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초 마을, 철퇴 맞은 사연

입력 2014.08.16 (08:33) 수정 2014.08.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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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있는 교황이 다음 달 유럽 지역 첫 방문국으로 택한 나라.

알바니아입니다.

폐쇄적 공산주의의 길을 걷다 개방된 지 이제 20여 년,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입니다.

이런 알바니아에 대마초 소굴로 불리는 마을이 있습니다.

불법이지만 어떤 제재도 받지 않은 채 마을 전체가 15년 동안 대마초를 재배해왔는데요.

알바니아 정부가 최근 이 마을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이경진 순회특파원이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무장한 경찰들을 태운 헬기가 출동하고 도로에는 수십대의 장갑차가 나타났습니다.

복면을 쓴 경찰 특공대원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면서 지나는 차량들을 검문합니다.

발칸반도의 소국 알바니아 남부의 한 마을에 지난 6월, 경찰 특공대 8백 여 명이 들이닥쳤습니다.

이 마을의 이름은 라자라트.

위성사진을 보면, 주변은 황무지인데 라자라트만 선명한 녹색입니다.

전부 대마초입니다.

간선 도로를 벗어나 오르막 길을 10분쯤 달리면 산등성이마다 자리잡은 빨간 지붕의 집들,

라자라트 마을 입니다.

대마초 소탕 작전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방탄조끼를 입고 소총과 단검을 찬 무장 경찰들이 여전히 마을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다시 대마초를 키우지 못하도록 계속 순찰을 도는 겁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 : "(경찰이 몇 명이나 배치돼 있습니까?)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취재진은 설득 끝에 경찰과 함께 마을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탄피가 수두룩하고

골목 구석에는 대마초를 태운 흔적과, 타다 만 대마초 가루들이 남아있습니다.

한 때 동네 공터마다, 집집마다 빼곡하게 들어찼던 대마초는 이제 길가에서 몇 그루 볼 수 있는게 전부입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 : "유럽 어느 지역보다 대마초가 자리기에 좋은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토양 성분도 적합하고요."

천 5백 명이 살고 있는 라자라트 마을. 지난 15년 동안 개인 재배지 형태로 대마초를 대량 생산해 왔는데 그 규모가 산업이라고 할 만하다는 게 현지 당국의 판단입니다.

무슬림 42가구를 제외하고 모든 주민이 대마초 재배를 생업으로 삼아왔습니다.

지난 해 이 마을에서 생산한 대마초는 61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같은 기간 알바니아의 국내총생산, GDP는 128억 달러, 대마초 생산이 GDP의 절반 수준에 달합니다.

GDP 통계에 잡히진 않지만 대마초가 알바니아 경제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대마초 덕분에 가난을 벗어나 부촌이 됐던 시골 마을 라자라트,'대마초 마을', '대마초 마피아의 소굴'로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결국 몰락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녹취> 마을 주민 : "경찰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뭘 더 어떻게 하겠어요. 과거 세르비아-코소보 전쟁이 정부와 라자라트 마을 분쟁으로 재연된 거예요."

경찰은 열흘에 걸친 작전에서 50명을 체포했습니다.

기관총 4백여 정과 40문의 박격포를 압수하고 마을 구석구석 숨겨져 있던 대마초 70톤을 찾아내 모두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을 중범죄자로 보지는 않습니다.

경찰이 쫓는 건 라자라트를 거점으로 삼은 대마초 밀매 범죄 조직입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 : "마피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대마를 재배하게 했죠. 안 그러면 총으로 협박을 했고요."

사실 알바니아에서 대마초 재배와 판매, 흡연은 모두 불법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라자라트는 일종의 성역처럼 법 위에 군림한 셈 입니다.

그런데, 알바니아 정부가 이제 와서 뒤늦게 단속에 나선 이유는 뭘까요?

인구 3백 만 명.

경상남북도를 합한 것 보다도 작은 면적의 알바니아.

지난 1991년 공산주의에서 벗어나 시장경제 체제를 택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소련과도 등졌던 지독한 폐쇄 정책 탓에 실업률 16.9% 최저빈곤층 14.3%

유럽의 최빈국으로 전락했습니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지난 20여 년은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인터뷰> 아보케이트(변호사) :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아주 다릅니다. 밤과 낮처럼 말이죠. 자유를 얻었지만 그걸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지난 해 집권한 사회당 에디 라마 총리는 이 모든 걸 극복할 카드로 유럽연합, EU 가입을 약속했습니다.

