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4 이슈] 철의 여인 잠들다
입력 2013.04.18 (00:01)
수정 2013.04.1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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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8일 87세로 타계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장례식이 런던 도심에서 엄수됐습니다
처음 대처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을 때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호주 등 전 세계 지도자들은 앞다투어 애도를 보냈습니다
<녹취> 줄리아 길러드(호주 총리) : "대처 총리는 여성의 역사를 바꾼 여성이었습니다."
<녹취> 아베 신조(일본 총리) : "마거릿 대처는 강철같은 결단력을 보여준 훌륭한 총리였습니다. 영국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영국의 일부 시민들은 샴페인을 터뜨리고 축하 파티를 여는 등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이 엇갈린 데에는 재임 기간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던 그녀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 깔려 있는데요.
이슈 원,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받았던 정치인, '선출된 여왕'이라 불렸던 시대를 이끈 리더 마거릿 대처의 삶을 런던 박장범 특파원과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박장범 특파원! 대처 전 총리의 장례식이 국장에 준하는 수준에서 치러졌죠?
<리포트>
1965년 윈스턴 처칠의 국장 이후 처음으로, 템스강변의 대형 시계탑인 빅벤의 타종은 멈췄고, 런던 도심은 추모 인파로 넘쳤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철의 여인이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기다리던 많은 영국인들은 대제국의 영광을 되살리고자 고군분투했던 대처 전 총리에게 경의를 표시하면서 그녀를 역사 속으로 떠나보냈습니다.
대처 전 총리의 장례식은 형식상으로는 국장 바로 한 단계 아래였지만, 엘리자베스 여왕과 부군 에딘버러공이 참석했습니다.
여왕이 전직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은 윈스턴 처칠의 국장 이후 처음입니다.
대처 전 총리의 시신은 영국 의회가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으로 어제 오후 3시에 운구됐고, 오늘 오전 평생 몸담았던 의회를 떠나서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를 지나갔습니다.
세인트 클레멘트 교회에서부터 장례식 장소인 세인트 폴 대성당까지는 왕실 근위대를 비롯한 육해공군을 대표하는 군인들이 도열한 가운데 장엄한 운구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대처 전 총리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포클랜드 전쟁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서 전쟁 당시 침몰했던 전함에서 생존했던 장병들과 가장 많은 전사자가 났던 웨일스 보병부대원들이 그녀의 마지막 길을 호위했습니다.
<질문> 장례식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도 참석했죠?
<대답> 세인트 폴 대성당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조문객들이 운집했습니다.
영국의 첫 여성 총리이자, 20세기 세계 정치사의 거인이었던 대처 전 총리가 차지했던 정치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는데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대처 전 총리의 19살 손녀인 아만다양은 성경 구절을 낭독했고 종교 지도자들이 그녀의 삶을 추도했습니다.
<녹취> 리처드 차터스(런던 주교) : "(대처는) 끝없는 에너지와 애정으로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녀는 신념과 정치가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 보여줬습니다."
<질문> 장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대처 전 총리에 반대하는 시위도 벌어졌다죠?
<대답> 대처 집권시절 보수당의 정책으로 피해를 봤거나 차별을 당했던 지역의 사람들이 항의를 표시했습니다.
이들은 대처 전 총리의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길가에서 낮은 소리로 야유를 보내면서 국가적 차원의 장례식 행사에 반대하는 뜻을 표시했습니다.
대처 전 총리는 집권 시절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인들로부터 많은 반감을 샀는데 영국 경찰은 미국 보스턴에서 테러가 발생한 이후 최고의 경계 태세를 유지했는데 폭력적인 사태는 없었습니다.
<질문> 대처 전 총리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보여주는 것 같은데요.
그녀를 배출한 보수당은 가장 위대한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라고 칭송하고 있죠?
<대답> 영국의 집권 보수당 의원들은 한결같이 대처 전 총리를 영국병을 치유한 20세기의 위대한 인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힘에 국가 전체가 휘둘리던 위기 상황에서 과감한 개혁과 민영화 등을 통해서 법과 정부의 권위를 세웠고 아르헨티나 침공에 맞서 포클랜드섬을 지켜내 영국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캐머런(영국 총리) : "그녀는 새로운 정치 풍토를 만들었고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대처의 묘비에 그녀가 영국을 다시 위대하게 일으켰다고 기록합시다."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더 타임스는 영국이 국가적 자신감을 잃었던 시기에 올바른 결정으로 국가를 이끌었다고 평가했고, 파이낸셜 타임스 역시 대처의 개혁 작업을 통해 유럽의 병자였던 영국은 다시 부강한 나라가 됐다고 추모했습니다.
