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북·중 접경 지역을 가다…②압록강 변 ‘혜산 사람들’”

입력 2014.05.17 (08:04) 수정 2014.05.1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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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강가에 나와 삼삼오오 모여 차디찬 강물에 정성스럽게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

방망이로 세차게 두들기고, 세탁한 옷가지들을 흐르는 물에 헹굽니다.

겨우내 묵혀왔던 빨랫감들을 머리에 이고 내려오는 모습도 이곳에선 익숙한 풍경입니다.

북한 양강도 혜산시와 중국 장백현 사이를 흐르는 압록강에 봄이 찾아온 겁니다.

강가 자갈밭과 타고 온 자전거는 빨래를 말리는 임시 건조대입니다.

비스듬한 강둑 콘크리트 벽면은 빨래를 널고, 거둬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4월부터 날씨가 풀리면 다들 겨울 내내 (밀린) 빨래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강 바로 밑에 있는 사람들도 오고, 심지어는 저 산꼭대기 있잖아요. 저 산위에. 그쪽 사람들도 다 빨래 한 짐 이고 와서, 빨래를 하고, 말려서 들어가고 그래요. 이불 빨래도 하고 커튼 빨래도 하고 해요. 겉옷들, 겨울 겉옷 빨래도 하고."

바가지로 물을 퍼 담는 모습, 물 양동이를 메고 가는 풍경은 우리에게도 낯익습니다.

한 주민은 물을 채운 양동이를 어깨에 메고 아슬아슬하게 강 언덕을 올라가다가 물을 흘릴까 줄을 꽉 붙잡습니다.

이처럼 혜산 주민들은 압록강 물을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고 있습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모든 물을 다 이렇게 쓰죠. 끓여서 쓸 수도 있고. 안 끓여서 그냥 그대로 쓸 수도 있고. 수도가 나오긴 하는데 그나마 안 나오는 집들은 이렇게 어쩔 수가 없죠. 더욱이 겨울에는 땅이 어니까. 수도관이 얼어요. 그래서 대부분 다 강물을 길어서 먹어요."

압록강 주위를 서성이면서 쓰레기를 뒤적이는 여자와 남자의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들은 또래끼리 모여 장난을 치거나 물고기를 잡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돌팔매질은 자신이 최고인양 온힘을 다해 건너편 중국 쪽으로 돌을 던집니다.

접경지대에 사는 혜산시 주민들에게 압록강은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생활의 터전입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정말 중요하고요. 강 옆에 산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요. 강 옆 아니고, 한참 걸어서 한 시간씩 물 길러 오는 사람들도 있고, 한 시 간씩 빨래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다들 강 옆에 산다고 하면 부럽다고 그러거든요."

북중 접경에 위치한 혜산시는 인구 18만 명의 작은 도시입니다.

도시 중앙을 가로지르는 큰길 양쪽으로 혜산의 주요 건물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혜산 청년역에는 기차가 멈춰서 있고, 광장 백화점 앞 광장에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허름하고 낡아 보이는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지붕위엔 굴뚝이 여러 개 솟아나 있습니다.

한 집에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게, 하모니카 구멍처럼 생겼다고 해 이름 붙여진 이른바 하모니카 주택입니다.

<인터뷰> 이석영(자유북한방송 방송국장) : "대체로 친구 삼아 벗 삼아 같이 1동 2세대로 짓 습니다. 한 기와집 안에 두 집이 살게끔 짓는데. 이렇게, 이런 집들이 있으면 원 주인이 돈이 없으니까 윗방을 떼서 파는 거예요. 결국 이 사람들도 가마가 있어야 되고, 아궁이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러면 굴뚝을 새롭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굴뚝이 다섯 개, 여섯 개. 어떤 건 여덟 개씩 있는 곳이 있어요."

굴뚝 사이로 보이는 동그란 건 북한 주민들이 자전거 바퀴의 휠로 직접 만든 TV 안테나입니다.