<인터뷰> 카스트리엇(전 국회의장) : "EU 회원국이 되는 건 국가의 미래와 번영을 위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선진국의 일원이 되려면 갖춰야 할 조건들이 있죠."

EU가 강조하는 가입 조건은 정치 민주화와 법에 의한 통제.

법 위에 군림했던 라자라트 마을이 하루 아침에 쑥대밭이 된 이유입니다.

유럽 연합이 알바니아를 '유럽의 대마초 근원지'로 보고 있던 터라 라자라트를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겁니다.

물론 전 정권에 정치자금을 댔다는 의혹도 단속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국민들에게 부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경찰은 이제 법치의 일선에 서 있습니다.

<인터뷰> 겐티안(지로카스터주 경찰 대변인) : "유럽연합과 전 세계의 기준에 부합할 수 있도록 법 적용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알바니아 새 정부는 경제, 교육, 의료 등 각 분야에서 집권 300일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차량 번호판도 기존의 국기 문양에서 EU 회원국과 비슷한 모양으로 바꿨습니다.

빈민들이 도심에서 내 쫓기는 개발의 부작용과 직업 선택의 자유보다는 공산주의식 배급제가 그립다는 인식도 있지만, EU 가입에 대한 열망만큼은 큽니다.

<인터뷰> 사울리(치과의사) : "EU에 가입하면 국가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 경제 수준도요."

알바니아는 라자라트 소탕 닷새 뒤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두 번의 실패 끝에 얻은 결과입니다.

<인터뷰> 올다시(알바니아인) : "한 국가의 역사에서 20년은 긴 시간이 아닙니다. 지난 1년 동안 많은 긍정적 변화가 있었고 알바니아인들은 여전히 기대가 큽니다."

알바니아인들은 앞으로 10년에 자신들의 미래를 걸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직은 가난하고 자유를 누리는데도 서툴러 통제가 필요하지만 가장 큰 무기, 희망과 가능성을 가졌다고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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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마초 마을, 철퇴 맞은 사연
    • 입력 2014-08-16 08:55:40
    • 수정2014-08-16 09:22:41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있는 교황이 다음 달 유럽 지역 첫 방문국으로 택한 나라.

알바니아입니다.

폐쇄적 공산주의의 길을 걷다 개방된 지 이제 20여 년,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입니다.

이런 알바니아에 대마초 소굴로 불리는 마을이 있습니다.

불법이지만 어떤 제재도 받지 않은 채 마을 전체가 15년 동안 대마초를 재배해왔는데요.

알바니아 정부가 최근 이 마을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이경진 순회특파원이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무장한 경찰들을 태운 헬기가 출동하고 도로에는 수십대의 장갑차가 나타났습니다.

복면을 쓴 경찰 특공대원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면서 지나는 차량들을 검문합니다.

발칸반도의 소국 알바니아 남부의 한 마을에 지난 6월, 경찰 특공대 8백 여 명이 들이닥쳤습니다.

이 마을의 이름은 라자라트.

위성사진을 보면, 주변은 황무지인데 라자라트만 선명한 녹색입니다.

전부 대마초입니다.

간선 도로를 벗어나 오르막 길을 10분쯤 달리면 산등성이마다 자리잡은 빨간 지붕의 집들,

라자라트 마을 입니다.

대마초 소탕 작전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방탄조끼를 입고 소총과 단검을 찬 무장 경찰들이 여전히 마을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다시 대마초를 키우지 못하도록 계속 순찰을 도는 겁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 : "(경찰이 몇 명이나 배치돼 있습니까?)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취재진은 설득 끝에 경찰과 함께 마을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탄피가 수두룩하고

골목 구석에는 대마초를 태운 흔적과, 타다 만 대마초 가루들이 남아있습니다.

한 때 동네 공터마다, 집집마다 빼곡하게 들어찼던 대마초는 이제 길가에서 몇 그루 볼 수 있는게 전부입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 : "유럽 어느 지역보다 대마초가 자리기에 좋은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토양 성분도 적합하고요."

