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24 이슈] 세계 민간 여객기 격추 사건들

입력 2014.07.21 (18:11) 수정 2014.07.2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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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무고한 탑승객들을 태운 민간 항공기의 피격 사건.

가장 끔찍한 참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1950년 대 이후 민간 여객기 격추 사건은 이어져 왔습니다.

대부분 군사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역에서 발생했는데요.

그때마다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를 두고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말레이 민항기 격추를 계기롤 세계의 여객기 격추 사례를 박수현 기자와 함께 정리 해보겠습니다.

<질문>
가장 컸던 비극의 사례는 유감스럽지만 우리 나라였지요?

<답변>
예, 이번 사고 보시면서 31년 전 있었던 대한항공기 격추 사건 떠올리신 분들 많으실 텐데요.

지난 1983년이였죠, 대한항공 여객기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983년.

대한항공 007편은 뉴욕에서 출발해 9월 1일 오전 6시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요.

도착 2시간 30여 분 전 쯤 일본 홋카이도 근해에서 연락이 두절됐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예정 항로를 벗어나 소련 영공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련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에 격추돼, 여객기는 사할린 서쪽에 추락했고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미사일을 발사한 러시아 전투기 조종사는 여객기를 정찰기로 확신하고 격추했다고 지난해 9월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녹취> "30초 후, KAL기의 기장은 도쿄 관제탑에 다급한 목소리로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녹취> "모든 엔진이.... (기압 급강하....)"

이 절박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승객과 승무원 296명을 태운 KAL-747기의 비행기록은 멈춰집니다.

<질문>
31년 전 KAL기 격추 사건과 이번 말레이기 사고,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죠?

<답변>
네. 미사일 공격에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점, 그리고 냉전과 내전 등 국제 갈등이 빚은 시대의 비극이란 점이 꼭 닮았습니다.

말레이시아 여객기 MH17편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해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 항공은 이 여객기와의 교신이 암스테르담에서부터 끊겼고, 마지막으로 위치가 확인된 것은 우크라이나 상공이었다고 밝혔죠.

그리고는 결국, 미사일에 격추된 처참한 잔해로 발견됐는데요.

탑승객 298 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KAL기가 격추될 당시 세계 정세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구도가 막바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는데요.

당시 양국은 첩보활동을 위해 상대국의 영공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소련이 KAL기를 정찰기로 오인했다는 주장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죠.

이번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사건은 우크라이나의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내전의 긴장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수백명의 목숨이 희생됐죠.

<인터뷰> 헤르만 플루카드(네덜란드 시민) : "인간으로서 이런 비극은 중단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고한 희생은 이제 끝나야 합니다."

여객기 격추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도 1983년과 유사하다는 지적입니다.

31년 전 KAL기 피격 당시 구소련은 KAL기의 착륙을 도우려던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일주일도 안 돼 결국 요격을 인정했고, 미사일 발사에 앞서 경고사격을 했다는 등의 거짓말을 했는데요.

러시아가 이번에도 말 바꾸기를 하고 국제조사에 협조를 꺼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질문>
민간 항공기 격추 사건 또 어떤 사례들이 있었나요?

<답변>
1950년대부터 계속돼왔습니다.

주로 전투기로 오인을 받아 격추당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1954년 태국 방콕을 출발해 홍콩으로 향하던 영국의 캐세이퍼시픽항공이, 대만 전투기로 오인한 중국군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19명 중 10명이 사망했습니다.

다음 해인 55년 이스라엘 국적의 엘알항공 여객기가 불가리아 상공에서 불가리아 전투기 2대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58명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20년 가까이 흘러 1973년. 리비아 국적의 여객기가 이스라엘 시나이 반도 상공에서 이번에는 이스라엘 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108명이 죽고 승객 4명과 부기장만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습니다.

미국 함정에 의해 이란 여객기가 격추된 적도 있습니다.

1988년.

이란의 메흐라바드 공항을 출발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공항으로 향하던 이란항공 655편 여객기가 호르무즈 해협 상공에서 미국 해군 함정에사 발사된 미사일에 격추돼, 탑승자 290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미사일을 발사한 빈센스호의 함장은 여객기를 이란 공군의 F-14 전투기라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는데요.

미국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습니다.

미국 정부는 1996년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유가족에게 6천18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이란과 합의했습니다.

<녹취> 로널드 레이건(당시 미국 대통령) : "피해를 최소화 하겟습니다. 이것은 큰 사건입니다."

<녹취> 모하마드 마할라티(당시 UN 이란 대사) : "이것은 테러입니다. 국제적으로 분노를 사는 행위입니다."

<질문>
이번 사고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인근 지역에서 이전에도 격추 사고가 있었다면서요?

<답변>
예 그렇습니다.

이번 사고 이전 가장 최근 사례인데요.

13년 전인 2001년에 흑해 상공을 지나던 러시아 국적의 민간 여객기가 격추돼 78명이 숨진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출발해 러시아 노보시비리스크로 향하던 러시아의 사이베리아 항공 1812편.

흑해 상공에서 우크라이나 군의 미사일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78명 전원이 사망했는데요, 우크라이나군이 훈련 중에 쏜 지대공 미사일에 맞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처음에는 군의 책임을 부인했지만,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합동 조사로 증거들이 나오자 사고 8일 만에 책임을 인정했죠.

유족에게 1,56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민간 항공기 격추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983년 KAL기 사건의 경우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까지 겹쳐 무려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는데요.

