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인] ‘작은 북한’ 하나 되기

입력 2013.06.14 (23:03) 수정 2013.06.14 (23:1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지난해 가을,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

이 단지에 사는 40대 탈북 여성 김씨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고 합니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아이를 만졌다는 이유로 아이 엄마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은 것입니다.

<녹취> 김00(탈북 주민/음성 변조) : "(이웃 주민이) 거지 같은 X 이러더라고요. 거지라는 말 우리는 완전히 진짜 바닥 소리로 들어요. 그래서 내가 분해 가지고 엄청 울었어요."

김씨는 아이가 그네를 타는 다른 아이와 부딪칠까봐 옮겨줬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녹취> 김00(탈북 주민/음성 변조) : "살길 찾아서 진짜 삼만리를 돌아서 진짜 나라, 나라 난민으로 해서 겨우 왔잖아요. 목숨 값 바꿔 왔는데 이 남한 사람들은 흔히 조금 하는 말이 거지 같은..."

같은 단지에 사는 이웃 주민들.

탈북 주민에게 가는 정부 혜택이 지나치게 많다며 불만을 터뜨립니다.

<녹취> 이웃 주민(음성 변조) : "솔직히 적십자 회비 내고 싶지 않아요. 적십자 회비 내 가지고 자기네들 이북 사람들 불러들여 가지고 그 사람들한테 다 쓰고... 그 사람들은 여기 내려와서 풍족하게 살고 있는데..."

<녹취> "서로 어울리고 그런 분위기가 아닌가 보죠?"

<녹취> 이웃 주민(음성변조) : "그렇게 많이 잘 어울리려고 그러질 않아요. 그 사람들이. 친하려고 그러지도 않고. "

<리포트>

이 임대 아파트 단지에는 지난 2006년 입주가 시작된 이래로 북한 이탈 주민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이른바 '작은 북한'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보니 원주민과 탈북 주민 간에 크고 작은 갈등과 마찰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차이와 갈등을 이겨내고 화합해보려는 노력을 취재했습니다.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북한 이탈 주민만 천 3백여 명이나 모여 살아 '작은 북한'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오랜만에 탈북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자리 잡기가 무섭게 이곳저곳에서 고민들이 터져나옵니다.

<녹취> 탈북 주민(음성변조) : "마트라는 것도 어딘지 모르고. 마트에 가서도 사려고 해도 이름을 알아야 사는데 이거 산다고 말을 못하니까. 첨엔 XXX(언어 장애인)인 것처럼 말도 못했어요. 그래도 말하고 싶어서 말하니까 다 쳐다보더라고요."

이웃 주민들과의 관계도 큰 걱정거립니다.

<녹취> 탈북 주민(음성변조) : "2년 반 넘었는데 아직 모르고 있어요. 옆집 사람을. 저희 집만 틀어 닫고 옆에서 누구 사는가 들여다 보는 것도 없고요. 말도 안 하고 말 시켜도 말 안 해요."

아파트 단지의 경로당.

삼삼오오 앉아 있는 노인들은 모두 원주민들입니다.

탈북 노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녹취> 원주민(음성변조) : "새터민 노인네들이 있는데도 안 들어와. 안 들어와요."

좁은 공간에서도 이들은 서로 낯선 이방인일 뿐입니다.

<녹취> 원주민(음성변조) : "(새터민 분들도 이렇게 서로 모이고 이러시나봐요?) 자기들끼리는 많이 모여요. 모여 가지고 삼삼오오 이야기를 하다가도 우리가 가면 입 싹 다물거든."

초등학생들이 야구 연습에 한창입니다.

<녹취> "주자가 3루에 있어. 투 아웃이야. 내야 땅볼이 나왔어. 그럼 어떻게 해야 돼? 1루, 1루! 그렇지 1루로 던져야지."

서로 치겠다며 방망이를 가로채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합니다.

지난해 인천의 한 복지관에서 만든 야구단 '논현 돌핀스'

이제 창단한 지 1년이 된 이 야구단엔 모두 마흔 명의 어린이 선수가 있습니다.

등번호 1번부터 10번, 21번부터 30번까지는 탈북 주민의 자녀로 구성했습니다.

