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소치, ‘안현수’는 없다!
입력 2014.02.11 (11:55)
수정 2014.02.1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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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가대표 안현수가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서 열린 남자 1500m 결승에서 2분 15초 062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러시아 쇼트트랙 올림픽 사상 첫 메달 획득이라는 값진 성과였습니다. 러시아 언론은 그의 승리를 '러시아의 승리'로 대서특필하며 자국에 쇼트트랙 첫 메달을 선사한 전 한국 국가대표 쇼트트랙 선수 '빅토르 안'을 극찬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안 선수가 소치에서 메달 행진을 이어가길 바라십니까?
취재진은 이번 올림픽에 앞서 서울시청 앞 스케이트장에서 안현수 선수를 물었습니다. "응원한다, 잘해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합니다. 여기까지는 대체로 유사한 반응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해봤습니다. “소치에서 안현수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를 바라십니까?”여기서 답이 갈립니다. "응원은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와 맞붙게 된다면 모르겠다"거나 "그래도 올림픽인데,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가 금메달을 따야 하지 않을까?"라고도 답합니다. 반대로 "한국 대표 선수보다는 안현수를 응원한다." "경기 외적인 요인 때문에 한국을 떠난 사실 자체가 안타깝고, 꼭 재기하길 바란다"라고 말한 이도 있습니다.
대답은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그를 응원할 수는 없습니다. 왜 우리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 앞에서 곤혹스러운 기분이 들까요? 안현수, 이제 빅토르 안이 된 그는 단순한 운동선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서 있는 자리 자체가 지금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순은 과연 무엇일까요?
지난주, 안현수 선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를 만났습니다. 안 씨가 아들이 있는 소치로 출국하기 직전이었죠. 그는 2006년 공항에서 주먹다짐까지 벌이며 이른바 '파벌'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습니다. 또 2010년엔 이정수-곽윤기 선수의 ‘짬짜미’ 문제를 앞장서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코치 성 추문 논란에 대해선 ‘모두가 다 알고 있었고, 따라서 빙상연맹의 지도부도 모를 수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거침없이 언급했습니다. 그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모순은 ‘스포츠 단체가 세계적인 선수의 선수 활동은 물론 명예로운 퇴장까지 막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파벌로 인해 선수들끼리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자기 편이 아니면 실격 아닌 것도 실격을 준다는 거죠. 연맹의 이사들을 한 인물이 모두 임명하고 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물러나게 되다 보니까 안 선수 같은 세계적인 선수도 미운 털이 박혀 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러시아에 간 덕분에 부활할 수 있었다며 오히려 이제는 대한 빙상연맹에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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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선수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스케이터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2006년 올림픽 3관왕이죠. 더 눈여겨볼 것은 세계 선수권을 5연패했다는 사실입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열린 모든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종합 우승을 차지한 겁니다. 경기 후반의 폭발적인 스피드는 그의 전매특허였죠. 아마도 이렇게 오랜 기간 권좌를 독점한 선수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겁니다. 안 선수가 이 기간 딴 메달이 40개가 넘습니다.
그런 안 선수의 시련은 2008년부터 시작됩니다. 태릉 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다가 넘어져 펜스에 부딪힌 겁니다. 푹신한 펜스였다면 가벼운 부상이었겠지만 얼어붙은 딱딱한 펜스였다고 하죠. 왼쪽 무릎 슬개골 골절, 이후 4차례에 걸쳐 수술을 했지만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한 채, 안선수는 내리막을 걷습니다. 안 선수 측은 치료비를 모두 개인적으로 부담했고 재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 '파벌' 때문에 벌어졌던 연맹과의 앙금이 심해졌다고 합니다. 소속 팀이 아닌 대표 팀에서 훈련을 하다가 부상을 당하더라도, 대표 팀이나 국가가 공식적으로 책임을 지거나 지원해주지 않는 것이지요. 당시 안 선수 측과 가까운 빙상계 관계자는 수술을 네 번 한 선수가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조급한 치료 방식이 문제였다고 전했습니다. 