<인터뷰> 이석영(자유북한방송 방송국장) : "거미발처럼 생긴 공장에서 나온 안테나는 돈 주 고 사기가 너무 어렵잖아요. 또, 그걸 안테나를 세워 놓으면 이게 높지 않습니까. 도둑들이 와서 그 안테나를 다 떼어 갑니다. 자전거 바퀴입니다. 이게 이 안에 살을 다 뜯어내고 재를 가져다가 나무로 십자로 해서, 얘도 아주 TV 파장이 잘 잡혀요."

겉으로 보기엔 허름해 보이는 이 아파트는 층수에 따라 각각 7호동과 8호동 아파트로 불립니다.

엘리베이터도 없지만 ‘부의 상징‘인 이 아파트는 북한 고위층들이 거의 독차지했습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설계상으로는 대게 선진적인 설계였고, 북한 내에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 않으면 이 아파트를 차지하기가 힘들었고, 경쟁적으로 많이 (내부를) 꾸렸었어요. 북한 사회에서 그냥 안정적 으로 돈벌이가 되는 이른바 공안기관이라던가 당기관이라던가, 아니면 대외 무역 쪽을 맡거나 이런 쪽 사람들이 있을 확률이 많이 있는 거죠."

압록강 변 북한 주민들은 30~40년 전 생활 수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붕 위에서 한 남자가 봄 햇살에 말린 나무를 아래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혜산시 주민들은 사계절 내내 나무 땔감에 의존하기 때문에 눅눅해진 나무를 햇볕에 건조하는 겁니다.

거리 곳곳엔 소달구지에 나뭇짐을 싣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띕니다.

철길 위에 무리지어 모여 있는 사람들은 철길을 보수하기 위해 동원된 주민들입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북한은 사회동원이 되게 많아요. 사회동원이 인 민반 단위로 나오는데, 아침이나 저녁쯤에 주민 들이 나와서 철길 보수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북한의 철길은 일제시대에 만들었기 때문에 나무로 각목을 하고, 그 옆에 자갈들 쌓아놓는 형식이거든요. 보면 저 자갈들 정리하거나, 아니면 자갈에 오물들이 많이 있거나 자갈들이 유실됐을 때 그 걸 채워 넣는 거예요."

축구 기술을 자랑하듯 이리저리 공을 몰아봅니다.

축구를 장려하는 김정은 집권 이후 축구는 인기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사범대학 운동장이나 고아원인 중등학원 옆 공터 등을 가리지 않습니다.

혜산 경기장에서 팀별로 다른 유니폼을입고 연습하는 사람들은 축구 선수로 보입니다.

<인터뷰> 이석영(자유북한방송 방송국장) : "유니폼을 입고하는 애 들은 혜산체육대학 학생 들 아니면 혜산의 전문 축구선수들이에요. 일반인들이 여기, 혜산에 하 나밖에 없는 공설운동장, 말하자면 체육경기장 에서 유니폼을 입고 축구하기는 힘듭니다."

벽면에 페인트로 그린 골대를 향해 공을 차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이 느껴집니다.

군복에 모자를 쓴 비슷한 또래의 앳된 남자들과 나이든 여성들이 압록강 변으로 내려옵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고등학교 금방 졸업하고. 초모라고 하는 데를 왔어요. 군대 나가기 위한 일종의 모집이라고 봐야죠. 신병 훈련 나가서 석 달 간 받아요. 얘 네들이. 그리고 자대배치 받아요. 준비를 하고 있는 애들이에요. 군대 나갈 날짜를 기다리는 거죠."

군 입대를 위해 혜산으로 와 훈련소에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입대 예정자들입니다.

이들이 입은 군복과 군모는 시중에서 파는 모방품으로 군 입대를 앞둔 북한 남학생들에겐 유행처럼 됐습니다.

10년의 군 복무 기간을 마치면 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지지만, 변변찮은 휴가도 없습니다.

