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이사회, 길환영 사장 해임안 가결

입력 2014.06.08 (17:10) 수정 2014.06.0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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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세월호 참사 보도를 계기로 불거진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과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이 결국 이사회의 사장 해임안 가결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협회의 제작거부와 노조의 파업으로 뉴스 등 많은 방송 프로그램이 차질을 빚었습니다.

시청자들께서는 사상 초유의 KBS 방송 파행 사태를 지켜보면서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의문을 가지셨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 미디어 인사이드는 지난 한 달 동안 KBS 사태를 정리하고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을 집중 진단해 보겠습니다.

최서희 기자와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질문>

최 기자, KBS 이사회가 길환영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번에 이사회에 길환영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안이 제출된 이유가 뭔가요?

<답변>

네, 최근 KBS의 세월호 침몰 참사 보도에 문제점이 많이 제기됐었는데요.

KBS 내부에서도 대대적인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대규모 파업으로 이어지면서 이사회에선 길환영 사장이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리포트>

지난 5일, KBS 이사회가 길환영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통과시켰습니다.

KBS 이사회는 여당 성향 이사 7명과 야당 성향 이사 4명 등 11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가운데 7명이 찬성했습니다.

이사회는 기자, PD의 제작 거부와 노조의 총파업, 간부들의 잇단 보직 사퇴 등으로 길 사장이 사장으로서 직무수행을 하기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KBS 뉴스의 공정성 논란이 촉발된 건 세월호 사고 희생자 수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비교한 발언으로 유가족들의 항의를 받았던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폭로였습니다.

<녹취> 김시곤(KBS 전 보도국장/5.9 기자회견) : "권력의 눈치만을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온 길환영 사장은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

길 사장은 김 전 보도국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면서 사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녹취> 길환영(KBS 사장) : "사장은 굉장히 많은 각계각층의 사람을 만납니다. 상당히 고급 정보..그런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 것이 우리 보도나 제작에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임원회의 석상이라든지 또는 적절한 식사자리라든지 이런 데를 통해서 제가 전달합니다. 그것은 지시가 아니고 그런 의견이 있다, 중요한 의견이 있다고 전달하는 겁니다."

<녹취> 김진희 기자 : "지금 청와대로부터 전혀 어떠한 부탁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럼 그 고급 정보는 누구입니까? 대체 누구에게 무슨 얘기를 듣고 다니십니까?"

KBS 이사회는 심사숙고 끝에 길 사장 해임제청안을 가결했습니다.

이사회는 조만간 박근혜 대통령에게 길 사장의 해임을 제청하게 되며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면 추후 공모를 통해 신임 사장을 뽑는 절차에 들어가게 됩니다.

<질문>

최 기자, 해임제청안이 통과되기 전에 KBS 대다수 직원들이 한 목소리로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촉구했죠. 그만큼 KBS의 보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내부에선 이미 느끼고 있었던 같아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몇 년에 걸쳐 누적된 KBS 보도의 문제점이 이번에 불거져 나온 건데요,

일선 기자들 뿐 아니라 부장급 간부들까지 한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리포트>

KBS 내부에서 반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막내 기자들이었습니다. 지난달 7일, KBS 보도본부 게시판에는 1년 차에서 3년 차 기자들의 반성문 10개가 올라왔습니다.

세월호 침몰 참사 현장을 취재한 막내 기자들의 뼈아픈 자기 비판이었습니다.

<녹취> 38~40기 기자들(사내게시판 반성문 中) : "우리는 현장에서 울렸던 울음과 우리를 불렀던 목소리에 귀를 닫았습니다. 매 맞는 것이 두려워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를 썼습니다. 왜 우리 뉴스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가요?"

이어,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길환영 사장이 보도에 개입했다고 폭로하자 KBS 기자협회는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제작 거부를 결의했습니다.