첫 번째 수술에서 나사를 뼈에 박는 시술을 해버린 거죠. 일반인들이 무릎을 다쳤을 때 하는 수술법입니다. 결국 훈련이나 경기 때마다 염증이 생기길 반복했고, 나중에 나사를 제거했더니 이번엔 뼈에 난 나사 구멍이 채워지질 않아 힘을 못썼고... 이렇게 몇 년이 흘러가버렸습니다. 여기에다 소속팀인 성남시청팀이 재정난으로 해체돼 갈 곳마저 없어지면서 안 선수는 갑자기 무직자가 됐습니다. 당시 이번에 올림픽에 출전한 이한빈 선수와 함께 개인 훈련을 6개월 정도 했는데, 안 선수의 경우엔 다른 팀으로 옮기기도 힘들었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자꾸 떨어지는 선수를, 게다가 연맹과 끊임없이 불화를 빚는 선수를 다른 실업팀에서 데려가기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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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안선수는 러시아에서 러시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운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숙식과 코치, 의료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매달 만 달러, 일 년에 12만 달러 를 연봉으로 받고 있습니다. 선수 은퇴 후 코치 생활도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달 획득 소식이 알려지기 전부터 인터넷에서 안 선수와의 결혼 임박 소식이 알려진 여자친구 ‘우나리’씨도 화젭니다. 러시아에선 우 씨를 올림픽 대표 팀에 포함시켜 AD 카드 (경기장 출입카드)를 발급해줬습니다. 가족이 아닌데도 심리적 안정을 위해 특혜를 준거라고 하니, 러시아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 또한, 그와 비교할 만한 세계 선수가 없다며 안 선수를 충분히 특별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 빙상연맹의 입장은 어떨까요? 연맹은 방이동 올림픽회관 6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취재팀이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생각보다는 무척 작아 보였습니다. 30제곱 미터 안팎의 공간에 10여 명의 직원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건, 이 연맹에 김연아, 이상화, 안현수 선수가 모두 소속돼 있거나 소속됐었다는 사실입니다. 빙상연맹은 모든 피겨와 스피드스케이팅, 그리고 쇼트트랙 국가대표들을 선발하고 관리하고 또 훈련시킬 책임과 권한이 있는 우리나라 빙상 관련 최상급 기관이니까요.
우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성추행 의혹부터 물었습니다. 관계자는 그건 단지 의혹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자체 조사가 끝났는데,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는 거죠. 하지만 올림픽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일시 퇴촌과 직무정지 조치를 했다고 합니다. 또 조사 결과에 문제는 없었지만 코치 본인이 희생을 하겠다며 사표를 썼다고 합니다. 안 선수에 대해서는 연맹이 싫어서 가겠다는 사람을 연맹이 막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좋은 선수가 러시아로 간다는 것 자체가 아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는 국내 선발전 탈락이었고, 결국 러시아 연맹에서 러시아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을 때 경기 심판 위원회와 상임이사회에서 보내주기로 결정을 했다는 겁니다. 특히 연맹의 제왕적 권력이나 파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습니다. 상임 이사회만 한 달에 두 번씩 지난해 23번을 했다며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안 선수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4년 연속 국가대표에서 탈락한 선수를 위해 규정을 만들고 혜택을 줄 수는 없다며 실력이 없으면 탈락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안 선수가 러시아에 간 것과 연맹을 연관 짓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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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안현수 선수와 관련해 들려드릴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스케이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수가 올림픽을 제패한 지 6년 만에 조국을 떠났다는 점입니다. 개인적 불운의 연속이라고는 하지만, 한 선수를 망명자로 내몬 것은 단지 불운의 결과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대표 팀선수로, 태릉에서 훈련하다가 국제규격에 맞지 않는 열악한 시설(딱딱한 펜스) 때문에 부상을 당했다면 책임을 피할 길도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안 선수의 경우 모든 불운은 오롯이 개인이 짊어져야 할 짐이었습니다. 만약 연맹이 그를 잡으려 했지만 잡지 못했다면 그것은 무능한 겁니다. 간절히 잡으려는 조국을 매정하게 버리는 국민은 없을 겁니다. 한 개인에게 조국은 대부분 선택이 아닌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조국을 버리겠다는 생각을 가볍게 하진 않습니다. 만약 부상 상태만 보고 ‘이제 끝났다’고 판단했다면 그 역시 무능한 겁니다. 그가 완벽하게 부활한 것이 우연의 결과인가요? 한국에서는 이렇게 부활할 수 없었다는 아버지의 항변은 과연 설득력이 없을까요? 선수의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지도자는 반쪽 지도자입니다. 더불어 그러한 연맹이라면 역시 제대로 된 연맹은 아니겠지요.