<질문> 하지만, 노동당을 비롯한 대처의 정치적 반대 세력들은 완전히 상반된 평가를 내리잖아요?
<대답> 노동당은 현재 영국의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대처 정부 때의 잘못된 정책에서 시작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제조업 포기정책에 따른 실업 증가와 함께 금융업 중심으로 재편된 영국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독일 같은 다른 유럽 경쟁국에 비해 더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겁니다.
또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대한 지역 차별 정책을 썼기 때문에 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저항이 커졌고 급기야 스코틀랜드에서 내년에 분리독립을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지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겁니다.
<녹취> 글렌다(노동당 의원) : "그녀는 탐욕과 이기심 속에서 약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지 않는 것이 발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앵구스(스코틀랜드의원) : "우리는 (대처가) 스코틀랜드에 인두세를 부과한 것을 잊지 않을 겁니다."
진보성향의 가디언은 대처 전 총리의 정치적 유산으로 공동체 정신이 소멸해 영국은 분열과 갈등의 시기를 보냈다고 비판했고, 인디펜던트는 서유럽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였던 영국이 대처정부를 거치면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고 혹평했습니다.
<질문> 대처 전 총리, 처칠 수상 이후 가장 강력한 영국의 지도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대답> 철의 여인이란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대처 전 총리는 정치적 반대세력들과 대결하면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영국을 이끌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마거릿 대처(전 영국총리) : "불화를 화합으로, 실수를 진실로, 의심을 믿음으로 실망을 희망으로 만들겠습니다."
신분 질서가 뚜렷한 영국에서 잡화점 집의 딸로 태어나 남성들의 세계인 정치권에 뛰어들어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기까지 대처의 삶은 도전과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처 전 총리에게는 그리 친구가 많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제 철의 여인 대처는 일생의 동반자이자 최고의 정치적 후원인이었던 남편 고 데니스 대처경 옆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런던에서 전해드렸습니다.
호평도, 혹평도 많았던 정치인 대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보다 나아가야 할 길을 단호히 제시했던 '철의 리더십'은 이제 역사로 남게 됐습니다.
지난 8일 87세로 타계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장례식이 런던 도심에서 엄수됐습니다
처음 대처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을 때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호주 등 전 세계 지도자들은 앞다투어 애도를 보냈습니다
<녹취> 줄리아 길러드(호주 총리) : "대처 총리는 여성의 역사를 바꾼 여성이었습니다."
<녹취> 아베 신조(일본 총리) : "마거릿 대처는 강철같은 결단력을 보여준 훌륭한 총리였습니다. 영국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영국의 일부 시민들은 샴페인을 터뜨리고 축하 파티를 여는 등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이 엇갈린 데에는 재임 기간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던 그녀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 깔려 있는데요.
이슈 원,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받았던 정치인, '선출된 여왕'이라 불렸던 시대를 이끈 리더 마거릿 대처의 삶을 런던 박장범 특파원과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박장범 특파원! 대처 전 총리의 장례식이 국장에 준하는 수준에서 치러졌죠?
<리포트>
1965년 윈스턴 처칠의 국장 이후 처음으로, 템스강변의 대형 시계탑인 빅벤의 타종은 멈췄고, 런던 도심은 추모 인파로 넘쳤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철의 여인이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기다리던 많은 영국인들은 대제국의 영광을 되살리고자 고군분투했던 대처 전 총리에게 경의를 표시하면서 그녀를 역사 속으로 떠나보냈습니다.
대처 전 총리의 장례식은 형식상으로는 국장 바로 한 단계 아래였지만, 엘리자베스 여왕과 부군 에딘버러공이 참석했습니다.
여왕이 전직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은 윈스턴 처칠의 국장 이후 처음입니다.
대처 전 총리의 시신은 영국 의회가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으로 어제 오후 3시에 운구됐고, 오늘 오전 평생 몸담았던 의회를 떠나서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를 지나갔습니다.
세인트 클레멘트 교회에서부터 장례식 장소인 세인트 폴 대성당까지는 왕실 근위대를 비롯한 육해공군을 대표하는 군인들이 도열한 가운데 장엄한 운구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대처 전 총리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포클랜드 전쟁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서 전쟁 당시 침몰했던 전함에서 생존했던 장병들과 가장 많은 전사자가 났던 웨일스 보병부대원들이 그녀의 마지막 길을 호위했습니다.