<녹취> 강나루(KBS 기자) : "한 종편에서는 유가족들을 생방송에서 생중계했는데 저희는 죽은 목소리만 담고 있는데 그것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뒤이어 KBS PD협회, 아나운서협회 등 16개 직능단체도 한 목소리를 냈고, 부장, 팀장 등 간부급 직원 300여 명이 보직을 내려놓으며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녹취> 유석조(KBS 전 뉴스제작2부장) : "우리가 일했던 KBS 뉴스가 이렇게 돼서는 무너지겠다는 어떤 절망감과 절실함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장들 사이에서도..."

2009년에 노선을 달리하며 분리된 KBS 양대 노조도 처음으로 연대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녹취> 권오훈(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 : "KBS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KBS의 거의 모든 직원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겁니다.

다른 언론들 역시 KBS 내부의 이례적인 움직임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MBC뉴스(05.29) : "현재 보직을 사퇴한 KBS 본사와 지역 간부의 수는 320여 명이고 파업에 돌입한, KBS 양대 노조원도 전체 직원의 80%에 달합니다."

평소 한 시간이던 9시 뉴스가 20분으로 줄어들고 각종 시사 교양 프로그램들이 결방으로 방송이 파행을 빚으면서 시청자들의 불만도 이어졌습니다.

<질문>

최 기자, KBS 내부에서 변화의 요구가 쏟아진 계기가 된 일이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인데요, 김 전 국장은 자신의 사퇴 과정 뿐 아니라 KBS 보도에서 사사건건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해 파문이 더 커졌죠?

<답변>

네, 그렇습니다. KBS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던 상황에서 김 전 보도국장의 폭로는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KBS는 세월호 사고 초기 정확한 확인 없이 속보를 내다 오보를 냈습니다.

또, 사고 이튿날 KBS는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 현장을 방문했을 때 피해자 가족들이 박 대통령에게 박수로 호응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KBS 9시 뉴스(04.17) : "가족들은 탑승자 명단 확인이 안 되는 등 불만 사항들을 건의하자 박 대통령은 즉시 시정을 지시했고 가족들은 박수로 호응했습니다."

하지만 박수 소리는 대부분 수행원들로부터 나온 것이었고 실제 현장에선 구조작업에 대한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녹취> JTBC 9시 뉴스(04.17) :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의 초동대처와 구조작업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공영방송이면서 재난 주관방송인 KBS에 쏟아진 비판은 어느 때보다 거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년 반 동안 KBS 뉴스의 책임자였던 김 전 보도국장이 세월호 사고 보도 당시 청와대와 길 사장의 개입이 있었다고 말해 파문이 커졌습니다.

<녹취> 김시곤(KBS 전 보도국장/05.16 기자총회) : "정부 쪽에선 해경을 비난하지 말 것을 여러 번 주문했었습니다./5월 5일 사장이 취임 이후 처음 보도본부장실을 방문합니다. 그 자리에서 사장 주재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보도본부장, 저, 취재주간, 편집주간 이렇게 네 명이 있는 자리에서 해경에 대한 비판은 하지 말라고 지시가 있었습니다."

김 전 보도국장이 말한 지난달 5일, 해당 뉴스의 수정 전후 원고를 확인한 결과 해경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수정 전 원고에서는 해경의 실책, 구조작업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비판했지만 수정 후 원고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완전히 삭제됐습니다.

KBS 기자협회가 공개한 김 전 보도국장이 작성한 보도 개입 일지입니다.

6일 뉴스 예고에 박근혜 대통령 기사가 빠지자, ‘헤드라인에서 2번째로 올리라’는 길 사장의 요구가 있었다고 돼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길환영 사장은 청와대 외압은 사실이 아니며, 해경 비판 축소 지시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한 수준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녹취> 길환영(KBS 사장/05.19 기자회견) : "그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해경에 대해서 충분히 비판해왔고 그런 것은 우선 실종자 문제를 빨리 수습하고 그 다음에 그 다음 단계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고, 그런 의견이 밖에 많이 있어요. 두루두루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런 의견 있어서 그런 의견도 있다는...이런 정도 의견을 얘기했죠."