지금, 우리는 한 망명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2014년 소치에서 러시아 국기를 가슴에 달고 얼음판을 지치고 있습니다. 우리 스포츠계의 모순과 그림자를 안고 빅토르는 달립니다. 그를 보는 우리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안현수' 또는 '빅토르 안' 과연 그는 어떤 이름으로 한국 엘리트계 스포츠 역사에 기억되고 기록될까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안 선수가 소치에서 메달 행진을 이어가길 바라십니까?
취재진은 이번 올림픽에 앞서 서울시청 앞 스케이트장에서 안현수 선수를 물었습니다. "응원한다, 잘해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합니다. 여기까지는 대체로 유사한 반응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해봤습니다. “소치에서 안현수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를 바라십니까?”여기서 답이 갈립니다. "응원은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와 맞붙게 된다면 모르겠다"거나 "그래도 올림픽인데,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가 금메달을 따야 하지 않을까?"라고도 답합니다. 반대로 "한국 대표 선수보다는 안현수를 응원한다." "경기 외적인 요인 때문에 한국을 떠난 사실 자체가 안타깝고, 꼭 재기하길 바란다"라고 말한 이도 있습니다.
대답은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그를 응원할 수는 없습니다. 왜 우리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 앞에서 곤혹스러운 기분이 들까요? 안현수, 이제 빅토르 안이 된 그는 단순한 운동선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서 있는 자리 자체가 지금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순은 과연 무엇일까요?
지난주, 안현수 선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를 만났습니다. 안 씨가 아들이 있는 소치로 출국하기 직전이었죠. 그는 2006년 공항에서 주먹다짐까지 벌이며 이른바 '파벌'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습니다. 또 2010년엔 이정수-곽윤기 선수의 ‘짬짜미’ 문제를 앞장서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코치 성 추문 논란에 대해선 ‘모두가 다 알고 있었고, 따라서 빙상연맹의 지도부도 모를 수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거침없이 언급했습니다. 그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모순은 ‘스포츠 단체가 세계적인 선수의 선수 활동은 물론 명예로운 퇴장까지 막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파벌로 인해 선수들끼리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자기 편이 아니면 실격 아닌 것도 실격을 준다는 거죠. 연맹의 이사들을 한 인물이 모두 임명하고 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물러나게 되다 보니까 안 선수 같은 세계적인 선수도 미운 털이 박혀 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러시아에 간 덕분에 부활할 수 있었다며 오히려 이제는 대한 빙상연맹에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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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선수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스케이터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2006년 올림픽 3관왕이죠. 더 눈여겨볼 것은 세계 선수권을 5연패했다는 사실입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열린 모든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종합 우승을 차지한 겁니다. 경기 후반의 폭발적인 스피드는 그의 전매특허였죠. 아마도 이렇게 오랜 기간 권좌를 독점한 선수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겁니다. 안 선수가 이 기간 딴 메달이 40개가 넘습니다.
그런 안 선수의 시련은 2008년부터 시작됩니다. 태릉 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다가 넘어져 펜스에 부딪힌 겁니다. 푹신한 펜스였다면 가벼운 부상이었겠지만 얼어붙은 딱딱한 펜스였다고 하죠. 왼쪽 무릎 슬개골 골절, 이후 4차례에 걸쳐 수술을 했지만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한 채, 안선수는 내리막을 걷습니다. 안 선수 측은 치료비를 모두 개인적으로 부담했고 재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 '파벌' 때문에 벌어졌던 연맹과의 앙금이 심해졌다고 합니다. 소속 팀이 아닌 대표 팀에서 훈련을 하다가 부상을 당하더라도, 대표 팀이나 국가가 공식적으로 책임을 지거나 지원해주지 않는 것이지요. 당시 안 선수 측과 가까운 빙상계 관계자는 수술을 네 번 한 선수가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조급한 치료 방식이 문제였다고 전했습니다. 첫 번째 수술에서 나사를 뼈에 박는 시술을 해버린 거죠. 일반인들이 무릎을 다쳤을 때 하는 수술법입니다. 결국 훈련이나 경기 때마다 염증이 생기길 반복했고, 나중에 나사를 제거했더니 이번엔 뼈에 난 나사 구멍이 채워지질 않아 힘을 못썼고... 이렇게 몇 년이 흘러가버렸습니다. 