출신지를 따지지 말고 함께 어울려 운동도 하고 우정도 다져나가라는 뜻입니다.

<인터뷰> 이효남(인천 논현종합사회복지관 복지과장) : "국가가 해줄 수도 없고 개인이 해줄 수 없는 문제를...그분들의 정착을 빨리 시킬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 보자라는 취지에서..."

북한 이탈 주민들은 물론이고 선수 아버지들은 모두 함께 나와서 아이들의 야구를 지켜봅니다.

당연히 아버지들끼리 친분과 이해심이 커졌습니다.

처음엔 경제적 후원이 부족하고 탈북 주민들의 참여율도 낮아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지역에서 인기 프로그램이 됐습니다.

논현 돌핀스에 참가하겠다는 아이들의 신청이 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효남(인천 논현종합사회복지관 복지과장) : "이런 야구단이 함께 이뤄진다는 사실을 많이 알고 계시고 지금도 이제 3기를 언제 뽑느냐라는 문의도 들어올 정도로 지금 새터민과 함께 어울리는 거에 대해서 경계심은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야구단이 지역민과 북한 이탈주민들을 서로 이어주고 소통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된 것입니다.

<인터뷰> 박원상(주민) : "처음엔 새터민이라고 해서 솔직히 좀 이상하잖아요. 북한 이런 생각 때문에 약간 어색하고 그랬는데 같이 어울리다 보니까 뭐 부모님들이랑도 어울리고 그러다 보니까 그 이질적인 느낌도 하나도 없고 어울리면 어울릴 수록 다른 거 특별한 느낌이 없는 거 같아요."

아이가 한국에서 차별이나 받지 않을까 걱정하던 탈북 주민들은 아이들이 뒤섞여 노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습니다.

<인터뷰> 김수련(탈북 주민) : "똑같이 내 자식처럼 안아주시는 저 야구단 감독님들 보니까 많이 여기는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데라고 생각돼요."

아이들이 야구를 하는 시간에 엄마들은 간식거리를 준비하면서 몰랐던 정보도 교환합니다.

<녹취> "(북한 순대는 뭐가 달라?) 우리는 찹쌀하고 입쌀하고 섞어서... 당면 안 들어가고."

<인터뷰> 김수련(탈북 주민) : "솔직히 몰랐거든요. 참치 저런 김밥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같이 남과 북의 부모님들이 모여서 이렇게 아이들을 맛있게 해주니까 내 손으로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먹이고 응원하는 거 볼 수 있고 이러니까 마음이 좋죠."

지난해 7월, 중국에서 라오스 국경을 넘어 한국에 온 강인아 씨.

어머니 그리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는 아직 중국에 있습니다.

직업을 구하지 못한 강 씨는 얼마 전부터 중장비 기사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강인아(탈북 주민) : "기초 수급자이잖아요. 40만 원을 갖고 생활한다는 게 힘들죠. 잠시 학원 다니고 할 때까지는 힘들겠죠. 근데 일단은 취직을 해서 열심히 살아야죠."

강 씨는 매주 일요일 오후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이웃 주민과 탁구 모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이탈주민 1명씩을 끼워 2명이 한팀인 복식 경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의지할 곳 없던 한국생활, 강 씨에겐 이 탁구 모임이 크나큰 버팀목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강인아(북한 출신 주민) : "이렇게 운동도 하면서 이렇게 서로 이야기 소통도 하면서 보니까 아 정말 한민족이구나 마음도 따끈하고 정말 친근하게 잘 대해주시고..."

운동을 통한 만남은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 줍니다.

<인터뷰> 박철성(인천하나센터장) : " 남자 대 남자로서 대하는 게 더 소통하기도 편하고 또 속에 있는 마음의 얘기들을 하는 게 더 쉽지 않을까 생각을 해서 제가 직접 참여하게 됐습니다."

운동 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식사 자리.

가고 싶은 고향 이야기며 음식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웁니다.

<녹취> "신의주, 신의주 아 여기다."

오늘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북한에 있는 고향의 모습을 위성 영상으로 살펴 봅니다.

<녹취> "집 좀 봅시다. 우리 집을. (어, 번화가네. 어디 시 단위예요?) 읍이에요."