긴 시간 동안 아들과 떨어져야 하는 부모들의 마음은 애틋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부모님들이야 속에 재가 앉죠. 10년을 애들을 못 보는데. 10대에 내보내서 30대 돼야 집에 오는 데 그게 정이 다 떨어지잖아요. 10년이면."

군 입대 아들과 함께 온 부모들은 혜산시에 머물며 이별을 준비합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도시에 올라와 아들에게 맛있는 밥 한 끼를 먹이려는 겁니다.

강변에 모여앉아 준비해온 음식을 꺼내지만, 소박한 음식들뿐입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엄마들하고 마지막 식사라고 봐야죠. 못사는 애들은 저 날만큼은 그냥 잘해준다고 봐야죠, 엄마들이. 좋은 음식? 별로 없어요. 그냥 옥수수 도 없는 애들은 흰쌀로 밥을 해주면 그게 좋은 거고. 북한에 그런 게 있어요. 먼 길을 갈 때는 계란을 먹어야 계란처럼 잘 굴러간다고 무조건 계란을 먹여요."

압록강 중에서도 혜산시의 북중 국경지대는 강폭이 좁아 탈북이 성행한 곳이기도 합니다.

국경경비대 초소 아래, 강가에는 작은 돌담이 늘어서있습니다.

자갈밭에는 돌을 3~4개씩 쌓아 올린 돌탑도 수두룩합니다.

야간에 강을 건너 탈북하려는 사람들이 밟으면 소리가 나게 하는 탈북방지용입니다.

<인터뷰> 김형덕(한반도 평화번영연구소장) : "북중 국경을 가보면 어떤 강 유역별로 다른 양상 이 있는데 강 유역이 좁아지고 도강이 용이한 지역은 탈북자들이 많이 이용하게 되겠죠. 그런 지역일수록 철조망을 치거나 혹은 돌담을 쌓아 놓거나 경계 막을 쌓아놓습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당국이 북중 국경지대 탈북자 단속을 강화하면서 탈북자의 수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압록강 너머로 바라본 북중 접경 주민들의 고단한 삶은 북한이 현재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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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5-17 09:09:51
    • 수정2014-05-17 10: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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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나와 삼삼오오 모여 차디찬 강물에 정성스럽게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

방망이로 세차게 두들기고, 세탁한 옷가지들을 흐르는 물에 헹굽니다.

겨우내 묵혀왔던 빨랫감들을 머리에 이고 내려오는 모습도 이곳에선 익숙한 풍경입니다.

북한 양강도 혜산시와 중국 장백현 사이를 흐르는 압록강에 봄이 찾아온 겁니다.

강가 자갈밭과 타고 온 자전거는 빨래를 말리는 임시 건조대입니다.

비스듬한 강둑 콘크리트 벽면은 빨래를 널고, 거둬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4월부터 날씨가 풀리면 다들 겨울 내내 (밀린) 빨래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강 바로 밑에 있는 사람들도 오고, 심지어는 저 산꼭대기 있잖아요. 저 산위에. 그쪽 사람들도 다 빨래 한 짐 이고 와서, 빨래를 하고, 말려서 들어가고 그래요. 이불 빨래도 하고 커튼 빨래도 하고 해요. 겉옷들, 겨울 겉옷 빨래도 하고."

바가지로 물을 퍼 담는 모습, 물 양동이를 메고 가는 풍경은 우리에게도 낯익습니다.

한 주민은 물을 채운 양동이를 어깨에 메고 아슬아슬하게 강 언덕을 올라가다가 물을 흘릴까 줄을 꽉 붙잡습니다.

이처럼 혜산 주민들은 압록강 물을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고 있습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모든 물을 다 이렇게 쓰죠. 끓여서 쓸 수도 있고. 안 끓여서 그냥 그대로 쓸 수도 있고. 수도가 나오긴 하는데 그나마 안 나오는 집들은 이렇게 어쩔 수가 없죠. 더욱이 겨울에는 땅이 어니까. 수도관이 얼어요. 그래서 대부분 다 강물을 길어서 먹어요."