여기에다 소속팀인 성남시청팀이 재정난으로 해체돼 갈 곳마저 없어지면서 안 선수는 갑자기 무직자가 됐습니다. 당시 이번에 올림픽에 출전한 이한빈 선수와 함께 개인 훈련을 6개월 정도 했는데, 안 선수의 경우엔 다른 팀으로 옮기기도 힘들었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자꾸 떨어지는 선수를, 게다가 연맹과 끊임없이 불화를 빚는 선수를 다른 실업팀에서 데려가기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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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안선수는 러시아에서 러시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운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숙식과 코치, 의료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매달 만 달러, 일 년에 12만 달러 를 연봉으로 받고 있습니다. 선수 은퇴 후 코치 생활도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달 획득 소식이 알려지기 전부터 인터넷에서 안 선수와의 결혼 임박 소식이 알려진 여자친구 ‘우나리’씨도 화젭니다. 러시아에선 우 씨를 올림픽 대표 팀에 포함시켜 AD 카드 (경기장 출입카드)를 발급해줬습니다. 가족이 아닌데도 심리적 안정을 위해 특혜를 준거라고 하니, 러시아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 또한, 그와 비교할 만한 세계 선수가 없다며 안 선수를 충분히 특별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 빙상연맹의 입장은 어떨까요? 연맹은 방이동 올림픽회관 6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취재팀이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생각보다는 무척 작아 보였습니다. 30제곱 미터 안팎의 공간에 10여 명의 직원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건, 이 연맹에 김연아, 이상화, 안현수 선수가 모두 소속돼 있거나 소속됐었다는 사실입니다. 빙상연맹은 모든 피겨와 스피드스케이팅, 그리고 쇼트트랙 국가대표들을 선발하고 관리하고 또 훈련시킬 책임과 권한이 있는 우리나라 빙상 관련 최상급 기관이니까요.
우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성추행 의혹부터 물었습니다. 관계자는 그건 단지 의혹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자체 조사가 끝났는데,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는 거죠. 하지만 올림픽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일시 퇴촌과 직무정지 조치를 했다고 합니다. 또 조사 결과에 문제는 없었지만 코치 본인이 희생을 하겠다며 사표를 썼다고 합니다. 안 선수에 대해서는 연맹이 싫어서 가겠다는 사람을 연맹이 막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좋은 선수가 러시아로 간다는 것 자체가 아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는 국내 선발전 탈락이었고, 결국 러시아 연맹에서 러시아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을 때 경기 심판 위원회와 상임이사회에서 보내주기로 결정을 했다는 겁니다. 특히 연맹의 제왕적 권력이나 파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습니다. 상임 이사회만 한 달에 두 번씩 지난해 23번을 했다며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안 선수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4년 연속 국가대표에서 탈락한 선수를 위해 규정을 만들고 혜택을 줄 수는 없다며 실력이 없으면 탈락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안 선수가 러시아에 간 것과 연맹을 연관 짓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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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안현수 선수와 관련해 들려드릴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스케이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수가 올림픽을 제패한 지 6년 만에 조국을 떠났다는 점입니다. 개인적 불운의 연속이라고는 하지만, 한 선수를 망명자로 내몬 것은 단지 불운의 결과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대표 팀선수로, 태릉에서 훈련하다가 국제규격에 맞지 않는 열악한 시설(딱딱한 펜스) 때문에 부상을 당했다면 책임을 피할 길도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안 선수의 경우 모든 불운은 오롯이 개인이 짊어져야 할 짐이었습니다. 만약 연맹이 그를 잡으려 했지만 잡지 못했다면 그것은 무능한 겁니다. 간절히 잡으려는 조국을 매정하게 버리는 국민은 없을 겁니다. 한 개인에게 조국은 대부분 선택이 아닌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조국을 버리겠다는 생각을 가볍게 하진 않습니다. 만약 부상 상태만 보고 ‘이제 끝났다’고 판단했다면 그 역시 무능한 겁니다. 그가 완벽하게 부활한 것이 우연의 결과인가요? 한국에서는 이렇게 부활할 수 없었다는 아버지의 항변은 과연 설득력이 없을까요? 선수의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지도자는 반쪽 지도자입니다. 더불어 그러한 연맹이라면 역시 제대로 된 연맹은 아니겠지요.