민간 항공기에 대한 공격은 인류 전체를 상대로 한 범죄인 만큼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함께 나서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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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24 이슈] 세계 민간 여객기 격추 사건들
    • 입력 2014-07-21 18:33:21
    • 수정2014-07-22 11:24:17
    글로벌24
<앵커 멘트>

무고한 탑승객들을 태운 민간 항공기의 피격 사건.

가장 끔찍한 참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1950년 대 이후 민간 여객기 격추 사건은 이어져 왔습니다.

대부분 군사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역에서 발생했는데요.

그때마다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를 두고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말레이 민항기 격추를 계기롤 세계의 여객기 격추 사례를 박수현 기자와 함께 정리 해보겠습니다.

<질문>
가장 컸던 비극의 사례는 유감스럽지만 우리 나라였지요?

<답변>
예, 이번 사고 보시면서 31년 전 있었던 대한항공기 격추 사건 떠올리신 분들 많으실 텐데요.

지난 1983년이였죠, 대한항공 여객기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983년.

대한항공 007편은 뉴욕에서 출발해 9월 1일 오전 6시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요.

도착 2시간 30여 분 전 쯤 일본 홋카이도 근해에서 연락이 두절됐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예정 항로를 벗어나 소련 영공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련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에 격추돼, 여객기는 사할린 서쪽에 추락했고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미사일을 발사한 러시아 전투기 조종사는 여객기를 정찰기로 확신하고 격추했다고 지난해 9월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녹취> "30초 후, KAL기의 기장은 도쿄 관제탑에 다급한 목소리로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녹취> "모든 엔진이.... (기압 급강하....)"

이 절박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승객과 승무원 296명을 태운 KAL-747기의 비행기록은 멈춰집니다.

<질문>
31년 전 KAL기 격추 사건과 이번 말레이기 사고,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죠?

<답변>
네. 미사일 공격에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점, 그리고 냉전과 내전 등 국제 갈등이 빚은 시대의 비극이란 점이 꼭 닮았습니다.

말레이시아 여객기 MH17편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해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 항공은 이 여객기와의 교신이 암스테르담에서부터 끊겼고, 마지막으로 위치가 확인된 것은 우크라이나 상공이었다고 밝혔죠.

그리고는 결국, 미사일에 격추된 처참한 잔해로 발견됐는데요.

탑승객 298 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KAL기가 격추될 당시 세계 정세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구도가 막바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는데요.

당시 양국은 첩보활동을 위해 상대국의 영공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소련이 KAL기를 정찰기로 오인했다는 주장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죠.

이번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사건은 우크라이나의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내전의 긴장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수백명의 목숨이 희생됐죠.

<인터뷰> 헤르만 플루카드(네덜란드 시민) : "인간으로서 이런 비극은 중단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고한 희생은 이제 끝나야 합니다."

여객기 격추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도 1983년과 유사하다는 지적입니다.

31년 전 KAL기 피격 당시 구소련은 KAL기의 착륙을 도우려던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일주일도 안 돼 결국 요격을 인정했고, 미사일 발사에 앞서 경고사격을 했다는 등의 거짓말을 했는데요.

러시아가 이번에도 말 바꾸기를 하고 국제조사에 협조를 꺼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질문>
민간 항공기 격추 사건 또 어떤 사례들이 있었나요?

<답변>
1950년대부터 계속돼왔습니다.

주로 전투기로 오인을 받아 격추당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1954년 태국 방콕을 출발해 홍콩으로 향하던 영국의 캐세이퍼시픽항공이, 대만 전투기로 오인한 중국군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19명 중 10명이 사망했습니다.

다음 해인 55년 이스라엘 국적의 엘알항공 여객기가 불가리아 상공에서 불가리아 전투기 2대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58명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20년 가까이 흘러 1973년. 리비아 국적의 여객기가 이스라엘 시나이 반도 상공에서 이번에는 이스라엘 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108명이 죽고 승객 4명과 부기장만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습니다.

미국 함정에 의해 이란 여객기가 격추된 적도 있습니다.

1988년.

이란의 메흐라바드 공항을 출발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공항으로 향하던 이란항공 655편 여객기가 호르무즈 해협 상공에서 미국 해군 함정에사 발사된 미사일에 격추돼, 탑승자 290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미사일을 발사한 빈센스호의 함장은 여객기를 이란 공군의 F-14 전투기라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는데요.

미국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습니다.

미국 정부는 1996년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유가족에게 6천18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이란과 합의했습니다.

<녹취> 로널드 레이건(당시 미국 대통령) : "피해를 최소화 하겟습니다. 이것은 큰 사건입니다."

<녹취> 모하마드 마할라티(당시 UN 이란 대사) : "이것은 테러입니다. 국제적으로 분노를 사는 행위입니다."

<질문>
이번 사고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인근 지역에서 이전에도 격추 사고가 있었다면서요?

<답변>
예 그렇습니다.

이번 사고 이전 가장 최근 사례인데요.

13년 전인 2001년에 흑해 상공을 지나던 러시아 국적의 민간 여객기가 격추돼 78명이 숨진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출발해 러시아 노보시비리스크로 향하던 러시아의 사이베리아 항공 1812편.

흑해 상공에서 우크라이나 군의 미사일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78명 전원이 사망했는데요, 우크라이나군이 훈련 중에 쏜 지대공 미사일에 맞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처음에는 군의 책임을 부인했지만,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합동 조사로 증거들이 나오자 사고 8일 만에 책임을 인정했죠.

유족에게 1,56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민간 항공기 격추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983년 KAL기 사건의 경우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까지 겹쳐 무려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는데요.

민간 항공기에 대한 공격은 인류 전체를 상대로 한 범죄인 만큼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함께 나서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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