그런데 정홍원 총리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국회 본회의에서 청와대가 KBS에 연락해 해경에 대한 우호적인 보도를 요청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녹취> 정홍원 총리 : "제가 알기로는 지금 이 사태가 위중하니까 수색에 좀 전념할 수 있도록 그쪽(해경)을 지원해주고 사기를 올려달라는 그런 취지의 뜻으로 요청했다는 것으로..."

<녹취> 최민희(국회의원) : "청와대 보도 통제 사실을 총리께서 이 자리에서 확인해주셨습니다."

또,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논란 당시에도 관련 뉴스를 머리기사로 올리지 말라는 길 사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게 김시곤 전 국장의 말입니다.

<녹취> 김시곤(KBS 전 보도국장/05.16 기자회견) : "윤창중 성추행 사건이 터졌을 때 사장은 톱뉴스로 올리지 말 것을 지시했습니다."

또, 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대통령 비판은 단 한 차례도 없었으며, 대통령 관련 뉴스는 20분 내로 보도하는 등의 원칙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시곤(KBS 전 보도국장/05.16 기자회견) : "정치부장도 고민 많이 했던 부분인데 대통령 해외 순방 때마다 상당히 몸살을 앓았습니다. 대통령 비판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길환영 사장은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녹취> 길환영(KBS 사장) : "대통령 관련 기사는 대개 중요한 그런 것들이 많은데 30분 대 이런 쪽에 있을 경우에는 우리는 로컬(지역) 뉴스라는 것이 있기에 중간에 잘립니다. 그렇게 되면 그런 중요한 뉴스가 로컬에서는 나가지 않게 되는 그런 경우가 있죠. 그럴 경우에 제가 한 번, 한두 번 그런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2012년 대선 직전에 불거진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 보도와 관련해 KBS는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각계각층에서 진실 규명을 요구했지만 KBS의 보도량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단독 보도 리포트의 경우도 주요시간대를 넘겨 나가기도 했습니다.

<녹취> 김시곤(KBS 전 보도국장/5.16 기자회견) : "국정원 수사에 관한 것은 일부 있었다. 순서를 좀 내리라든가, 이런 주문이 있었죠."

<질문>

최 기자, 이번 KBS 사태를 바라보는 언론계와 시민사회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답변>

네, 공영방송의 위기를 통감한 언론학자들 및 시민사회의 지지가 잇따랐습니다.

<리포트>

KBS의 보도 통제 파문이 거세지자 언론계와 학계에선 공영방송의 총체적 위기 회복을 위한 비판과 제언이 이어졌습니다.

<녹취> 언론학자 144명 성명서 전문 : "우리는 KBS 구성원들의 자기반성과 사장 퇴진 요구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지난달 28일, KBS 본관 앞에는 KBS 공정성 회복을 위한 언론개혁을 외치는 500개의 촛불이 켜졌습니다.

이 자리엔 원로 언론인들과 일반 시민도 참여했습니다.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번 일이 KBS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종철(동아투위 위원장) : "한국 언론은 오래 전에 죽었다. 그런데 이제 죽음의 늪에서 깨어나고 있다/ 저희가 1974년 동아일보에서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한 후에 75년 3월 쫓겨날 때보다 그때는 차라리 캄캄한 암흑 속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정말 희망의 빛이 보입니다."

<인터뷰> 장재희(대학생) : "이런 일이 언론의 책임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이 들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정말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제대로 된 진실을 볼 수 있게 모든 구조라든지 지금까지 쌓여왔던 잘못된 관행들과 여러 가지 꼭 개선됐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사장 교체는 최소한의 선행 조건일 뿐 KBS가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이를 위해선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근본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제도적 개편과 내부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자각이 절실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김서중(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내부 구성원들이 특별한 계기를 만나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이것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항상 언론인으로서의 자기 자각이 아주 강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의 자유, 공영방송으로서 제대로 된 보도기능을 수행하면서 살고 싶다는 의지가 있고 그것을 표출하고 그것을 획득하는 일련의 노력과 희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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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이사회, 길환영 사장 해임안 가결
    • 입력 2014-06-08 17:39:06
    • 수정2014-06-08 18: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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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세월호 참사 보도를 계기로 불거진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과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이 결국 이사회의 사장 해임안 가결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협회의 제작거부와 노조의 파업으로 뉴스 등 많은 방송 프로그램이 차질을 빚었습니다.

