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리포트] 부처님 오신날, 러시아와 불교

입력 2013.05.18 (10:36) 수정 2013.06.03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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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사흘 연휴 잘 보내시죠? 어제가 부처님 오신날 이었습니다.

불교하면 주로 동양에 뿌리내렸고, 서양의 러시아하면 러시아 정교만 떠올리실 텐데요

양파 모양의 지붕을 한 정교회 성당 건물은 러시아 상징물이죠!

하지만 러시아에서 최근 불교가 새롭게 부흥한다는 점, 좀 놀랍지 않으세요?

불교를 믿게된 배경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역사도 많다고 합니다.

러시아에 핀 불교 이야기를 연규선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새벽 5시.황금 불교사원을 배경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러시아 칼미키야 자치 공화국에 있는 56미터 높이의 큰 사원. 법당 안에서 아침 불공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칼미키야 공화국의 불교는 한국과는 다른 티벳식 라마 불교입니다. 승려들은 회색 승복 대신 붉은빛 도포를 두르고 있습니다.

불당에 들어온 신도들은 오체를 바닥에 대며 기도를 드립니다.

<인터뷰>안젤라:"가족의 건강과 나의 행복 등을 빌려고 자주 옵니다. 축복 받기 위해서죠."

칼미키야는 러시아 여러 자치 공화국 가운데 유일하게 불교를 국교로 채택했습니다.

정부 청사 앞 레닌 공원에는 7층 높이의 대형 불탑이 들어서 있습니다.

원통 모양의 '마니차'를 쉴 새 없이 돌리는 사람들. 불교 경전이 모셔져 있다는 마니차를 돌리면서 이들은 과연 무엇을 기원하고 있을까?

<인터뷰>세르게이:"인내와 사랑을 위해서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칼미키야 공화국은, 카스피해 서쪽 초원지대에 있습니다. 30만 인구 가운데 60% 이상은 몽골 계통의 칼미크 민족. 우랄 산맥을 경계로 서쪽을 유럽이라고 한다면, 칼미키야는 유럽에서 유일한 불교 공화국이자 몽골계 국가입니다.

<인터뷰>발리나:"불교가 최근 다시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 공화국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새롭게 부흥하고 있어요"

몽골이 유라시아를 통치했을 당시 칼미크인들은 중국 중서부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몽골이 쇠퇴하자, 명나라에 밀려서 17세기 초부터 이곳으로 옮겨와 살게 됐습니다.

스탈린 시대에는 고려인들처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아픈 역사도 있지만, 지금은 러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상당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인터뷰>나탈리아:"러시아는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기독교, 불교, 회교 등 여러 종교가 있습니다. 물론 불교가 아직 크게 부흥하지는 못 했지만..."

소련이 붕괴한 뒤에는 러시아 혁명 이후 잃었던 자신들의 종교인 불교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노랑색 바탕에 하얀 연꽃이 그려져 있는 칼미키야 국기.

<녹취>"칼미키야 공화국기입니다. 하얀색의 연꽃. 노랑색은 불교를 상징하죠" "이게 연꽃이죠."

공화국 대통령은 서로를 구분하는 이데올로기 대신, 조화와 합일을 중시하는 불교가 빠른 속도로 부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인터뷰>오를로프 (칼미키야 대통령):"오랜 세월 동안 불교는 칼미키야 공화국 삶의 기본 원리가 됐습니다. 덕분에 민족을 유지할 수 있었죠"

칼미키야 자치 공화국의 지정학적 위치 또한 독특합니다.

"칼미키야는 러시아내 북캅카스 이슬람 자치공화국 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다른 자치공화국과 달리 상대적으로 안정된 치안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가장 인접한 이슬람 자치 공화국은 다게스탄과 체첸. 다게스탄 공화국 출신으로 알려진 보스턴 테러의 주범 타메를란도 사실은 칼미키야 공화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지역은 모두 러시아로부터의 분리 독립 테러가 끊이지 않는 곳.