<질문> 장례식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도 참석했죠?
<대답> 세인트 폴 대성당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조문객들이 운집했습니다.
영국의 첫 여성 총리이자, 20세기 세계 정치사의 거인이었던 대처 전 총리가 차지했던 정치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는데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대처 전 총리의 19살 손녀인 아만다양은 성경 구절을 낭독했고 종교 지도자들이 그녀의 삶을 추도했습니다.
<녹취> 리처드 차터스(런던 주교) : "(대처는) 끝없는 에너지와 애정으로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녀는 신념과 정치가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 보여줬습니다."
<질문> 장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대처 전 총리에 반대하는 시위도 벌어졌다죠?
<대답> 대처 집권시절 보수당의 정책으로 피해를 봤거나 차별을 당했던 지역의 사람들이 항의를 표시했습니다.
이들은 대처 전 총리의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길가에서 낮은 소리로 야유를 보내면서 국가적 차원의 장례식 행사에 반대하는 뜻을 표시했습니다.
대처 전 총리는 집권 시절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인들로부터 많은 반감을 샀는데 영국 경찰은 미국 보스턴에서 테러가 발생한 이후 최고의 경계 태세를 유지했는데 폭력적인 사태는 없었습니다.
<질문> 대처 전 총리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보여주는 것 같은데요.
그녀를 배출한 보수당은 가장 위대한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라고 칭송하고 있죠?
<대답> 영국의 집권 보수당 의원들은 한결같이 대처 전 총리를 영국병을 치유한 20세기의 위대한 인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힘에 국가 전체가 휘둘리던 위기 상황에서 과감한 개혁과 민영화 등을 통해서 법과 정부의 권위를 세웠고 아르헨티나 침공에 맞서 포클랜드섬을 지켜내 영국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캐머런(영국 총리) : "그녀는 새로운 정치 풍토를 만들었고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대처의 묘비에 그녀가 영국을 다시 위대하게 일으켰다고 기록합시다."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더 타임스는 영국이 국가적 자신감을 잃었던 시기에 올바른 결정으로 국가를 이끌었다고 평가했고, 파이낸셜 타임스 역시 대처의 개혁 작업을 통해 유럽의 병자였던 영국은 다시 부강한 나라가 됐다고 추모했습니다.
<질문> 하지만, 노동당을 비롯한 대처의 정치적 반대 세력들은 완전히 상반된 평가를 내리잖아요?
<대답> 노동당은 현재 영국의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대처 정부 때의 잘못된 정책에서 시작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제조업 포기정책에 따른 실업 증가와 함께 금융업 중심으로 재편된 영국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독일 같은 다른 유럽 경쟁국에 비해 더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겁니다.
또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대한 지역 차별 정책을 썼기 때문에 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저항이 커졌고 급기야 스코틀랜드에서 내년에 분리독립을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지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겁니다.
<녹취> 글렌다(노동당 의원) : "그녀는 탐욕과 이기심 속에서 약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지 않는 것이 발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앵구스(스코틀랜드의원) : "우리는 (대처가) 스코틀랜드에 인두세를 부과한 것을 잊지 않을 겁니다."
진보성향의 가디언은 대처 전 총리의 정치적 유산으로 공동체 정신이 소멸해 영국은 분열과 갈등의 시기를 보냈다고 비판했고, 인디펜던트는 서유럽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였던 영국이 대처정부를 거치면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고 혹평했습니다.
<질문> 대처 전 총리, 처칠 수상 이후 가장 강력한 영국의 지도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대답> 철의 여인이란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대처 전 총리는 정치적 반대세력들과 대결하면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영국을 이끌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마거릿 대처(전 영국총리) : "불화를 화합으로, 실수를 진실로, 의심을 믿음으로 실망을 희망으로 만들겠습니다."
신분 질서가 뚜렷한 영국에서 잡화점 집의 딸로 태어나 남성들의 세계인 정치권에 뛰어들어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기까지 대처의 삶은 도전과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처 전 총리에게는 그리 친구가 많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제 철의 여인 대처는 일생의 동반자이자 최고의 정치적 후원인이었던 남편 고 데니스 대처경 옆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런던에서 전해드렸습니다.