압록강 주위를 서성이면서 쓰레기를 뒤적이는 여자와 남자의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들은 또래끼리 모여 장난을 치거나 물고기를 잡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돌팔매질은 자신이 최고인양 온힘을 다해 건너편 중국 쪽으로 돌을 던집니다.

접경지대에 사는 혜산시 주민들에게 압록강은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생활의 터전입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정말 중요하고요. 강 옆에 산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요. 강 옆 아니고, 한참 걸어서 한 시간씩 물 길러 오는 사람들도 있고, 한 시 간씩 빨래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다들 강 옆에 산다고 하면 부럽다고 그러거든요."

북중 접경에 위치한 혜산시는 인구 18만 명의 작은 도시입니다.

도시 중앙을 가로지르는 큰길 양쪽으로 혜산의 주요 건물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혜산 청년역에는 기차가 멈춰서 있고, 광장 백화점 앞 광장에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허름하고 낡아 보이는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지붕위엔 굴뚝이 여러 개 솟아나 있습니다.

한 집에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게, 하모니카 구멍처럼 생겼다고 해 이름 붙여진 이른바 하모니카 주택입니다.

<인터뷰> 이석영(자유북한방송 방송국장) : "대체로 친구 삼아 벗 삼아 같이 1동 2세대로 짓 습니다. 한 기와집 안에 두 집이 살게끔 짓는데. 이렇게, 이런 집들이 있으면 원 주인이 돈이 없으니까 윗방을 떼서 파는 거예요. 결국 이 사람들도 가마가 있어야 되고, 아궁이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러면 굴뚝을 새롭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굴뚝이 다섯 개, 여섯 개. 어떤 건 여덟 개씩 있는 곳이 있어요."

굴뚝 사이로 보이는 동그란 건 북한 주민들이 자전거 바퀴의 휠로 직접 만든 TV 안테나입니다.

<인터뷰> 이석영(자유북한방송 방송국장) : "거미발처럼 생긴 공장에서 나온 안테나는 돈 주 고 사기가 너무 어렵잖아요. 또, 그걸 안테나를 세워 놓으면 이게 높지 않습니까. 도둑들이 와서 그 안테나를 다 떼어 갑니다. 자전거 바퀴입니다. 이게 이 안에 살을 다 뜯어내고 재를 가져다가 나무로 십자로 해서, 얘도 아주 TV 파장이 잘 잡혀요."

겉으로 보기엔 허름해 보이는 이 아파트는 층수에 따라 각각 7호동과 8호동 아파트로 불립니다.

엘리베이터도 없지만 ‘부의 상징‘인 이 아파트는 북한 고위층들이 거의 독차지했습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설계상으로는 대게 선진적인 설계였고, 북한 내에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 않으면 이 아파트를 차지하기가 힘들었고, 경쟁적으로 많이 (내부를) 꾸렸었어요. 북한 사회에서 그냥 안정적 으로 돈벌이가 되는 이른바 공안기관이라던가 당기관이라던가, 아니면 대외 무역 쪽을 맡거나 이런 쪽 사람들이 있을 확률이 많이 있는 거죠."

압록강 변 북한 주민들은 30~40년 전 생활 수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붕 위에서 한 남자가 봄 햇살에 말린 나무를 아래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혜산시 주민들은 사계절 내내 나무 땔감에 의존하기 때문에 눅눅해진 나무를 햇볕에 건조하는 겁니다.

거리 곳곳엔 소달구지에 나뭇짐을 싣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띕니다.

철길 위에 무리지어 모여 있는 사람들은 철길을 보수하기 위해 동원된 주민들입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북한은 사회동원이 되게 많아요. 사회동원이 인 민반 단위로 나오는데, 아침이나 저녁쯤에 주민 들이 나와서 철길 보수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북한의 철길은 일제시대에 만들었기 때문에 나무로 각목을 하고, 그 옆에 자갈들 쌓아놓는 형식이거든요. 보면 저 자갈들 정리하거나, 아니면 자갈에 오물들이 많이 있거나 자갈들이 유실됐을 때 그 걸 채워 넣는 거예요."