반면에 칼미키야의 민족주의 운동과 불교 부흥은 러시아 연방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 볼 때 몽골계 불교 자치 공화국인 칼미키야는 서남부 러시아, 이슬람 분리 독립 운동 세력의 확산을 막아줄 수 있는 지리적, 문화적 방패인 셈입니다.

<인터뷰>오를로프 (칼미키야 대통령):"이 땅은 하나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방패 역할 같은 것이죠. "

러시아의 불교 밀집 지역 가운데 또 다른 곳은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동쪽에 있는 부랴티야 자치 공화국. 러시아 불교의 총본산인 이볼진스키 사원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 역시 최근 들어 불교 사원을 복원하고, 교단을 재정비하는 사업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야로슬라바:"러시아에 여러 종교가 있지만 조화와 화합을 강조하는 불교가 좋습니다. "

<인터뷰>올렉:"불교신도는 아니지만 러시아 땅에 꽃 피우고 있는 불교의 전통을 존중합니다. "

브랴티야 역시 몽골계 자치 공화국입니다.17세기에 시베리아를 정복한 러시아에 편입됐습니다. 수도인 울란우데는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메데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 회담을 갖던 곳.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지난 4월 이곳을 방문해 불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인터뷰>아이우쉬에프 (이볼신스키사원 지주):"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정부와 불교가 앞으로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러시아 불교도의 가장 큰 바람은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초청 문제.

지난 2004년 칼미키야 공화국 방문 이후 10년 가까이 러시아 땅을 밟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러시아가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직후 한 인터뷰에서 달라이 라마 초청을 허용할 수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알자 겔리웅(황금불교사원 지주):"달라이 라마는 위대한 현자입니다. 러시아 불교에게는 정신적 지주입니다. 불교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분이죠. "

천 5백여 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 러시아.

애국과 화합을 강조하는 불교. 러시아 불교가 새롭게 꽃 피우는 배경에는 거대한 연방 국가를 유지하는 구심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역할도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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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 리포트] 부처님 오신날, 러시아와 불교
    • 입력 2013-05-18 11:16:31
    • 수정2013-06-03 23:05:39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사흘 연휴 잘 보내시죠? 어제가 부처님 오신날 이었습니다.

불교하면 주로 동양에 뿌리내렸고, 서양의 러시아하면 러시아 정교만 떠올리실 텐데요

양파 모양의 지붕을 한 정교회 성당 건물은 러시아 상징물이죠!

하지만 러시아에서 최근 불교가 새롭게 부흥한다는 점, 좀 놀랍지 않으세요?

불교를 믿게된 배경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역사도 많다고 합니다.

러시아에 핀 불교 이야기를 연규선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새벽 5시.황금 불교사원을 배경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러시아 칼미키야 자치 공화국에 있는 56미터 높이의 큰 사원. 법당 안에서 아침 불공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칼미키야 공화국의 불교는 한국과는 다른 티벳식 라마 불교입니다. 승려들은 회색 승복 대신 붉은빛 도포를 두르고 있습니다.

불당에 들어온 신도들은 오체를 바닥에 대며 기도를 드립니다.

<인터뷰>안젤라:"가족의 건강과 나의 행복 등을 빌려고 자주 옵니다. 축복 받기 위해서죠."

칼미키야는 러시아 여러 자치 공화국 가운데 유일하게 불교를 국교로 채택했습니다.

정부 청사 앞 레닌 공원에는 7층 높이의 대형 불탑이 들어서 있습니다.

원통 모양의 '마니차'를 쉴 새 없이 돌리는 사람들. 불교 경전이 모셔져 있다는 마니차를 돌리면서 이들은 과연 무엇을 기원하고 있을까?

<인터뷰>세르게이:"인내와 사랑을 위해서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칼미키야 공화국은, 카스피해 서쪽 초원지대에 있습니다. 30만 인구 가운데 60% 이상은 몽골 계통의 칼미크 민족. 우랄 산맥을 경계로 서쪽을 유럽이라고 한다면, 칼미키야는 유럽에서 유일한 불교 공화국이자 몽골계 국가입니다.