호평도, 혹평도 많았던 정치인 대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보다 나아가야 할 길을 단호히 제시했던 '철의 리더십'은 이제 역사로 남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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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24 이슈] 철의 여인 잠들다
-
- 입력 2013-04-18 06:58:17
- 수정2013-04-18 13:44:24
<앵커 멘트>
지난 8일 87세로 타계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장례식이 런던 도심에서 엄수됐습니다
처음 대처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을 때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호주 등 전 세계 지도자들은 앞다투어 애도를 보냈습니다
<녹취> 줄리아 길러드(호주 총리) : "대처 총리는 여성의 역사를 바꾼 여성이었습니다."
<녹취> 아베 신조(일본 총리) : "마거릿 대처는 강철같은 결단력을 보여준 훌륭한 총리였습니다. 영국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영국의 일부 시민들은 샴페인을 터뜨리고 축하 파티를 여는 등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이 엇갈린 데에는 재임 기간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던 그녀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 깔려 있는데요.
이슈 원,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받았던 정치인, '선출된 여왕'이라 불렸던 시대를 이끈 리더 마거릿 대처의 삶을 런던 박장범 특파원과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박장범 특파원! 대처 전 총리의 장례식이 국장에 준하는 수준에서 치러졌죠?
<리포트>
1965년 윈스턴 처칠의 국장 이후 처음으로, 템스강변의 대형 시계탑인 빅벤의 타종은 멈췄고, 런던 도심은 추모 인파로 넘쳤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철의 여인이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기다리던 많은 영국인들은 대제국의 영광을 되살리고자 고군분투했던 대처 전 총리에게 경의를 표시하면서 그녀를 역사 속으로 떠나보냈습니다.
대처 전 총리의 장례식은 형식상으로는 국장 바로 한 단계 아래였지만, 엘리자베스 여왕과 부군 에딘버러공이 참석했습니다.
여왕이 전직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은 윈스턴 처칠의 국장 이후 처음입니다.
대처 전 총리의 시신은 영국 의회가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으로 어제 오후 3시에 운구됐고, 오늘 오전 평생 몸담았던 의회를 떠나서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를 지나갔습니다.
세인트 클레멘트 교회에서부터 장례식 장소인 세인트 폴 대성당까지는 왕실 근위대를 비롯한 육해공군을 대표하는 군인들이 도열한 가운데 장엄한 운구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대처 전 총리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포클랜드 전쟁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서 전쟁 당시 침몰했던 전함에서 생존했던 장병들과 가장 많은 전사자가 났던 웨일스 보병부대원들이 그녀의 마지막 길을 호위했습니다.
<질문> 장례식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도 참석했죠?
<대답> 세인트 폴 대성당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조문객들이 운집했습니다.
영국의 첫 여성 총리이자, 20세기 세계 정치사의 거인이었던 대처 전 총리가 차지했던 정치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는데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대처 전 총리의 19살 손녀인 아만다양은 성경 구절을 낭독했고 종교 지도자들이 그녀의 삶을 추도했습니다.
<녹취> 리처드 차터스(런던 주교) : "(대처는) 끝없는 에너지와 애정으로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녀는 신념과 정치가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 보여줬습니다."
<질문> 장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대처 전 총리에 반대하는 시위도 벌어졌다죠?
<대답> 대처 집권시절 보수당의 정책으로 피해를 봤거나 차별을 당했던 지역의 사람들이 항의를 표시했습니다.
이들은 대처 전 총리의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길가에서 낮은 소리로 야유를 보내면서 국가적 차원의 장례식 행사에 반대하는 뜻을 표시했습니다.
대처 전 총리는 집권 시절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인들로부터 많은 반감을 샀는데 영국 경찰은 미국 보스턴에서 테러가 발생한 이후 최고의 경계 태세를 유지했는데 폭력적인 사태는 없었습니다.
<질문> 대처 전 총리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보여주는 것 같은데요.
그녀를 배출한 보수당은 가장 위대한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라고 칭송하고 있죠?
<대답> 영국의 집권 보수당 의원들은 한결같이 대처 전 총리를 영국병을 치유한 20세기의 위대한 인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힘에 국가 전체가 휘둘리던 위기 상황에서 과감한 개혁과 민영화 등을 통해서 법과 정부의 권위를 세웠고 아르헨티나 침공에 맞서 포클랜드섬을 지켜내 영국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캐머런(영국 총리) : "그녀는 새로운 정치 풍토를 만들었고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대처의 묘비에 그녀가 영국을 다시 위대하게 일으켰다고 기록합시다."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더 타임스는 영국이 국가적 자신감을 잃었던 시기에 올바른 결정으로 국가를 이끌었다고 평가했고, 파이낸셜 타임스 역시 대처의 개혁 작업을 통해 유럽의 병자였던 영국은 다시 부강한 나라가 됐다고 추모했습니다.