시청자들께서는 사상 초유의 KBS 방송 파행 사태를 지켜보면서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의문을 가지셨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 미디어 인사이드는 지난 한 달 동안 KBS 사태를 정리하고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을 집중 진단해 보겠습니다.

최서희 기자와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질문>

최 기자, KBS 이사회가 길환영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번에 이사회에 길환영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안이 제출된 이유가 뭔가요?

<답변>

네, 최근 KBS의 세월호 침몰 참사 보도에 문제점이 많이 제기됐었는데요.

KBS 내부에서도 대대적인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대규모 파업으로 이어지면서 이사회에선 길환영 사장이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리포트>

지난 5일, KBS 이사회가 길환영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통과시켰습니다.

KBS 이사회는 여당 성향 이사 7명과 야당 성향 이사 4명 등 11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가운데 7명이 찬성했습니다.

이사회는 기자, PD의 제작 거부와 노조의 총파업, 간부들의 잇단 보직 사퇴 등으로 길 사장이 사장으로서 직무수행을 하기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KBS 뉴스의 공정성 논란이 촉발된 건 세월호 사고 희생자 수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비교한 발언으로 유가족들의 항의를 받았던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폭로였습니다.

<녹취> 김시곤(KBS 전 보도국장/5.9 기자회견) : "권력의 눈치만을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온 길환영 사장은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

길 사장은 김 전 보도국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면서 사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녹취> 길환영(KBS 사장) : "사장은 굉장히 많은 각계각층의 사람을 만납니다. 상당히 고급 정보..그런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 것이 우리 보도나 제작에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임원회의 석상이라든지 또는 적절한 식사자리라든지 이런 데를 통해서 제가 전달합니다. 그것은 지시가 아니고 그런 의견이 있다, 중요한 의견이 있다고 전달하는 겁니다."

<녹취> 김진희 기자 : "지금 청와대로부터 전혀 어떠한 부탁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럼 그 고급 정보는 누구입니까? 대체 누구에게 무슨 얘기를 듣고 다니십니까?"

KBS 이사회는 심사숙고 끝에 길 사장 해임제청안을 가결했습니다.

이사회는 조만간 박근혜 대통령에게 길 사장의 해임을 제청하게 되며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면 추후 공모를 통해 신임 사장을 뽑는 절차에 들어가게 됩니다.

<질문>

최 기자, 해임제청안이 통과되기 전에 KBS 대다수 직원들이 한 목소리로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촉구했죠. 그만큼 KBS의 보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내부에선 이미 느끼고 있었던 같아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몇 년에 걸쳐 누적된 KBS 보도의 문제점이 이번에 불거져 나온 건데요,

일선 기자들 뿐 아니라 부장급 간부들까지 한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리포트>

KBS 내부에서 반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막내 기자들이었습니다. 지난달 7일, KBS 보도본부 게시판에는 1년 차에서 3년 차 기자들의 반성문 10개가 올라왔습니다.

세월호 침몰 참사 현장을 취재한 막내 기자들의 뼈아픈 자기 비판이었습니다.

<녹취> 38~40기 기자들(사내게시판 반성문 中) : "우리는 현장에서 울렸던 울음과 우리를 불렀던 목소리에 귀를 닫았습니다. 매 맞는 것이 두려워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를 썼습니다. 왜 우리 뉴스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가요?"

이어,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길환영 사장이 보도에 개입했다고 폭로하자 KBS 기자협회는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제작 거부를 결의했습니다.

