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내 아들이 마지막이길…”

입력 2013.11.19 (08:34) 수정 2013.11.1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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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죠.

그 이별을 위해 17년 동안이나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고 해도 그 슬픔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겁니다.

스무 살에 입대해 의경으로 복무하던 아들이 어느 날 쓰러져 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 아들은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김기흥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정말 가슴 아픈 사연이네요.

<기자 멘트>

깨어나지 못하는 아들을 보며 지낸 17년이란 세월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고 김인원씨의 아버지는 17년을 함께 있어줘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또 부모 자식 간의 질긴 인연을 끊는데 17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라고도 말했는데요.

지난 17년은 아들을 조금씩 가슴에 묻어간 세월이라는 아버지.

고 김인원씨의 남은 가족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고 김인원 씨의 발인이 있던 지난 16일.

영영 오지 않기를 원했던 순간 앞에서 가족들은 참았던 슬픔을 토해냅니다.

<녹취> 유가족 : “이 자식아.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야….”

17년 5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 지낸 아들.

강산이 두 번은 바뀔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시간은 1996년에 멈춰 있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저희 아이가 96년 1월 8일 입대를 했습니다. 그 이후로 약 3개월 이후에 3박4일의 휴가를 다녀갔습니다. 그때 나에게 하얀 웃음 한 번 웃어준 기억밖에 없거든요."

활짝 웃던 아들의 얼굴. 그것이 마지막 웃음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는 김정평 씨.

1996년 6월 14일 밤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김 씨 가족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아들이) 곧 죽을 수도 있다는 급박한 연락을 받고 택시를 타고 광주 조선대학교 병원에 갔습니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달려간 곳에 아들은 한 곳만을 응시하며 누워있었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 "뇌압(상승)방지용 호스를 장착했었고 두발은 삭발했었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 아들 인원 씨는 광주의 한 대학캠퍼스에서 남북 학생 교류를 요구하며 벌어진 시위를 진압하는 데 투입됐었습니다.

<녹취> 고 김인원 씨 동료 (음성변조) : "그때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고 보시면 돼요. 화염병 날아오고 돌 날아오고 쇠파이프 날아오고 뭘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 있잖아요."

전의경 1800여 명이 투입된 시위현장의 밀고 밀리는 공방전 속에서 시위대가 휘두른 둔기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 김씨.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져 2차례에 걸친 큰 수술을 받았지만 아들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장출혈, 위출혈, 뇌수술, 발목 피부 이식수술, 약 8~9군데의 대수술을 마치고 투병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기자 멘트>

17년을 이어온 투병 기간 김 씨의 곁에는 늘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단 한순간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부모님이 있었기에 17년의 세월을 버틴 게 아닌가 싶은데요.

의식불명에 빠진 김씨의 투병생활이 그렇게 길게 이어질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인터뷰> 문인식(고모부) : "기적적으로 깨어나는 사람 있잖아요. 부모 입장에서는 0.01퍼센트 희망만 있더라도 자식을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깨어나기를 기다려야지. 그러다 보니 세월이 17년이 간 거예요."

쓰러진 지 2년이 지난 98년 11월, 장기 병가 중 임기 만료로 만기 전역한 아들.

그 뒤로도 24시간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말없이 침대에 누워만 있던 아들 곁을 부모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켰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이 중환자를 남한테 간병을 부탁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자식이라는 명제 때문에 지금까지 견뎌왔던 것 같습니다."

누구도 제 자식처럼 간병해 주지 않을 거라는 마음에 단 하루도 간병인을 쓰지 않았던 아버지.

코와 위를 연결한 음식섭취용 관을 통해 가물치, 뱀장어 등 몸에 좋다는 것은 다 고아먹이면서도 고생스럽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투병기간이) 길어졌다고 해도 한결같이 그 가느다란 호스를 통해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음식물을 마련해서 줬을 것이고 물수건으로 열을 내려주려고 노력을 할 것이고 그래서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가슴을 아프게 한 건 또래처럼 살지 못하는 아들의 안타까운 청춘이었습니다.

17년을 돌보며 아버지는 애끓는 부정을 담은 시집까지 펴냈습니다.

“하얗게 웃으며 뜨는 태양이 네 머리 위에 저리 타는데 이제 그 긴 잠에서 깨어날 순 없는가”

하지만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결국 17년 5개월의 투병을 끝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지난 목요일 날, 투석하는 도중에 '인원아, 빨리 나아야 될 텐데.' 하니까 눈을 굴리면서 알아듣는 시늉을 하더라고요. 그 순간이 나하고 쟤하고 마지막 대화였지 않나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지난 5월 정부로부터 옥조근정훈장을 받고 지난달 경찰의 날에 명예경찰로 임용된 김 씨.

경찰은 끝내 아들을 잃은 유족에게 위로를 전했습니다.

<녹취> 이성한(경찰청장) : "진작 와서 위문도 하고 했어야 했는데 늦게라도 이렇게 찾을 수 있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요. 노여움을 좀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부모와 자식의 질긴 인연을 끊는데 17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아버지 김 씨는 미혼은 2일장으로 하는 게 관례라며 숨진 아들을 바로 다음날 떠나보냈습니다.

<녹취> “잘 가거라”

아들을 가슴에 묻은 김 씨는 불행은 내 아들에서 끝나길 바란다는 마지막 말을 전했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우리 아이 같은 아이가 발생 될까 너무 가슴 졸였던 시간이었어요. 앞으로는 그런 일이 절대 없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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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내 아들이 마지막이길…”
    • 입력 2013-11-19 08:35:00
    • 수정2013-11-19 09:3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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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죠.

