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리포트] ‘친 유럽’-‘친 러시아’ 정면 충돌

입력 2014.01.11 (08:26) 수정 2014.01.1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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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크라이나가 해를 넘기면서도계속 시끄럽습니다.

유럽연합과의 경제 협력 협정 체결이 무산된 데 항의하는 야권의 시위 때문입니다.

시위에는 배경도 있는 모양입니다.

친 유럽 성향의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과 친 러시아 쪽인 동부 지역 주민들 간의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가 동,서로 분단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연규선 특파원이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독립광장.

유럽연합과의 경제 통합을 요구하는 야권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말 시작된 시위는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며, 이미 해를 넘겼습니다.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대의 구호 소리, 각종 깃발과 벽보가 독립광장에 가득합니다.

광장으로 진입하는 모든 도로에는 3~4미터 높이의 바이케이트가 설치됐습니다.

규찰대가 24시간 경계를 서며 차량 출입을 일일이 통제하고 있습니다.

시위대를 해산하려는 경찰의 진입을 막기 위해서ㅂ니다.

<인터뷰> 이고르 : "광장으로 들어가는 차량들을 검사합니다. 무기나 술 같은 것의 반입을 금지하고 있어요. 절대 금지입니다."

영하의 추위 때문에 장작 불을 피우느라 곳곳에서 연기가 자욱합니다.

시위대에게는 '성지'와 다름 없는 독립 광장.

이곳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대형 텐트에서 생활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터뷰> 세르게이: "독립광장을 사수하기 위해 여기에 머물면서 하루종일 규찰 활동을 합니다."

독립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던 옛 소련 지도자, 레닌의 동상은 시위대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형제국이라 불리는 러시아와의 관계 단절을 원한다는 상징적인 의미.

현장에는 친 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조롱하는 글귀가 가득합니다.

"레닌 동상이 있던 자립니다. 보시는 것처럼 빈 동상만 남아 있습니다."

러시아의 대규모 경제 지원에도 불구하고, 야권 시위대들이 유럽과의 통합을 희망하는 이유는 러시아에 대한 불신.

정부의 부정부패를 묵인하고 오히려 지원도 해주는 러시아 역시 권위주의와 비효율적인 국가라는 겁니다.

대신 유럽연합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콘스탄틴 : "경제, 사회적으로 유럽인의 삶은 우리보다 앞서 있습니다. 우리는 유럽을 기회이자 미래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키예프에서 남동쪽으로 4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

드니프로 강변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제 1의 공업도시 입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각종 기계, 화학 제품 등은 러시아에 수출됩니다.

언어도 우크라이나 말 대신 러시아어가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드미트리 : "이곳과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밀접하죠. 마치 같은 산업단지에 속해 있는 것 같죠. 소련 해체 이후에도 상호 의존적인 관계는 변하지 않았어요"

러시아와 경제, 문화적으로 가깝다 보니 친 유럽, 반 러시아를 주장하는 독립 광장의 야권 시위에는 비판적입니다.

일부 시민들은 시내 중심가 레닌 동상 앞에서 옛 소련 지도자였던 스탈린 탄생을 기념하며, 과거의 향수를 달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를 가로지는 드니프로 강을 중심으로 동부 지역은 서부 지역과 달리 친 러시아 성향이 두드러집니다.

지난 2004년에도 동부와 남부 지역은 오렌지 혁명을 주도한 서부 지역에 반발해 자치공화국 건설을 결의한 적이 있습니다.

유럽 성향의 서부와 분리된 새로운 국가를 만들겠다는 움직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인터뷰> 스베타 : "현재 독립광장에서 벌어지는 야권 시위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식으로 나라를 훈란시켜서는 안되죠"

실제로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 연방에 편입되기 전까지 수 백년간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는 유럽 제국, 동부는 러시아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동부와 서부 사이 내전도 몇 차례 치렀습니다.

역사적으로 한번도 독립 국가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소련이 해체된 뒤 1992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라는 이름으로 독립했습니다.

<인터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다시 통합되어야 합니다. 다시 하나의 경제 공통체로 부활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때문에 동부지역에는 러시아 정교회가 주류.

동부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같은 슬라브 국가인 러시아에 강한 동질감을 갖고 있습니다.

<인터뷰> 야로슬라블(러시아 정교회 대주교) : "러시아 정교회 전통은 수천년 동안 지속돼 왔습니다. 정교회는 평화 수호자 역할을 계속할 겁니다."

(피아노 연주 소리) 반면 서부지역은 가톨릭이 우세합니다.

1902년에 세워진 키예프의 성니콜라이 성당은 대표적인 로마 가톨릭 건축물입니다.

<인터뷰> 메리: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은 대부분 카톨릭 입니다. 폴란드와 인접해서 종교나 언어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카톨릭 성당도 많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이처럼 동부와 서부가 역사, 문화적으로 서로 이질감이 큰데다, 현 정부에 대한 지지 입장에 따라 갈라져 있습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를 영향권에 두려는 러시아와 유럽연합 사이의 힘겨루기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소러시아로 부르는 러시아와 유럽의 끝으로 보고 있는 유럽연합.

국내외 현실은 분단의 위기 상황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미하일 씨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에 정착한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와 유럽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며 스스로를 평가했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러시아와 유럽연합 이라는 거대한 두 강대국 사이에서 불안하게 놓여 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동서 갈등은 마치 냉전 시대를 연상케 한다고 우려 했습니다.

<인터뷰> 미하일 : "우크라이나 국민은 진정한 독립 국가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 땅의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인가. 유럽인가. 동서 갈등인가. 통합인가.

과연 어디서 어떻게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미하일 씨의 네살바기 손녀의 그림 속에서 우크라이나의 다음 세대는 어떤 색으로 묘사되고 있는가.

