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뉴스] ‘안중근 표지석’ 본격…‘역사 전쟁’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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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3주기입니다.
하지만 광복 68년이 되도록 안 의사의 유해는 흔적조차 찾질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민간단체가 순국 현장인 뤼순 감옥을 중심으로 발굴 조사를 진행했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효창원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의 묘역엔 유해와 비석 없는 허묘만 있을 뿐입니다.
안 의사를 기리기 위해 한국과 중국은 의건 현장 하얼빈 역에 표지석 건립을 시작했지만, 정작 가해자인 일본은 안의사를 폄하하며 아픈 상처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김명주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중국 하얼빈역 1번 승강장 주변 바닥에는 7미터 간격으로 삼각형과 사각형 표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지난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점과 이토가 쓰러진 장솝니다.
그동안 안내판 하나 없었던 이곳에 한중 외교 당국은 안의사의 표지석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형식과 문구 등 구체적 내용들도 긴밀히 협의중입니다.
<녹취> 훙레이(중국 외교부 대변인) : "안중근 의사는 역사상 유명한 항일 의사(義士)입니다. 중국에서도 존경받고 있습니다."
하얼빈역 2층 대합실에선 지난주부터 안중근 의사를 소개하는 사진전도 열리고 있습니다.
한중간 안의사를 기리는 사업에 일본의 망언이 쏟아진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중국측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도 부텁니다
일본 각료들의 망언은 안 의사를 범죄자로 표현하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녹취> 세코 히로시게(일본 관방부장관) : "우리에게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해 사형 판결을 받은 인물로 인식됩니다."
일본과 달리 중국에선 기념사업을 진행중입니다.
안중근 의사 표지석 설치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한중 모두 일제침략의 상흔을 갖고 있다는 공동인식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기자 멘트>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하얼빈 역입니다.
당시 안 의사의 표적이 됐던 이토 히로부미, 우리 입장에선 한반도 침략의 원흉입니다.
일본에서는 어떨까요?
일본 역사교과서에선 메이지 헌법의 기틀을 잡고 부국강병을 이끈 근대화의 아버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한때 이토의 얼굴을 지폐의 도안으로 사용했을 정도입니다.
안 의사는 "이토를 살해했다"라는 짧은 표현이 대부분이고 일부 교과서만 한국 내의 평가를 간략히 싣고 있습니다
한반도 침탈과정에서 이토의 역할이나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 등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반면 부쩍 잦아진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함께 대평양전쟁 A급 전범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은 활발합니다.
일본 고위인사들이 서슴없이 안 의사에게 범죄자라는 망언까지 하게된 하나의 배경이란 분석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 애국지사에 대한 폄하는 더 심해질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입니다.
해법의 하나로 한중일 공동역사교과서가 제시되고 있는데, 관건은 역시 일본의 태도입니다.
<리포트>
박근혜 대통령의 공동 역사 교과서 제안 직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가 하루 만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던 일본.
하지만 분위기는 다시 변하고 있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역사 인식을 둘러싼 관련국들의 골이 깊다"면서 "진전이 쉽지 않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문부성은 정부 입장을 더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녹취> 시모무라 하쿠분(일본 문부과학상) : "교과서에 정부 견해와 다른 의견을 기술한다면 정부 입장도 반드시 들어가야 됩니다."
공동 교과서 집필 목적과 활용 방향까지 염두에 둔 우리 측 대응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인터뷰> 김민규(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일본보다) 건전하고 건강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역사 공동 교과서의 모델'로 평가받는 독일과 프랑스에선 학생들이 서로 오가는 공동 수업까지 하면서 애써 만든 결과물을 사장시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녹취> 마틴 디메(독일인 학생) :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역사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반성과 상처 치유에 적극적인 정부의 모습을 그대로 지켜본 독일 학생들.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자국 중심의 역사를 탈피했다는 프랑스 학생들.
서로가 보여준 진정성을 토대로 양국이 함께 나아간 결과입니다.