<녹취> 강나루(KBS 기자) : "한 종편에서는 유가족들을 생방송에서 생중계했는데 저희는 죽은 목소리만 담고 있는데 그것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뒤이어 KBS PD협회, 아나운서협회 등 16개 직능단체도 한 목소리를 냈고, 부장, 팀장 등 간부급 직원 300여 명이 보직을 내려놓으며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녹취> 유석조(KBS 전 뉴스제작2부장) : "우리가 일했던 KBS 뉴스가 이렇게 돼서는 무너지겠다는 어떤 절망감과 절실함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장들 사이에서도..."

2009년에 노선을 달리하며 분리된 KBS 양대 노조도 처음으로 연대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녹취> 권오훈(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 : "KBS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KBS의 거의 모든 직원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겁니다.

다른 언론들 역시 KBS 내부의 이례적인 움직임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MBC뉴스(05.29) : "현재 보직을 사퇴한 KBS 본사와 지역 간부의 수는 320여 명이고 파업에 돌입한, KBS 양대 노조원도 전체 직원의 80%에 달합니다."

평소 한 시간이던 9시 뉴스가 20분으로 줄어들고 각종 시사 교양 프로그램들이 결방으로 방송이 파행을 빚으면서 시청자들의 불만도 이어졌습니다.

<질문>

최 기자, KBS 내부에서 변화의 요구가 쏟아진 계기가 된 일이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인데요, 김 전 국장은 자신의 사퇴 과정 뿐 아니라 KBS 보도에서 사사건건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해 파문이 더 커졌죠?

<답변>

네, 그렇습니다. KBS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던 상황에서 김 전 보도국장의 폭로는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KBS는 세월호 사고 초기 정확한 확인 없이 속보를 내다 오보를 냈습니다.

또, 사고 이튿날 KBS는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 현장을 방문했을 때 피해자 가족들이 박 대통령에게 박수로 호응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KBS 9시 뉴스(04.17) : "가족들은 탑승자 명단 확인이 안 되는 등 불만 사항들을 건의하자 박 대통령은 즉시 시정을 지시했고 가족들은 박수로 호응했습니다."

하지만 박수 소리는 대부분 수행원들로부터 나온 것이었고 실제 현장에선 구조작업에 대한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녹취> JTBC 9시 뉴스(04.17) :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의 초동대처와 구조작업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공영방송이면서 재난 주관방송인 KBS에 쏟아진 비판은 어느 때보다 거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년 반 동안 KBS 뉴스의 책임자였던 김 전 보도국장이 세월호 사고 보도 당시 청와대와 길 사장의 개입이 있었다고 말해 파문이 커졌습니다.

<녹취> 김시곤(KBS 전 보도국장/05.16 기자총회) : "정부 쪽에선 해경을 비난하지 말 것을 여러 번 주문했었습니다./5월 5일 사장이 취임 이후 처음 보도본부장실을 방문합니다. 그 자리에서 사장 주재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보도본부장, 저, 취재주간, 편집주간 이렇게 네 명이 있는 자리에서 해경에 대한 비판은 하지 말라고 지시가 있었습니다."

김 전 보도국장이 말한 지난달 5일, 해당 뉴스의 수정 전후 원고를 확인한 결과 해경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수정 전 원고에서는 해경의 실책, 구조작업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비판했지만 수정 후 원고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완전히 삭제됐습니다.

KBS 기자협회가 공개한 김 전 보도국장이 작성한 보도 개입 일지입니다.

6일 뉴스 예고에 박근혜 대통령 기사가 빠지자, ‘헤드라인에서 2번째로 올리라’는 길 사장의 요구가 있었다고 돼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길환영 사장은 청와대 외압은 사실이 아니며, 해경 비판 축소 지시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한 수준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녹취> 길환영(KBS 사장/05.19 기자회견) : "그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해경에 대해서 충분히 비판해왔고 그런 것은 우선 실종자 문제를 빨리 수습하고 그 다음에 그 다음 단계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고, 그런 의견이 밖에 많이 있어요. 두루두루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런 의견 있어서 그런 의견도 있다는...이런 정도 의견을 얘기했죠."