우크라이나의 고민은 지 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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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1-11 09:55:18
    • 수정2014-01-11 11:25:14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우크라이나가 해를 넘기면서도계속 시끄럽습니다.

유럽연합과의 경제 협력 협정 체결이 무산된 데 항의하는 야권의 시위 때문입니다.

시위에는 배경도 있는 모양입니다.

친 유럽 성향의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과 친 러시아 쪽인 동부 지역 주민들 간의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가 동,서로 분단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연규선 특파원이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독립광장.

유럽연합과의 경제 통합을 요구하는 야권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말 시작된 시위는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며, 이미 해를 넘겼습니다.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대의 구호 소리, 각종 깃발과 벽보가 독립광장에 가득합니다.

광장으로 진입하는 모든 도로에는 3~4미터 높이의 바이케이트가 설치됐습니다.

규찰대가 24시간 경계를 서며 차량 출입을 일일이 통제하고 있습니다.

시위대를 해산하려는 경찰의 진입을 막기 위해서ㅂ니다.

<인터뷰> 이고르 : "광장으로 들어가는 차량들을 검사합니다. 무기나 술 같은 것의 반입을 금지하고 있어요. 절대 금지입니다."

영하의 추위 때문에 장작 불을 피우느라 곳곳에서 연기가 자욱합니다.

시위대에게는 '성지'와 다름 없는 독립 광장.

이곳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대형 텐트에서 생활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터뷰> 세르게이: "독립광장을 사수하기 위해 여기에 머물면서 하루종일 규찰 활동을 합니다."

독립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던 옛 소련 지도자, 레닌의 동상은 시위대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형제국이라 불리는 러시아와의 관계 단절을 원한다는 상징적인 의미.

현장에는 친 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조롱하는 글귀가 가득합니다.

"레닌 동상이 있던 자립니다. 보시는 것처럼 빈 동상만 남아 있습니다."

러시아의 대규모 경제 지원에도 불구하고, 야권 시위대들이 유럽과의 통합을 희망하는 이유는 러시아에 대한 불신.

정부의 부정부패를 묵인하고 오히려 지원도 해주는 러시아 역시 권위주의와 비효율적인 국가라는 겁니다.

대신 유럽연합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콘스탄틴 : "경제, 사회적으로 유럽인의 삶은 우리보다 앞서 있습니다. 우리는 유럽을 기회이자 미래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키예프에서 남동쪽으로 4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

드니프로 강변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제 1의 공업도시 입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각종 기계, 화학 제품 등은 러시아에 수출됩니다.

언어도 우크라이나 말 대신 러시아어가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드미트리 : "이곳과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밀접하죠. 마치 같은 산업단지에 속해 있는 것 같죠. 소련 해체 이후에도 상호 의존적인 관계는 변하지 않았어요"

러시아와 경제, 문화적으로 가깝다 보니 친 유럽, 반 러시아를 주장하는 독립 광장의 야권 시위에는 비판적입니다.

일부 시민들은 시내 중심가 레닌 동상 앞에서 옛 소련 지도자였던 스탈린 탄생을 기념하며, 과거의 향수를 달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를 가로지는 드니프로 강을 중심으로 동부 지역은 서부 지역과 달리 친 러시아 성향이 두드러집니다.

지난 2004년에도 동부와 남부 지역은 오렌지 혁명을 주도한 서부 지역에 반발해 자치공화국 건설을 결의한 적이 있습니다.

유럽 성향의 서부와 분리된 새로운 국가를 만들겠다는 움직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인터뷰> 스베타 : "현재 독립광장에서 벌어지는 야권 시위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식으로 나라를 훈란시켜서는 안되죠"

실제로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 연방에 편입되기 전까지 수 백년간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는 유럽 제국, 동부는 러시아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동부와 서부 사이 내전도 몇 차례 치렀습니다.

역사적으로 한번도 독립 국가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소련이 해체된 뒤 1992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라는 이름으로 독립했습니다.

<인터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다시 통합되어야 합니다. 다시 하나의 경제 공통체로 부활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때문에 동부지역에는 러시아 정교회가 주류.

동부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같은 슬라브 국가인 러시아에 강한 동질감을 갖고 있습니다.

<인터뷰> 야로슬라블(러시아 정교회 대주교) : "러시아 정교회 전통은 수천년 동안 지속돼 왔습니다. 정교회는 평화 수호자 역할을 계속할 겁니다."

(피아노 연주 소리) 반면 서부지역은 가톨릭이 우세합니다.

1902년에 세워진 키예프의 성니콜라이 성당은 대표적인 로마 가톨릭 건축물입니다.

<인터뷰> 메리: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은 대부분 카톨릭 입니다. 폴란드와 인접해서 종교나 언어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카톨릭 성당도 많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이처럼 동부와 서부가 역사, 문화적으로 서로 이질감이 큰데다, 현 정부에 대한 지지 입장에 따라 갈라져 있습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를 영향권에 두려는 러시아와 유럽연합 사이의 힘겨루기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소러시아로 부르는 러시아와 유럽의 끝으로 보고 있는 유럽연합.

국내외 현실은 분단의 위기 상황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미하일 씨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에 정착한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와 유럽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며 스스로를 평가했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러시아와 유럽연합 이라는 거대한 두 강대국 사이에서 불안하게 놓여 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동서 갈등은 마치 냉전 시대를 연상케 한다고 우려 했습니다.

<인터뷰> 미하일 : "우크라이나 국민은 진정한 독립 국가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 땅의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인가. 유럽인가. 동서 갈등인가. 통합인가.

과연 어디서 어떻게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미하일 씨의 네살바기 손녀의 그림 속에서 우크라이나의 다음 세대는 어떤 색으로 묘사되고 있는가.

우크라이나의 고민은 지 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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