인천 논현동 원주민 107명에게 물어봤더니 북한 이탈 주민과의 잦은 접촉이 이들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접촉을 통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

56.1퍼센트.

그렇지 않다.

10.3퍼센트.

접촉을 통해 개인별로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75.7퍼센트.

그렇지 않다.

4.6퍼센트.

탈북민과의 접촉을 거듭할수록 그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다는 겁니다.

<인터뷰> 이수정(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서로를 이렇게 집단으로 보기보다는 개인을 중심으로 이렇게 바라보면서 아 개인차가 있구나. 뭐 이런 인식들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제 그런 것들이 만남과 소통을 통해서 서로 이해의 지점들을 만드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들이거든요."

매주 수요일이면 이 동네에선 노래 교실이 열립니다.

올해로 3년째를 맞은 노래 교실은 동네 어르신들의 놀이 공간입니다.

처음엔 탈북 주민들과 자리도 따로따로 앉고 서먹서먹했지만 이제는 서로 어울리는 장이 됐습니다.

신나게 노래 부르고 떠드는 사이 주민들은 하나가 됩니다.

<인터뷰> 최진주(탈북 주민) : "남한 어르신이 우리하고 같이 혼합해서 하니까 앞동네 뒷동네 그런 기분이에요. 그러니까 마음도 통하고 배울 것도 많거든요. 수요일에 노인 대학은 집에 있으면 이렇게 기다리게 되거든요."

<인터뷰> 박경환(주민) : " 이제는 같은 민족, 같은 사람이다 다들 느끼고... 호흡을 같이 맞춰서 같은 세상, 같이 사는 게 됐잖아요. 아주 좋아합니다."

현재 탈북 주민은 2만 5천여 명.

한국 정착을 위한 경제적인 지원 못지않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이수정(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북한 출신 주민들의 정착 지원의 목표를 이분들의 한국 사회로의 일방적 편입에 두기보다는 남북한 출신 주민들이 서로 협력해서 어떻게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작은 북한'이라 불리는 임대 아파트 단지.

이 단지를 중심으로 한 탈북 주민과 원주민들의 하나 됨을 위한 노력이 보석처럼 빛나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포커스 인] ‘작은 북한’ 하나 되기
    • 입력 2013-06-14 22:17:52
    • 수정2013-06-14 23:17:38
    취재파일K
<앵커 멘트>

지난해 가을,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

이 단지에 사는 40대 탈북 여성 김씨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고 합니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아이를 만졌다는 이유로 아이 엄마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은 것입니다.

<녹취> 김00(탈북 주민/음성 변조) : "(이웃 주민이) 거지 같은 X 이러더라고요. 거지라는 말 우리는 완전히 진짜 바닥 소리로 들어요. 그래서 내가 분해 가지고 엄청 울었어요."

김씨는 아이가 그네를 타는 다른 아이와 부딪칠까봐 옮겨줬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녹취> 김00(탈북 주민/음성 변조) : "살길 찾아서 진짜 삼만리를 돌아서 진짜 나라, 나라 난민으로 해서 겨우 왔잖아요. 목숨 값 바꿔 왔는데 이 남한 사람들은 흔히 조금 하는 말이 거지 같은..."

같은 단지에 사는 이웃 주민들.

탈북 주민에게 가는 정부 혜택이 지나치게 많다며 불만을 터뜨립니다.

<녹취> 이웃 주민(음성 변조) : "솔직히 적십자 회비 내고 싶지 않아요. 적십자 회비 내 가지고 자기네들 이북 사람들 불러들여 가지고 그 사람들한테 다 쓰고... 그 사람들은 여기 내려와서 풍족하게 살고 있는데..."

<녹취> "서로 어울리고 그런 분위기가 아닌가 보죠?"

<녹취> 이웃 주민(음성변조) : "그렇게 많이 잘 어울리려고 그러질 않아요. 그 사람들이. 친하려고 그러지도 않고. "

<리포트>

이 임대 아파트 단지에는 지난 2006년 입주가 시작된 이래로 북한 이탈 주민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이른바 '작은 북한'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보니 원주민과 탈북 주민 간에 크고 작은 갈등과 마찰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차이와 갈등을 이겨내고 화합해보려는 노력을 취재했습니다.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북한 이탈 주민만 천 3백여 명이나 모여 살아 '작은 북한'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오랜만에 탈북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자리 잡기가 무섭게 이곳저곳에서 고민들이 터져나옵니다.