지금, 우리는 한 망명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2014년 소치에서 러시아 국기를 가슴에 달고 얼음판을 지치고 있습니다. 우리 스포츠계의 모순과 그림자를 안고 빅토르는 달립니다. 그를 보는 우리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안현수' 또는 '빅토르 안' 과연 그는 어떤 이름으로 한국 엘리트계 스포츠 역사에 기억되고 기록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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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후] 소치, ‘안현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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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4-02-11 11:55:14
- 수정2014-02-11 16:24:34

러시아 국가대표 안현수가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서 열린 남자 1500m 결승에서 2분 15초 062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러시아 쇼트트랙 올림픽 사상 첫 메달 획득이라는 값진 성과였습니다. 러시아 언론은 그의 승리를 '러시아의 승리'로 대서특필하며 자국에 쇼트트랙 첫 메달을 선사한 전 한국 국가대표 쇼트트랙 선수 '빅토르 안'을 극찬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안 선수가 소치에서 메달 행진을 이어가길 바라십니까?
취재진은 이번 올림픽에 앞서 서울시청 앞 스케이트장에서 안현수 선수를 물었습니다. "응원한다, 잘해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합니다. 여기까지는 대체로 유사한 반응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해봤습니다. “소치에서 안현수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를 바라십니까?”여기서 답이 갈립니다. "응원은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와 맞붙게 된다면 모르겠다"거나 "그래도 올림픽인데,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가 금메달을 따야 하지 않을까?"라고도 답합니다. 반대로 "한국 대표 선수보다는 안현수를 응원한다." "경기 외적인 요인 때문에 한국을 떠난 사실 자체가 안타깝고, 꼭 재기하길 바란다"라고 말한 이도 있습니다.
대답은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그를 응원할 수는 없습니다. 왜 우리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 앞에서 곤혹스러운 기분이 들까요? 안현수, 이제 빅토르 안이 된 그는 단순한 운동선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서 있는 자리 자체가 지금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순은 과연 무엇일까요?
지난주, 안현수 선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를 만났습니다. 안 씨가 아들이 있는 소치로 출국하기 직전이었죠. 그는 2006년 공항에서 주먹다짐까지 벌이며 이른바 '파벌'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습니다. 또 2010년엔 이정수-곽윤기 선수의 ‘짬짜미’ 문제를 앞장서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코치 성 추문 논란에 대해선 ‘모두가 다 알고 있었고, 따라서 빙상연맹의 지도부도 모를 수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거침없이 언급했습니다. 그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모순은 ‘스포츠 단체가 세계적인 선수의 선수 활동은 물론 명예로운 퇴장까지 막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파벌로 인해 선수들끼리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자기 편이 아니면 실격 아닌 것도 실격을 준다는 거죠. 연맹의 이사들을 한 인물이 모두 임명하고 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물러나게 되다 보니까 안 선수 같은 세계적인 선수도 미운 털이 박혀 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러시아에 간 덕분에 부활할 수 있었다며 오히려 이제는 대한 빙상연맹에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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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선수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스케이터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2006년 올림픽 3관왕이죠. 더 눈여겨볼 것은 세계 선수권을 5연패했다는 사실입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열린 모든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종합 우승을 차지한 겁니다. 경기 후반의 폭발적인 스피드는 그의 전매특허였죠. 아마도 이렇게 오랜 기간 권좌를 독점한 선수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겁니다. 안 선수가 이 기간 딴 메달이 40개가 넘습니다.