그런데 정홍원 총리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국회 본회의에서 청와대가 KBS에 연락해 해경에 대한 우호적인 보도를 요청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녹취> 정홍원 총리 : "제가 알기로는 지금 이 사태가 위중하니까 수색에 좀 전념할 수 있도록 그쪽(해경)을 지원해주고 사기를 올려달라는 그런 취지의 뜻으로 요청했다는 것으로..."

<녹취> 최민희(국회의원) : "청와대 보도 통제 사실을 총리께서 이 자리에서 확인해주셨습니다."

또,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논란 당시에도 관련 뉴스를 머리기사로 올리지 말라는 길 사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게 김시곤 전 국장의 말입니다.

<녹취> 김시곤(KBS 전 보도국장/05.16 기자회견) : "윤창중 성추행 사건이 터졌을 때 사장은 톱뉴스로 올리지 말 것을 지시했습니다."

또, 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대통령 비판은 단 한 차례도 없었으며, 대통령 관련 뉴스는 20분 내로 보도하는 등의 원칙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시곤(KBS 전 보도국장/05.16 기자회견) : "정치부장도 고민 많이 했던 부분인데 대통령 해외 순방 때마다 상당히 몸살을 앓았습니다. 대통령 비판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길환영 사장은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녹취> 길환영(KBS 사장) : "대통령 관련 기사는 대개 중요한 그런 것들이 많은데 30분 대 이런 쪽에 있을 경우에는 우리는 로컬(지역) 뉴스라는 것이 있기에 중간에 잘립니다. 그렇게 되면 그런 중요한 뉴스가 로컬에서는 나가지 않게 되는 그런 경우가 있죠. 그럴 경우에 제가 한 번, 한두 번 그런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2012년 대선 직전에 불거진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 보도와 관련해 KBS는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각계각층에서 진실 규명을 요구했지만 KBS의 보도량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단독 보도 리포트의 경우도 주요시간대를 넘겨 나가기도 했습니다.

<녹취> 김시곤(KBS 전 보도국장/5.16 기자회견) : "국정원 수사에 관한 것은 일부 있었다. 순서를 좀 내리라든가, 이런 주문이 있었죠."

<질문>

최 기자, 이번 KBS 사태를 바라보는 언론계와 시민사회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답변>

네, 공영방송의 위기를 통감한 언론학자들 및 시민사회의 지지가 잇따랐습니다.

<리포트>

KBS의 보도 통제 파문이 거세지자 언론계와 학계에선 공영방송의 총체적 위기 회복을 위한 비판과 제언이 이어졌습니다.

<녹취> 언론학자 144명 성명서 전문 : "우리는 KBS 구성원들의 자기반성과 사장 퇴진 요구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지난달 28일, KBS 본관 앞에는 KBS 공정성 회복을 위한 언론개혁을 외치는 500개의 촛불이 켜졌습니다.

이 자리엔 원로 언론인들과 일반 시민도 참여했습니다.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번 일이 KBS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종철(동아투위 위원장) : "한국 언론은 오래 전에 죽었다. 그런데 이제 죽음의 늪에서 깨어나고 있다/ 저희가 1974년 동아일보에서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한 후에 75년 3월 쫓겨날 때보다 그때는 차라리 캄캄한 암흑 속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정말 희망의 빛이 보입니다."

<인터뷰> 장재희(대학생) : "이런 일이 언론의 책임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이 들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정말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제대로 된 진실을 볼 수 있게 모든 구조라든지 지금까지 쌓여왔던 잘못된 관행들과 여러 가지 꼭 개선됐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사장 교체는 최소한의 선행 조건일 뿐 KBS가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이를 위해선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근본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제도적 개편과 내부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자각이 절실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김서중(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내부 구성원들이 특별한 계기를 만나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이것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항상 언론인으로서의 자기 자각이 아주 강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의 자유, 공영방송으로서 제대로 된 보도기능을 수행하면서 살고 싶다는 의지가 있고 그것을 표출하고 그것을 획득하는 일련의 노력과 희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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