<녹취> 탈북 주민(음성변조) : "마트라는 것도 어딘지 모르고. 마트에 가서도 사려고 해도 이름을 알아야 사는데 이거 산다고 말을 못하니까. 첨엔 XXX(언어 장애인)인 것처럼 말도 못했어요. 그래도 말하고 싶어서 말하니까 다 쳐다보더라고요."

이웃 주민들과의 관계도 큰 걱정거립니다.

<녹취> 탈북 주민(음성변조) : "2년 반 넘었는데 아직 모르고 있어요. 옆집 사람을. 저희 집만 틀어 닫고 옆에서 누구 사는가 들여다 보는 것도 없고요. 말도 안 하고 말 시켜도 말 안 해요."

아파트 단지의 경로당.

삼삼오오 앉아 있는 노인들은 모두 원주민들입니다.

탈북 노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녹취> 원주민(음성변조) : "새터민 노인네들이 있는데도 안 들어와. 안 들어와요."

좁은 공간에서도 이들은 서로 낯선 이방인일 뿐입니다.

<녹취> 원주민(음성변조) : "(새터민 분들도 이렇게 서로 모이고 이러시나봐요?) 자기들끼리는 많이 모여요. 모여 가지고 삼삼오오 이야기를 하다가도 우리가 가면 입 싹 다물거든."

초등학생들이 야구 연습에 한창입니다.

<녹취> "주자가 3루에 있어. 투 아웃이야. 내야 땅볼이 나왔어. 그럼 어떻게 해야 돼? 1루, 1루! 그렇지 1루로 던져야지."

서로 치겠다며 방망이를 가로채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합니다.

지난해 인천의 한 복지관에서 만든 야구단 '논현 돌핀스'

이제 창단한 지 1년이 된 이 야구단엔 모두 마흔 명의 어린이 선수가 있습니다.

등번호 1번부터 10번, 21번부터 30번까지는 탈북 주민의 자녀로 구성했습니다.

출신지를 따지지 말고 함께 어울려 운동도 하고 우정도 다져나가라는 뜻입니다.

<인터뷰> 이효남(인천 논현종합사회복지관 복지과장) : "국가가 해줄 수도 없고 개인이 해줄 수 없는 문제를...그분들의 정착을 빨리 시킬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 보자라는 취지에서..."

북한 이탈 주민들은 물론이고 선수 아버지들은 모두 함께 나와서 아이들의 야구를 지켜봅니다.

당연히 아버지들끼리 친분과 이해심이 커졌습니다.

처음엔 경제적 후원이 부족하고 탈북 주민들의 참여율도 낮아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지역에서 인기 프로그램이 됐습니다.

논현 돌핀스에 참가하겠다는 아이들의 신청이 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효남(인천 논현종합사회복지관 복지과장) : "이런 야구단이 함께 이뤄진다는 사실을 많이 알고 계시고 지금도 이제 3기를 언제 뽑느냐라는 문의도 들어올 정도로 지금 새터민과 함께 어울리는 거에 대해서 경계심은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야구단이 지역민과 북한 이탈주민들을 서로 이어주고 소통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된 것입니다.

<인터뷰> 박원상(주민) : "처음엔 새터민이라고 해서 솔직히 좀 이상하잖아요. 북한 이런 생각 때문에 약간 어색하고 그랬는데 같이 어울리다 보니까 뭐 부모님들이랑도 어울리고 그러다 보니까 그 이질적인 느낌도 하나도 없고 어울리면 어울릴 수록 다른 거 특별한 느낌이 없는 거 같아요."

아이가 한국에서 차별이나 받지 않을까 걱정하던 탈북 주민들은 아이들이 뒤섞여 노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습니다.

<인터뷰> 김수련(탈북 주민) : "똑같이 내 자식처럼 안아주시는 저 야구단 감독님들 보니까 많이 여기는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데라고 생각돼요."

아이들이 야구를 하는 시간에 엄마들은 간식거리를 준비하면서 몰랐던 정보도 교환합니다.

<녹취> "(북한 순대는 뭐가 달라?) 우리는 찹쌀하고 입쌀하고 섞어서... 당면 안 들어가고."