그런 안 선수의 시련은 2008년부터 시작됩니다. 태릉 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다가 넘어져 펜스에 부딪힌 겁니다. 푹신한 펜스였다면 가벼운 부상이었겠지만 얼어붙은 딱딱한 펜스였다고 하죠. 왼쪽 무릎 슬개골 골절, 이후 4차례에 걸쳐 수술을 했지만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한 채, 안선수는 내리막을 걷습니다. 안 선수 측은 치료비를 모두 개인적으로 부담했고 재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 '파벌' 때문에 벌어졌던 연맹과의 앙금이 심해졌다고 합니다. 소속 팀이 아닌 대표 팀에서 훈련을 하다가 부상을 당하더라도, 대표 팀이나 국가가 공식적으로 책임을 지거나 지원해주지 않는 것이지요. 당시 안 선수 측과 가까운 빙상계 관계자는 수술을 네 번 한 선수가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조급한 치료 방식이 문제였다고 전했습니다. 첫 번째 수술에서 나사를 뼈에 박는 시술을 해버린 거죠. 일반인들이 무릎을 다쳤을 때 하는 수술법입니다. 결국 훈련이나 경기 때마다 염증이 생기길 반복했고, 나중에 나사를 제거했더니 이번엔 뼈에 난 나사 구멍이 채워지질 않아 힘을 못썼고... 이렇게 몇 년이 흘러가버렸습니다. 여기에다 소속팀인 성남시청팀이 재정난으로 해체돼 갈 곳마저 없어지면서 안 선수는 갑자기 무직자가 됐습니다. 당시 이번에 올림픽에 출전한 이한빈 선수와 함께 개인 훈련을 6개월 정도 했는데, 안 선수의 경우엔 다른 팀으로 옮기기도 힘들었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자꾸 떨어지는 선수를, 게다가 연맹과 끊임없이 불화를 빚는 선수를 다른 실업팀에서 데려가기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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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안선수는 러시아에서 러시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운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숙식과 코치, 의료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매달 만 달러, 일 년에 12만 달러 를 연봉으로 받고 있습니다. 선수 은퇴 후 코치 생활도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달 획득 소식이 알려지기 전부터 인터넷에서 안 선수와의 결혼 임박 소식이 알려진 여자친구 ‘우나리’씨도 화젭니다. 러시아에선 우 씨를 올림픽 대표 팀에 포함시켜 AD 카드 (경기장 출입카드)를 발급해줬습니다. 가족이 아닌데도 심리적 안정을 위해 특혜를 준거라고 하니, 러시아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 또한, 그와 비교할 만한 세계 선수가 없다며 안 선수를 충분히 특별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 빙상연맹의 입장은 어떨까요? 연맹은 방이동 올림픽회관 6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취재팀이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생각보다는 무척 작아 보였습니다. 30제곱 미터 안팎의 공간에 10여 명의 직원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건, 이 연맹에 김연아, 이상화, 안현수 선수가 모두 소속돼 있거나 소속됐었다는 사실입니다. 빙상연맹은 모든 피겨와 스피드스케이팅, 그리고 쇼트트랙 국가대표들을 선발하고 관리하고 또 훈련시킬 책임과 권한이 있는 우리나라 빙상 관련 최상급 기관이니까요.
우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성추행 의혹부터 물었습니다. 관계자는 그건 단지 의혹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자체 조사가 끝났는데,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는 거죠. 하지만 올림픽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일시 퇴촌과 직무정지 조치를 했다고 합니다. 또 조사 결과에 문제는 없었지만 코치 본인이 희생을 하겠다며 사표를 썼다고 합니다. 안 선수에 대해서는 연맹이 싫어서 가겠다는 사람을 연맹이 막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좋은 선수가 러시아로 간다는 것 자체가 아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는 국내 선발전 탈락이었고, 결국 러시아 연맹에서 러시아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을 때 경기 심판 위원회와 상임이사회에서 보내주기로 결정을 했다는 겁니다. 특히 연맹의 제왕적 권력이나 파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습니다. 상임 이사회만 한 달에 두 번씩 지난해 23번을 했다며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안 선수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4년 연속 국가대표에서 탈락한 선수를 위해 규정을 만들고 혜택을 줄 수는 없다며 실력이 없으면 탈락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안 선수가 러시아에 간 것과 연맹을 연관 짓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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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안현수 선수와 관련해 들려드릴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스케이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수가 올림픽을 제패한 지 6년 만에 조국을 떠났다는 점입니다. 개인적 불운의 연속이라고는 하지만, 한 선수를 망명자로 내몬 것은 단지 불운의 결과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대표 팀선수로, 태릉에서 훈련하다가 국제규격에 맞지 않는 열악한 시설(딱딱한 펜스) 때문에 부상을 당했다면 책임을 피할 길도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안 선수의 경우 모든 불운은 오롯이 개인이 짊어져야 할 짐이었습니다. 만약 연맹이 그를 잡으려 했지만 잡지 못했다면 그것은 무능한 겁니다. 간절히 잡으려는 조국을 매정하게 버리는 국민은 없을 겁니다. 한 개인에게 조국은 대부분 선택이 아닌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조국을 버리겠다는 생각을 가볍게 하진 않습니다. 만약 부상 상태만 보고 ‘이제 끝났다’고 판단했다면 그 역시 무능한 겁니다. 그가 완벽하게 부활한 것이 우연의 결과인가요? 한국에서는 이렇게 부활할 수 없었다는 아버지의 항변은 과연 설득력이 없을까요? 선수의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지도자는 반쪽 지도자입니다. 더불어 그러한 연맹이라면 역시 제대로 된 연맹은 아니겠지요.