<인터뷰>발리나:"불교가 최근 다시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 공화국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새롭게 부흥하고 있어요"

몽골이 유라시아를 통치했을 당시 칼미크인들은 중국 중서부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몽골이 쇠퇴하자, 명나라에 밀려서 17세기 초부터 이곳으로 옮겨와 살게 됐습니다.

스탈린 시대에는 고려인들처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아픈 역사도 있지만, 지금은 러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상당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인터뷰>나탈리아:"러시아는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기독교, 불교, 회교 등 여러 종교가 있습니다. 물론 불교가 아직 크게 부흥하지는 못 했지만..."

소련이 붕괴한 뒤에는 러시아 혁명 이후 잃었던 자신들의 종교인 불교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노랑색 바탕에 하얀 연꽃이 그려져 있는 칼미키야 국기.

<녹취>"칼미키야 공화국기입니다. 하얀색의 연꽃. 노랑색은 불교를 상징하죠" "이게 연꽃이죠."

공화국 대통령은 서로를 구분하는 이데올로기 대신, 조화와 합일을 중시하는 불교가 빠른 속도로 부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인터뷰>오를로프 (칼미키야 대통령):"오랜 세월 동안 불교는 칼미키야 공화국 삶의 기본 원리가 됐습니다. 덕분에 민족을 유지할 수 있었죠"

칼미키야 자치 공화국의 지정학적 위치 또한 독특합니다.

"칼미키야는 러시아내 북캅카스 이슬람 자치공화국 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다른 자치공화국과 달리 상대적으로 안정된 치안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가장 인접한 이슬람 자치 공화국은 다게스탄과 체첸. 다게스탄 공화국 출신으로 알려진 보스턴 테러의 주범 타메를란도 사실은 칼미키야 공화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지역은 모두 러시아로부터의 분리 독립 테러가 끊이지 않는 곳.

반면에 칼미키야의 민족주의 운동과 불교 부흥은 러시아 연방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 볼 때 몽골계 불교 자치 공화국인 칼미키야는 서남부 러시아, 이슬람 분리 독립 운동 세력의 확산을 막아줄 수 있는 지리적, 문화적 방패인 셈입니다.

<인터뷰>오를로프 (칼미키야 대통령):"이 땅은 하나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방패 역할 같은 것이죠. "

러시아의 불교 밀집 지역 가운데 또 다른 곳은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동쪽에 있는 부랴티야 자치 공화국. 러시아 불교의 총본산인 이볼진스키 사원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 역시 최근 들어 불교 사원을 복원하고, 교단을 재정비하는 사업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야로슬라바:"러시아에 여러 종교가 있지만 조화와 화합을 강조하는 불교가 좋습니다. "

<인터뷰>올렉:"불교신도는 아니지만 러시아 땅에 꽃 피우고 있는 불교의 전통을 존중합니다. "

브랴티야 역시 몽골계 자치 공화국입니다.17세기에 시베리아를 정복한 러시아에 편입됐습니다. 수도인 울란우데는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메데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 회담을 갖던 곳.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지난 4월 이곳을 방문해 불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인터뷰>아이우쉬에프 (이볼신스키사원 지주):"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정부와 불교가 앞으로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러시아 불교도의 가장 큰 바람은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초청 문제.

지난 2004년 칼미키야 공화국 방문 이후 10년 가까이 러시아 땅을 밟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러시아가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직후 한 인터뷰에서 달라이 라마 초청을 허용할 수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알자 겔리웅(황금불교사원 지주):"달라이 라마는 위대한 현자입니다. 러시아 불교에게는 정신적 지주입니다. 불교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분이죠. "

천 5백여 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 러시아.

애국과 화합을 강조하는 불교. 러시아 불교가 새롭게 꽃 피우는 배경에는 거대한 연방 국가를 유지하는 구심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역할도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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