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분석] 新한중관계 다지는 초석 돼야

입력 2013.07.09 (21:35) 수정 2013.07.09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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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6.25 전쟁 개전 당시 우리 국군 10만 5천여 명이 20만에 가까운 북한 인민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양측 병력은 점차 늘어나 휴전 때까지 투입된 병력은 정확한 집계가 없을 정도로 격전이었습니다.

유엔군은 백 94만여 명이 참전했고, 중국군은 백 35만여 명이 압록강을 건너 전선에 투입됐습니다.

전사자는 인민군이 50만을 넘어 가장 많았고 국군 13만 7천여 명, 유엔군은 4만여 명이었습니다.

중국군은 14만 명이 넘어 국군보다 전사자가 많았습니다.

당시 마오쩌둥 중국 주석의 큰아들도 전사해 북한에 묻히면서 북중 혈맹관계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 전사자들은 각각 국립묘지와 유엔 묘지에 안장됐고 본국으로 송환된 경우도 있습니다.

중국군 유해는 1954년 일괄 유해교환 당시 일부 송환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반도에 11만 구 이상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부가 유해 송환을 결정하면서 중국군 전사자 처리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이뤄진 중국군 유해 송환은 한중관계를 더욱 튼튼히 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데스크 분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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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분석] 新한중관계 다지는 초석 돼야
    • 입력 2013-07-09 21:36:26
    • 수정2013-07-09 22: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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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6.25 전쟁 개전 당시 우리 국군 10만 5천여 명이 20만에 가까운 북한 인민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양측 병력은 점차 늘어나 휴전 때까지 투입된 병력은 정확한 집계가 없을 정도로 격전이었습니다.

유엔군은 백 94만여 명이 참전했고, 중국군은 백 35만여 명이 압록강을 건너 전선에 투입됐습니다.

전사자는 인민군이 50만을 넘어 가장 많았고 국군 13만 7천여 명, 유엔군은 4만여 명이었습니다.

중국군은 14만 명이 넘어 국군보다 전사자가 많았습니다.

당시 마오쩌둥 중국 주석의 큰아들도 전사해 북한에 묻히면서 북중 혈맹관계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 전사자들은 각각 국립묘지와 유엔 묘지에 안장됐고 본국으로 송환된 경우도 있습니다.

중국군 유해는 1954년 일괄 유해교환 당시 일부 송환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반도에 11만 구 이상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부가 유해 송환을 결정하면서 중국군 전사자 처리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이뤄진 중국군 유해 송환은 한중관계를 더욱 튼튼히 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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