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포착] 조부모 육아 시대, 명과 암

입력 2013.06.13 (08:42) 수정 2013.06.1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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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국립국어원이 선정한 최신 신조어 가운데 '손주병'이라는 게 있습니다.

들어보셨습니까?

뭐, 감 잡으시겠지만,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다 생기는 질병을 일컫는데요.

현 세태를 잘 반영한 말인 것 같습니다.

근데 손주된 입장에서 보면요.

어렸을 때 많은 시간을 보낸 아버지 할머니와 더 가깝게 느끼게 되거든요.

당연하겠죠.

그래서 요즘은 '손주병'을 앓기보다 기회로 받아들이려는 어르신들도 늘고 있답니다.

노태영 기자 나왔습니다.

최근 60대가 가장 많이 보는 책도 육아 관련이라면서요?

<기자 멘트>

한 인터넷 서점 조사 결과 지난해 60대 독자들이 가장 많이 본 책은 소아과 의사가 쓴 육아 서적이었습니다.

60대 여성들의 베스트셀러 20위 중에도 육아 관련 서적이 무려 7종이나 들어있었구요.

이는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손자손녀를 키우는 조부모가 크게 늘고 있는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건데요.

조부모 육아 가구 250만 명 시대의 현실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

올해 65세의 이혜경 씨는 집안 일을 하다가도 오후 3시가 되면 어김없이 어디론가 향합니다.

유치원에 갔던 손녀와 손자를 마중하러 나가는 것인데요.

<녹취> "(할머니가 자주 데리러 와요?) 네. 엄마가 안 오시니까."

집으로 데려오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깨끗한 옷을 갈아입히고 큰 아이의 숙제도 봐주며 본격적인 육아에 들어가는데요.

<인터뷰> 이혜경(할머니) : "딸이 (바이올린)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데 4년간 3명의 아이가 생기니까 본인도 많이 당황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봐주게 된 것 같아요."

<녹취> "계절 별로, 쑥이 나면 쑥 개떡도 이렇게 만들어줘요."

해외공연이 잦은 딸을 대신해 손주 셋을 키운 지 5년.

잃어버렸던 양육 감각을 찾으며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정서적인 안정감을 찾기까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5시간의 육아를 마칠 즈음이면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는데요.

<녹취> "(따님 오시니까 애들이 다 달려가네요.) 아무래도 할머니보다는 엄마를 좋아하죠. 당연한 거죠 뭐.(서운하지 않으세요?) 아뇨, 엄마를 좋아하는 게 당연하죠.”

몸은 많이 고되지만 아이들 양육 문제로 대화가 부쩍 늘면서 딸과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밝게 잘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고생이 되더라도 남의 손에 맡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이 씨.

<인터뷰> 여근하(엄마) : “걱정은 안 돼요. 친정엄마니까 저를 키워주신 것처럼 아이들을 키워주시겠지 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

여든을 앞둔 김역옥 씨는 손주를 키우면서 가졌던 보람과 기분을 수필집으로 출간하기까지 했는데요.

이제는 다 자라 대학에 진학한 손녀지만 아직도 누구보다 서스럼없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녹취> "할머니 오늘 가시죠"

<녹취> "바로 가야 돼. 집 옥상에 많이 심어놓은 말 못하는 생명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김 씨에게 손녀는 아직도 응석받이 귀염둥이일 뿐입니다.

손녀에게도 유년시절은 할머니와의 추억으로 가득합니다.

<인터뷰> 윤소명(손녀) : “할머니와 손잡고 유치원 갔던 기억이랑 계곡에 같이 가서 옷 다 벗고 할머니랑 놀고. 할머니께서 항상 저에게 1순위였어요. 엄마, 아빠보다요.”

아직도 서로에게 사랑 표현을 아끼지 않는 할머니와 손녀.

<녹취> “사랑해. 힘내요. 파이팅~!”

4남매를 키우고 그 자식들 11명까지 할머니 손을 거쳐 가지 않은 손주들이 없는데요.

특히 미숙아로 태어난 둘째 딸의 쌍둥이 손주들은 할머니 품에서 7년이나 머물렀습니다.

<인터뷰> 김영옥(수필가) : “보름간은 병원에서 보여주지도 않았어요. 정말 생긴 것만 다 생겼지, 6주를 모자라게 태어났으니까요. 그래서 그때부터 아주 세심하게 환경 조절, 습도, 온도 신경 쓰고 가습기도 안 썼어요.”

딸을 대신해 육아를 하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육아일기를 썼는데요.