<인터뷰> 김수련(탈북 주민) : "솔직히 몰랐거든요. 참치 저런 김밥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같이 남과 북의 부모님들이 모여서 이렇게 아이들을 맛있게 해주니까 내 손으로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먹이고 응원하는 거 볼 수 있고 이러니까 마음이 좋죠."

지난해 7월, 중국에서 라오스 국경을 넘어 한국에 온 강인아 씨.

어머니 그리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는 아직 중국에 있습니다.

직업을 구하지 못한 강 씨는 얼마 전부터 중장비 기사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강인아(탈북 주민) : "기초 수급자이잖아요. 40만 원을 갖고 생활한다는 게 힘들죠. 잠시 학원 다니고 할 때까지는 힘들겠죠. 근데 일단은 취직을 해서 열심히 살아야죠."

강 씨는 매주 일요일 오후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이웃 주민과 탁구 모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이탈주민 1명씩을 끼워 2명이 한팀인 복식 경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의지할 곳 없던 한국생활, 강 씨에겐 이 탁구 모임이 크나큰 버팀목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강인아(북한 출신 주민) : "이렇게 운동도 하면서 이렇게 서로 이야기 소통도 하면서 보니까 아 정말 한민족이구나 마음도 따끈하고 정말 친근하게 잘 대해주시고..."

운동을 통한 만남은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 줍니다.

<인터뷰> 박철성(인천하나센터장) : " 남자 대 남자로서 대하는 게 더 소통하기도 편하고 또 속에 있는 마음의 얘기들을 하는 게 더 쉽지 않을까 생각을 해서 제가 직접 참여하게 됐습니다."

운동 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식사 자리.

가고 싶은 고향 이야기며 음식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웁니다.

<녹취> "신의주, 신의주 아 여기다."

오늘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북한에 있는 고향의 모습을 위성 영상으로 살펴 봅니다.

<녹취> "집 좀 봅시다. 우리 집을. (어, 번화가네. 어디 시 단위예요?) 읍이에요."

인천 논현동 원주민 107명에게 물어봤더니 북한 이탈 주민과의 잦은 접촉이 이들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접촉을 통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

56.1퍼센트.

그렇지 않다.

10.3퍼센트.

접촉을 통해 개인별로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75.7퍼센트.

그렇지 않다.

4.6퍼센트.

탈북민과의 접촉을 거듭할수록 그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다는 겁니다.

<인터뷰> 이수정(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서로를 이렇게 집단으로 보기보다는 개인을 중심으로 이렇게 바라보면서 아 개인차가 있구나. 뭐 이런 인식들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제 그런 것들이 만남과 소통을 통해서 서로 이해의 지점들을 만드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들이거든요."

매주 수요일이면 이 동네에선 노래 교실이 열립니다.

올해로 3년째를 맞은 노래 교실은 동네 어르신들의 놀이 공간입니다.

처음엔 탈북 주민들과 자리도 따로따로 앉고 서먹서먹했지만 이제는 서로 어울리는 장이 됐습니다.

신나게 노래 부르고 떠드는 사이 주민들은 하나가 됩니다.

<인터뷰> 최진주(탈북 주민) : "남한 어르신이 우리하고 같이 혼합해서 하니까 앞동네 뒷동네 그런 기분이에요. 그러니까 마음도 통하고 배울 것도 많거든요. 수요일에 노인 대학은 집에 있으면 이렇게 기다리게 되거든요."

<인터뷰> 박경환(주민) : " 이제는 같은 민족, 같은 사람이다 다들 느끼고... 호흡을 같이 맞춰서 같은 세상, 같이 사는 게 됐잖아요. 아주 좋아합니다."

현재 탈북 주민은 2만 5천여 명.

한국 정착을 위한 경제적인 지원 못지않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이수정(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북한 출신 주민들의 정착 지원의 목표를 이분들의 한국 사회로의 일방적 편입에 두기보다는 남북한 출신 주민들이 서로 협력해서 어떻게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작은 북한'이라 불리는 임대 아파트 단지.

이 단지를 중심으로 한 탈북 주민과 원주민들의 하나 됨을 위한 노력이 보석처럼 빛나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