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징용 한인’ 반란 최초 확인…그들은 노예

입력 2014.08.12 (21:21) 수정 2014.08.1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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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태평양 전쟁 때 일제에 징용당한 한국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일부가 살아남은 사실이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심수련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리포트>

일본군 토벌대를 피해 달아나는 한국인 징용 노동자들.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든 뒤 미군의 구명보트에 오릅니다.

벌거벗은 상체는 앙상하게 말랐고, 얼굴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남아 있습니다.

배 안으로 옮겨져 허기를 채우는 모습.

그래도 불안해 보입니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당시 구조한 68명을 일본군에 반란을 일으킨 193명중 일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들의 신분을 '한국인 강제징용자'로 기록했습니다.

강제징용자들의 반란과 탈출은 1945년 태평양 마셜제도 체르본 섬에서 일어났습니다.

전쟁 말기 굶주림에 일본군이 징용자들을 살해해 인육을 먹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인터뷰> 김득중(연구사) : "일본군이 조선인을 학살하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거든요. 생명이 굉장히 위협받고 있던 그런 상황에서 섬을 탈출하게 된 거죠."

징용자들의 저항은 일본군 전범 기록에서도 확인됩니다.

마셜제도에서 복무한 히데사쿠는 전범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한국인 폭동과 이에 대한 토벌은 사실이며 인육 살해는 마셜제도 곳곳에서 있었다고 기술했습니다.

<인터뷰> 이상록(연구사) : "절대적인 생존의 위협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일제 말기 징용의 의미를 명확히 보여주는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증언으로만 떠돌던 일본군의 만행과 목숨을 건 징용자들의 저항이 기록으로 확인됐습니다.

KBS 뉴스 심수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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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징용 한인’ 반란 최초 확인…그들은 노예
    • 입력 2014-08-12 21:22:51
    • 수정2014-08-12 22:06:13
    뉴스 9
<앵커 멘트>

태평양 전쟁 때 일제에 징용당한 한국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일부가 살아남은 사실이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심수련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리포트>

일본군 토벌대를 피해 달아나는 한국인 징용 노동자들.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든 뒤 미군의 구명보트에 오릅니다.

벌거벗은 상체는 앙상하게 말랐고, 얼굴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남아 있습니다.

배 안으로 옮겨져 허기를 채우는 모습.

그래도 불안해 보입니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당시 구조한 68명을 일본군에 반란을 일으킨 193명중 일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들의 신분을 '한국인 강제징용자'로 기록했습니다.

강제징용자들의 반란과 탈출은 1945년 태평양 마셜제도 체르본 섬에서 일어났습니다.

전쟁 말기 굶주림에 일본군이 징용자들을 살해해 인육을 먹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인터뷰> 김득중(연구사) : "일본군이 조선인을 학살하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거든요. 생명이 굉장히 위협받고 있던 그런 상황에서 섬을 탈출하게 된 거죠."

징용자들의 저항은 일본군 전범 기록에서도 확인됩니다.

마셜제도에서 복무한 히데사쿠는 전범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한국인 폭동과 이에 대한 토벌은 사실이며 인육 살해는 마셜제도 곳곳에서 있었다고 기술했습니다.

<인터뷰> 이상록(연구사) : "절대적인 생존의 위협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일제 말기 징용의 의미를 명확히 보여주는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증언으로만 떠돌던 일본군의 만행과 목숨을 건 징용자들의 저항이 기록으로 확인됐습니다.

KBS 뉴스 심수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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