시간대별로 적어놓은 꼼꼼한 일기들이 한 권의 근사한 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그 시절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데요.

할머니의 노력 덕에 손주들은 모두 명문대까지 진학했습니다.

<인터뷰> 이인숙(딸) : “저희 엄마는 저보다 더 교육적이고 저보다 더 깔끔하고 저보다 더 규칙적이세요. 그런 믿음이 있으니까 엄마한테 계속 맡긴 거죠. 엄마한테 미안할 뿐이죠.”

이처럼 조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늘면서 조부모교육을 하는 곳도 늘고 있습니다.

강의실을 꽉 채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정원을 초과하기도 일쑨데요.

손자손녀에게 올바른 교육을 시키겠다는 조부모들의 열정을 볼 수 있는데요.

전문적인 육아 수업을 통해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 이곳을 찾았습니다.

<인터뷰> 남현숙(경기도 성남시) : “(손주들을) 구체적으로 잘 키워보려고 기회가 될 때마다 신경 써서 다니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인터뷰> 유희종(경기도 성남시) : “애들 엄마가 직장에 다니니까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교육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느끼죠. 지금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키우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렇게 교육까지 받는 이유는 특히 육아 과정 중에 갈등을 줄이기 위해섭니다.

실제로 201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조부모 양육의 가장 큰 문제가 양육 방식과 육아노동 시간으로 인한 자녀와의 갈등이라고 밝혀졌는데요.

<인터뷰> 박희숙(강남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 “부모가 이렇게 하기를 바라는데 조부모님들이 보시기에는 그 방향이 맞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의 양육 방법과 조부모의 양육 방법이 일치하지 않을 때 많이 힘들어하시죠.”

때문에 전문가들은 조부모와 부모 사이에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조부모는 부모를, 부모는 조부모를 배려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와 아울러 정부와 사회의 제도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인터뷰> 정미라(가천대학교 세살마을 연구원장) : “조부모님들이 충분히 양육 역량을 형성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도 이루어져야 될 것이고, 좀 더 안전하고 과학적인 양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먼저 선행돼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부모육아가구 250만 시대.

조부모에겐 새로운 인생의 가치가 되고, 엄마들에겐 사회공헌의 발판이 되어 3대가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사회와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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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제포착] 조부모 육아 시대, 명과 암
    • 입력 2013-06-13 08:44:03
    • 수정2013-06-13 11: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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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국립국어원이 선정한 최신 신조어 가운데 '손주병'이라는 게 있습니다.

들어보셨습니까?

뭐, 감 잡으시겠지만,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다 생기는 질병을 일컫는데요.

현 세태를 잘 반영한 말인 것 같습니다.

근데 손주된 입장에서 보면요.

어렸을 때 많은 시간을 보낸 아버지 할머니와 더 가깝게 느끼게 되거든요.

당연하겠죠.

그래서 요즘은 '손주병'을 앓기보다 기회로 받아들이려는 어르신들도 늘고 있답니다.

노태영 기자 나왔습니다.

최근 60대가 가장 많이 보는 책도 육아 관련이라면서요?

<기자 멘트>

한 인터넷 서점 조사 결과 지난해 60대 독자들이 가장 많이 본 책은 소아과 의사가 쓴 육아 서적이었습니다.

60대 여성들의 베스트셀러 20위 중에도 육아 관련 서적이 무려 7종이나 들어있었구요.

이는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손자손녀를 키우는 조부모가 크게 늘고 있는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건데요.

조부모 육아 가구 250만 명 시대의 현실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

올해 65세의 이혜경 씨는 집안 일을 하다가도 오후 3시가 되면 어김없이 어디론가 향합니다.

유치원에 갔던 손녀와 손자를 마중하러 나가는 것인데요.

<녹취> "(할머니가 자주 데리러 와요?) 네. 엄마가 안 오시니까."

집으로 데려오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깨끗한 옷을 갈아입히고 큰 아이의 숙제도 봐주며 본격적인 육아에 들어가는데요.

<인터뷰> 이혜경(할머니) : "딸이 (바이올린)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데 4년간 3명의 아이가 생기니까 본인도 많이 당황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봐주게 된 것 같아요."

<녹취> "계절 별로, 쑥이 나면 쑥 개떡도 이렇게 만들어줘요."

해외공연이 잦은 딸을 대신해 손주 셋을 키운 지 5년.

잃어버렸던 양육 감각을 찾으며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정서적인 안정감을 찾기까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5시간의 육아를 마칠 즈음이면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는데요.