<질문> 하지만, 노동당을 비롯한 대처의 정치적 반대 세력들은 완전히 상반된 평가를 내리잖아요?
<대답> 노동당은 현재 영국의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대처 정부 때의 잘못된 정책에서 시작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제조업 포기정책에 따른 실업 증가와 함께 금융업 중심으로 재편된 영국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독일 같은 다른 유럽 경쟁국에 비해 더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겁니다.
또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대한 지역 차별 정책을 썼기 때문에 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저항이 커졌고 급기야 스코틀랜드에서 내년에 분리독립을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지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겁니다.
<녹취> 글렌다(노동당 의원) : "그녀는 탐욕과 이기심 속에서 약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지 않는 것이 발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앵구스(스코틀랜드의원) : "우리는 (대처가) 스코틀랜드에 인두세를 부과한 것을 잊지 않을 겁니다."
진보성향의 가디언은 대처 전 총리의 정치적 유산으로 공동체 정신이 소멸해 영국은 분열과 갈등의 시기를 보냈다고 비판했고, 인디펜던트는 서유럽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였던 영국이 대처정부를 거치면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고 혹평했습니다.
<질문> 대처 전 총리, 처칠 수상 이후 가장 강력한 영국의 지도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대답> 철의 여인이란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대처 전 총리는 정치적 반대세력들과 대결하면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영국을 이끌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마거릿 대처(전 영국총리) : "불화를 화합으로, 실수를 진실로, 의심을 믿음으로 실망을 희망으로 만들겠습니다."
신분 질서가 뚜렷한 영국에서 잡화점 집의 딸로 태어나 남성들의 세계인 정치권에 뛰어들어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기까지 대처의 삶은 도전과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처 전 총리에게는 그리 친구가 많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제 철의 여인 대처는 일생의 동반자이자 최고의 정치적 후원인이었던 남편 고 데니스 대처경 옆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런던에서 전해드렸습니다.
호평도, 혹평도 많았던 정치인 대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보다 나아가야 할 길을 단호히 제시했던 '철의 리더십'은 이제 역사로 남게 됐습니다.
지난 8일 87세로 타계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장례식이 런던 도심에서 엄수됐습니다
처음 대처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을 때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호주 등 전 세계 지도자들은 앞다투어 애도를 보냈습니다
<녹취> 줄리아 길러드(호주 총리) : "대처 총리는 여성의 역사를 바꾼 여성이었습니다."
<녹취> 아베 신조(일본 총리) : "마거릿 대처는 강철같은 결단력을 보여준 훌륭한 총리였습니다. 영국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영국의 일부 시민들은 샴페인을 터뜨리고 축하 파티를 여는 등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이 엇갈린 데에는 재임 기간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던 그녀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 깔려 있는데요.
이슈 원,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받았던 정치인, '선출된 여왕'이라 불렸던 시대를 이끈 리더 마거릿 대처의 삶을 런던 박장범 특파원과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박장범 특파원! 대처 전 총리의 장례식이 국장에 준하는 수준에서 치러졌죠?
<리포트>
1965년 윈스턴 처칠의 국장 이후 처음으로, 템스강변의 대형 시계탑인 빅벤의 타종은 멈췄고, 런던 도심은 추모 인파로 넘쳤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철의 여인이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기다리던 많은 영국인들은 대제국의 영광을 되살리고자 고군분투했던 대처 전 총리에게 경의를 표시하면서 그녀를 역사 속으로 떠나보냈습니다.
대처 전 총리의 장례식은 형식상으로는 국장 바로 한 단계 아래였지만, 엘리자베스 여왕과 부군 에딘버러공이 참석했습니다.
여왕이 전직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은 윈스턴 처칠의 국장 이후 처음입니다.
대처 전 총리의 시신은 영국 의회가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으로 어제 오후 3시에 운구됐고, 오늘 오전 평생 몸담았던 의회를 떠나서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를 지나갔습니다.
세인트 클레멘트 교회에서부터 장례식 장소인 세인트 폴 대성당까지는 왕실 근위대를 비롯한 육해공군을 대표하는 군인들이 도열한 가운데 장엄한 운구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대처 전 총리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포클랜드 전쟁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서 전쟁 당시 침몰했던 전함에서 생존했던 장병들과 가장 많은 전사자가 났던 웨일스 보병부대원들이 그녀의 마지막 길을 호위했습니다.
