀란드는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노키아의 나라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요.

대표기업 노키아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핀란드 내 모든 공장을 폐쇄하는 등 대량 해고와 실업이 이어졌는데요.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파업이나 대규모 시위같은 큰 갈등없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고된 노동자들을 돕고 있다고 하는데요.

조지현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한 때 전 세계 휴대전화의 70%를 차지했던 노키아.

북 유럽 핀란드의 신화였습니다.

국내 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했던 대표기업의 몰락은 핀란드에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노키아와 하청기업에선 지난 2년동안 무려 만 7천여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노키아의 대표제품을 생산하던 살로 공장.

핀란드의 마지막 휴대전화 생산공장으로 한 때 2천명 넘게 근무했지만 노키아 경영난으로 결국 지난해 9월 폐쇄됐습니다.

직원들은 대부분 해고됐습니다.

노키아에서 30년간 근무했던 따르야씨도 지난해 초 해고됐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공장이 아니라 직업학교로 출근합니다.

따르야씨는 해고되기 6개월 전부터 회사로부터 통지를 받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왔습니다.

결국 노키아의 도움으로 간호사 재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함께 교육받는 사람들도 모두 노키아의 전 직원들입니다.

학비도 무료인데다 해고되기 전부터 미리 미리 준비한 덕에 앞으로도 생활에 큰 걱정이 없습니다.

<인터뷰>따르야 바로 (간호사) :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실직 상태로 있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따르야씨와 동료들이 간호사라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은 노키아가 운영하고 있는 해고자 지원 프로그램 덕분입니다.

노키아는 대량 감원이 시작된 2년 전부터 해고된 직원들을 지원하기 위한 이른바 브릿지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습니다.

재교육 프로그램에서부터 창업 지원까지 다양합니다.

살로 공장도 문을 닫기 전 부터 살로 시와 함께 공장 안에 브릿지 프로그램 지원 센터를 열고 해고자를 지원했습니다.

공장이 폐쇄된 뒤에는 맞은 편으로 자리를 옮겨 시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전문 상담사들이 실업자들에게 새로운 직업을 소개하고, 재교육 학교를 연결해 줄 뿐만 아니라, 창업 지원까지 맞춤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2천 여명이 이곳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데 노키아에서 해고된 직원 대부분이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셈입니다.

<인터뷰>마르꾸(노키아 전 직원) : "이곳에서 노키아를 나온 직원들이 새로운 직업을 찾고 새로운 경력을 쌓는데 큰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살로 시는 그야말로 노키아의 도시였습니다.

시 전체 예산의 6분의 1이 노키아로부터 거둬들이는 법인세였을 정도입니다.

살로 시에서만 지난 5년동안 6천 여명, 이곳 인구의 10% 이상이 노키아에서 해고됐습니다.

때문에 이곳 전체 경제가 타격을 입었습니다.

실업률은 5년 만에 8%에서 16%로 두배로 뛰었고, 노키아로부터 거둬들이던 법인세는 6억 유로에서 1억 유로로 줄었습니다.

이 위기를 살로 시는 노키아와 함께 풀어가고 있습니다.

브릿지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단계부터 함께 논의하며 실업 문제를 해결해왔고 살로 시와 노키아가 살아남는 방안을 함께 찾고 있습니다.

<인터뷰>살로 시장 : "노키아 시설물에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는 방안 등 함께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습니다. 1주일에 한 번은 꼭 협의하고 있습니다."

시 정부와 노키아 뿐만 아니라 지역 기업들도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습니다.

3대에 걸쳐 80년째 이 지역에서 운수회사를 운영하는 마띠씨.

노키아가 직원들을 대량 해고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해고된 노키아 직원을 버스 운전기사로 채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시는 버스 운전기사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지금은 10여명의 노키아 전 직원이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마띠 바이니오(운수회사 사장) : "우리 회사에서는 은퇴 연령에 있는 기사들이 많아서 새로운 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지난해 4월 노키아에서 해고된 에베씨도 6개월 간의 교육을 거쳐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해고의 충격은 에베 씨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인터뷰>에베(노키아 전직원) :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습니다. 평생 휴대전화를 조립하는 것보다 새로운 직업을 찾을 전기가 마련된 것이니까요."

물론 재교육기간에도 국가에서 주는 실업자금으로 생활에 어려움이 없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인터뷰>미까 네발라(노키아 전직원) : "월급의 75%를 실업자금으로 받았으며, 교육 기간 동안 하루 8유로를 더 받았죠. 총액으로 치면 월급과 비슷한 액수였습니다."

노키아 브릿지 프로그램은 실업 문제 해결 뿐 만아니라 핀란드 전체 경제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보아온 자전거와는 다른 새로운 디자인의 자전거.

체인이 없어 내구성이 좋은데다 누위서 타는 방식이어서 힘도 덜 든다는 게 타투씨의 설명입니다.

타투씨는 노키아에서 지난해 해고된 뒤 동료들과 이 새로운 자전거를 만드는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노키아로부터 창업을 위한 조언도 듣고 창업 지원금도 받았습니다.

올 하반기 판매가 목표인데 벌써 외국 고객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터뷰>타투(노키아 전 직원) : "노키아에서 배운 노하우를 쓸 수 있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노키아 브릿지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활발한 분야는 창업지원입니다.

아이디어에 따라 최고 2만 5천유로, 3천5백만원까지 창업 자금을 지원하고 자문도 해줍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4백 개 넘는 벤처기업이 탄생했습니다.

여기서 시작된 벤처 창업 열풍은 핀란드 경제를 살리는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습니다.

노키 브릿지 프로그램이 핀란드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전 세계 13개 나라에서 만7천여명이 노키아 브릿지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노키아에서 해고된 직원의 85%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2년 가까이 계속된 적자에 본사 건물까지 팔아야 했던 노키아가 어떻게 해고자를 지원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인터뷰> 마띠 반스카(노키아 브릿지 프로그램 책임자) : "그것은 선택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가치를 둘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일한 사람들을 돌보고 싶었고 책임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선택이 결국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이렇게 쌓인 신뢰는 지역사회, 정부와 쉽게 협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 노키아의 설명입니다.

<인터뷰>핀란드 노동부 장관 : "핀란드에서 대기업은 보통 미리 해고를 정부에 통고합니다. 그래서 해고된 직원과 해고하는 회사를 모두 정부와 사회가 지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키아의 위기와 유럽 금융위기에도 핀란드는 실업률 8%로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안정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 돕는 것은 위기를 극복하는 아주 기본적인 방법일 지 모릅니다.

우리 눈에는 어려워보이지만 핀란드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보이는 이 원칙은 결국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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