KBS 뉴스 황현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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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뉴스] ‘안중근 표지석’ 본격…‘역사 전쟁’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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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3-11-25 21:29:37
- 수정2013-11-25 21:59:01
<녹취>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3주기입니다.
하지만 광복 68년이 되도록 안 의사의 유해는 흔적조차 찾질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민간단체가 순국 현장인 뤼순 감옥을 중심으로 발굴 조사를 진행했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효창원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의 묘역엔 유해와 비석 없는 허묘만 있을 뿐입니다.
안 의사를 기리기 위해 한국과 중국은 의건 현장 하얼빈 역에 표지석 건립을 시작했지만, 정작 가해자인 일본은 안의사를 폄하하며 아픈 상처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김명주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중국 하얼빈역 1번 승강장 주변 바닥에는 7미터 간격으로 삼각형과 사각형 표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지난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점과 이토가 쓰러진 장솝니다.
그동안 안내판 하나 없었던 이곳에 한중 외교 당국은 안의사의 표지석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형식과 문구 등 구체적 내용들도 긴밀히 협의중입니다.
<녹취> 훙레이(중국 외교부 대변인) : "안중근 의사는 역사상 유명한 항일 의사(義士)입니다. 중국에서도 존경받고 있습니다."
하얼빈역 2층 대합실에선 지난주부터 안중근 의사를 소개하는 사진전도 열리고 있습니다.
한중간 안의사를 기리는 사업에 일본의 망언이 쏟아진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중국측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도 부텁니다
일본 각료들의 망언은 안 의사를 범죄자로 표현하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녹취> 세코 히로시게(일본 관방부장관) : "우리에게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해 사형 판결을 받은 인물로 인식됩니다."
일본과 달리 중국에선 기념사업을 진행중입니다.
안중근 의사 표지석 설치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한중 모두 일제침략의 상흔을 갖고 있다는 공동인식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기자 멘트>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하얼빈 역입니다.
당시 안 의사의 표적이 됐던 이토 히로부미, 우리 입장에선 한반도 침략의 원흉입니다.
일본에서는 어떨까요?
일본 역사교과서에선 메이지 헌법의 기틀을 잡고 부국강병을 이끈 근대화의 아버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한때 이토의 얼굴을 지폐의 도안으로 사용했을 정도입니다.
안 의사는 "이토를 살해했다"라는 짧은 표현이 대부분이고 일부 교과서만 한국 내의 평가를 간략히 싣고 있습니다
한반도 침탈과정에서 이토의 역할이나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 등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반면 부쩍 잦아진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함께 대평양전쟁 A급 전범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은 활발합니다.
일본 고위인사들이 서슴없이 안 의사에게 범죄자라는 망언까지 하게된 하나의 배경이란 분석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 애국지사에 대한 폄하는 더 심해질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입니다.
해법의 하나로 한중일 공동역사교과서가 제시되고 있는데, 관건은 역시 일본의 태도입니다.
<리포트>
박근혜 대통령의 공동 역사 교과서 제안 직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가 하루 만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던 일본.
하지만 분위기는 다시 변하고 있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역사 인식을 둘러싼 관련국들의 골이 깊다"면서 "진전이 쉽지 않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문부성은 정부 입장을 더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녹취> 시모무라 하쿠분(일본 문부과학상) : "교과서에 정부 견해와 다른 의견을 기술한다면 정부 입장도 반드시 들어가야 됩니다."
공동 교과서 집필 목적과 활용 방향까지 염두에 둔 우리 측 대응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인터뷰> 김민규(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일본보다) 건전하고 건강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역사 공동 교과서의 모델'로 평가받는 독일과 프랑스에선 학생들이 서로 오가는 공동 수업까지 하면서 애써 만든 결과물을 사장시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녹취> 마틴 디메(독일인 학생) :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역사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반성과 상처 치유에 적극적인 정부의 모습을 그대로 지켜본 독일 학생들.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자국 중심의 역사를 탈피했다는 프랑스 학생들.
서로가 보여준 진정성을 토대로 양국이 함께 나아간 결과입니다.
KBS 뉴스 황현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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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기자 news2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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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기자 sil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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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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