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가 만난 이사람, 문성근씨

입력 2001.12.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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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올해 초 친구로 시작한 한국영화 열풍이 조폭마누라와 달마야 놀자로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지요.
⊙앵커: 외신에서는 한국영화의 기적이라는 특집기사를 싣기도 했는데요.
올해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50%에 육박할 거라고 한다니까 기적이라고 하는 말도 그리 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앵커: 앵커가 만난 이 사람, 오늘은 스크린쿼터 연대 이사장 문성근 씨를 만나서 올해 한국영화의 성공과 관련된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앵커: 한국영화가 쉬리 이후에 계속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이렇게 성공을 거둔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성근: 제일 중요한 거는 민주화가 진전됐다라는 거고요.
그래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소재의 제한이 없어졌다, 그 다음에는 한국영화의 배급력을 키워서 할리우드 영화와 직접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능성이 보이면서 우수한 인력들이 들어왔다, 짧게 얘기드리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요즘에 조폭영화들이 많이 뜨고 있고 또 하나가 성공을 하니까 계속 비슷한 영화가 상영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생각을 하시고...
⊙문성근: 우리 경우에는 의외로 수준 있는 상업영화 상태로 가다가 요즘 조금 한계가 더 갔다고 그럴까, 그런 부분들이 나타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상업영화 차원에서는 그다지 걱정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고 저절로 관객과의 쌍방 대화를 통해서 정리가 돼 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그 동안 영화 제의가 좀 뜸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문성근: 작품에 이렇게 딱 맞는 것을 제가 찾기가 쉽지 않았던 부분도 있고 저는 이렇게 영화계 심부름하는 사람으로 인식지워진 부분도 있을 거고요...
⊙앵커: 94년 1월이었죠, 문익환 목사님이 돌아가신 게? 돌아가신 지 7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시는 아버님, 문익환 목사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문성근: 그러니까 민족주의 입장에서 민족의 재단을 앞에 보고 그 곳을 향해서 걸어가셨던 분이 아닌가,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자식의 입장에서...
아무튼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앵커: 올해 처음으로 우리 한국영화의 수출액이 1000만달러를 넘었죠?
⊙문성근: 네, 그렇습니다.
⊙앵커: 제조액과 비교하면 그 액수는 별로 크지 않지만 그 파급효과로 보면 하나의 큰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문성근: 그렇죠, 일본 같은 경우에는 쉬리 이후에 우리 말을 배우는 클럽도 생겼고 한국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영화는 단순 상품이면서도 동시에 문화가 같이 나가는 거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는 단순히 그야말로 금액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앵커: 올해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50%에 육박할 거다 이런 통계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스크린쿼터제가 필요없는 거 아닙니까?
⊙문성근: 그건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스크린쿼터제는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일단 40%대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까지가 필요하다라는 것인데 일단 금년에 50% 갔다고 해서 이것이 상당기간 똑같이 이렇게 갈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토대가 허약한 상태에서 언제 이 상업구도가 위태로워질지는 모르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인프라를 탄탄하게 할 때까지, 그때까지는 스크린쿼터가 있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앵커: 앞으로도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노력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문성근: 고맙습니다.
⊙앵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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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가 만난 이사람, 문성근씨
    • 입력 2001-12-05 1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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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올해 초 친구로 시작한 한국영화 열풍이 조폭마누라와 달마야 놀자로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지요. ⊙앵커: 외신에서는 한국영화의 기적이라는 특집기사를 싣기도 했는데요. 올해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50%에 육박할 거라고 한다니까 기적이라고 하는 말도 그리 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앵커: 앵커가 만난 이 사람, 오늘은 스크린쿼터 연대 이사장 문성근 씨를 만나서 올해 한국영화의 성공과 관련된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앵커: 한국영화가 쉬리 이후에 계속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이렇게 성공을 거둔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성근: 제일 중요한 거는 민주화가 진전됐다라는 거고요. 그래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소재의 제한이 없어졌다, 그 다음에는 한국영화의 배급력을 키워서 할리우드 영화와 직접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능성이 보이면서 우수한 인력들이 들어왔다, 짧게 얘기드리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요즘에 조폭영화들이 많이 뜨고 있고 또 하나가 성공을 하니까 계속 비슷한 영화가 상영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생각을 하시고... ⊙문성근: 우리 경우에는 의외로 수준 있는 상업영화 상태로 가다가 요즘 조금 한계가 더 갔다고 그럴까, 그런 부분들이 나타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상업영화 차원에서는 그다지 걱정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고 저절로 관객과의 쌍방 대화를 통해서 정리가 돼 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그 동안 영화 제의가 좀 뜸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문성근: 작품에 이렇게 딱 맞는 것을 제가 찾기가 쉽지 않았던 부분도 있고 저는 이렇게 영화계 심부름하는 사람으로 인식지워진 부분도 있을 거고요... ⊙앵커: 94년 1월이었죠, 문익환 목사님이 돌아가신 게? 돌아가신 지 7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시는 아버님, 문익환 목사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문성근: 그러니까 민족주의 입장에서 민족의 재단을 앞에 보고 그 곳을 향해서 걸어가셨던 분이 아닌가,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자식의 입장에서... 아무튼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앵커: 올해 처음으로 우리 한국영화의 수출액이 1000만달러를 넘었죠? ⊙문성근: 네, 그렇습니다. ⊙앵커: 제조액과 비교하면 그 액수는 별로 크지 않지만 그 파급효과로 보면 하나의 큰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문성근: 그렇죠, 일본 같은 경우에는 쉬리 이후에 우리 말을 배우는 클럽도 생겼고 한국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영화는 단순 상품이면서도 동시에 문화가 같이 나가는 거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는 단순히 그야말로 금액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앵커: 올해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50%에 육박할 거다 이런 통계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스크린쿼터제가 필요없는 거 아닙니까? ⊙문성근: 그건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스크린쿼터제는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일단 40%대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까지가 필요하다라는 것인데 일단 금년에 50% 갔다고 해서 이것이 상당기간 똑같이 이렇게 갈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토대가 허약한 상태에서 언제 이 상업구도가 위태로워질지는 모르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인프라를 탄탄하게 할 때까지, 그때까지는 스크린쿼터가 있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앵커: 앞으로도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노력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문성근: 고맙습니다. ⊙앵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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