축구 기술을 자랑하듯 이리저리 공을 몰아봅니다.

축구를 장려하는 김정은 집권 이후 축구는 인기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사범대학 운동장이나 고아원인 중등학원 옆 공터 등을 가리지 않습니다.

혜산 경기장에서 팀별로 다른 유니폼을입고 연습하는 사람들은 축구 선수로 보입니다.

<인터뷰> 이석영(자유북한방송 방송국장) : "유니폼을 입고하는 애 들은 혜산체육대학 학생 들 아니면 혜산의 전문 축구선수들이에요. 일반인들이 여기, 혜산에 하 나밖에 없는 공설운동장, 말하자면 체육경기장 에서 유니폼을 입고 축구하기는 힘듭니다."

벽면에 페인트로 그린 골대를 향해 공을 차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이 느껴집니다.

군복에 모자를 쓴 비슷한 또래의 앳된 남자들과 나이든 여성들이 압록강 변으로 내려옵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고등학교 금방 졸업하고. 초모라고 하는 데를 왔어요. 군대 나가기 위한 일종의 모집이라고 봐야죠. 신병 훈련 나가서 석 달 간 받아요. 얘 네들이. 그리고 자대배치 받아요. 준비를 하고 있는 애들이에요. 군대 나갈 날짜를 기다리는 거죠."

군 입대를 위해 혜산으로 와 훈련소에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입대 예정자들입니다.

이들이 입은 군복과 군모는 시중에서 파는 모방품으로 군 입대를 앞둔 북한 남학생들에겐 유행처럼 됐습니다.

10년의 군 복무 기간을 마치면 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지지만, 변변찮은 휴가도 없습니다.

긴 시간 동안 아들과 떨어져야 하는 부모들의 마음은 애틋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부모님들이야 속에 재가 앉죠. 10년을 애들을 못 보는데. 10대에 내보내서 30대 돼야 집에 오는 데 그게 정이 다 떨어지잖아요. 10년이면."

군 입대 아들과 함께 온 부모들은 혜산시에 머물며 이별을 준비합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도시에 올라와 아들에게 맛있는 밥 한 끼를 먹이려는 겁니다.

강변에 모여앉아 준비해온 음식을 꺼내지만, 소박한 음식들뿐입니다.

<인터뷰> 탈북자(혜산시 출신) : "엄마들하고 마지막 식사라고 봐야죠. 못사는 애들은 저 날만큼은 그냥 잘해준다고 봐야죠, 엄마들이. 좋은 음식? 별로 없어요. 그냥 옥수수 도 없는 애들은 흰쌀로 밥을 해주면 그게 좋은 거고. 북한에 그런 게 있어요. 먼 길을 갈 때는 계란을 먹어야 계란처럼 잘 굴러간다고 무조건 계란을 먹여요."

압록강 중에서도 혜산시의 북중 국경지대는 강폭이 좁아 탈북이 성행한 곳이기도 합니다.

국경경비대 초소 아래, 강가에는 작은 돌담이 늘어서있습니다.

자갈밭에는 돌을 3~4개씩 쌓아 올린 돌탑도 수두룩합니다.

야간에 강을 건너 탈북하려는 사람들이 밟으면 소리가 나게 하는 탈북방지용입니다.

<인터뷰> 김형덕(한반도 평화번영연구소장) : "북중 국경을 가보면 어떤 강 유역별로 다른 양상 이 있는데 강 유역이 좁아지고 도강이 용이한 지역은 탈북자들이 많이 이용하게 되겠죠. 그런 지역일수록 철조망을 치거나 혹은 돌담을 쌓아 놓거나 경계 막을 쌓아놓습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당국이 북중 국경지대 탈북자 단속을 강화하면서 탈북자의 수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압록강 너머로 바라본 북중 접경 주민들의 고단한 삶은 북한이 현재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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