<질문> 장례식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도 참석했죠?
<대답> 세인트 폴 대성당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조문객들이 운집했습니다.
영국의 첫 여성 총리이자, 20세기 세계 정치사의 거인이었던 대처 전 총리가 차지했던 정치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는데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대처 전 총리의 19살 손녀인 아만다양은 성경 구절을 낭독했고 종교 지도자들이 그녀의 삶을 추도했습니다.
<녹취> 리처드 차터스(런던 주교) : "(대처는) 끝없는 에너지와 애정으로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녀는 신념과 정치가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 보여줬습니다."
<질문> 장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대처 전 총리에 반대하는 시위도 벌어졌다죠?
<대답> 대처 집권시절 보수당의 정책으로 피해를 봤거나 차별을 당했던 지역의 사람들이 항의를 표시했습니다.
이들은 대처 전 총리의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길가에서 낮은 소리로 야유를 보내면서 국가적 차원의 장례식 행사에 반대하는 뜻을 표시했습니다.
대처 전 총리는 집권 시절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인들로부터 많은 반감을 샀는데 영국 경찰은 미국 보스턴에서 테러가 발생한 이후 최고의 경계 태세를 유지했는데 폭력적인 사태는 없었습니다.
<질문> 대처 전 총리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보여주는 것 같은데요.
그녀를 배출한 보수당은 가장 위대한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라고 칭송하고 있죠?
<대답> 영국의 집권 보수당 의원들은 한결같이 대처 전 총리를 영국병을 치유한 20세기의 위대한 인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힘에 국가 전체가 휘둘리던 위기 상황에서 과감한 개혁과 민영화 등을 통해서 법과 정부의 권위를 세웠고 아르헨티나 침공에 맞서 포클랜드섬을 지켜내 영국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캐머런(영국 총리) : "그녀는 새로운 정치 풍토를 만들었고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대처의 묘비에 그녀가 영국을 다시 위대하게 일으켰다고 기록합시다."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더 타임스는 영국이 국가적 자신감을 잃었던 시기에 올바른 결정으로 국가를 이끌었다고 평가했고, 파이낸셜 타임스 역시 대처의 개혁 작업을 통해 유럽의 병자였던 영국은 다시 부강한 나라가 됐다고 추모했습니다.
<질문> 하지만, 노동당을 비롯한 대처의 정치적 반대 세력들은 완전히 상반된 평가를 내리잖아요?
<대답> 노동당은 현재 영국의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대처 정부 때의 잘못된 정책에서 시작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제조업 포기정책에 따른 실업 증가와 함께 금융업 중심으로 재편된 영국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독일 같은 다른 유럽 경쟁국에 비해 더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겁니다.
또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대한 지역 차별 정책을 썼기 때문에 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저항이 커졌고 급기야 스코틀랜드에서 내년에 분리독립을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지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겁니다.
<녹취> 글렌다(노동당 의원) : "그녀는 탐욕과 이기심 속에서 약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지 않는 것이 발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앵구스(스코틀랜드의원) : "우리는 (대처가) 스코틀랜드에 인두세를 부과한 것을 잊지 않을 겁니다."
진보성향의 가디언은 대처 전 총리의 정치적 유산으로 공동체 정신이 소멸해 영국은 분열과 갈등의 시기를 보냈다고 비판했고, 인디펜던트는 서유럽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였던 영국이 대처정부를 거치면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고 혹평했습니다.
<질문> 대처 전 총리, 처칠 수상 이후 가장 강력한 영국의 지도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대답> 철의 여인이란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대처 전 총리는 정치적 반대세력들과 대결하면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영국을 이끌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마거릿 대처(전 영국총리) : "불화를 화합으로, 실수를 진실로, 의심을 믿음으로 실망을 희망으로 만들겠습니다."
신분 질서가 뚜렷한 영국에서 잡화점 집의 딸로 태어나 남성들의 세계인 정치권에 뛰어들어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기까지 대처의 삶은 도전과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처 전 총리에게는 그리 친구가 많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제 철의 여인 대처는 일생의 동반자이자 최고의 정치적 후원인이었던 남편 고 데니스 대처경 옆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런던에서 전해드렸습니다.
호평도, 혹평도 많았던 정치인 대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보다 나아가야 할 길을 단호히 제시했던 '철의 리더십'은 이제 역사로 남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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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범 기자 newsgu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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