그 이별을 위해 17년 동안이나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고 해도 그 슬픔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겁니다.

스무 살에 입대해 의경으로 복무하던 아들이 어느 날 쓰러져 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 아들은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김기흥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정말 가슴 아픈 사연이네요.

<기자 멘트>

깨어나지 못하는 아들을 보며 지낸 17년이란 세월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고 김인원씨의 아버지는 17년을 함께 있어줘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또 부모 자식 간의 질긴 인연을 끊는데 17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라고도 말했는데요.

지난 17년은 아들을 조금씩 가슴에 묻어간 세월이라는 아버지.

고 김인원씨의 남은 가족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고 김인원 씨의 발인이 있던 지난 16일.

영영 오지 않기를 원했던 순간 앞에서 가족들은 참았던 슬픔을 토해냅니다.

<녹취> 유가족 : “이 자식아.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야….”

17년 5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 지낸 아들.

강산이 두 번은 바뀔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시간은 1996년에 멈춰 있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저희 아이가 96년 1월 8일 입대를 했습니다. 그 이후로 약 3개월 이후에 3박4일의 휴가를 다녀갔습니다. 그때 나에게 하얀 웃음 한 번 웃어준 기억밖에 없거든요."

활짝 웃던 아들의 얼굴. 그것이 마지막 웃음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는 김정평 씨.

1996년 6월 14일 밤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김 씨 가족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아들이) 곧 죽을 수도 있다는 급박한 연락을 받고 택시를 타고 광주 조선대학교 병원에 갔습니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달려간 곳에 아들은 한 곳만을 응시하며 누워있었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 "뇌압(상승)방지용 호스를 장착했었고 두발은 삭발했었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 아들 인원 씨는 광주의 한 대학캠퍼스에서 남북 학생 교류를 요구하며 벌어진 시위를 진압하는 데 투입됐었습니다.

<녹취> 고 김인원 씨 동료 (음성변조) : "그때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고 보시면 돼요. 화염병 날아오고 돌 날아오고 쇠파이프 날아오고 뭘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 있잖아요."

전의경 1800여 명이 투입된 시위현장의 밀고 밀리는 공방전 속에서 시위대가 휘두른 둔기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 김씨.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져 2차례에 걸친 큰 수술을 받았지만 아들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장출혈, 위출혈, 뇌수술, 발목 피부 이식수술, 약 8~9군데의 대수술을 마치고 투병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기자 멘트>

17년을 이어온 투병 기간 김 씨의 곁에는 늘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단 한순간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부모님이 있었기에 17년의 세월을 버틴 게 아닌가 싶은데요.

의식불명에 빠진 김씨의 투병생활이 그렇게 길게 이어질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인터뷰> 문인식(고모부) : "기적적으로 깨어나는 사람 있잖아요. 부모 입장에서는 0.01퍼센트 희망만 있더라도 자식을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깨어나기를 기다려야지. 그러다 보니 세월이 17년이 간 거예요."

쓰러진 지 2년이 지난 98년 11월, 장기 병가 중 임기 만료로 만기 전역한 아들.

그 뒤로도 24시간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말없이 침대에 누워만 있던 아들 곁을 부모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켰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이 중환자를 남한테 간병을 부탁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자식이라는 명제 때문에 지금까지 견뎌왔던 것 같습니다."

누구도 제 자식처럼 간병해 주지 않을 거라는 마음에 단 하루도 간병인을 쓰지 않았던 아버지.

코와 위를 연결한 음식섭취용 관을 통해 가물치, 뱀장어 등 몸에 좋다는 것은 다 고아먹이면서도 고생스럽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투병기간이) 길어졌다고 해도 한결같이 그 가느다란 호스를 통해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음식물을 마련해서 줬을 것이고 물수건으로 열을 내려주려고 노력을 할 것이고 그래서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가슴을 아프게 한 건 또래처럼 살지 못하는 아들의 안타까운 청춘이었습니다.

17년을 돌보며 아버지는 애끓는 부정을 담은 시집까지 펴냈습니다.

“하얗게 웃으며 뜨는 태양이 네 머리 위에 저리 타는데 이제 그 긴 잠에서 깨어날 순 없는가”

하지만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결국 17년 5개월의 투병을 끝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지난 목요일 날, 투석하는 도중에 '인원아, 빨리 나아야 될 텐데.' 하니까 눈을 굴리면서 알아듣는 시늉을 하더라고요. 그 순간이 나하고 쟤하고 마지막 대화였지 않나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지난 5월 정부로부터 옥조근정훈장을 받고 지난달 경찰의 날에 명예경찰로 임용된 김 씨.

경찰은 끝내 아들을 잃은 유족에게 위로를 전했습니다.

<녹취> 이성한(경찰청장) : "진작 와서 위문도 하고 했어야 했는데 늦게라도 이렇게 찾을 수 있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요. 노여움을 좀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부모와 자식의 질긴 인연을 끊는데 17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아버지 김 씨는 미혼은 2일장으로 하는 게 관례라며 숨진 아들을 바로 다음날 떠나보냈습니다.

<녹취> “잘 가거라”

아들을 가슴에 묻은 김 씨는 불행은 내 아들에서 끝나길 바란다는 마지막 말을 전했습니다.

<인터뷰> 김정평(아버지) : "우리 아이 같은 아이가 발생 될까 너무 가슴 졸였던 시간이었어요. 앞으로는 그런 일이 절대 없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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