지금, 우리는 한 망명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2014년 소치에서 러시아 국기를 가슴에 달고 얼음판을 지치고 있습니다. 우리 스포츠계의 모순과 그림자를 안고 빅토르는 달립니다. 그를 보는 우리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안현수' 또는 '빅토르 안' 과연 그는 어떤 이름으로 한국 엘리트계 스포츠 역사에 기억되고 기록될까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안 선수가 소치에서 메달 행진을 이어가길 바라십니까?
취재진은 이번 올림픽에 앞서 서울시청 앞 스케이트장에서 안현수 선수를 물었습니다. "응원한다, 잘해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합니다. 여기까지는 대체로 유사한 반응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해봤습니다. “소치에서 안현수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를 바라십니까?”여기서 답이 갈립니다. "응원은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와 맞붙게 된다면 모르겠다"거나 "그래도 올림픽인데,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가 금메달을 따야 하지 않을까?"라고도 답합니다. 반대로 "한국 대표 선수보다는 안현수를 응원한다." "경기 외적인 요인 때문에 한국을 떠난 사실 자체가 안타깝고, 꼭 재기하길 바란다"라고 말한 이도 있습니다.
대답은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그를 응원할 수는 없습니다. 왜 우리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 앞에서 곤혹스러운 기분이 들까요? 안현수, 이제 빅토르 안이 된 그는 단순한 운동선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서 있는 자리 자체가 지금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순은 과연 무엇일까요?
지난주, 안현수 선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를 만났습니다. 안 씨가 아들이 있는 소치로 출국하기 직전이었죠. 그는 2006년 공항에서 주먹다짐까지 벌이며 이른바 '파벌'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습니다. 또 2010년엔 이정수-곽윤기 선수의 ‘짬짜미’ 문제를 앞장서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코치 성 추문 논란에 대해선 ‘모두가 다 알고 있었고, 따라서 빙상연맹의 지도부도 모를 수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거침없이 언급했습니다. 그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모순은 ‘스포츠 단체가 세계적인 선수의 선수 활동은 물론 명예로운 퇴장까지 막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파벌로 인해 선수들끼리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자기 편이 아니면 실격 아닌 것도 실격을 준다는 거죠. 연맹의 이사들을 한 인물이 모두 임명하고 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물러나게 되다 보니까 안 선수 같은 세계적인 선수도 미운 털이 박혀 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러시아에 간 덕분에 부활할 수 있었다며 오히려 이제는 대한 빙상연맹에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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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선수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스케이터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2006년 올림픽 3관왕이죠. 더 눈여겨볼 것은 세계 선수권을 5연패했다는 사실입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열린 모든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종합 우승을 차지한 겁니다. 경기 후반의 폭발적인 스피드는 그의 전매특허였죠. 아마도 이렇게 오랜 기간 권좌를 독점한 선수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겁니다. 안 선수가 이 기간 딴 메달이 40개가 넘습니다.
그런 안 선수의 시련은 2008년부터 시작됩니다. 태릉 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다가 넘어져 펜스에 부딪힌 겁니다. 푹신한 펜스였다면 가벼운 부상이었겠지만 얼어붙은 딱딱한 펜스였다고 하죠. 왼쪽 무릎 슬개골 골절, 이후 4차례에 걸쳐 수술을 했지만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한 채, 안선수는 내리막을 걷습니다. 안 선수 측은 치료비를 모두 개인적으로 부담했고 재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 '파벌' 때문에 벌어졌던 연맹과의 앙금이 심해졌다고 합니다. 소속 팀이 아닌 대표 팀에서 훈련을 하다가 부상을 당하더라도, 대표 팀이나 국가가 공식적으로 책임을 지거나 지원해주지 않는 것이지요. 당시 안 선수 측과 가까운 빙상계 관계자는 수술을 네 번 한 선수가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조급한 치료 방식이 문제였다고 전했습니다. 첫 번째 수술에서 나사를 뼈에 박는 시술을 해버린 거죠. 일반인들이 무릎을 다쳤을 때 하는 수술법입니다. 결국 훈련이나 경기 때마다 염증이 생기길 반복했고, 나중에 나사를 제거했더니 이번엔 뼈에 난 나사 구멍이 채워지질 않아 힘을 못썼고... 이렇게 몇 년이 흘러가버렸습니다. 여기에다 소속팀인 성남시청팀이 재정난으로 해체돼 갈 곳마저 없어지면서 안 선수는 갑자기 무직자가 됐습니다. 