천 5백 명이 살고 있는 라자라트 마을. 지난 15년 동안 개인 재배지 형태로 대마초를 대량 생산해 왔는데 그 규모가 산업이라고 할 만하다는 게 현지 당국의 판단입니다.

무슬림 42가구를 제외하고 모든 주민이 대마초 재배를 생업으로 삼아왔습니다.

지난 해 이 마을에서 생산한 대마초는 61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같은 기간 알바니아의 국내총생산, GDP는 128억 달러, 대마초 생산이 GDP의 절반 수준에 달합니다.

GDP 통계에 잡히진 않지만 대마초가 알바니아 경제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대마초 덕분에 가난을 벗어나 부촌이 됐던 시골 마을 라자라트,'대마초 마을', '대마초 마피아의 소굴'로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결국 몰락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녹취> 마을 주민 : "경찰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뭘 더 어떻게 하겠어요. 과거 세르비아-코소보 전쟁이 정부와 라자라트 마을 분쟁으로 재연된 거예요."

경찰은 열흘에 걸친 작전에서 50명을 체포했습니다.

기관총 4백여 정과 40문의 박격포를 압수하고 마을 구석구석 숨겨져 있던 대마초 70톤을 찾아내 모두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을 중범죄자로 보지는 않습니다.

경찰이 쫓는 건 라자라트를 거점으로 삼은 대마초 밀매 범죄 조직입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 : "마피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대마를 재배하게 했죠. 안 그러면 총으로 협박을 했고요."

사실 알바니아에서 대마초 재배와 판매, 흡연은 모두 불법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라자라트는 일종의 성역처럼 법 위에 군림한 셈 입니다.

그런데, 알바니아 정부가 이제 와서 뒤늦게 단속에 나선 이유는 뭘까요?

인구 3백 만 명.

경상남북도를 합한 것 보다도 작은 면적의 알바니아.

지난 1991년 공산주의에서 벗어나 시장경제 체제를 택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소련과도 등졌던 지독한 폐쇄 정책 탓에 실업률 16.9% 최저빈곤층 14.3%

유럽의 최빈국으로 전락했습니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지난 20여 년은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인터뷰> 아보케이트(변호사) :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아주 다릅니다. 밤과 낮처럼 말이죠. 자유를 얻었지만 그걸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지난 해 집권한 사회당 에디 라마 총리는 이 모든 걸 극복할 카드로 유럽연합, EU 가입을 약속했습니다.

<인터뷰> 카스트리엇(전 국회의장) : "EU 회원국이 되는 건 국가의 미래와 번영을 위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선진국의 일원이 되려면 갖춰야 할 조건들이 있죠."

EU가 강조하는 가입 조건은 정치 민주화와 법에 의한 통제.

법 위에 군림했던 라자라트 마을이 하루 아침에 쑥대밭이 된 이유입니다.

유럽 연합이 알바니아를 '유럽의 대마초 근원지'로 보고 있던 터라 라자라트를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겁니다.

물론 전 정권에 정치자금을 댔다는 의혹도 단속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국민들에게 부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경찰은 이제 법치의 일선에 서 있습니다.

<인터뷰> 겐티안(지로카스터주 경찰 대변인) : "유럽연합과 전 세계의 기준에 부합할 수 있도록 법 적용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알바니아 새 정부는 경제, 교육, 의료 등 각 분야에서 집권 300일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차량 번호판도 기존의 국기 문양에서 EU 회원국과 비슷한 모양으로 바꿨습니다.

빈민들이 도심에서 내 쫓기는 개발의 부작용과 직업 선택의 자유보다는 공산주의식 배급제가 그립다는 인식도 있지만, EU 가입에 대한 열망만큼은 큽니다.

<인터뷰> 사울리(치과의사) : "EU에 가입하면 국가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 경제 수준도요."

알바니아는 라자라트 소탕 닷새 뒤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두 번의 실패 끝에 얻은 결과입니다.

<인터뷰> 올다시(알바니아인) : "한 국가의 역사에서 20년은 긴 시간이 아닙니다. 지난 1년 동안 많은 긍정적 변화가 있었고 알바니아인들은 여전히 기대가 큽니다."

알바니아인들은 앞으로 10년에 자신들의 미래를 걸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직은 가난하고 자유를 누리는데도 서툴러 통제가 필요하지만 가장 큰 무기, 희망과 가능성을 가졌다고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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