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서울 시민 북송…北 포고령 발견
입력 2013.06.23 (21:06)
수정 2013.06.2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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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이 6.25전쟁 발발 직후 서울시민들을 부역자로 차출하거나 북송하는 계획을 추진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새로 발견된 6.25 당시 북한관련 외교문서를 김종수 기자가 자세히 분석해드립니다.
<리포트>
1950년 6월 25일, 38선을 넘어온 북한은 사흘 만에 서울까지 밀고 내려옵니다.
남침 후 3주가 지난 7월 17일, 북한은 서울시민 북송계획이 포함된 군사위원회 명의의 포고령을 발표합니다.
서울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 50만명을 농촌으로 분산시키거나 북한내 공장이나 기업소로 보낸다는 내용입니다.
"북한의 각 부처 기관장과 평양시 인민위원회 의장 등은 서울시 임시 인민위원장과 합의해 필요한 숫자만큼 인력을 받아들이라"는 권고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녹취> 정성장 박사(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당시 포고령은) 북한이 6.25전쟁 개시직후부터 당국의 지시하에 남한인력의 북송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 납북된 인원은 9만 6천여명.
유엔군의 북진과 1.4후퇴 등으로 전황이 업치락 뒤치락하지 않았다면 납북자는 더 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의 서울 시민 북송 포고령은 미국의 우드로 윌슨센터가 공개했습니다.
윌슨 센터는 6.25전쟁 석 달전 김일성이 당시 소련 외무장관에게 보낸 군사와 기술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은 6.25 전쟁 납북자 송환과 배상문제 등에서도 근거자료로 활용될 전망입니다.
KBS 뉴스 김종수입니다.
북한이 6.25전쟁 발발 직후 서울시민들을 부역자로 차출하거나 북송하는 계획을 추진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새로 발견된 6.25 당시 북한관련 외교문서를 김종수 기자가 자세히 분석해드립니다.
<리포트>
1950년 6월 25일, 38선을 넘어온 북한은 사흘 만에 서울까지 밀고 내려옵니다.
남침 후 3주가 지난 7월 17일, 북한은 서울시민 북송계획이 포함된 군사위원회 명의의 포고령을 발표합니다.
서울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 50만명을 농촌으로 분산시키거나 북한내 공장이나 기업소로 보낸다는 내용입니다.
"북한의 각 부처 기관장과 평양시 인민위원회 의장 등은 서울시 임시 인민위원장과 합의해 필요한 숫자만큼 인력을 받아들이라"는 권고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녹취> 정성장 박사(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당시 포고령은) 북한이 6.25전쟁 개시직후부터 당국의 지시하에 남한인력의 북송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 납북된 인원은 9만 6천여명.
유엔군의 북진과 1.4후퇴 등으로 전황이 업치락 뒤치락하지 않았다면 납북자는 더 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의 서울 시민 북송 포고령은 미국의 우드로 윌슨센터가 공개했습니다.
윌슨 센터는 6.25전쟁 석 달전 김일성이 당시 소련 외무장관에게 보낸 군사와 기술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은 6.25 전쟁 납북자 송환과 배상문제 등에서도 근거자료로 활용될 전망입니다.
KBS 뉴스 김종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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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때 서울 시민 북송…北 포고령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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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3-06-23 22:26:27
<앵커 멘트>
북한이 6.25전쟁 발발 직후 서울시민들을 부역자로 차출하거나 북송하는 계획을 추진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새로 발견된 6.25 당시 북한관련 외교문서를 김종수 기자가 자세히 분석해드립니다.
<리포트>
1950년 6월 25일, 38선을 넘어온 북한은 사흘 만에 서울까지 밀고 내려옵니다.
남침 후 3주가 지난 7월 17일, 북한은 서울시민 북송계획이 포함된 군사위원회 명의의 포고령을 발표합니다.
서울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 50만명을 농촌으로 분산시키거나 북한내 공장이나 기업소로 보낸다는 내용입니다.
"북한의 각 부처 기관장과 평양시 인민위원회 의장 등은 서울시 임시 인민위원장과 합의해 필요한 숫자만큼 인력을 받아들이라"는 권고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녹취> 정성장 박사(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당시 포고령은) 북한이 6.25전쟁 개시직후부터 당국의 지시하에 남한인력의 북송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 납북된 인원은 9만 6천여명.
유엔군의 북진과 1.4후퇴 등으로 전황이 업치락 뒤치락하지 않았다면 납북자는 더 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의 서울 시민 북송 포고령은 미국의 우드로 윌슨센터가 공개했습니다.
윌슨 센터는 6.25전쟁 석 달전 김일성이 당시 소련 외무장관에게 보낸 군사와 기술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은 6.25 전쟁 납북자 송환과 배상문제 등에서도 근거자료로 활용될 전망입니다.
KBS 뉴스 김종수입니다.
북한이 6.25전쟁 발발 직후 서울시민들을 부역자로 차출하거나 북송하는 계획을 추진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새로 발견된 6.25 당시 북한관련 외교문서를 김종수 기자가 자세히 분석해드립니다.
<리포트>
1950년 6월 25일, 38선을 넘어온 북한은 사흘 만에 서울까지 밀고 내려옵니다.
남침 후 3주가 지난 7월 17일, 북한은 서울시민 북송계획이 포함된 군사위원회 명의의 포고령을 발표합니다.
서울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 50만명을 농촌으로 분산시키거나 북한내 공장이나 기업소로 보낸다는 내용입니다.
"북한의 각 부처 기관장과 평양시 인민위원회 의장 등은 서울시 임시 인민위원장과 합의해 필요한 숫자만큼 인력을 받아들이라"는 권고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녹취> 정성장 박사(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당시 포고령은) 북한이 6.25전쟁 개시직후부터 당국의 지시하에 남한인력의 북송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 납북된 인원은 9만 6천여명.
유엔군의 북진과 1.4후퇴 등으로 전황이 업치락 뒤치락하지 않았다면 납북자는 더 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의 서울 시민 북송 포고령은 미국의 우드로 윌슨센터가 공개했습니다.
윌슨 센터는 6.25전쟁 석 달전 김일성이 당시 소련 외무장관에게 보낸 군사와 기술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은 6.25 전쟁 납북자 송환과 배상문제 등에서도 근거자료로 활용될 전망입니다.
KBS 뉴스 김종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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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기자 sweep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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