<녹취> "(따님 오시니까 애들이 다 달려가네요.) 아무래도 할머니보다는 엄마를 좋아하죠. 당연한 거죠 뭐.(서운하지 않으세요?) 아뇨, 엄마를 좋아하는 게 당연하죠.”

몸은 많이 고되지만 아이들 양육 문제로 대화가 부쩍 늘면서 딸과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밝게 잘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고생이 되더라도 남의 손에 맡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이 씨.

<인터뷰> 여근하(엄마) : “걱정은 안 돼요. 친정엄마니까 저를 키워주신 것처럼 아이들을 키워주시겠지 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

여든을 앞둔 김역옥 씨는 손주를 키우면서 가졌던 보람과 기분을 수필집으로 출간하기까지 했는데요.

이제는 다 자라 대학에 진학한 손녀지만 아직도 누구보다 서스럼없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녹취> "할머니 오늘 가시죠"

<녹취> "바로 가야 돼. 집 옥상에 많이 심어놓은 말 못하는 생명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김 씨에게 손녀는 아직도 응석받이 귀염둥이일 뿐입니다.

손녀에게도 유년시절은 할머니와의 추억으로 가득합니다.

<인터뷰> 윤소명(손녀) : “할머니와 손잡고 유치원 갔던 기억이랑 계곡에 같이 가서 옷 다 벗고 할머니랑 놀고. 할머니께서 항상 저에게 1순위였어요. 엄마, 아빠보다요.”

아직도 서로에게 사랑 표현을 아끼지 않는 할머니와 손녀.

<녹취> “사랑해. 힘내요. 파이팅~!”

4남매를 키우고 그 자식들 11명까지 할머니 손을 거쳐 가지 않은 손주들이 없는데요.

특히 미숙아로 태어난 둘째 딸의 쌍둥이 손주들은 할머니 품에서 7년이나 머물렀습니다.

<인터뷰> 김영옥(수필가) : “보름간은 병원에서 보여주지도 않았어요. 정말 생긴 것만 다 생겼지, 6주를 모자라게 태어났으니까요. 그래서 그때부터 아주 세심하게 환경 조절, 습도, 온도 신경 쓰고 가습기도 안 썼어요.”

딸을 대신해 육아를 하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육아일기를 썼는데요.

시간대별로 적어놓은 꼼꼼한 일기들이 한 권의 근사한 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그 시절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데요.

할머니의 노력 덕에 손주들은 모두 명문대까지 진학했습니다.

<인터뷰> 이인숙(딸) : “저희 엄마는 저보다 더 교육적이고 저보다 더 깔끔하고 저보다 더 규칙적이세요. 그런 믿음이 있으니까 엄마한테 계속 맡긴 거죠. 엄마한테 미안할 뿐이죠.”

이처럼 조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늘면서 조부모교육을 하는 곳도 늘고 있습니다.

강의실을 꽉 채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정원을 초과하기도 일쑨데요.

손자손녀에게 올바른 교육을 시키겠다는 조부모들의 열정을 볼 수 있는데요.

전문적인 육아 수업을 통해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 이곳을 찾았습니다.

<인터뷰> 남현숙(경기도 성남시) : “(손주들을) 구체적으로 잘 키워보려고 기회가 될 때마다 신경 써서 다니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인터뷰> 유희종(경기도 성남시) : “애들 엄마가 직장에 다니니까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교육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느끼죠. 지금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키우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렇게 교육까지 받는 이유는 특히 육아 과정 중에 갈등을 줄이기 위해섭니다.

실제로 201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조부모 양육의 가장 큰 문제가 양육 방식과 육아노동 시간으로 인한 자녀와의 갈등이라고 밝혀졌는데요.

<인터뷰> 박희숙(강남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 “부모가 이렇게 하기를 바라는데 조부모님들이 보시기에는 그 방향이 맞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의 양육 방법과 조부모의 양육 방법이 일치하지 않을 때 많이 힘들어하시죠.”

때문에 전문가들은 조부모와 부모 사이에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조부모는 부모를, 부모는 조부모를 배려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와 아울러 정부와 사회의 제도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인터뷰> 정미라(가천대학교 세살마을 연구원장) : “조부모님들이 충분히 양육 역량을 형성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도 이루어져야 될 것이고, 좀 더 안전하고 과학적인 양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먼저 선행돼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부모육아가구 250만 시대.

조부모에겐 새로운 인생의 가치가 되고, 엄마들에겐 사회공헌의 발판이 되어 3대가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사회와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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