당시 이번에 올림픽에 출전한 이한빈 선수와 함께 개인 훈련을 6개월 정도 했는데, 안 선수의 경우엔 다른 팀으로 옮기기도 힘들었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자꾸 떨어지는 선수를, 게다가 연맹과 끊임없이 불화를 빚는 선수를 다른 실업팀에서 데려가기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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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안선수는 러시아에서 러시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운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숙식과 코치, 의료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매달 만 달러, 일 년에 12만 달러 를 연봉으로 받고 있습니다. 선수 은퇴 후 코치 생활도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달 획득 소식이 알려지기 전부터 인터넷에서 안 선수와의 결혼 임박 소식이 알려진 여자친구 ‘우나리’씨도 화젭니다. 러시아에선 우 씨를 올림픽 대표 팀에 포함시켜 AD 카드 (경기장 출입카드)를 발급해줬습니다. 가족이 아닌데도 심리적 안정을 위해 특혜를 준거라고 하니, 러시아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 또한, 그와 비교할 만한 세계 선수가 없다며 안 선수를 충분히 특별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 빙상연맹의 입장은 어떨까요? 연맹은 방이동 올림픽회관 6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취재팀이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생각보다는 무척 작아 보였습니다. 30제곱 미터 안팎의 공간에 10여 명의 직원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건, 이 연맹에 김연아, 이상화, 안현수 선수가 모두 소속돼 있거나 소속됐었다는 사실입니다. 빙상연맹은 모든 피겨와 스피드스케이팅, 그리고 쇼트트랙 국가대표들을 선발하고 관리하고 또 훈련시킬 책임과 권한이 있는 우리나라 빙상 관련 최상급 기관이니까요.
우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성추행 의혹부터 물었습니다. 관계자는 그건 단지 의혹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자체 조사가 끝났는데,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는 거죠. 하지만 올림픽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일시 퇴촌과 직무정지 조치를 했다고 합니다. 또 조사 결과에 문제는 없었지만 코치 본인이 희생을 하겠다며 사표를 썼다고 합니다. 안 선수에 대해서는 연맹이 싫어서 가겠다는 사람을 연맹이 막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좋은 선수가 러시아로 간다는 것 자체가 아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는 국내 선발전 탈락이었고, 결국 러시아 연맹에서 러시아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을 때 경기 심판 위원회와 상임이사회에서 보내주기로 결정을 했다는 겁니다. 특히 연맹의 제왕적 권력이나 파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습니다. 상임 이사회만 한 달에 두 번씩 지난해 23번을 했다며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안 선수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4년 연속 국가대표에서 탈락한 선수를 위해 규정을 만들고 혜택을 줄 수는 없다며 실력이 없으면 탈락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안 선수가 러시아에 간 것과 연맹을 연관 짓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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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안현수 선수와 관련해 들려드릴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스케이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수가 올림픽을 제패한 지 6년 만에 조국을 떠났다는 점입니다. 개인적 불운의 연속이라고는 하지만, 한 선수를 망명자로 내몬 것은 단지 불운의 결과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대표 팀선수로, 태릉에서 훈련하다가 국제규격에 맞지 않는 열악한 시설(딱딱한 펜스) 때문에 부상을 당했다면 책임을 피할 길도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안 선수의 경우 모든 불운은 오롯이 개인이 짊어져야 할 짐이었습니다. 만약 연맹이 그를 잡으려 했지만 잡지 못했다면 그것은 무능한 겁니다. 간절히 잡으려는 조국을 매정하게 버리는 국민은 없을 겁니다. 한 개인에게 조국은 대부분 선택이 아닌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조국을 버리겠다는 생각을 가볍게 하진 않습니다. 만약 부상 상태만 보고 ‘이제 끝났다’고 판단했다면 그 역시 무능한 겁니다. 그가 완벽하게 부활한 것이 우연의 결과인가요? 한국에서는 이렇게 부활할 수 없었다는 아버지의 항변은 과연 설득력이 없을까요? 선수의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지도자는 반쪽 지도자입니다. 더불어 그러한 연맹이라면 역시 제대로 된 연맹은 아니겠지요.
지금, 우리는 한 망명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2014년 소치에서 러시아 국기를 가슴에 달고 얼음판을 지치고 있습니다. 우리 스포츠계의 모순과 그림자를 안고 빅토르는 달립니다. 그를 보는 우리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안현수' 또는 '빅토르 안' 과연 그는 어떤 이름으로 한국 엘리트계 스포츠 역사에 기억되고 기록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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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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